쉽게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나라 배우들이 국내보다 수입이 괜찮은 일본 진출에만 열을 올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문에 연기력과 흥행성을 갖춘 배우들이 일본으로 다 떠나는 걸 막기 위해 영화배우의 해외 진출을 규제하는 제도가 생긴다면 어떨까. 물론 국내에 능력 있는 배우가 넘쳐나게 돼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일본 진출을 막기 위해 생긴 규정 때문에 더 큰 시장인 헐리우드로 진출하지 못하는 배우가 생긴다면 이는 과연 타당한 규정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규정 자체는 애초에 더 큰 시장으로 나가는 이들을 막으려던 게 아니라 우리 시장과 배우를 지키기 위한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류승우의 레버쿠젠 임대, 어떻게 봐야 할까?

류승우가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으로 임대됐다. 유럽 여러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던 류승우는 언젠가는 더 큰 무대로 향할 선수였다. 하지만 그가 독일로 떠나는 모양새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K리그 클래식 제주유나이티드와 계약을 맺은 류승우는 임대 형식으로 독일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유럽 도전을 응원하고 이해 당사자인 제주와 류승우, 레버쿠젠이 합의한 사항이니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여기에 제주로서는 류승우가 완전 이적하면 이적료까지 챙길 수도 있고 나중에 류승우가 박지성만큼 성공할 경우 이거 제주에서 한 경기도 안 뛴 ‘제주 레전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편법이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K리그를 거치지 않는 선수는 향후 5년간 K리그에 복귀할 수 없다는 규정, 흔히 말하는 ‘5년룰’을 교묘히 피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류승우는 제주에서 짐도 풀지 않고 독일로 떠났지만 그는 원소속팀이 제주이기 때문에 K리그 복귀 제한 ‘5년룰’에 걸리지 않는다. 좋게 말해 머리를 잘 쓴 거고 나쁘게 말해 편법이다.

이 부분은 한국 축구와 K리그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 선수가 편법을 이용해 규정을 벗어난 걸로 끝낼 게 아니다. 나는 이 ‘5년룰’이 유럽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다 융통성을 발휘해 이 규정을 일본 진출에 한해 규제하거나 아시아권 프로리그로만 국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규정의 애초 신설 목적은 우리의 유망주들이 무분별하게 일본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한 규정이었지 더 큰 무대로의 도전을 막는 규정은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럽 축구를 신봉하는 우리의 현실 자체에는 거부감이 있지만 유망주들이 유럽으로 날아가 더 큰 무대를 경험하고 한국 축구의 수준을 높이는 건 당연히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 규정이 생긴 뒤 그 효과는 분명했다. 일단 이 규정 신설 전에는 우리가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우리의 유망주들이 일본으로 빠져 나갔다는 점부터 강조하고 싶다. 황선홍과 홍명보, 유상철, 최용수 등 한국에서도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 했던 선수들이 J리그에서 많은 연봉을 받으며 몸값 이상의 활약을 했던 시대가 지나자 J리그는 우리의 유망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오장은을 비롯해 김동현, 김근철, 이강진, 김근환, 정동호, 조영철, 서용덕 등 한국 축구를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어린 선수들이 대거 대한해협을 건넌 것이다. 심지어 J2리그에도 한국 선수들이 대거 진출했다. 한국영을 비롯해 배승진, 김민우, 최정한 등 수많은 선수들이 J2리그에서 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백성동과 장현수, 김진수, 최성근 등이 일본으로 진출했다.

유망주의 J2리그 러시, ‘5년룰’의 탄생 배경

‘5년룰’이 생기기 전에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현재 J2리그에만 40여 명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연령별 대표를 거쳐 착실하게 성장하던 선수들 중 상당수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J리그 1세대들이 이미 전성기를 경험하며 일본 무대 적응도 쉬웠고 대우도 좋았던 반면 지금 일본으로 나간 선수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한낱 유망주들을 대거 싹쓸이해 몇 번 써보고 아니면 마는 식이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생활하는 선수도 있었다. 경쟁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으로 무분별하게 진출했다가는 실패한다는 걸 여러 선수들이 직접 증명했다. 근래 들어 유망주 중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성공한 사례는 김보경(카디프시티)과 박주호(마인츠)를 제외하고는 딱히 없다. J리그 진출도 우리로서는 상당한 유망주의 손실인데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 일본의 2부리그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건 무척 슬프고 화나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J리그 드림’은 없다. J2리그에서 데뷔도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도 수두룩하다.

결론적으로 K리그의 ‘5년룰’은 성공을 거뒀다. 물론 지금도 몇몇 선수들이 일본으로 떠나고 있지만 해외에 진출한 뒤 5년 동안 국내 무대를 밟을 수 없다는 규정은 유망주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됐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뛰다가 실패해도 K리그로 돌아오면 어차피 이름값이 있으니 소속팀을 찾고 재기하는데 큰 부담이 없었지만 아예 5년 동안 복귀 금지를 규정으로 내세운 뒤에는 해외 진출에 따른 실패 부담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쉽사리 일본으로 떠나는 유망주는 없다. 1991년생으로 연령대 대표팀을 착실히 거친 뒤 고려대 재학 중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에 입단했다가 데뷔전도 치르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방출된 이재관은 이제 축구계 미아가 되고 말았고 2013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천FC의 지명을 받고도 이를 거부한 채 J2리그로 떠난 양해준도 ‘5년룰’ 적용으로 복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부천으로만 돌아올 수 있지만 부천이 이를 거부한 상황이다.

결국 양해준은 이제 해외에서 어떤 식으로건 승부를 봐야 한다. 더군다나 상무나 경찰청에 입단하려면 원소속팀이 K리그여야 하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양해준은 상무나 경찰청 입단도 불가능하다. 알아서 군대 문제 해결하고 알아서 5년 동안 해외 팀을 찾아다녀야 한다. 이재관이나 양해준의 사례를 살펴본다면 개인에게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5년룰’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본에 가는 선수들을 제어할 수 있는 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어린 선수들이 더 보호받으며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일본, 특히 J2리그로의 이적에는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런 면에서 이 규정은 최근 들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본에 갔다가 실패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J리그 문을 두드리는 이는 없다. 나는 K리그의 이 규정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K리그를 위해서도 그렇고 선수를 위해서도 그렇다. 올 시즌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에도 이 규정 때문에 일본 진출을 접은 이들이 많다.

‘5년룰, 현실에 맞는 개정 필요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일본행 러시를 막기 위한 이 규정 때문에 유럽으로 나가려는 선수들까지 제약을 받는 건 이 규정의 부정적인 면이다. 얼마 전 만났던 류승우도 나에게 K리그 ‘5년룰’ 규정에 대해 물으며 이에 대한 상당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만약 ‘5년룰’이 아니었다면 류승우가 제주를 거치지 않고 부담을 던 채 일찌감치 독일로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규정으로 우리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에도 제약이 생기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개인적으로는 이청용이나 기성용, 구자철처럼 K리그 무대에서 이미 검증을 마치고 유럽으로 도전하는 걸 추천하지만 유망주들이 유럽에서 성인 무대의 처음을 시작하는 건 J리그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유망주의 유럽 연수 프로젝트까지도 실시하는 마당에 선수가 돈 받고 유럽 가는 건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 아닌가.

어느 무대에서나 열심히 하는 선수는 성공한다. 그게 J리그여도 그렇고 유럽 무대여도 그렇다. 처음 시작한 무대가 어디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우리 유망주를 쓸어 가는 J리그보다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시스템을 갖춘 유럽에서 훈련받고 경기에 나서는 게 유망주들의 성장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는 더 유리하다. K리그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모든 선수들이 K리그를 거쳐 유럽으로 진출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꼭 K리그를 거치기 않고 해외에 나가야 한다면 당연히 J리그보다는 유럽이다. 그런 면에서 K리그의 ‘5년룰’이 일본과 유럽을 동일시 놓고 규제하는 건 잘못됐다. 이 규정은 지금껏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일본 진출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지 더 큰 무대에 도전하는 이들까지도 막기 위해 신설된 규정은 아니었다. 류승우는 현 규정상 편법을 선택한 건 분명하지만 이 규정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K리그 ‘5년룰’이 적용되는 무대를 한정하는 게 어떨까. 마음 같아서는 일본 진출 선수들에게만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이 규정을 일본에만 들이대 K리그와 J리그의 교류에 문제가 생길 게 부담스럽다면 K리그 ‘5년룰’을 아시아 무대로 한정하는 것도 좋다. 어차피 이 규정을 아시아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성인 국가대표 경력을 영입의 1순위 조건으로 따지는 중동이나 중국으로 곧장 진출할 유망주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류승우의 사례에서 보듯 이런 편법이 더 많이 악용될 수도 있다. 특히 재정이 약한 K리그 챌린지의 시·도민구단 같은 경우는 이적료를 목적으로 유망주를 영입해 곧바로 J리그에 넘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구단은 돈을 벌고 선수는 원하는 J리그 구단으로 이적했다가도 ‘5년룰’에 걸리지 않고 복귀할 명분을 얻게 된다. ‘5년룰’은 결국 이런 편법에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K리그 ‘5년룰’은 적용 범위를 아시아로 한정하면서도 편법을 막을 수 있도록 1년 이상 국내 구단에서 뛰어야 J리그로의 이적이 ‘5년룰’에 적용되지 않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J리그와 유럽 진출, 똑같은 규정으로 묶으면 안 된다

만약 류승우와 같은 방법으로 J리그로 떠나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류승우가 떠난 곳은 독일 명문 레버쿠젠이라 그나마 여론의 호의적이다. 그런데 누군가 똑같은 방법으로 일본에 진출했다면 그때는 한국 축구가 굉장히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이걸 같은 잣대로 놓고 볼 수 있을까. 유럽 진출이면 만사 오케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여서 그렇지 아마 누군가 이 규정을 이용해 일본으로 떠났다면 아주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K리그 ‘5년룰’이 적용되는 리그의 범위를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K리그 ‘5년룰’은 유망주들이 무분별하게 일본에 진출해 성장이 정체되는 걸 막기 위한 아주 좋은 제도다. 이제 대책 없이 일본으로 떠나는 선수들도 현저히 줄었으니 그 효과도 제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에 도전하는 이들은 많은 연봉을 떠나 한 번 큰 무대에서 호기롭게 붙어보겠다는 선수들인데 이 선수들을 그저 일본 무대나 두드리는 선수와 같은 취급을 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K리그 ‘5년룰’은 융통성 있는 개정이 필요하다. 이게 선수들의 해외 진출 자체를 금지하고 국내에 묶어두려는 쇄국 정책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