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건 마지막 한판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FC서울은 내일(9일) 중국 광저우 텐허스타디움에서 광저우 헝다와 201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을 치른다. 1차전 홈 경기를 2-2로 마친 서울은 광저우 원정에서 승리하게 되면 감격적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출 수 있다. 3-3 이상의 무승부를 거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이제 이 한 경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아시아 정상에 바로 눈 앞에 있기 때문이다. 8개월 간의 AFC 챔피언스리그 대장정은 이제 이 한 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다. 나는 박은선 성별 논란으로 축구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이 중요한 경기가 예상외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참 아쉽다.

졸지에 중국 대표 된 광저우의 부담감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광저우가 대단한 팀이기는 하지만 자꾸 서울이 광저우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건 인정할 수 없다. 돈 씀씀이에서는 광저우가 서울에 비해 몇 배나 앞서는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이 도전자의 입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나는 오히려 광저우가 도전자 입장이고 서울은 좀 더 높은 클래스에서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서울 스스로가 뭔가 꿇리고 들어가 전혀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부담스러운 건 도전자 광저우지 서울이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설명하려 한다. 홍홍홍~

광저우는 곧 중국 축구의 대표격이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 대표팀의 끝없는 추락을 보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광저우 헝다가 대표팀의 빚을 갚아주세요.” 광저우는 단순한 프로축구단이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고 있는 팀이 됐다. 모든 중국 축구팬들의 눈이 이번 결승 2차전에 쏠려 있고 만약 여기에서 삐끗하기라도 할 경우 중국 축구는 엄청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저 중국 프로축구단 중 하나인 광저우는 말 그대로 이제 가슴에 오성홍기를 달고 뛰는 팀이 됐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결승 2차전이 열리는 텐허스타디움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번에는 꼭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중국으로 가지고 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장남인 네가 우리 가족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부담 팍팍 주는 부모님과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중국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들러리에 불과했다. 대회가 개편된 뒤 2005년 선전 잔리바오와 산둥 루넝, 지난해 광저우가 8강에 오른 게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시계를 한참 과거로 돌려 아시안클럽챔피언십에서 1990년 라오닝FC가 거뒀던 우승이 중국 축구의 유일한 성과다. 당시에는 대회 규모도 작았고 세월도 무척이나 오래 흘렀다. 1990년이면 나미가 <인디언 인형처럼>을 공개하고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를 발표했을 때다. 이 노래가 이제는 ‘밤과 음악사이’에서 흘러나올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중국 축구는 여전히 아시아 무대에서 우승 한 번 거두지 못했다. 중국축구협회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약속할 만큼 4강도 쉽지 않았다. 마치 시험에서 1등하면 ‘겜보이’를 사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아들이 공부를 못해 단 한 번도 지갑을 열 필요가 없던 우리 부모님 같은 심정이다.

차원이 다른 K리그, 그 중에서도 빅클럽 서울

반면 K리그 클래식은 다르다. 4강 진출에 포상금을 걸었다면 아마 대한축구협회 금고가 텅텅 비었을 것이다. 4강 정도는 K리그 클래식에서 웬만한 팀들은 다 간다. 우리는 시시해서 4강 정도로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2009년에는 포항이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에는 성남이 그 뒤를 이어 또 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1년에는 전북이 결승에서 아쉽게 알 사드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지난해 또 다시 울산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서울이 다시 결승에 올랐다. 5년 연속 K리그 클래식 팀이 결승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5년 동안 모두 다른 팀이 결승에 올랐다는 점이다. 2002년 대회 개편 이후 10번의 대회에서 사우디와 일본이 각각 두 번씩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K리그는 무려 네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 대회까지의 경력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쳐주지도 않는다. 손가락 아파서 생략한다.

더군다나 서울은 이런 무림의 고수들이 모인 K리그 클래식에서도 빅클럽으로 통한다. 지난 시즌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가장 매력적인 축구로 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팀이다. 유럽에 진출한 기성용과 이청용, 박주영 등도 배출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K리그에서도 빅클럽으로 통하는 서울에 광저우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서울이 스스로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현지에서 광저우를 응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무척 크지만 열기가 그들의 입장까지 바꿔줄 수는 없다. 지금 그들은 우리가 마치 월드컵 1승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1승을 염원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챔피언을 향한 열망이야 서울과 광저우가 다를 건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급한 건 서울이 아니라 광저우다.

K리그 클래식이 광저우에 절대적인 열세를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상황을 놓고 봤을 때는 대등한 수준이다. 광저우는 현재 K리그 클래식 구단과의 맞대결에서 1승 3무 1패를 기록 중인데 이번 결승 1차전 서울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네 경기를 모두 전북하고만 치렀다. 그 중 전북이 당한 1패가 1-5 대패였던 탓에 광저우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있지만 전북은 오히려 지난해 5월 광저우 원정에서는 3-1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후반 20분 조성환이 퇴장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몰렸지만 이동국의 두 골에 힘입어서 5만 광저우 관중을 침묵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광저우는 분명 좋은 팀이지만 그렇다고 겁먹고 서울 스스로가 도전자가 될 필요는 없다. 서울과 전북을 놓고 봤을 때 전북이 압도적으로 서울에 앞선다고 할 수 있나.

도전자는 서울이 아닌 광저우다

광저우가 참 훌륭한 팀인 건 사실이다. 얼마 전 대화를 나눈 광저우 수석코치 출신 강원 김용갑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광저우는 그저 돈만 막 퍼부은 구단이 아니다. 그 돈으로 좋은 팀을 만들었다.” 나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일부에서는 돈에 눈 먼 ‘악당’ 광저우를 정의로운 서울이 격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 광저우는 그 돈으로 좋은 외국인 선수만 사온 게 아니라 훈련 시설에 투자하고 자국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지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선수 육성에 집중하는 중이다. 하지만 돈의 논리를 떠나 리그의 클래스와 성적을 놓고 봤을 때 K리그 클래식과 서울이 이들에게 밀릴 이유는 전혀 없다. 클럽축구와 대표팀 경기는 다르지만 여기에 기본적으로 중국 선수들은 공한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있다. 이건 약도 없다.

서울은 결승 홈 1차전에서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특히 후반 들어서는 체력적으로 앞서며 광저우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경기가 끝난 뒤 김진규는 “비디오를 분석할 때는 광저우가 정말 잘한다고 느꼈지만 막상 경기를 해보니 해볼만 하다고 느꼈다. 원정 2차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선수들 스스로가 광저우에 대한 공포심을 완벽히 털어낸 경기였다.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이 리그내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은 광저우와 달리 서울은 매 라운드마다 울산, 포항, 전북, 수원 등 ‘광저우급’ 상대와 지속적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 돌려 말해 광저우는 서울처럼 강한 상대를 마주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이런 데도 왜 서울이 광저우의 도전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숙이려면 광저우가 숙이고 들어와야지 서울이 숙이고 들어갈 이유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서울은 1차전을 진 게 아니다. 안방에서 두 골이나 허용한 건 아쉬운 대목이지만 결과는 2-2 무승부였다.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2차전을 치르는 것도 아니다. 두세 골 뒤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승 공식은 간단하다. 이기면 우승이다. 지난 슈퍼매치에서 해왔던 것처럼 정상적인 경기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난 달 하대성은 이란 축구의 성지인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에스테그랄을 상대로 환상적인 칩샷으로 8만 홈 관중을 침묵케 했다. 원정 부담이야 아자디스타디움 만한 곳이 없는데 서울은 이런 원정 부담도 이겨냈다. 1-1 무승부면 광저우가 우승을 하고 3-3 무승부면 서울이 우승한다는 경우의 수를 따질 것도 없다. 이기면 된다. 서울로서는 이 상황이 전혀 복잡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리할 것도 없다.

서울은 그 클래스만 보여주면 된다

자만심과 자신감은 다르다. 지금껏 서울의 경기를 지켜본 입장에서 서울 선수들이 자만심을 부리리라고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꾸 언론을 비롯한 팬들이 마치 대단한(?) 광저우를 상대로 미천한(?) 서울이 도전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아쉽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광저우 구단 하나에 중국 축구의 전부를 건 모양새다. 중국 축구의 모든 걸 짊어진 광저우의 어깨가 무겁다. 나는 오히려 이런 부담감을 안고 싸우는 광저우가 심리적으로 충분히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자디스타디움에서도 해냈는데 광저우의 안방에서 못해낼 건 또 뭔가. 쫄지 말자. 도전자는 서울이 아니라 광저우다. 서울은 그저 이 도전자들을 상대로 서울의 클래스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아니 언제부터 중국 축구와 광저우가 강했다고 그러나. 이탈리아 감독 하나 왔다고 그렇게 잘난 척하다 큰 코 다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