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경기였다.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서울과 수원의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경기는 역시 치열한 승부였다. 지난 2010년 8월 수원에 2-4 패배를 당한 뒤 3년 동안 슈퍼매치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2무 7패로 끌려가던 서울은 이번 맞대결에서 2-1 승리를 거두고 지긋지긋한 수원 징크스를 털어냈다. 이날 경기 내용만 보면 어떻게 서울이 지난 3년 동안 수원을 이기지 못했는지가 의아할 정도였다. 그만큼 서울은 수원을 압도했다. 오늘은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서울과 수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세트피스가 가른 승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세트피스였다. 서울은 두 차례 세트피스에서 아디와 김진규가 헤딩 골을 뽑아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아디는 두 경기 연속골, 김진규는 무려 다섯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다. 이 두 중앙 수비수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 어떤 공격수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이 두 골 모두 몰리나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은 몰리나와 아디, 김진규라는 세트피스에서 가장 확실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라이벌전 특성상 몇 안 되는 세트피스 기회를 누가 더 잘 살리느냐는 것이 승부의 포인트라는 점을 살펴본다면 이미 여기에서부터 서울은 수원에 한 수 이기고 들어간 셈이다.

반면 수원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타점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던 스테보와 라돈치치가 모두 팀을 떠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세트피스가 나올 리 없었다. 더군다나 장거리 프리킥이 무척 위협적이었던 보스나까지 이적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전담 킥을 할 만한 선수도 없었고 이를 받아서 헤딩으로 연결할 선수도 없었다. 후반 터진 조지훈의 만회골 역시 수원의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 수원은 보통 긴 프리킥을 통해 머리를 이용할 만한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 방법을 쓸 자원이 없자 그냥 바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 프리킥을 연결해 결국 중거리 슈팅으로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이날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역시 서울에는 최전방에 버티고 있는 데얀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비록 위협적인 슈팅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그 존재 자체로도 데얀이 수원에 주는 부담감은 어마어마하다. 반면 수원은 스테보와 라돈치치뿐 아니라 정대세까지 부상으로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조동건이 최전방에서 외롭게 싸웠고 후반에는 경험이 부족한 추평강을 투입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막강한 최전방 공격수 스테보와 라돈치치를 모두 보내고 산토스를 영입한 게 전부인 수원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서울은 후반 들어 앞선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태유를 투입하고 막판 에스쿠데로를 집어 넣으며 계획대로 카드를 썼지만 수원은 쓸 카드가 마땅치 않았다.

‘롱볼’에 익숙한 수원, 산토스의 등장

또 다른 두 팀의 차이점은 기존 축구 스타일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은 하대성과 고명진이 중원에서 버티고 윤일록과 고요한 등이 측면을 부지런히 오갔다. 이전 경기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스타일을 꾸준히 고수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원은 그렇지 못했다. 이전까지 스테보와 라돈치치를 최전방에 배치해 놓고 공중전을 펼치거나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이번 서울전에서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해야 했다. 기존의 스테보, 라돈치치와 비교해 새로 영입한 산토스가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165cm의 단신 산토스를 전방에 배치해 놓고 ‘뻥축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수원 선수들은 후방에서 공을 잡으면 길게 앞으로 차내 경합시키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결국 산토스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제주 시절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K리그에서도 가장 훌륭한 외국인 선수라는 찬사를 받던 산토스는 이날 보여준 모습만 놓고 본다면 수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다. 수원 스스로 지난 몇 년 동안 몸에 밴 ‘뻥축구’에 대한 체질 개선을 하지 않는 이상 산토스는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서울은 차근차근 자신들이 원하는 카드를 가지고 계획대로 베팅을 했지만 수원은 중구난방이었다. 아마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다음 슈퍼매치 역시 크게 다른 결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은 수비수들도 골을 펑펑 넣어주는데 수원은 쓸 공격 자원도 없었고 ‘뻥축구’와 ‘패스 축구’ 사이에서 90분 동안 혼란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다.

나는 서울과 수원을 보면 한일전이 떠오른다. 서울이 오밀조밀한 패싱 축구를 구사하는 일본과 닮아있다면 피지컬로 이 패스 축구를 제압하는 수원은 한국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지난 4월 수원의 안방에서 열린 슈퍼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대세의 이른 퇴장으로 10명이 된 수원은 후반 들어 스테보와 라돈치치가 최전방에서 강하게 압박하며 결국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고 승부를 1-1로 마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을 내보내고 스타일을 잃은 수원은 이번 슈퍼매치에서는 우왕좌왕했다. 갑자기 ‘피지컬 축구’를 버리고 산토스를 앞세워 ‘패스 축구’를 하려는 모습은 지난 2011년 8월 삿포로돔에서 당했던 한일전 0-3 참패가 떠올랐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피지컬로 일본을 제압하던 과거 한국 스타일에서 벗어나 오밀조밀한 패싱 축구를 구사하려다 참패를 맛봤다.

서울은 있고 수원은 없었다

이제 수원에 스테보와 라돈치치는 없다. 연봉공개 후폭풍으로 고액 연봉자를 어쩔 수 없이 줄였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결과로 말해야 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이는 변명일 뿐이다. 수원의 이번 슈퍼매치 패배는 단순히 한 번의 패배가 아니라 앞으로 수원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큰 고민을 안겨준 경기였다. 여름 이적시장은 닫혔고 이제 이 멤버로 남은 시즌을 치러야 한다. 반대로 서울은 ‘되는 팀’의 전형을 보여줬다. 든든한 프리킥 전담 키커가 있고 중요한 순간마다 수비수가 세트피스를 통해 골을 터뜨려주니 이보다 더 짜릿한 순간이 있을까. 서울은 있고 수원은 없는 것들이 바로 이번 슈퍼매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