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추첨이 끝나고 이제 대표팀은 2014 브라질월드컵을 향해 본격적인 담금질에 들어가야 한다. 요 며칠 동안 조추첨 결과를 놓고 많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팀이 확실한 1승 상대인지, 벨기에는 얼마나 강한지 등 이제는 우리 조에 포함된 팀에 대한 분석을 우리 옆집 아저씨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제 조추첨에 대한 분석은 축구를 사랑하는 전국민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아무리 상대를 잘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홍명보호의 가장 취약한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문제점 해결 없이는 원하는 성적을 거둘 수가 없다.

서서히 그려지는 대표팀의 밑그림

아직 6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고 경쟁은 월드컵 본선 경기 전날까지도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큰 그림은 그려졌다. 중앙 수비는 김영권과 홍정호가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왼쪽 측면의 김진수와 오른쪽 측면의 이용도 합격점을 받았다. 여기에 신광훈, 박주호 등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모양새다. 만약 김진수-김영권-홍정호-이용의 포백 라인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기존 선수들의 부진보다는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의 기량이 더 늘었을 때일 것이다. 골문 역시 최근 들어 김승규가 정성룡을 밀어내고 주전 수문장으로 도약한 모습이다. 통상적으로 변화가 크게 없는 수비진은 앞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이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여기에는 홍정호가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얼마나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변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치열한 포지션은 중원이다. 기성용은 최근 대표팀에 복귀한 뒤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본선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남아 있지만 기성용은 큰 이변이 없는 한 4-2-3-1 포메이션의 수비형 미드필더 두 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선수들도 기량이 꾸준하다. 한국영을 비롯해 이명주, 박종우 등 어느 누가 나서도 기성용의 파트너 역할을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아시아 정상급 미드필더인 하대성이 기성용에 가려 기회를 못 잡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붙박이' 기성용과 그의 파트너를 찾는 일은 앞으로도 홍명보 감독에게는 행복한 고민이 될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큰 걱정이 없다.

윙포워드 자원은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왼쪽의 손흥민과 오른쪽의 이청용은 어느덧 대표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그가 더 큰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 서면 더 좋은 활약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을 월드컵 본선 상대 앞에서 손흥민이 뒷공간을 파고 들어 자신의 장기인 폭발적인 드리블과 슈팅을 제대로 선보이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오른쪽의 이청용 역시 큰 변수가 없는 한 선발 출전이 확실시 된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이 두 날개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홍명보호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한다. 최전방 공격수 역시 다시 기회를 잡은 김신욱이 좋은 활약을 펼치며 홍명보 감독의 고민을 덜어주게 됐다.

결국 공격형 미드필더가 해결해줘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4-2-3-1 포메이션 중 '3'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다. 이 자리를 담당하는 좋은 자원이 즐비하지만 아직 대표팀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에서 가장 앞서나가던 구자철은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김보경 역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둘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부딪혀야 하는데 지금 대표팀 상황에서는 이게 전혀 되지 않고 있다. 대표팀은 앞으로 여러 차례 평가전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이 둘의 공존을 위해 김보경을 측면으로 돌려 세운 적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손흥민과의 경쟁도 피할 수가 없다. 구자철이 당장 부상에서 회복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구자철은 능력 있는 선수임에 분명하고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도 홍명보호의 동메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후 대표팀에서는 줄곧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이 포지션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다. 과거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서 최전방 공격수가 골을 뽑아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제외하고 정통 스트라이커 자원이 해결사 본능을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다. 주로 최전방 공격수는 상대와 몸싸움을 통해 공간을 만들고 그 빈자리를 2선 공격수들이 침투해 해결하거나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이 우리의 전술이었다. 몸싸움에서 강점을 보이는 러시아나 벨기에 수비를 상대로 김신욱이 어느 정도 싸워주면 공격형 미드필더가 시원하게 꽂아 넣어 주는 게 우리의 득점 루트가 되어야 한다. 중거리슛 능력이 뛰어난 구자철이나 왼발이 강력한 김보경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최근 들어 이 둘은 대표팀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해결사 본능뿐 아니라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다소 아쉽다.

이 둘 중 한 명이라도 확실히 살아나야 전술적인 카드가 늘어난다. 바로 이근호 때문이다. 최근 이근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대표팀 경기에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울산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김신욱과의 연계 플레이도 좋았고 손흥민과 서로 자리를 바꾸며 측면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나는 이근호의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를 분위기 전환을 위해 후반에 투입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형화된 4-2-3-1 포메이션에서 갑자기 빠른 발을 보유한 이근호의 투입으로 상대에게 혼란을 주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근호는 분위기를 한 순간에 바꿀 능력을 지녔고 스타일 역시 그렇다. 그를 선발로 쓰기에는 다소 아깝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철이나 김보경이 더 살아날 필요가 있다. 2012 런던올림픽 이후 대표팀 경기에서 구자철이 유독 눈에 띄는 플레이를 펼친 적은 냉정히 따져 봤을 때 없었던 것 같다.

몇 가지 대안과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문제는 이 둘 모두 소속팀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카디프시티 김보경은 선발 경쟁에서 밀려 후반 교체 투입되고 있다. 꾸준히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볼프스부르크에서 뛰는 구자철은 팀내에서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그것도 부상을 당하기 전에도 주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본인의 능력이야 워낙 뛰어난 선수지만 대표팀에서 맡은 역할과 소속팀에서 맡은 역할이 달라 적지 않은 혼동이 있는 것 같다. 팀이 위급할 때마다 구자철은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희생했었다. 부상에서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소속팀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일 확률이 높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둘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살아야 그만큼 대표팀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홍명보 감독 역시 이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적지 않게 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자리는 월드컵 본선에서 슈팅을 펑펑 쏴줘야 하는 자리다.

몇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둘 중 한 명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 없다면 4-2-3-1 포메이션에 이은 두 번째 전술로 제로톱을 가동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최전방 공격 자원은 김신욱 뿐이기 때문에 김신욱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김신욱을 아예 제외하고 구자철을 조금 더 공격적인 성향으로 활용하면서 김보경 역시 중원을 책임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이전 몇 경기에서 이 둘의 공존을 실험하다가 결국 절반의 실패를 맛본 적도 있다. 또한 최근 꾸준히 기량을 쌓고 있는 남태희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록 남태희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아니지만 중동에서 꾸준히 기회를 얻으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도 후반에 투입돼 결정적인 패스를 하는 등 어느덧 구자철과 김보경을 위협할 선수로까지 떠올랐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결국 이근호 카드를 전반부터 꺼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아예 4-2-3-1 포메이션을 포기하고 김신욱-이근호 투톱을 가동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구자철과 김보경은 한국 축구의 보물과도 같은 선수다.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둘의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가진 기량만 모두 보여준다면 지금의 대표팀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선수들이라는 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본인들 스스로도 칼을 갈고 있을 것이고 홍명보 감독도 남은 기간 동안 여러 고민을 하면서 결단을 내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기력을 본다면 홍명보 감독이 이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홍명보 감독의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형 미드필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성적도 얻을 수 없다. 고스톱에서 '굳은자' 쓰리피와 고도리를 다 들고 있어서 어느 걸 먹고 날지 고민하는 내년 6월이 됐으면 한다. 이 둘 중 '연사'도 없어야 한다. 그게 바로 홍명보 감독에게 내려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