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클래식이 이제 팀당 26라운드를 치른 뒤 그룹A와 그룹B로 나눠져 남은 일정을 치른다. 다들 알다시피 스플릿 시스템이다. 그룹A는 자기들끼리 리그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놓고 다투고 그룹B에서는 강등 탈출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러면서 올 시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던 스플릿 시스템을 내년 시즌에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이쯤에서 이 제도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다양하게 나온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스플릿 시스템, 과연 이슈를 더 끌었나

나는 이제 스플릿 시스템이 폐지되는 게 맞다는 쪽이다. 물론 이 제도의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우승 경쟁이 펼쳐지는 리그 막판이 되어서야 주목받던 이전 제도에 비해 스플릿 시스템은 그룹A와 그룹B로 나뉘어지는 리그 중반에도 긴장감이 넘친다. 올 시즌에도 부산과 성남, 제주가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것 뿐이다. 다소 늘어질 수 있는 리그 중반에 팬들을 환기 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스플릿 시스템은 그다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도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는 이 제도를 유지하는 곳이 없다.

또한 긴장감은 늘었지만 그렇다고 궁극적인 목적인 이슈몰이에서는 여전히 별로였다. 그룹A와 그룹B로 나뉘는 순간 방송사의 중계나 관중수, 언론의 보도 등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도 않았다. 스플릿 시스템을 가동한 지난 시즌이나 올 시즌에도 그 파급 효과는 이전 제도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파급 효과로만 따지면 이미 폐지된 6강 플레이오프가 가장 컸다. 리그 중반의 재미를 위해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는 제도를 유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K리그만큼 각 팀의 실력차가 적은 리그도 없지만 원천적으로 우승이나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옳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페드로가 득점왕이 된다면?

나는 올 시즌 제주 페드로가 득점왕에 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스플릿 시스템이 얼마나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9위에 머물러 그룹B행이 결정된 제주는 이제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팀과 남은 경기를 치러야 한다. 현재 16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1위에 올라있는 페드로가 15골로 2위를 지키고 있는 김신욱(울산)보다 득점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나마 지난 시즌에는 그룹A의 데얀(서울)이 득점왕을 차지해 이런 논쟁이 적었지만 올해는 페드로의 득점왕 수상 가능성이 충분하다. 페드로가 만약 득점왕에 오른다면 “약팀들과의 경기였으니 인정할 수 없다”고 할 건가.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뉘어져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면 득점뿐 아니라 K리그 역사에 남는 기록들이 대부분 그 변별력을 잃는다. 모든 기록이 그렇다. 예를 들어 그룹B의 어떤 팀이 20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룹A의 한 팀은 18경기 연속 무패를 거뒀다면? 기록상으로는 전자가 K리그 역사에 남아야겠지만 “그룹B에서 거둔 무패 기록입니다”라는 부연설명이 따라 붙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놓고 봤을 때 이런 식으로 모든 기록에 모순을 남기는 제도가 과연 유지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페드로가 올 시즌 득점왕이 된다면 이런 내 주장은 더 확실해 진다.

상·하위 스플릿을 나누는 시점에서는 리그 중위권 팀이 한순간 주목을 받지만 그 이후가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룹B로 떨어지는 순간 관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그룹B에 남은 팀 중 그나마 관중 동원력이 있는 제주를 제외하고 나머지 팀들은 경기당 관중수가 2천여 명을 넘기기가 어렵다. 리그 중반의 재미는 살릴 수 있지만 이후 그룹B는 관심 자체가 아예 끊어진다. 그룹B의 이 팀들도 빅클럽과 꾸준히 붙을 수 있어야 관중도 불러 모을 수 있는데 9월 이후 아예 리그에서 격돌할 기회마저 빼앗는 건 참 잔인한 일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만약 수원이 26라운드 전남전에서 크게 패해 그룹B행이 확정됐다면 올 시즌 더 이상의 슈퍼매치는 없었다. 흥행을 노리는 연맹으로서는 끔찍한 일이다.

풀리그로 돌아가야 한다

어차피 그룹B에서 잔류 경쟁을 펼치는 팀들은 통상 세 팀 정도다. 나머지 네 팀은 남은 시즌 동안 목적을 잃는다. 그룹B에서 ‘끝판왕’ 노릇을 할 제주 박경훈 감독도 실제로 “이제 FA컵 우승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며칠 전 성남 팬들이 경기장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도 참 재미있다. “우리 목표는 이제 그룹B에서 다 이겨서 1위 팀보다 더 많은 승점을 쌓는 거야.” 그만큼 그룹B의 상위권 팀들은 별로 이룰 수 있는 게 없는 제도가 바로 스플릿 시스템이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한시적으로 도입한 제도인 만큼 그 수명을 다했다면 이제 사라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저 매 경기 빅매치를 치르고픈 몇몇 상위권 빅클럽을 위한 제도다.

풀리그로 돌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지금껏 연맹은 리그 운영 방식을 놓고 속된 말로 별 짓 다 해봤다. 전·후기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결국 전기리그 우승팀이 후기리그 내내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시스템을 접었고 이후 도입된 6강 플레이오프 제도는 5위 포항이 상위팀을 다 때려 부수고 잔칫상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제도적 문제가 불거지며 폐지됐다. 그리고 풀리그를 거쳐 도입된 게 바로 스플릿 시스템이다. 결국 새로 도입하는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스플릿 시스템의 문제가 또 몇 번 불거지면 그땐 또 이 제도를 폐지할 셈 아닌가. 그렇다면 가장 단순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풀리그를 도입하면 형평성 문제도 막을 수 있고 제도가 변하지 않는한 정통성도 지킬 수 있다.

누군가는 풀리그가 이슈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시즌은 한 팀의 독주로 이슈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있고 어떤 시즌은 리그 막판까지 살 떨리는 승부가 펼쳐질 수도 있다. 이건 누군가가 제도를 살짝 바꿔 재미를 부여한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다소 김 빠지는 시즌이라면 그 그대로 한 시즌을 받아들이면 되고 보다 더 긴장감 넘치는 시즌이 펼쳐졌다면 “이번 시즌은 대박이었어”라고 즐거워하면 된다.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 축구라고 해서 매 시즌 박진감 넘치는 우승 경쟁과 강등권 싸움이 매번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인위적으로 제도를 손봐 박진감을 가미하는 건 심심하게 먹어도 될 국에 꼭 필요하지 않은 조미료를 치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풀리그, 경기수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풀리그도 단점이 있다. 내년 시즌 12개 팀으로 운영될 K리그 클래식은 풀리그로 2라운드를 돌리면 팀당 22경기로 경기수가 너무 적고 그렇다고 4라운드를 돌리면 팀당 44경기를 치러야 해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FA컵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포함한다면 우승권 팀이 45경기 정도를 치르는 게 적당하다고 볼 때 풀리그로는 이 경기수를 조절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딱 적당한 건 팀당 3라운드를 돌려 33경기를 치르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홈 경기를 한 번 치르고 원정 경기는 두 번 치러야 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할 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3년간 성적을 반영하거나 아니면 2라운드까지의 성적을 반영해 3라운드 홈 경기권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충분히 논의 가능한 문제다.

꼭 내 주장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스플릿 시스템 유지에 대한 찬성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어떤 방식으로건 리그의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됐으면 한다. 지금처럼 전·후기 리그를 했다가 6강 플레이오프를 했다가 리그컵을 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는 제도의 하나로 스플릿 시스템이 운영되는 건 원치 않는다. 이러다가 또 어느 순간 이 문제의 단점이 지적되면서 또 다시 제도가 바뀌는 것 보다는 차라리 가장 안정되고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는 풀리그가 적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