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K리그 클래식 순위표 위쪽만을 바라보고 있다. 울산의 선두 등극과 그 뒤를 쫓는 포항, 그리고 내년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놓고 벌이는 다툼까지 K리그 클래식 상위권 팀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경쟁도 있다. 비록 앞서 언급한 이들에 비해 주목은 덜 받고 있지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잔류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을 찾는 것보다 불행을 피하는 게 때론 더 행복하기도 하다. 최근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따내며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잔류 전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 강원FC와 대전시티즌에 관한 이야기다.

무패 행진, ‘우리 강원이 달라졌어요’

먼저 강원의 미래를 어둡게 예상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부터 하겠다. 나는 김학범 감독 해임 이후 강원이 유력한 강등 후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때는 김용갑 감독 부임 소식이 전해지기 전이었는데 나는 김학범 감독이 없는 강원은 강등 1순위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강원은 김용갑 감독이 팀에 부임한 뒤 처음 6경기에서 1무 5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김학범 감독 시절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원은 최근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타더니 5경기에서 4승 1무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전과 경남, 전남이 강원의 제물이 됐고 지난 라운드에서는 그룹B의 ‘레알 마드리드’인 성남을 상대로 짜릿한 2-1 승리를 따냈다. 이쯤 되면 ‘김용갑(甲)’ 감독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김용갑 감독은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방에 틀어 박혀 영상만 수도 없이 돌려본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사랑하는 나처럼 ‘야동’ 즉, ‘야구 동영상’을 보는 게 아니라 ‘축동(축구 동영상)’에만 매달린다. 나처럼 ‘10초 뒤로 가기’를 누르며 대충 보는 것도 아니다.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의 이전 경기를 수도 없이 꼼꼼히 계속 돌려본다. 상대의 전술을 물론 선수 개개인의 습관까지도 모두 간파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그동안 활약이 아쉬웠던 김동기와 최진호, 이우혁, 김봉진 등도 자신감을 얻어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김학범 감독 시절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던 김봉진은 김용갑 감독 체제 이후 7경기에 나서 두 골을 기록하며 맹활약 중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당연하게도 곧바로 선발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김영후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고참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도 훌륭하다. 전재호와 배효성, 박호진, 남궁웅 등은 자신감이 떨어진 어린 선수들을 따로 불러 저녁식사를 하며 교감을 나누고 있다. “한 번 멋지게 살아남아 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노력한 결과 시즌 개막 후 줄곧 13위와 14위 사이만 오갔던 강원은 최근 5경기 연속 무패라는 놀라운 기적을 써내며 강등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12위로 도약했다. 이제 잔류 안정권인 11위 경남과의 승점은 불과 3점 차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아직 강원이 경남보다 한 경기를 덜 치렀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막판에도 잔류를 확정지으며 그라운드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던 ‘잔류왕’ 강원의 잔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지만 그래도 이렇게 뒷심을 발휘하며 감동을 전하는 강원이라면 얼마든 내 예상이 더 틀려도 좋다.

“남은 6경기에서 6연승하겠다” 대전의 다짐

최근 대전의 투혼도 눈물겹다. 제주를 1-0으로 잡으며 무려 두 달 만의 승리를 따낸 대전은 지난 라운드 대구와의 경기에서도 후반 막판 극적인 역전에 성공하며 짜릿한 3-2 승리를 챙겼다. 아직 최하위에 머물러 있지만 2연승을 거두며 13위 대구를 승점 4점차로 바짝 추격했다. 가능성이 그리 높은 건 아니지만 남은 경기에서 많은 승점을 따놓고 나머지 잔류 경쟁팀들이 조금이라도 삐끗할 경우 잔류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더 긍정적인 건 지난 주말 대구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절대 꼴찌 팀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부상으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아리아스와 주앙파울로까지 돌아왔고 1만여 명이 넘는 관중이 이 경기를 찾아 여전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큰 힘이 된다.

대전은 현재 잇몸으로 버티고 있다. 김인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결국 쓰러진 상황에서 조진호 수석코치가 팀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험난한 위기를 수장도 없이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구단 수뇌부들도 “팀이 잘못되면 감독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배수진을 쳤다. 이사진은 잔류에 실패할 경우 전원 사퇴를 약속했다. 구단은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최근에는 유명 인사를 초청해 선수들에게 강연을 들려주는 등 심리적인 안정에도 노력하고 있다. 제주를 잡은 뒤 조진호 수석코치는 “남은 6경기에서 6연승을 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고 이에 비웃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대전은 지난 라운드 대구전에서 또 다시 승리를 따내고 2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조진호 수석코치의 목표는 더 이상 헛된 목표가 아니다.

조진호 수석코치의 방은 불이 꺼질 틈이 없다. 훈련이 다 끝나면 선수들을 한두 명씩 방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특별히 전술적인 움직임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는 잘 만나고 있느냐”, “부모님께 안부 전화는 드렸느냐”, “요새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뭐가 재밌느냐”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구단주인 염홍철 대전시장도 최근 이례적으로 간담회를 열고 선수단에 힘을 실어줬다. 염홍철 시장은 이 간담회에서 “집에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면서 “성적을 떠나 내년에도 대전시티즌 지원 삭감은 없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는 모든 경기가 결승이다

강등이 가장 유력했던 강원과 대전이 최근 돋보이는 행보로 살아나면서 잔류 싸움도 무척이나 치열해졌다. 방심하고 있던 대구와 경남이 주춤거리면서 어느덧 잔류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한참 앞서 나가던 전남은 최근 5연패를 당하면서 이제 이 싸움에 입후보(?)하게 됐다. 특히나 스플릿 시스템으로 인해 마지막까지 이들끼리만 경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잔류 다툼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른바 ‘승점 6점짜리’ 맞대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강원과 대전, 그리고 대구와 전남이 각각 맞대결을 펼친다. 마지막 라운드가 끝난 뒤 골득실로 순위를 따질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많이 넣고 적게 실점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제 이들에게 한 경기 한 경기가 다 결승전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 경쟁에서 패해 떨어져야 한다. 그게 두 팀이 될 수도 있고 K리그 챌린지 1위 팀과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세 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들 중 특정 팀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만약 강원과 대전이 끝까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이 잔류 전쟁이 시시하게 끝났다면 참 아쉬웠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이 위기 속에서도 방에 틀어 박혀 상대팀 경기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고 “남은 경기를 다 이겨 살아남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의 위대한 도전이 더 반갑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K리그 클래식에 잔류한다면 그 자체로도 감동을 선사할 수 있고 설령 누군가 강등이 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갔다고 팀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원과 대전, 그리고 이들과 잔류를 놓고 싸우는 대구, 경남, 전남 등 모든 팀이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길 바란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