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문트를 거절했던 류승우가 K리그 클래식 제주유나이티드를 선택했다. 제주는 어제(6일) 자유계약으로 류승우를 영입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지난 6월 터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조별리그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류승우가 또 한 명의 해외파가 되길 바랐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일지 몰라도 나는 류승우가 K리그 클래식, 그것도 제주에서 첫 프로 생활을 하게 됐다는 점이 참 반갑다. 오늘은 류승우의 제주행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꼽아보려 한다.

1. 해외 진출에 호의적인 제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한국 대표팀으로 바르셀로나 구단 관계자가 찾아왔다. 그는 “서정원을 팀에 데려오고 싶다”고 했지만 이제 그를 막 영입해 활용하려던 소속팀 안양LG 측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거절했다. 아마 지금이었으면 선수 앞길을 막는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서정원뿐 아니라 과거 최순호와 유상철, 홍명보, 황선홍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선수들은 유럽 명문 구단에서 한 번씩은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소속팀에서 거절해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자체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당시에는 풍토가 그랬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계약금을 주고 데려온 선수이니 계약서상으로 이들을 계약 기간 내에 유럽으로 보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애지중지 모셔온 선수를 유럽에서 원하면 주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허울 좋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팀의 주축 선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랬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하지만 제주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깔끔하다. 구자철(볼프스부르크)도 그랬고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도 그랬다. 선수의 기량이 유럽에서 통하고 진출 의지가 확고할 경우 별다른 트집이나 조건 없이 선수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냥 마구잡이로 보내는 것도 아니다. 구자철의 스위스리그 진출 타진 당시 박경훈 감독은 이런 조언을 했다. “스위스는 K리그보다 냉정히 따져 나을 게 없는데 이왕이면 꼭 빅리그가 아니더라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 빅리그로 갈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 구자철도 “선생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고 결국 독일로 향했다.

류승우는 유럽 명문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국내에만 계속 머무를 선수는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기량을 더 키워 다시 유럽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제주라면 류승우가 충분히 성장했을 때 본인의 의지에 따라 ‘쿨하게’ 유럽으로 보낼 그릇이 큰 구단이다. 제주는 늘 “선수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언제든 보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늘 선수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생기지만 제주만큼은 이 문제에서 별다른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누구나 헤어질 때 아프지만 깔끔하게 보내주는 그런 남자친구를 더 원하지 나처럼 술 먹고 전화하고 바지 가랑이 붙잡고 피곤하게 하는 구질구질한 남자친구는 원하지 않는다.

2. 제주의 플레이 스타일

“어느 팀에 가고 싶나요?” 어린 선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이 이렇게 답한다. “관중이 많은 팀이요. 그런 무대에서 한 번 뛰어보고 싶어요.”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아마추어 무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늘 관중의 열기에 목마르다. 하지만 얼마 전 내가 직접 만난 류승우는 좀 달랐다. 그에게 “K리그 클래식 팀 중 어느 팀에 가고 싶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패싱 플레이를 좋아하는데 아기자기한 패싱 축구를 하는 팀에 가고 싶어요.” 생각의 그릇이 참 크다는 걸 느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런 말 해놓고 수원에 가면 어쩌지?’ 지금이야 수원이 조금씩 아기자기한 축구로 변하고 있지만 과거 수원만큼 중원을 생략한 축구도 없지 않았나.

‘패싱 축구하는 팀’을 갈망하던 류승우는 중앙대와 제주의 연습경기에 나선 뒤 마음을 굳혔다. 상대로 나선 제주의 아기자기한 패싱 축구를 경험하고 이 팀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저 멀찌감치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본 게 아니라 서로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류승우는 화려한 발재간과 센스를 갖추고 있지만 피지컬에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 자기가 어떤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빛나는지를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가 잘 안다. 아마 그가 피지컬을 중시하는 전북 같은 팀에 입단했다면 훈련하다 케빈과 충돌해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류승우는 아기자기한 패싱 축구를 하는 제주와 참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3. 보다 좋은 조건의 유럽 진출을 위해

이건 사실 제주뿐 아니라 류승우가 유럽 진출 대신 K리그 클래식을 택한 긍정적인 이유라고 해야 될 것 같다. 류승우가 만약 K리그 클래식을 거치지 않고 유럽에 진출했다가 실패해도 규정상 5년간 국내 무대로는 복귀할 수 없다. 직접 만나본 류승우는 이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아 보였다. 또한 국내 무대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상무나 경찰축구단 등에서 군 복무를 할 수가 없다. 이근호도 J리그에서 맹활약하다가 상무 입단을 앞두고 울산에서 한 시즌을 뛰어야 했다. 그런데 만약 류승우가 유럽 무대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가 갈 곳 없는 신세가 될 경우 국내 복귀도 할 수 없고 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역 혜택을 받는 것이다. 다가올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2016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따면 된다. 하지만 한국 축구 역사상 병역 혜택을 받은 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단 두 번뿐이다. 병역 혜택은 말 그대로 ‘혜택’일뿐 당연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만큼 확률이 높지 않다. 최근 K리그 챌린지 상주상무는 승승장구하며 K리그 클래식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꼭 올 해가 아니더라도 상주상무는 언제든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올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류승우가 제주에서 활약하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쳐도 나이는 채 25세가 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병역 의무를 마친다면 유럽 진출을 노릴 때 원하는 팀에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입단할 수 있다. 그러면 예비군도 일찍 끝나는 아주 부러운 혜택도 있다.

4. 훌륭한 스승, 박경훈 감독이 있다

제주 박경훈 감독은 특히 중원에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잘 활용한다. 본인 스스로도 “류승우 같은 유형의 선수를 참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자철이 성장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박경훈 감독의 역할이 컸다. 제주는 구자철이 팀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송진형과 윤빛가람, 권순형, 오승범 등 좋은 중앙 미드필더가 많다. 축구에서 감독의 성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제주는 중원을 중시하는 박경훈 감독의 스타일을 놓고 봤을 때 류승우가 충분히 성장할 기회를 줄 수 있는 팀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성남에서 바닥을 쳤던 윤빛가람도 어느 정도 살려낸 게 바로 ‘명의’ 박경훈 감독이었다.

류승우는 제주에 입단하면서 박경훈 감독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얻었다. 유럽 명문 팀 감독의 지도를 받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박경훈 감독이라면 그에 못지 않는 지도력으로 류승우에게 많은 걸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박경훈 감독이 제주를 떠나지 않는 이상 류승우에게는 제주행이 자신의 축구 실력을 쌓는데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경훈 감독은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이런 말을 늘 새긴다. ‘보통 교사는 지껄이고 좋은 교사는 설명하고 훌륭한 교사는 시범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 박경훈 감독이라면 충분히 류승우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일 티쪼가리만 입고 다니는 류승우가 박경훈 감독의 패션 센스까지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5. 강등 가능성이 적은 팀이다

축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확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할 수 있다. 제주는 상대적으로 강등 가능성이 적은 팀이다. 서울이나 수원, 전북, 포항, 울산 등 빅클럽에 비하면 전력이 다소 떨어져 보이지만 언제든 우승권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다. 제주가 강등을 당하는 건 아마 나에게 NS윤지가 데이트를 신청할 확률 만큼이나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다. 류승우가 제주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챌린지 무대로 내려갈 가능성은 상당히 적어 보인다. 1부리그와 2부리그에서 뛰는 건 유럽 스카우트에게도 엄청난 차이다. 또한 만약 제주가 강등을 당해 류승우가 이적시장 매물로 나올 경우 그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는 팀으로 밀려나듯 떠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면을 감안해 봤을 때 강등 가능성이 적은 제주를 선택한 건 탁월해 보인다.

6. 적당한 경쟁구도가 있다

앞선 말한 것처럼 제주에는 여전히 좋은 미드필더들이 많다. 송진형과 윤빛가람, 권순형, 오승범 등이 중원에서 경쟁하고 측면과 최전방까지 포함한다면 배기종과 강수일, 배일환, 마라냥, 페드로까지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 아마 류승우를 영입하면서 이중 몇 명이 내년 시즌 팀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경쟁자는 넘친다. 일부에서는 류승우가 유럽 진출을 거절하고 K리그 클래식 제주를 선택한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제주에서 이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유럽에서의 성공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선수들도 넘지 못하면서 유럽 무대에 호기롭게 도전하는 건 굉장히 무모한 일이다. 류승우에게 있어서 제주의 선수들은 아주 큰 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만히 볼 상대도 아닌 적당한 경쟁 구도를 갖출 수 있는 좋은 동료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 경쟁에서 이겨내면 유럽 진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7. 제주는 놀 게 너무 없다

제주 클럽하우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술을 마시려면 한참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저 클럽하우스에서 당구를 치거나 게임을 하며 여가시간을 보낸다. 또한 몇몇 선수들은 너무 할 게 없어 낚시를 배웠고 강태공 수준의 실력을 자랑한다. 그만큼 제주 선수들은 유흥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암 걸려 죽을 위험은 없지만 심심해 죽을 위험은 높은 곳이다. 류승우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 유혹에 휩쓸릴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축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제주가 딱이다. 너무 심심해 훈련장에 나가 개인 훈련하는 선배들을 보고 류승우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류승우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저 해외파 한 명쯤 더 있으면 우리의 주말이 더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의 선택에 비난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고민해 이런 결정을 내린 류승우를 응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가 모든 조건이 훌륭한 제주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고 더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큰 무대로 진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