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축구와 축구 게임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무조건 좋은 팀의 좋은 능력치를 지닌 선수만 모아 놓으면 다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실제 축구는 다르다.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실제로 한 팀에서 뛴다면 어떨까. 게임에서는 최고의 팀이 될지 몰라도 실제 축구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팀 전술에 따라, 상대의 전략에 따라 선수를 기용해야지 무조건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만 모아 놓는다고 강팀이 되는 건 아니다. 막대한 돈을 쓰고도 강등된 올 시즌 퀸즈파크 레인저스만 보더라도 실제 축구가 그렇게 게임에서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수비하는 팀'에 이점 못 보인 손흥민

최강희 감독의 전술과 선수 기용을 놓고 일부에서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손흥민의 활용법에 대해 말들이 많다.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올 시즌 13골이나 뽑아낸 손흥민이 당연히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최강희 감독이 손흥민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느끼고 있다. 유럽 최고의 유망주가 후보인 나라라고 조롱한다. 이런 비난에는 또 전북 시절부터 최강희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이동국까지 등장한다. 최강희 감독이 아끼는 이동국을 중용하기 위해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논리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나는 최강희 감독의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다. 최강희 감독은 손흥민을 푸대접한 적도 없고 최상의 경기력을 쏟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다가올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는 무척 중요한 승부다.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싸움에서 확실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과 상대하는 아시아권 팀들은 하나 같이 수비에 비중을 두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레바논 역시 아무리 홈 경기지만 마찬가지 전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상대로 겁 없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아시아권 팀은 일본 정도뿐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을 이용해 승부를 보지 않으면 오히려 한국의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최강희 감독도 수비를 우선시하는 레바논을 깨기 위한 여러 전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속 편하게 “유럽에서 13골 넣었으니 무조건 손흥민 써야지”라는 건 없다.

손흥민의 능력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어린 선수가 유럽 빅리그에서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하며 펄펄 나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더군다나 뽑아내는 골마다 아주 시원시원하다. 이런 공격수가 있다는 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무척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레바논을 상대하기에 손흥민의 플레이 스타일은 살짝 어울리지 않는다. 손흥민은 배후로 침투하거나 드리블 돌파를 통해 자기가 슈팅까지 이어가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다. 나는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손흥민의 시원한 골 장면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손흥민의 화끈한 골만 보면 금방 화를 가라 앉힐 수 있다. 하지만 레바논이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와 맞불을 놓지는 않을 것이다. 치고 받아주면 손흥민이 더 능력을 발휘할 텐데 레바논은 분명히 수비 라인을 밑으로 내릴 것이다.

손흥민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적은 없다

등지는 플레이에 능한 이동국이나 김신욱이 오히려 레바논을 비롯한 아시아 무대에서는 더 적합한 카드다. 꼭 헤딩 경합만이 아니다. 등지고 공을 키핑해서 2선 침투하는 동료에게 내주거나 아니면 좋은 위치에서 파울을 얻어내거나 예측불허의 슈팅을 날리는 공격수가 필요한 경기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동국과 김신욱이 손흥민보다는 더 좋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유럽 팀에서 골을 많이 넣었다고 무조건 상대 전략 따지지도 않고 기용하는 건 축구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레바논은 잔디 사정도 좋지 않다. 드리블과 스피드를 앞세운 손흥민보다는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선수를 쓰는 게 맞다. 이동국을 아무리 ‘아시아용’이라고 비난해도 아시아 팀하고 하는데 ‘아시아용’이면 적당한 것 아닌가. 후반 들어 레바논이 급하게 공격으로 나오는 순간이 생긴다면 그때가 바로 손흥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강희 감독이 이동국을 격하게 아껴서 이동국을 기용한다는 건 너무 심한 억지다. ‘인맥 축구’ 운운하지 말자. 그렇게 따지면 최강희 감독은 손흥민과 더 가깝다. 선수 시절 최강희 감독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는 현대에서 2년 동안 함께 뛴 동료였다. 최강희 감독은 손흥민이 어릴 때부터 지켜봐온 ‘삼촌’이었다. 만약 정말로 최강희 감독이 ‘인맥 축구’를 했다면 이동국이 아닌 손흥민이 무조건 선발이었어야 한다. 이래도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을 특별한 사이로 바라볼 것인가. 최강희 감독이 이동국을 아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전으로 기용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왜 유럽에서 펄펄 나는데 대표팀에서는 쓰지도 않느냐고 불만을 갖는 이들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전술상 이동국이 필요하기 때문에 쓰는 거다.

이동국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주전에서 당연히 밀린다. 지난 이란과의 경기에서 이동국은 선발 출전하지 못했다. 이때 최강희 감독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고참들은 후배들이 인정할만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최강희 감독은 지동원의 컨디션이 너무 좋아 지동원을 선발로 기용했다. 최근 들어 손흥민과 관련한 최강희 감독의 부정적인 인터뷰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최강희 감독은 절대 손흥민에게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날리는 게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동국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채찍질을 당하고 김신욱도 마찬가지였다. 최강희 감독은 김신욱에 대해 “세밀함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손흥민에게만 유독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최강희 감독의 선택을 믿어보자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서는 펄펄 날지만 아직 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선발로 나서 60분 정도를 뛰었지만 처진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란전에도 후반 교체 투입됐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최강희 감독은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는 손흥민과 지동원을 선발 출장 시킨 뒤 후반 들어 여러 공격 옵션을 시도해 보기 위해 이동국과 박주영을 투입했다. 최근 들어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아쉬운 활약에 머물렀다. 그런데 무슨 수 없이 많이 치러진 경기에서 손흥민이 대단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참고로 김신욱은 최강희 감독 부임 초기부터 두 경기 연속 교체 투입돼 어시스트를 두 개나 기록하는 등 입지를 굳혔다.

아직 레바논전 선발 명단은 최강희 감독의 머리 속에만 있다. 변칙적인 새로운 전술을 위해 손흥민이 선발로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의 선택 여부를 떠나 이 시점에서 최강희 감독이 손흥민을 푸대접한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와 비난은 없어야 한다. 최강희 감독이 손흥민을 선발에서 배제하는 이유에 대해 타당한 근거를 이미 수 차례 밝혀왔는데도 유럽에서 펄펄 날며 골 많이 넣는 선수가 ‘인맥 축구’에 밀리고 감독의 편견에 밀려 기회를 못 잡고 있다고 비난하는 건 손흥민에게나 대표팀에나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아마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선다면 치고 받는 경기에서 손흥민이 보여줄 수 있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선수 기용으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감독은 없다. 허정무 감독은 올림픽 대표 시절 무명의 박지성을 기용했다가 온갖 욕을 다 먹었고 아르센 벵거 감독은 박주영을 쓰지 않는다고 온갖 비난을 들었다. 이게 감독의 숙명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전술에 대해 고민하고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이 자기가 좋아한다고 필요 없는 선수를 가져다 쓰고 자기가 싫어한다고 필요한 선수를 내치지는 않는다. 최강희 감독 역시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남은 세 경기를 그 누구보다 이기고 싶을 것이다. 지금은 최강희 감독이 손흥민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오해하며 비난할 때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현 상황을 잘 아는 최강희 감독의 선택을 믿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