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수원블루윙즈와 성남일화의 경기. 수원 조동건이 첫 골을 기록한 뒤 경기장은 들썩거렸다. 하지만 전반 41분 성남의 골로 경기장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아직은 성남 유니폼이 어색한, 골수 팬이 아니라면 생소한 선수의 슈팅이었다. 이종원은 기가 막힌 왼발 터닝 발리슛으로 수원 골문을 뚫었다. ‘몰락한 명가’라던 성남이 수원과 2-2 무승부를 거둘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귀중한 골이었다. 오늘은 성남에서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는 이종원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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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주와의 K리그 경기에서 공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종원의 모습. (사진=부산아이파크)

부상과 이적 잡음, 이종원의 꼬인 축구 인생

성균관대에 다니고 있던 이종원은 연령별 청소년 대표를 모두 거치며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2009년 U-20 청소년대표팀 1차 훈련에서도 이종원은 당당히 홍명보호에 이름을 올렸다. 홍정호와 김민우, 박종우, 김보경, 서정진, 한국영 등 지금도 한국 축구를 이끌고 있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종원의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이종원은 결국 홍명보호에 승선조차 하지 못했다. 명단이 발표되던 그날 경기 도중 발목을 다쳤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이집트에서 열린 본선 무대에서는 이종원이 자리를 구자철이 대신했다. 이종원은 또래 친구들의 플레이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종원은 2011년 K리그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했다.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당연히 재능 넘치는 그를 부산이 2순위로 지명했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성균관대에서 이적동의서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부산이 이종원을 데려가면서 지급하는 보상금이 터무니 없이 적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종원은 드래프트에서 뽑히고도 부산에 입단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결국 이종원은 오랜 시간 줄다리기 끝에 대한축구협회 선수구제위원회의 중재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2011년 3월 중순이 되고 나서야 정식으로 부산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이 문제로 인해 동계훈련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K리그에서의 출발은 좋았다. 부산 입단 후 두 달 만에 치른 데뷔전에서부터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5월 5일 강원과 치른 리그컵 데뷔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한 이종원은 엿새 뒤 열린 전남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감각적인 왼발 프리킥으로 데뷔골까지 뽑아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치러진 포항과의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쓰러진 이종원은 더 이상 날 수 없었다. 출발은 좋았지만 결국 2011년 네 경기에 출장한 게 기록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그의 포지션에는 박종우와 김한윤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동갑내기 박종우가 펄펄 날고 있는 동안 이종원은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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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부산 소속이던 이종원이 대전과의 경기에서 레드 카드를 받는 모습. (사진=부산아이파크)

날아오른 2012년, 그리고 감독 교체 후유증

2012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종원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철저한 ‘전력외’ 선수였다. 동계훈련 도중 또 다시 새끼발가락 부상을 당해 몸 상태를 가다듬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이종원은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또 다시 포항을 만났다. 지난 시즌 한창 주가를 올릴 때 포항전에서 당한 부상 악몽이 떠올랐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 경기에서 골을 뽑아낸 그는 시즌 두 번째 선발 출장이었던 상주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치열한 주전경쟁에서 살아남기 시작했다. K리그에서 중원이 가장 탄탄하다는 박종우-김한윤 라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한 번 베스트11을 정하면 변화를 잘 주지 않는 안익수 감독도 박종우와 이종원을 중앙에 세우고 김한윤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즌 시작 전만 하더라도 잘하면 백업 멤버 정도로 평가받던 선수가 어느덧 부산 중원의 주전을 위협하고 있었고 홍명보 감독도 다시 한 번 이종원을 주목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진 시리아와의 평가전에 이종원을 발탁한 것이었다. 비록 시리아전에서 45분을 뛰고 도움까지 기록했음에도 홍명보호에 기성용과 구자철, 박종우 등 워낙 쟁쟁한 미드필더가 많아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종원은 분명히 성장한 모습이었다. 박종우가 올림픽 대표팀에 가 있는 동안 부산 중원은 박종우의 빈자리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종원이 박종우의 빈자리를 든든히 책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매특허인 왼발 킥 역시 대단했다. 이종원은 2012년 부산에서 37경기에 나서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일약 주전으로 도약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종원은 부산에서 많은 기대를 했다. 특히 동갑내기인 박종우와의 호흡이 날로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시즌 째 함께 발을 맞추는 박종우와는 이제 ‘척’하면 ‘척’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수비력이 부족한 이종원을 두 시즌 동안 잘 지도해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력을 겸비하게끔 도왔던 안익수 감독이 부산을 떠나 성남 감독으로 옮긴 것이었다. 부산에는 윤성효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게 됐다. 윤성효 감독과 이종원의 궁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난 4월 13일 울산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한 이종원은 보름 뒤 또 다시 대전과의 경기에서 퇴장 당하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새로운 감독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결국 2년 동안 힘겹게 일궈낸 자리에서 단 몇 경기 만에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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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은 이적 후 치른 첫 경기에서 10분 만에 골을 기록하며 ‘성남맨’으로서의 신고식을 마쳤다. (사진=성남일화)

‘Just One 10 MINUTES’ 내 팬이 되는 시간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고 부산과 성남이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성남이 전성찬을 부산에 내주고 이종원을 받는 트레이드였다. 성남으로 떠난 안익수 감독이 다시 한 번 이종원에게 손을 내민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성남 팬 상당수는 들어오는 이종원보다는 나가는 전성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 “김성환부터해서 홍철, 전성찬 등 신태용 감독 시절 선수들이 하나둘 팀을 떠난다”며 이종원 영입을 별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실 이종원은 부산 중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지만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선수는 아니었기에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이종원은 독기를 품었다. ‘괜히 데려왔다는 소리 안 듣게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여주자.’ 이게 지난 7월 12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이종원이 부산에서 짐을 싸 성남 숙소에 짐을 푼 뒤 불과 하루 만에 경기가 열렸다. 지난 7월 12일 성남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과 포항의 경기였다. 동료들과 비 오는 훈련장에서 가볍게 발 한 번 맞춰본 게 전부였고 트레이닝복도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니폼도 선수용은 아직 받지 못했다. 그런데 경기에 나설 선수 명단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종원의 이름이 교체 명단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성남 유니폼이 낯선 이 이적생에게 안익수 감독이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종원은 0-2로 팀이 뒤진 후반 9분 그라운드에 투입됐다. 경기장에서 응원하고 있던 팬들도 생소한 이름에 어리둥절했다. “이종원이 누구야? 우리 팀에 저런 선수도 있었어?”

하지만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깨지는 데는 딱 10분이 걸렸다. 그가 교체 투입되자마자 성남이 한 골을 뽑아내더니 이종원이 후반 19분 김동섭의 슈팅이 포항 신화용의 손에 맞고 흐르자 침착하게 귀중한 동점골로 연결한 것이다. 0-2로 뒤지고 있다 2-2 무승부를 만드는 극적인 골이었다. 처음 그가 그라운드에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낯설게 이종원을 지켜보던 홈 관중들이 경기가 끝난 뒤 모두 일어나 이종원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종원으로서도 포항은 특별한 존재였다. 2011년 비상을 준비할 때 부상을 당했던 것도 포항전이었고 2012년 새롭게 날아오르는 멋진 골을 기록한 것도 포항전이었다. 그런데 2013년 새로운 팀에 둥지를 틀고 치른 포항과의 첫 경기에서 이종원이 또 일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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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후 첫 경기에서 골을 넣고 홈팬들에게 인사하는 이종원의 모습. 그는 5경기에서 벌써 세 골이나 기록하고 있다. (사진=성남일화)

노란 샤쓰 입은 이종원의 ‘미친 적응력’

지난 4일 대전과의 홈 경기에 나선 이종원은 또 한 번 일을 냈다. 후반 교체 투입된 그는 6분 만에 감각적인 슈팅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뽑아내며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세 경기에 나서 두 골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이종원은 팀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미드필더가 돼 있었다. 안익수 감독은 팀의 주축인 제파로프를 빼고 이종원을 투입할 만큼 이종원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 부산 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한윤과 함께 중원에 포진해 있어 이종원 역시 적응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이종원은 또 한 번 번뜩이는 골을 뽑아냈다. 대표팀 수문장 정성룡도 어쩔 수 없는 환상적인 왼발 터닝 발리슛이었다. 부산에서 3년 동안 52경기를 통해 기록했던 세 골을 성남에서는 단 다섯 경기 만에 뽑아낸 것이다.

성남으로서는 보물을 얻었다. 불과 한 달 전 “저 선수 누구야?”라며 이종원을 바라보던 성남 팬들은 불과 다섯 경기 만에 열렬한 이종원의 지지자가 됐다. “이 트레이드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다”던 이종원은 성남 팬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드는 데 한 달이면 충분했다. 이종원의 적응력은 무인도에 떨어뜨려 놨더니 물고기 잡아먹고 나무로 이쑤시개 만들어 이까지 쑤실 정도로 탁월하다. 누가 이 선수를 이제 갓 성남의 노란 샤쓰를 입은 사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대단한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종원이 앞으로 성남에서 또 어떤 신화를 써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의 새로운 재미가 될 것 같다. 누가 올 여름 K리그 이적시장에 대어가 없다고 했나. 누가 올 여름 K리그 이적시장이 꽁꽁 얼어 붙었다고 했나. 이종원이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