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화를 내기에도 애매한 결과다. 한국은 어제(18일)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이란과의 맞대결에서 0-1로 패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에서 앞서며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내용은 무척 실망스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최대 과제였던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으니 참 심정이 복잡하다. 오늘은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여정이었는지 그 과정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월드컵 한 번 나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1. 대표팀 차출 갈등

지난 2011년 2월 조광래 성인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다. 선수 차출을 놓고 충돌했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를 선호하는 조광래 감독은 구자철과 기성용, 지동원, 홍정호, 윤빛가람, 손흥민 등 올림픽 대표팀 연령대에 해당하는 선수를 성인대표팀에 부르려고 했지만 올림픽 대표팀과 소집기간이 일부 겹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성인대표팀에 우선 배정한다는 큰 틀을 내세웠지만 대신 성인대표팀에 차출하려는 선수는 선발 출전 요원으로 단서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홍명보 감독이 반발했다. “기술위원회가 열린 사실도 몰랐고 그런 중요한 일이 감독 없이 논의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서도 완벽히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2. 삿포로의 굴욕

지난 2011년 8월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일본 삿포로돔에서 일본과 평가전을 치렀다. 승패에는 큰 의미가 없는 평가전이었지만 상대는 가위 바위 보도 져서는 안 되는 일본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참패를 당했다. 중원과 측면할 것 없이 속된 말로 ‘탈탈 털린’ 한국은 전반 34분 카가와 신지에게 한 골을 허용한 뒤 후반 7분 혼다 케이스케에게 또 한 골을 내줬다. 2분 뒤에는 카가와가 다시 한 번 골을 뽑아냈다. 0-3 한국의 완패였다. 1974년 일본에 1-4로 패한 뒤 37년 만에 당한 세 골차 패배였다. 이 ‘삿포로의 굴욕’ 이후 팬들의 질타는 이어졌고 선수들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조광래 감독의 입지도 이 경기 패배 이후 좁아지기 시작했다.

3. 베이루트 참사

레바논 정도는 쉽게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2011년 11월 레바논 베이루트 원정을 떠나 어이 없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아니라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이라는 쉬운 관문에서 당한 패배였다.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 4분 만에 실점한 뒤 전반 18분 이근호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구자철이 성공시켜 동점을 만들었지만 13분 뒤 다시 페널티킥을 내줘 1-2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조광래호는 결국 마지막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패할 경우 3차 예선 탈락이라는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됐다. ‘경우의 수’를 3차 예선에서 따지는 굴욕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레바논전 참패가 헤드라인으로 소개된 건 ‘보너스 굴욕’이었다.

4. 조광래 감독 경질

‘삿포로의 굴욕’과 ‘베이루트 참사’를 당하며 최종 예선 진출도 간당간당한 상황에 몰린 대표팀은 결국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는 강수를 뒀다. 지난 2011년 12월의 일이었다. 여론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조광래 감독 경질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경질은 협회 기술위원회 소집 한 번 없이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회장단이 결정한 ‘밀실 행정’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기 시작했다. 또한 조광래 감독의 남은 임금까지 체불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결국 진실 게임 양상으로 치닫게 됐다. 더군다나 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대표팀 감독을 자처하지 않았다. 결국 K리그에서 전북을 이끌며 공격 축구를 선보인 최강희 감독이 울며 겨자먹기로 대표팀 사령탑에 앉아 ‘벼랑 끝 승부’인 쿠웨이트전을 준비하게 됐다.

5. 이란전 0-1 패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을 맞은 뒤 순항하기 시작했다. 최종예선 첫 경기 카타르전에서는 ‘울산 트리오’ 김신욱과 이근호, 곽태휘의 골로 4-1 대승을 거뒀고 레바논과의 2차전에서도 3-0 완승을 챙겼다. 이후 우즈벡과의 3차전 원정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하지만 2012년 10월 이란 원정에서 당한 0-1 패배는 타격이 컸다. 단 한 번도 이란 원정에서 승리한 적이 없는 대표팀은 이 경기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자바드 네쿠남이 말한대로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마수드 쇼자에이가 후반 퇴장을 당하며 수적 우세를 잡았지만 결국 10만 이란 관중 앞에서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최종예선 첫 패를 당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브라질행 경쟁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은 더했다.

6. ‘침대축구’에 말린 카타르전

이란전 패배 후 칼을 갈던 최강희호는 2013년이 돼 카타르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중요한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대표팀에 차출된 김영광과 김두현, 김창수가 부상을 당해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카타르의 수비적인 전술에 고전하다 후반 15분에야 카타르 골문이 열렸다. 이근호가 감각적인 헤딩 슛으로 선제골을 뽑아낸 것이다. 하지만 3분 뒤 한국은 카타르에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쉽게 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갔다.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던 카타르는 이후 꾀병을 부리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되던 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이 일을 냈다. 이동국의 슈팅이 골문을 맞고 흐르자 손흥민이 이를 밀어 넣은 것이다. 2-1 한국의 극적인 승리였다. 한국은 이 승리로 우즈벡을 밀어내고 다시 조1위에 올라섰다. 숨 막히는 경기였다.

7. 진땀났던 마지막 3연전

이번 달에 열린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은 말 그대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승부였다. 지난 4일 레바논 원정에서 선취골을 허용해 끌려가던 한국은 후반 막판 김치우의 극적인 프리킥 동점골에 힘입어 가까스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더니 11일 열린 우즈벡과의 홈 경기에서도 진땀 승부를 연출했다. 수없이 우즈벡 골문을 노렸지만 결국 한 번도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 한국은 우즈벡의 자책골 덕분에 1-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본선 진출 커트라인인 조2위 안착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거둔 의미 있는 승리였다. 어제(18일) 열린 이란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한국은 우즈벡이 같은 시간 카타르를 5-1로 대파했지만 골득실에서 단 한 골 앞서며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 도전을 성공으로 마무리했다.

내용은 좋지 못했고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선수 차출을 두고 올림픽 대표팀과 갈등을 빚었고 중간에 감독이 바뀌기도 했다. 후반 막판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경기를 연속적으로 펼쳤다. 당연히 경기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세계에서 단 6개 국가만 이룬 업적이다. 마냥 기뻐하기에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마냥 비난하기에도 애매한 경기력이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그 동안 당연히 나가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던 월드컵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태위태했고 개선해야 할 점도 많지만 이 험난한 과정 속에서 결국 우리가 또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가게 됐다는 점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