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축구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스코어가 나왔다. 어제(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하나은행 FA컵 8강 전북현대와 수원FC의 경기에서 전북은 ‘닥공’의 위력을 선보이며 수원FC를 7-2로 대파했다. 이제 이 경기는 이동국의 환상적인 골이 빛났고 7골 모두 다른 선수가 득점에 성공한 진기한 경기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전북의 무시무시한 공격력이 빛을 발한 압도적인 경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 경기를 대패한 수원FC 입장에서 한 번쯤은 바라보려 한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지만 대패한 수원FC의 도전 자체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우리가 박수를 보내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 하지만 ‘진짜 수원’의 자부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출범을 앞둔 지난해 11월이었다. 축구팬들은 K리그 챌린지에 어떤 팀이 참여하게 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소 뜬금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충추험멜과 함께 수원FC가 K리그 챌린지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내셔널리그에 속해있던 수원FC는 흔히 수원시청으로 알려진 팀으로 이전까지는 프로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원FC는 겉만 번지르르한 일부 프로화 추진 구단과 달리 차분하게 프로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2003년 수원시청 직장운동경기부로 창단한 이 팀은 2009년 재단법인화에 성공하며 수원FC로 이름을 바꿨고 정관에도 ‘시민 프로축구단화’를 명시했다. 지방자치단체에 속했던 팀의 새로운 변신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은 어쩔 수 없다. 수원종합운동장 내부 한 켠에 숙소를 잡아 생활해야 했고 2003년 창단 때부터 이용하던 낡은 선수단 버스를 올 시즌 개막 전에야 새롭게 바꿀 수 있었다. 수원종합운동장 내부에 위치한 숙소에서 바로 그라운드가 내려다 보여 좋게 말하면 클럽하우스지만 이들은 이 가까운 운동장을 두고 인근 인조잔디에서 훈련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홈 경기 전날이나 돼야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수원종합운동장 잔디를 밟을 수 있다. 또한 수원에는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끄는 수원블루윙즈가 있다. 관심이 당연히 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원FC는 ‘진짜 수원’을 표방한다. 수원블루윙즈가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팀인 반면 수원FC는 진짜 수원시의 팀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수원FC 서포터스는 경기장에서 이렇게 당당히 구호를 외친다. “우리가 진짜 수원.”

K리그 챌린지 참여 초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챌린저스리그에서 활약했지만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으로 사실상 신생팀이나 다름없는 부천과의 개막전에서 2-3으로 패한 수원FC는 이후 상주상무 원정에서도 1-1 무승부에 머물렀고 3라운드에서는 최약체로 평가받던 고양Hi fc와도 1-1 무승부에 그쳤다. 부천과 안양이 우선지명권을 얻어 좋은 선수를 대거 영입했고 상주와 경찰축구단 등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선수들이 포진한 팀이라 수원FC가 K리그 챌린지에서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4월이 끝날 때까지 수원FC는 K리그 챌린지에서 1승 3무 3패로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더군다나 FA컵 32강 상대는 K리그 클래식의 대구FC였다. 대구FC가 아무리 K리그 클래식에서는 하위권이라고 하더라도 수원FC와는 엄연한 실력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수원FC는 적지에 가서 싸워야 했다.

기사 이미지

수원FC는 올 시즌 출범한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해 강호들과 경쟁하고 있다. (사진=수원FC)

2년간 해병대 현역 복무한 김한원의 사연
+
수원FC에는 참 사연 많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K리그 무대에서 한 번씩, 혹은 그 이상의 실패를 맛보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내셔널리그 수원FC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특히 김한원은 그래서 K리그 챌린지가 더 특별하다. 세경대를 졸업한 김한원은 마땅히 갈 팀이 없는 상황에서 해병대가 2002년 월드컵 열기에 힘입어 팀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병대 축구팀에 지원했다. 아무도 받아주는 곳이 없던 김한원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해병대에 입대한 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해병대 축구팀 창단이 전면 백지화 됐네.” 이미 입대한 김한원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군인 신분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병대 일반 사병으로 2년 동안 포항 시내 하수구 안을 박박 기었고 구정물도 원 없이 마셨다. 상륙, 유격, 공수 등 특수훈련도 모두 소화했다.

그러던 중 김한원은 2003년 수원시청의 포항 전지훈련에서 김창겸 감독의 눈에 들었다. “너 여기에서 뭐하고 있니?” 김창겸 감독의 질문에 김한원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안타까워하던 김창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제대하면 바로 우리 팀으로 와. 2년 동안 축구를 놓고 살았다고 절대 포기하면 안돼.” 김한원은 해병대 제대와 동시에 곧바로 수원시청으로 향했다. ‘악으로 깡으로’ 수원시청에서 공을 찬 김한원은 입단 2년 만에 내셔널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특급 활약을 펼치면서 드디어 2006년 꿈에 그리던 K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인천유나이티드에서 13경기에 나서 세 골을 넣는 부진 끝에 2007년 전북현대로 이적했지만 두 시즌 동안 14경기에 출전해 무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K리그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김한원은 다시 2009년 고향과도 같은 수원시청으로 돌아와야 했다.

FA컵 대구FC와의 32강전을 준비하는 김한원의 각오는 그래서 더 남달랐다. 해병대 일반 사병으로 2년간 복무하며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남아 내셔널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그는 결국 K리그에서 실패를 맛본 채 쓸쓸이 퇴장해야 했던 아픈 과거를 떠올렸다. 반드시 FA컵에서 K리그 클래식 팀을 꺾고 싶었다. 이날 경기에서 수원FC는 역습 형태로 대구FC를 위협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치더니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45분 대구 안재훈의 반칙으로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었다. 키커는 백전노장 김한원이었다. 경기 막판 얻은 페널티킥으로 부담감이 상당했지만 김한원은 침착하게 한 번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대구 이양종이 지키는 골문을 뚫었다. 1-0 승리였다. K리그 클래식 팀을 꺾은 수원FC는 부둥켜 안고 기뻐했고 김한원은 그 중심에 있었다.

부상 딛고 일어선 하정헌의 남다른 각오

수원FC가 대구FC를 잡았다는 소식에 축구계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후 K리그 챌린지에서도 수원FC는 여전히 불안했다. 대구FC전 승리 이후에도 2무 2패로 여전히 K리그 챌린지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수원FC는 또 한 번 깜짝 놀랄 말한 승리를 챙겼다. 정조국과 염기훈, 양상민, 배기종, 김영후, 유현 등 국가대표를 지냈거나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도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던 이들로 구성된 경찰축구단을 만나 3-0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현충일에 경찰을 상대로 못된 짓(?)을 제대로 했다. 특히 유수현은 철옹성 같던 경찰축구단 수비를 세 번이나 뚫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았다. 유수현 역시 수원시청에서 전남드래곤즈로 이적했지만 결국 실패를 맛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선수였다. 이때부터 수원FC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FA컵 16강 상대인 K리그 클래식 전남드래곤즈의 우세를 점쳤지만 수원FC는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

특히 하정헌의 각오가 남달랐다. 2008년 수원시청에 입단한 하정헌은 데뷔 시즌 12경기에서 10골을 뽑아내는 막강 득점력으로 내셔널리그를 평정했다. 하정헌에 눈독을 들이는 K리그 구단도 꽤 있었고 결국 하정헌은 2010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강원FC의 선택을 받았다. 대구FC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두 골을 꽂아 넣으며 K리그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는가 싶었지만 결국 하정헌은 좌절하고 말았다. 2010년 10월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고 재활에 매달려 간신히 2011년 시즌 초반 복귀했지만 R리그(2군리그)에 나서 무릎 부상으로 또 다시 2개월 동안 재활만 해야 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무릎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왔지만 복귀전에서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인대가 끊어져 시즌을 접어야 했다. 결국 그는 K리그에서 제대로 된 활약 한 번 보여주지 못하고팀을 떠나야 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하정헌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내셔널리그 2012년 고양 국민은행에 입단했고 줄곧 주전으로 뛰며 10골 6도움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올 시즌 다시 고향팀인 수원FC로 돌아왔다. 2009년 큰 꿈을 품고 K리그에 도전했다가 결국 4년 동안 방황한 끝에 다시 수원FC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K리그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하정헌은 모두가 열세라고 평가하던 전남과의 FA컵 16강전에 대한 각오가 대단했다. ‘반드시 K리그 클래식 팀을 상대로 우리가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전남은 주전 선수들을 상당수 제외했지만 하정헌과 수원FC 모두에게 전남과의 FA컵 16강은 사활을 건 승부였다. 죽을 힘을 다해 뛸 각오가 돼 있었다.

기사 이미지

수원FC는 올 시즌 원정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원정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수원FC)

전남 잡았지만 이번 상대는 ‘닥공’ 전북

하정헌의 발끝에서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전반 38분 페널티킥으로 선취골을 뽑아낸 하정헌은 2-0으로 앞선 전반 추가 시간에도 또 다시 한 골을 보태며 이변을 연출했다. K리그 챌린지 수원FC가 전반에만 K리그 클래식 전남을 3-0으로 앞선 것이다. 전남은 이후 무섭게 추격했지만 수원FC는 후반에 무려 네 명이나 근육 경련으로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투혼을 보이며 결국 4-3 승리를 지켜냈다. 수원FC의 창단 후 첫 FA컵 8강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이날 나머지 K리그 챌린지 팀은 K리그 클래식 팀에 모두 패해 8강에 생존한 K리그 챌린지 팀은 수원FC가 유일했다. 경기장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오늘 수원블루윙즈는 제주한테 패했어요.” 수원블루윙즈에 비해 예산이 1/6도 되지 않는 수원FC의 투혼이 빛난 귀중한 승리였다.

지난달 18일 FA컵 8강 대진 추첨이 열렸다.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내심 대진운을 바랐다. 어느 하나 만만한 팀이 없었지만 FC서울이나 전북현대 등 막강한 경기력을 보유한 팀은 피하고 싶었다. 세 번만 더 이기면 FA컵 우승이라는 기적도 연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진운에 대한 욕심을 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망이었다. “수원FC의 FA컵 8강 대진 상대는…. 전북현대입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이었다. 군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조덕제 감독이었지만 고향 팀 전북과의 경기 만큼은 바라지 않았다. 더군다나 전북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지켜본 강원전은 충격적이었다. 1-1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순식간에 세 골을 뽑아내며 4-1로 강원을 제압하는 전북의 경기력은 무시무시했다.

대등하게 싸워도 모자랄 판에 수원FC는 또 다른 악재가 있었다. FA컵 8강 전북과의 경기 나흘 전 치른 K리그 챌린지 FC안양과의 원정경기가 엄청난 폭우 속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 발이 빠질 정도로 내린 폭우를 뚫고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좀처럼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믿는 건 올 시즌 원정 성적이었다. FA컵과 K리그 챌린지를 통틀어 원정 10경기에서 5승 5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원정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점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FA컵 8강 전북과의 경기 선발 명단을 본 수원FC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미 FA컵에서 대구와 전남을 혼쭐낸 수원FC를 경계한 전북이 주전 선수를 총동원했기 때문이다. 전주성에는 이런 걸개가 내걸려 있었다. ‘여기는 전주성, 적에게 자비란 없다.’

기사 이미지

박종찬에게도 이번 전북전은 무척 특별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사진=수원FC)

박종찬의 마지막 투혼, 대패였지만 아름다웠다

조덕제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수비만 하지 말자. 우리도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K리그 클래식에서 최강 전력으로 꼽히는 전북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우리가 직접 한 번 확인해 보자.” 선수들의 눈에서도 빛이 났다. 대구와 전남을 잡은 것처럼 전북을 상대로도 기적을 한 번 연출해 보자는 의욕이 대단했다. 운명의 장난일까. FA컵 32강에서 경기 막판 수원FC에 페널티킥을 헌납했던 대구의 안재훈은 이제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아마 이동국 한 명 몸값이 수원FC 베스트11 몸값을 합친 것보다 많을 거야”라고 했지만 이들은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수원 염태영 시장도 FA컵 8강 조추첨 직후 결과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K리그 시절 전북 소속으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던 김한원과 함께 팀내 최고참인 박종찬의 각오가 남달랐다.

박종찬은 한남대 시절이던 2003년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팀의 우승까지 이끌어낸 기대주였다. 2005년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의 선택을 받아 당당히 성인 무대에 입성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개막전에 나선 뒤 그는 단 한 번도 K리그 무대에 서지 못했다. 데뷔전이 곧 마지막 무대였던 셈이다. 이후 인천유나이티드 1군 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그는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1년 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받아두는 곳이 없어 새로운 팀을 찾던 그는 연고지 없이 방황하는 불안한 INGNEX에 입단해 내셔널리그와 인연을 맺게 됐고 결국 2007년 수원시청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후 수원시청에서 7년째 주포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K리그 클래식 최강 전북 골문에 골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전북은 역시 최강 공격력을 자랑했다. 전반 17분 이동국이 환상적인 슈팅으로 골을 허용한 뒤 흔들리기 시작한 수원FC는 이어 자책골과 이승기의 추가골로 전반을 0-3으로 마쳐야 했다. 후반 들어서도 전북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박희도가 후반 4분 만에 골을 뽑아낸 후 레오나르도, 티아고, 케빈이 연속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원FC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전북의 자책골로 한 골을 만회한 수원FC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폭염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후반 41분 박종찬이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비록 승부에는 영향을 줄 수 없는 골이었지만 K리그 클래식 최강 전북을 상대로 박종찬은 포기하지 않았다. 득점에 성공해 2-7을 만든 뒤 곧바로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기사 이미지

수원FC는 비록 수원블루윙즈에 비해서는 응원하는 팬이 적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팀이다. (사진=수원FC)

승리 이상의 감동 있었던 패배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2-7. 대패였다. 정신없이 흐른 90분이었다. 하지만 수원FC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당당하게 싸워 거둔 아름다운 패배였기 때문이다. 비록 K리그 무대에서 한 번씩 실패를 거둔 이들이 자신의 몸값보다 수십 배는 많은 돈을 받는 이들과 싸워 당한 대패였지만 그럼에도 수원FC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들은 90분 동안 ‘닥공’ 전북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똑같이 공격으로 맞섰다. 큰 점수차로 밀리는 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격해 마지막까지 득점에 성공한 수원FC는 진정 아름다운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누군가는 2-7이라는 엽기적인 스코어에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들의 도전이 자랑스럽다. 해병대 일반 사병으로 복무하면서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려 할 때마다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또 다시 일어서고 K리그 무대에서 데뷔전이자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이 모여 보여준 이 패배는 승리 이상의 가치와 감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