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리그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우승팀이야 가끔 조명을 받을 기회를 얻지만 그러지 못한 팀은 늘 그늘에 가려져 있어야 한다. 2009년 WK리그 출범 후 늘 2인자에 머물렀던 인천현대제철은 특히나 더 그랬다. 매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고도 항상 남의 집 우승 잔치에서 조연 역할을 해야 했던 이 눈물 나게 슬픈 팀이 마침내 5년 만에 주인공이 됐다. 나는 오늘 콩대제철, 아니 인천현대제철의 기적과도 같은 4전 5기 신화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바로 어제(14일) 펼쳐진 인천현대제철의 이야기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국내 최초의 여자 실업축구팀, 인천제철

우리나라에 여자축구가 제대로 보급된 역사를 따져보면 인천현대제철의 창단과 시기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 인천제철은 한국 최초의 여자 실업축구팀으로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이제 막 여자축구가 한국에 뿌리를 내릴 때였지만 대학팀은 있어도 실업팀은 전무했다. 인천제철의 등장은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이었다. 그렇게 인천제철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권고에 따라 국가대표 이미애를 비롯한 선수 15명으로 초라하지만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당시 정몽준 협회장은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해 현대그룹 연고 학교인 울산전문대와 현대여중·고 축구팀을 창단했고 인천제철 창단에도 힘을 썼다. 인천제철은 최초의 여자 실업축구팀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다.

이후 인천제철은 아마추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년 여왕기 준우승을 시작으로 이듬해 대통령배 축구대회 우승과 도로공사배 여자축구대회 우승 등으로 챔피언의 면모를 과시했다. 1993년부터 WK리그 출범 직전인 2008년까지 각종 실업대회에서 무려 40차례나 우승을 거두며 실업 최강으로 군림했다. 창단 원년을 제외하고 1997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3위를 딱 한 번 했을 뿐 우승과 준우승권에서 멀어진 적이 없을 정도였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인천제철을 지휘한 안종관 감독의 능력도 대단했다. 2009년 대한축구협회가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해 WK리그를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인천현대제철의 독주를 누구나 예상했다. 인천현대제철에 대교 캥거루스(현 고양대교)가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쁘레치냐와 전가을, 현대제철을 울리다

2009년 WK리그 개막 후 초반 8경기에서 인천현대제철은 6승 2무의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막강한 도전자였던 대교를 상대로도 2-0 완승을 챙겼다. 더 놀라운 건 이 8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여자축구 관계자들이 “너무 독주하면 재미없으니 살살하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부산상무에 0-1로 덜미를 잡히며 9경기 만에 첫 패배를 당한 인천현대제철은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수비 위주로 나와 경기를 풀어가는 게 쉽지 않았고 공격수 김주희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이 와중에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인 WK리그 첫 외국인 선수 쁘레치냐를 데려온 대교가 치고 올라왔다. 결국 인천현대제철은 대교에 이어 2위로 정규리그를 마치고 2009년 11월 WK리그 초대 챔피언을 가리는 챔피언결정전 1,2차전에서 대교를 만났다. 하지만 인천현대제철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두 경기 모두 0-1 패배를 당하며 무너졌다.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시작이었다는 걸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듬해 많은 이들은 인천현대제철이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번은 우승을 놓칠 수 있다고 쳐도 천하의 인천현대제철이 두 번이나 우승을 놓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없었다. 이문석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힌 인천현대제철에 대해 다른 WK리그 팀 감독들은 “역시 전력이 가장 강하고 전력 보강도 가장 잘 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8연승을 내달리는 등 막강한 경기력을 자랑한 인천현대제철은 정규리그를 1위로 마무리 짓고 챔피언결정전 직행에 성공했다. 더군다나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전년도 꼴찌팀이자 2010년 세 번 맞붙어서 모두 이겼던 수원FMC였다. 1승 1무 2패로 상대전적에서 밀린 고양대교가 3위로 내려앉으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해 인천현대제철의 우승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실력을 어느 정도만 보여줘도 우승은 인천현대제철의 몫이었다.

1차전을 1-0으로 이긴 인천현대제철은 가벼운 마음으로 2차전을 준비했다. 김주희와 정혜인, 이계림 등 주축 선수 세 명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2010년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포함해 4전 전승을 거둔 상대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 차로 지지만 않으면 우승을 차지하는 무척 유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인천현대제철은 수원FMC의 전가을에게 철저히 농락 당하고 말았다. 전가을에게 두 골을 내주며 무너지고 만 것이다. 다 잡았던 우승 트로피를 전년도 꼴찌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역전패에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문석 감독도 벤치 한 켠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는 수원FMC 선수들을 부러운 듯 바라봤다. ‘최강’이라던 인천현대제철이 2년 연속으로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비극이 더 이어지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강했던 2011년의 고양대교

2011년이 밝자 인천현대제철은 칼을 갈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현대제철에 두 골을 뽑아내며 수원FMC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전가을이 인천현대제철 유니폼을 입는 초대형 이적이 성사됐다. 또한 전가을과 함께 수원FMC의 우승에 큰 역할을 했던 조소현과 청소년월드컵의 주역 임선주까지 데려왔다. 이문석 감독은 “2년 동안의 준우승 경험을 교훈 삼아 많은 준비를 했다. 올 해에는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10년 팀 공격을 잘 이끌다가 결국 시즌 막판 부상을 당해 팀에 보탬을 주지 못했던 정혜인은 이름까지 바꾸며 각오를 다졌다. 그녀는 “부상 등 안 좋은 일이 생겨 이름을 바꿨다. 새 이름을 쓰면 훨훨 날아서 우승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혜인에서 정설빈으로 개명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인천현대제철은 전폭적인 구단의 지원과 지도자, 선수들이 똘똘 뭉쳐 준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011년은 인천현대제철이 약한 게 아니라 고양대교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전년도 막판 7연승을 포함해 무려 26경기 연속 무패(25승 1무)라는 여자축구뿐 아니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믿을 수 없는 대기록을 이어간 고양대교의 위력은 대단했다. 결국 2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한 인천현대제철은 3위 수원FMC와의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결정전에서 고양대교를 만났다. 도전자 입장인 인천현대제철은 막강한 고양대교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내며 2-2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선수는 바로 시즌 개막 전 이름까지 바꾸고 선전을 다짐한 정혜인, 아니 정설빈이었다. 정규리그 19승1무1패를 기록하며 승리에 익숙했던 고양대교 선수들은 믿을 수 없는 무승부에 고개를 떨궜다.

2차전을 앞둔 선수단 분위기는 당연히 인천현대제철이 더 좋았다. 늘 1차전에서 좋은 경기를 해놓고도 2차전에서 무너졌던 과거와는 달리 1차전의 극적인 동점이 인천현대제철로서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때 인천현대제철 코치진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중앙 수비수 이계림의 아버지가 2차전이 열리는 날 아침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가족은 이계림의 경기력에 영향이 있을까봐 이 사실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구단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만이 경기 시작 전 조용히 빈소에 다녀왔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인천현대제철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유한별과 차연희, 쁘레치냐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결국 2차전에서 1-3 패배를 당하고 만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패배에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고 이계림의 부친상 소식에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3년 연속 인천현대제철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순간이었다.

다잡았던 우승 내준 2012년, 그들의 네 번째 도전

결국 시즌이 끝난 뒤 이문석 감독이 사임하고 새 사령탑이 선임됐다. 바로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을 지내며 명장으로 인정받은 최인철 감독이었다. 인천현대제철은 뜨겁게 구애를 펼쳐 최인철 감독과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가 있었다. 최인철 감독은 여자 대표팀이 런던올림픽 예선 통과에 실패해 큰 국제대회 일정이 없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차에 인천현대제철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최인철 감독은 WK리그 출범 후 세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서 좌절한 인천현대제철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더군다나 전가을과 조소현, 임선주 등 대표팀에서 최인철 감독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이 인천현대제철에 많아 선수단 파악도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인천현대제철은 비디오분석관을 추가로 뽑았고 과학적 훈련을 할 수 있는 기자재를 최신식으로 바꿔주는 등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세의 나이로 브라질 여자 축구리그 득점왕에 오른 글라우시아까지 데려와 완벽한 보강을 마쳤다.

인천현대제철은 2012년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와 전국체전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막상 WK리그의 뚜껑이 열리니 역시 고양대교도 만만치 않았다. 인천현대제철과 고양대교는 시즌 내내 1위와 2위 자리를 수시로 맞바꾸다가 고양대교가 정규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인천현대제철이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인천현대제철은 플레이오프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에 먼저 한 골을 내줬지만 곧바로 이민아와 조소현의 골이 연거푸 터졌고 이후 한 골을 더 내줘 동점을 허용했지만 후반 40분 이세은의 코너킥을 임선주가 천금 같은 결승골로 연결해 극적인 3-2 역전승을 거두고 다시 한 번 고양대교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게 됐다. 4년 연속 우승컵을 향한 도전이었다. 세 번이나 같은 무대에서 좌절한 인천현대제철은 ‘설마’하는 생각으로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했다. 최인철 감독은 “네 번째 눈물은 없을 것”이라면서 단단히 독기를 품었다. 시즌 전적도 고양대교와 2승 2패로 팽팽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의 출발도 좋았다.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를 따내면서 4년 동안 기다리던 우승 트로피를 눈 앞에 두게 됐다. 그리고 2012년 10월 2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고양대교와 운명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치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인천현대제철은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며 결국 1-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1,2차전 합계 2-3으로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하고 만 것이다. 전용훈련장까지 지어주며 든든하게 지원했던 구단 수뇌부는 물론 대표팀 지휘봉까지 반납하고 첫 WK리그 우승을 향해 달려온 최인철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4년 동안 이 한 순간을 위해 좌절해도 다시 일어나 달려온 선수들 모두 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인천현대제철은 4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단 한 번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또 다시 내년을 준비해야 했다.

3무 2패, 서울시청과의 불리한 시즌 전적

인천현대제철은 네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섰다. 브라질 여자축구의 미래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따이스와 비야를 나란히 영입해 공격력을 강화했다. 이 둘은 인천현대제철로 이적하기 전까지 한 팀에서 뛰고 있어 호흡도 좋았다. 이 둘의 적응력도 빨랐고 국내 선수들도 이들을 견제하기 보다는 우승을 위해 한 가족처럼 지냈다. 하지만 2013년 시즌이 시작되자 난관에 부딪혔다. 기대를 모았던 따이스가 시즌 개막 후 곧바로 부상을 당해 3개월이나 뛰지 못하는 동안 서울시청이 돌아온 천재 골잡이 박은선이 8경기 연속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며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인철 감독은 이 상황에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후반기까지 길게 내다봤다. 그리고 인천현대제철은 후반기 들어서도 체력적으로 밀리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마지막 라운드 결과에 상관없이 여유 있게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2위는 서울시청, 3위는 고양대교였다. 이 두 팀의 승자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현대제철과 맞붙게 되는 것이었다. ‘명가’ 고양대교가 주춤하는 사이 서울시청이 더 올 시즌 강한 전력을 선보였다. 또한 인천현대제철은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서울시청을 만나 2무 2패로 단 한 차례도 이긴 적이 없어 서울시청이 훨씬 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서울시청의 박은선은 22경기에서 19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지난 세 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한 쁘레치냐의 4년 연속 득점왕 도전을 저지한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하지만 최인철 감독은 서울시청과 고양대교의 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청이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올 시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서울시청을 챔피언결정전에서 꼭 꺾어 보고싶다.” 결국 최인철 감독의 바람처럼 서울시청은 먼저 고양대교에 두 골을 내주고도 박은선의 두 골에 힘입어 극적인 3-2 역전승을 거두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현대제철과 만나게 됐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인천현대제철과 만난 서울시청은 역시 강했다. 전반 20분 만에 박은선이 밀어준 공을 이동주가 밀어 넣으면서 서울시청이 앞서 나갔다. 역시 올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인천현대제철에 패하지 않은 팀다웠다. 인천현대제철은 후반 종료 직전 정설빈의 극적인 동점골로 그나마 1-1 무승부를 거두며 패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4년 동안 실패했던 우승 도전이 5년째 되는 올해에도 좌절될 위기에 놓였다. 매년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우승 기념 현수막을 제작해 준비해 놓았던 구단 프런트들 역시 괜한 짓을 했다 부정 탈까봐 일체 설레발(?)을 자제할 정도로 분위기는 예민했다. WK리그 출범 후 5년 내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고도 단 한 번의 우승도 경험하지 못한 인천현대제철로서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준비했다.

그들이 보여준 기적의 45분

바로 어제(14일)였다. 인천현대제철은 서울시청과 운명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격돌했다. 5년째, 무려 챔피언결정전 10번째 경기였다. 역시나 만년 준우승팀 인천현대제철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서울시청 박은선에게 전반 15분 만에 실점을 허용하며 지난 4년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결국 그렇게 0-1로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전반전이 마무리 됐다. 이제 인천현대제철에 남은 시간은 45분이었고 이 안에 두 골 이상을 넣어야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불리한 조건이 됐다. 올 시즌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포함해 5번 맞붙어 3무 2패로 서울시청에 압도적인 열세를 보였던 인천현대제철이 남은 45분 동안 기적을 연출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인천현대제철의 5번째 도전, 그 마지막 45분이 시작됐다. 사실상 승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천현대제철은 후반 들어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잔뜩 움츠린 채 지키기에 급급한 서울시청을 상대로 총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후반 17분 비야의 패스를 받은 따이스가 일대일 기회에서 침착한 슈팅으로 서울시청의 그물을 출렁였다. 1-1 동점이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 24분 서울시청 골문 앞에서 경합하는 과정에서 흐른 볼을 이세진이 오른발로 밀어 넣으며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고 후반 종료 직전 문미라가 쐐기골을 넣으며 결국 기적 같은 3-1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눈물을 흘리고 얼싸 안았다. 지난 4년 간은 슬픔의 눈물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침내 인천현대제철이 WK리그의 챔피언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네 번이나 좌절하고도 다시 일어서 다섯 번 만에 일궈낸 감동적인 우승이었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현대제철의 우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신생팀이 연이어 창단하면서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좋은 선수를 신생팀에 양보해야 했다. 또한 여자 청소년 월드컵 우승 이후 반짝 여자축구가 주목을 받고 다시 무관심이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충남일화는 해체됐고 수원FMC도 해체 위기를 맞았었다. 하지만 인천현대제철은 네 번이나 우승 도전에 실패하는 와중에도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 결국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구단의 승리였다. 선수들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 한 순간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선수들은 결국 어제 마지막 45분 동안 모든 걸 쏟아 부어 4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뤄냈다. 만약 이게 텔레비전 드라마였다면 결말이 너무 늘어진다고 시청자들이 게시판을 테러할 만큼 참 길고도 길었던 드라마였다. 그만큼 인천현대제철의 포기하지 않는 투혼은 감동적이었다.

5년 만의 첫 우승에 박수를

WK리그는 늘 무관심이 익숙하다. 그 와중에 언제나 2인자에 머물렀던 콩대제철, 아니 인천현대제철은 더더욱 조명 받지 못했다. 그들이 5년 만에 일궈낸 값진 우승에 찬사를 보내며 올 시즌 내내 최선을 다한 WK리그 다른 모든 팀 선수들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끝났다고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지난 3월 WK리그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인천현대제철 이세진은 이런 말을 했었다. “올해 우승하면 구단에 포상으로 해외여행을 요구하고 선수들 전원이 비키니 화보를 찍겠습니다.”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킬 차례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