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점이자 단점은 포기가 빠르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한두 번 찔러보고 그 여성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아주 빠르게 포기한다. 그리고는 다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고 또 한두 번 찔러본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찝적대는 놈이라는 인식만 생겼다. “오빠는 너무 진정성이 없어.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죽어라 대시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한두 번 찔러보고 포기할 수 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지적을 많이 들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인정한다. 나도 어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 내 모든 걸 걸고 싶다. 이제 여기저기 찔러만 보는 건 나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만약 이 칼럼을 본 여성 중 내가 작업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냥 찔러보는 게 아니라 내 진심이라고 믿어줬으면 좋겠다.

안산시의 행보가 딱 지금까지의 내 모습하고 참 비슷하다. 최근 모기업 통일그룹이 지원을 끊기로 하면서 표류 위기에 놓였던 성남일화 인수 및 재창단을 추진하던 안산시의 분위기는 좋았다. 일부 축구팬들은 인기 없는 성남 대신 안산으로 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인수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성남시가 전격적으로 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선언하면서 안산시는 결국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산시는 지금껏 축구단 ‘유치’를 위해 여기저기 많이 찔러보고 다녔다. 내가 여기저기 여성들에게 찔러보고 다닌 것처럼 안산시도 축구단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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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완공된 안산 와~ 스타디움은 A매치까지 치를 수 있는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안산 와~ 스타디움 공식 홈페이지)

5년 만에 안산시에서 찬밥 된 할렐루야

2006년 안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주원 후보는 공약으로 프로축구단 창단을 내걸었다. 더군다나 안산시는 이 당시 안산 와~ 스타디움을 건설하고 있던 터였다. 프로팀 없이 경기장을 비워둘 경우 유지비만 들고 쓸 데 없이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로축구단은 안산 와~ 스타디움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에서 당선된 박주원 시장은 주판알을 튕기더니 프로팀 창단이 아닌 유치로 돌아섰다. 당시 김포를 연고로 하고 있던 할렐루야(이후 안산HFC)는 김포시와의 연고 계약이 끝나가는 상황이었고 인조잔디가 깔린 김포종합운동장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할렐루야는 안산시에 연고 계약을 제의했고 안산시는 결국 갈 곳 없는 할렐루야를 끌어 들였다. 박주원 시장으로서는 안산 와~ 스타디움을 비워두지 않을 수 있어 남는 장사였다.

2007년 할렐루야가 안산시에 입성할 때만 하더라도 안산시는 적극적이었다. 안산 와~ 스타디움의 사용과 숙소, 사무실 등을 안산시에서 제공하기로 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또한 홈 경기 홍보를 위한 운영비의 일부도 안산시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던 할렐루야로서는 아쉬울 게 없는 조건이었다. 안산시는 “차차 이 팀을 시민구단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했고 2007년 내셔널리그 개막전에서는 무려 1만 5천여 관중이 안산 와~ 스타디움을 찾기도 했다. 내셔널리그 인지도를 따진다면 엄청난 관중이었다. 안산 시민들은 종교를 떠나 이제 내 팀이 생겼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즐겼다. 하지만 결국 할렐루야는 5년 만에 안산시를 떠나고 말았다. 구단 자체의 프로 의식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구단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안산시의 열의가 점점 식었기 때문이다.

안산시의 입장이 황당했다. K리그 승격 자격을 얻을 경우 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연고협약을 다시 맺기로 하는 등 철저히 이 구단의 성적과 그에 따른 이득에만 집중했다. 세상에 어떤 프로팀이 성적이 나오면 연고협약이 이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쫓겨나야 하는가. 결국 할렐루야는 안산시에서 1년에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는 게 전부였고 시의회로부터도 외면을 당했다. 더군다나 안산축구협회 관계자들은 할렐루야 구단 퇴출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할렐루야는 연고 협약이 끝나기도 전에 숙소를 하남시로 옮겨야 했다. 처음에는 온갖 매력적인 제안을 했던 안산시의 태도가 돌변하면서 할렐루야 역시 다시 연고지를 찾아 방황하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고양시로 또 다시 연고지를 옮겼다. 고양시 역시 국민은행 축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진 뒤 2007년 안산시와 비슷한 이유로 구단 유치에 나서고 있을 때였다.

경찰축구단을 5억 원에?

할렐루야를 데려왔다가 내쫓은 안산시는 또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최첨단 시설의 안산 와~ 스타디움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안산시의 정치인들에게는 엄청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안산시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한 번 찔러본 게 바로 경찰축구단이었다. 당시 경찰축구단은 K리그 챌린지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연고지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안산시 입장에서는 돈 덜 쓰고 경기장을 활용하기에 경찰축구단이 딱이었다. 알아서 선수들이 2년씩 봉사해주는 팀이다보니 운영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었다. 프로축구연맹과 경찰축구단은 안산을 연고로 하면서 상주시가 상무 축구단에 지원하는 규모인 10억 여 원을 원했지만 안산시는 1년에 단 5억 원 이상은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 5억 원의 예산도 실천되지 못했다. 시의회에서 5억 원의 경찰축구단 지원금을 부결시켰고 이미 경찰축구단을 리그에 참가시키기로 한 프로축구연맹만 바보가 됐다. 결국 안산시가 마지막에 결정을 틀어버리는 바람에 경찰축구단이 지금도 연고지 없이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산 와~ 스타디움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고 프로팀은 보유하고 싶은데 돈 쓰기는 또 싫은 게 바로 안산시의 심보다. 할렐루야의 종교적인 색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이 팀을 유치를 하지 말았어야 했고 이런 문제를 감안하고도 한 번 유치했다면 끝까지 함께 했어야 한다. 하지만 성적이 별로라고 할렐루야를 내쳤고 5억 원이라는 내 1년 연봉밖에 안 되는 푼돈으로 경찰축구단을 날로(?) 먹으려다 이마저도 막판에 틀어버렸다.

두 번이나 찔러보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구단을 내팽개쳤던 안산시의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성남일화 인수 및 재창단이었다. 내가 안산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말은 그럴듯 했다. 구단 인수 대금 40여 억 원을 준비했고 클럽하우스를 준공할 예정이며 메인스폰서 협상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에서 직접적으로 연간 30억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안산시는 막판까지 눈치만 봤다. 나는 성남일화를 성남시가 인수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한 사람이었지만 안산시가 진정 이 팀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 뜨거운 마음을 계속 표현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산시는 인수에 회의적이었던 성남시가 마음을 돌리자 눈치만 보다가 이 일에서 쓱 빠졌다. 500여 명의 안산시 축구팬들은 거리로 나와 유치 기원 캠페인을 열기도 했지만 결국 이 사람들 마음만 들었다 놓은 셈이 됐다.

안산시, 구단 '유치' 아닌 '창단'을 고민하라

안산시가 성남일화 인수를 추진하며 밝혔던 준비 상황이라면 충분히 ‘유치’가 아닌 ‘창단’으로 이 일을 올바르게 풀 수 있다. 비록 팀을 창단해 곧바로 K리그 클래식에 직행할 수는 없지만 K리그 챌린지에서 활약하는 팀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조건이다. 성남일화 인수 대금 40여 억 원과 시에서 1년에 지원하기로 한 30억 원이라면 충분히 팀을 만들고도 남는다. 또한 연맹은 이제부터 창단팀은 K리그 클래식에 직행하지 못하고 K리그 챌린지를 거쳐야 한다고 못 박았다. 안산시가 지금 K리그 클래식에 직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 축구단을 보유하고 싶다면 K리그 챌린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갈 곳 찾고 있는 팀을 집어 삼켜 저렴한 돈으로 생색내기 할 생각이 아니라면 정당한 방법으로 ‘창단’해야 한다.

안산시는 매번 “이번에는 다르다”고 했다. 할렐루야를 처음 불러들일 때는 “시민구단화와 K리그 승격을 함께 이루자”고 했고 경찰축구단 유치를 추진할 때는 “이번에는 진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성남일화 인수 추진 당시에는 “그저 경기장만 빌려주려던 경찰축구단 때와는 다르게 진정 시민들을 위한 팀 인수 추진”이라고 밝혔다. 매번 “다르다”고는 하는데 실상 안산시가 보여준 행동은 별로 다른 게 없다. 또한 누군가의 팀을 빼오면 언젠가는 그대로 당하게 돼 있는 법이다. 만약 안산시가 팀을 ‘유치’해 잘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도시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이 팀의 연고이전을 강행한다고 해도 안산시는 할 말이 없다. 다른 남자의 여자를 빼앗으면 그 여자는 꼭 다른 남자가 생겨 나를 떠나는 법이다. 안산시는 자꾸 ‘유치’만을 생각하지 말고 ‘창단’에 대해 논의하는 게 어떨까.

자꾸 찔러만 보지 말자. 이거 무슨 중고나라에서 물건 하나 사는 게 아니다. 한두 번 찔러 안산시는 피해가 없을지 몰라도 한국 축구는 멍든다. 진정 안산시가 축구단을 원한다면 성남일화 인수 당시 예산으로도 충분히 팀을 창단할 수 있다. 메인스폰서를 자처했던 기업에서 성남일화 인수에 실패한 뒤 발을 뺐지만 인수를 노리던 당시 안산시의 추진력이라면 K리그 챌린지 팀 정도는 충분히 운영이 가능해 보인다. 안산시가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축구단 ‘유치’에만 급급해 여기저기 찔러보는 안산시나 여성을 만나 한두 번 찔러보고 포기하는 나는 앞으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안산시와 내가 이제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