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가을만 되면 엄청나다. 봄과 여름을 지날 때까지 조용했던 이 남자는 가을이 오면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뽐낸다. 지난 시즌 전반기 19경기에서 단 1도움에 머물며 온갖 비난을 온몸으로 감수해야 했던 이 남자는 9월 이후 정규리그에서 5골을 뽑아내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더니 10월 열린 경남과의 FA컵 결승전에서는 극적인 결승골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8월까지 단 세 골에 머물렀던 그는 9월 8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뽑아내더니 이어 벌어진 FA컵 4강 제주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렸다.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다. 지난 9월 30일 인천 원정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돼 14분 동안 두 골을 넣으며 팀의 귀중한 2-2 무승부를 이끌었고 지난 5일에는 수원과의 홈 경기에서 후반 막판 믿을 수 없는 동점골을 뽑아내 또 한 번 팀을 패배의 수렁에서 구해냈며 2-2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는 FA컵 포함 최근 7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가을 사나이’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렇다. 가을만 되면 폭발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포항스틸러스의 공격수 박성호다. 8월까지 부진했던 그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연이어 골을 펑펑 쏘아 올리고 있다. 참 신기한 사나이다.

과연 박성호의 이런 상승세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오늘은 축구 전문가가 아닌 ‘가을 전문가’들에게 박성호의 향후 경기력을 물었다. 가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따라 박성호의 활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을과 겨울의 기준’을 살펴보면 박성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 파괴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답이 나온다. 각계각층의 ‘가을 전문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가을은 언제까지인가요? 박성호는 언제까지 골 퍼레이드를 이어갈까요?” 비웃지 말라. 나 지금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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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의 활약을 묻기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로 수산시장이었다.

전어횟집 사장님, “10월 말에 박성호 활약은 끝난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수산시장이었다. 박성호의 별명 ‘가을 전어’가 실제로 넘쳐나는 곳이다. 전어철을 맞아 한창 바쁘게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수산물센터에 가 다짜고짜 물었다. “사장님. 가을 전어는 언제부터 나오나요?” 그러자 이 전어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어철은 8월 20일부터라고 보면 돼요. 그런데 진짜 전어가 맛이 오를 때는 9월 중순부터죠. 겨울을 보내기 위해 몸에 기름기를 축적하는 때가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죠. 제철이 아니면 살집이 푸석푸석하지만 9월 중순부터는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구이 냄새를 맡고 다시 돌아온다’는 말처럼 좋은 지방과 맛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유난히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전어의 제철이 끝나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저는 지금 그게 가장 중요해요.” 이 사장은 자꾸 귀찮게 묻는 나를 노려보고 회칼을 갈며 이렇게 말했다. “10월 말까지가 가장 피크라고 할 수 있어요. 올해는 전어가 풍년이라 가격도 많이 낮아졌어요. 우리가 여기에서 회쳐서 식당으로 안내하니까 맛 좀 보고 가요. 전어회하고 구이하고 해서 4만 원어치 드릴까요?” 이 사장은 뜰채로 물이 오른 박성호, 아니 전어를 몇 마리 건져 올렸다. 눈앞의 회칼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박성호 선수도 10월 말까지가 골 결정력의 피크일까요?” 뜰채를 손에서 내려 놓은 사장이 나를 노려봤다.

“안 살 거면 가 인마.” 순간 움찔한 나는 전어 2만 원어치를 주문하고 말을 이었다. “포항 박성호 선수는 가을만 되면 전어처럼 물이 오르는데 사장님이 생각하는 가을은 언제까지죠?” 2만 원을 손에 쥐어주며 묻자 웃으며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을은 10월 말까지죠. 11월까지 전어를 팔기는 하지만 그때는 제철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 박성호 선수도 11월이 되면 제철이 지나지 않을까요.” K리그 클래식 경기 일정을 확인하니 전어 전문가가 말한 박성호의 제철은 10월 30일 포항과 인천의 경기까지였다. 이 전문가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전어 닮은 박성호 선수 응원하는 의미로 초장 하나 더 넣었어요.” 하지만 그는 나에게 고추냉이를 챙겨주지 않았다.

가을 노래 전문가, “박성호 활약은 11월 중순까지”

그런데 이 전어 전문가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가 있었다. 이제는 가을의 상징이 된 유명한 노래의 주인공과 다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가을만 되면 거리 이곳 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잊혀진 계절>을 부른 가수 이용 씨였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로 가을을 들었다 놨다하는 이용 씨를 빼놓고 이 계절을 논할 수는 없다. 이용 씨의 <잊혀진 계절>은 1982년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울려 퍼진다. 2008년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무려 138회나 방송에서 흘러나오며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박성호 이전에 ‘가을’하면 이용 씨다. 그래서 다짜고짜 이용 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잊혀진 계절>로 행사를 다니는 시즌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여기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막 방송 하나를 마치고 짬을 낸 이용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더위가 지나가면 바로 가을이 시작돼요. 9월 중순부터 반응이 오고 이 노래를 찾죠.” 실제로 박성호는 지난 해도 그렇고 올 시즌에도 그렇고 9월 중순부터 몸으로 반응했다. 그렇다면 이용 씨의 <잊혀진 계절> 약빨이 끝나는 시기는 언제일까. 이때가 바로 박성호의 활약이 멈추는 시기 아닐까. “<잊혀진 계절> 노래에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가사가 나오지만 딱 10월이 끝난다고 해서 제 가을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11월까지는 아직 가을 분위기가 남아 있잖아요. 완전히 겨울 옷을 입고 다닐 때가 되면 <잊혀진 계절> 열풍이 식지만 적어도 11월 중순까지는 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에게 가을은 11월 중순까지라고 봐야겠죠.”

그래서 진지하게 물었다. “‘가을 남자’ 포항의 박성호 선수도 11월 중순까지 활약할 수 있을까요? 일정을 확인해 보니 11월 16일에 포항-전북전이 포항 홈에서 열리네요.” 이용 씨는 내 질문에 동의했다. “ 제 기준의 가을로 보면 맞아요. 사실 저도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 부르는 노래에 약해요. 가을이 돼야 노래가 잘 나오죠. 아마 박성호 선수도 저하고 이런 점에서 비슷한 것 같네요. <잊혀진 계절>이 들어갈 때 쯤인 11월 중순 전북전까지는 맹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힘겨운 봄, 여름을 겪고 가을이면 펄펄 나는 박성호 선수에게 제 다른 노래를 추천해 하나 더 추천해 드릴게요. <재기>라고요. 이번 신곡입니다. 물론 신곡 홍보는 아니에요.” 이렇게 이용 씨는 누가 봐도 신곡 <재기> 홍보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기상 캐스터, “11월 말까지 박성호를 지켜보라”

하지만 이용 씨보다 더 이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또 다른 한 명은 박성호의 활약이 더 오래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 16년 동안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고 지금도 기상방송인협회를 이끌고 있는 국내 1호 여성 기상캐스터 이익선 씨였다. 날씨와 계절 이야기를 하는데 이익선 씨를 빼놓는 건 엄청난 실례 아닌가. 이익선 씨에게 인터뷰 의도를 설명한 뒤 우리 둘은 약 30초 동안 말 없이 배를 잡고 웃었다. 축구선수 경기력을 자신에게 묻는 이익선 씨도 황당해 했고 나도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 둘이 깔깔댔다. 그리고 이익선 씨에게 “도대체 가을이 언제까지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익선 씨는 이전에 주장했던 두 전문가보다는 훨씬 가을을 길게 보고 있었다. 가을이 일찍 끝날까 두려운 박성호에게는 희소식이다.

“겨울의 기준을 온도와 습도로 따지는 건 어렵겠죠. 보통 ‘입동’을 겨울의 문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지금 기후로 보면 말뿐이에요. ‘입하’라고 해서 바로 여름은 아니잖아요. ‘입동’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절기라고 볼 수는 없어요. 음, 올해 ‘소설’이 11월 22일이고 ‘대설’은 12월 7일인데요. ‘큰 눈이 온다’는 ‘대설’은 확실히 겨울의 문턱이 맞아요. 적어도 ‘소설’까지는 가을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11월을 겨울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조금 낭만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12월이 되어야 장갑과 목도리를 하고 다니죠. 11월까지는 추워도 참는 편이잖아요. 저는 11월 말까지가 가을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을 듣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박성호 선수가 11월 말까지는 골 퍼레이드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11월 마지막 박성호 선수의 경기는 11월 27일 포항-서울전이네요.” 그러자 이익선 씨는 이에 동의하면서 덧붙였다. “네. 가을의 마지막 경기인 서울전 활약은 충분하겠죠. 그리고 제가 말한 11월까지가 가을의 기준이라면 쉽게 생각해서 사람들이 12월이 시작되고 송년회 약속을 잡을 때쯤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을 쓰지 못했던 것처럼 박성호 선수의 플레이도 약해질 수가 있어요. 사람들이 축구에서 눈을 돌려 송년회에서 음주가무를 시작하는 시기가 박성호 선수의 활약이 멈추는 시기겠죠. 더 오랜 시간 박성호 선수가 골을 이어가려면 팬들이 12월에도 송년회 대신 경기장에 가 박성호 선수를 응원하는 게 가을을 더 늦추는 방법 아닐까요.”

‘사계절 골잡이’ 박성호를 응원한다

세 전문가의 의견에는 차이가 있었다. 앞으로 ‘가을 전어 같은 남자’ 박성호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면 이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만 되면 펄펄 나는 박성호가 우리에게 얼마나 더 오랜 시간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까. 세 전문가 중 누구의 의견이 맞건 봄과 여름 내내 골이 터지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박성호가 올 가을 펑펑 골을 쏘아 올리는 모습에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건 박성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박성호가 앞으로는 ‘가을 전어’뿐 아니라 ‘봄 도다리’, ‘여름 해밀턴 수영장’, ‘겨울 붕어빵’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수 있도록 계절을 떠나 사계절 내내 맹활약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