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프다’라는 신조어가 있다. ‘웃기면서 슬프다’라는 말을 합성한 것이다. 군대 시절 사단장이 방문해 연병장에서 큰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사단장의 방문으로 부대가 분주하게 돌아갔다. 다들 잔뜩 긴장해 연병장에서 사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대장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80cm 넘는 녀석들은 앞으로 오고 170cm 애들은 맨 뒤로 가. 현회야. 맨 뒤로 안 가고 뭐해?” 나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맨 뒤로 향했다. 맨 뒤에서 쉬엄쉬엄 경례를 하고 딴 짓을 하며 서 있어도 된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키 작다고 무시 받는 것 같아 살짝 슬프기도 했다. 정말 ‘웃픈’ 일이었다.

이승기의 퇴장은 규정상 옳다

아마 어린이날인 어제(5일) 가장 ‘웃픈’ 사람은 바로 전북의 이승기였을 것이다. 이승기는 전북과 서울의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후반 8분 골을 기록한 뒤 세리머니를 하는 과정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고 말았다. 최명용 주심은 이승기가 유니폼 상의를 들어 올려 머리에 뒤집어 썼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판정을 내렸다. 골을 넣고 환호하던 이승기는 불과 1분 만에 슬픈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야 했다. 이보다 더 ‘웃픈’ 상황이 또 있을까.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 상황을 놓고 많은 축구팬들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명용 주심의 판정이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경기 규칙 12 ‘반칙과 불법행위’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골을 넣은 뒤 선수가 자신의 상의를 벗거나 또는 상의로 머리를 덮는다면 경고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K리그 클래식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는 유니폼을 머리에 뒤집어 쓴 뒤 곧바로 다시 유니폼을 내렸지만 1초이건 1분 동안 그라운드에서 누드쇼를 하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이런 행동을 했다면 이는 명백한 경고 행위다. 최명용 주심은 어린이날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빅매치에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나는 최명용 주심의 이런 판정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는 규정에 있는 대로 했다. 이건 이승기가 백 번 실수한 거다.

하지만 문제는 최명용 주심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시간을 불과 6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해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과 전북이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 역시 최명용 주심이 배정됐었다. 바로 전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한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 15분 몰리나가 팀의 첫 번째 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자축했다. 몰리나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 벤치에 있던 하대성과 김동우, 현영민, 최효진 등 7명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 경기에 뛰던 선수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 도중 경기와 관련 없는 이가 그라운드로 난입을 한 것이다. 당연히 난입한 7명은 경고를 받는 게 맞지만 최명용 주심은 이를 그냥 넘겼다.

일관성 없는 판정이 문제

최명용 주심은 이후 본인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온 선수 전원에게 경고를 줘야하는 게 규정이지만 ‘운영의 묘’를 살리기 위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하필 또 두 팀이 맞붙는 경기에서 이번에는 같은 심판이 상대팀인 전북에 골 세리머니와 관련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선언했다. 편파판정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연히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운영의 묘’가 필요했다면 일관되게 이승기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갔어야 하고 규정을 앞세우려면 지난해 서울 선수들에게도 경고를 줬어야한다. 하지만 같은 팀이 치르는 경기의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심판이 전혀 다른 판정을 한 건 굉장히 아쉬운 대목이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고자 한다. 역시 전북과 서울의 경기였다. 2011년 7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두 팀은 비가 거세게 오는 와중에도 혈투를 펼쳤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전북 에닝요는 골을 넣은 뒤 서울 팬들 앞에서 도발적인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아이가 우는 흉내를 냈는데 에닝요는 “자녀를 위한 세리머니였다”고 했지만 주심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며 가차 없이 퇴장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때의 주심도 바로 최명용 심판이었다. 여기에 거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같은 팀의 맞대결에서 골 세리머니를 놓고 한 심판이 전혀 다른 판정을 내리고 있다는 건 딱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 팬들은 심판을 믿지 못한다.

나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영어 선생님한테 회초리로 한 번에 30대를 맞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도 나는 입만 산 학생이었다. 이 선생님은 며칠 뒤에도 수업 시간에 누군가 떠들자 잔뜩 화가 났다. “지금 떠든 놈 누구야. 나와.” 호통을 쳤다. 그런데 굉장히 모범적인 학생이 앞으로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수업 시간에 떠들면 어떻게 해. 앞으로는 그러지마. 들어가.” 떠들다가 30대나 맞은 나로서는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심으로 영어와 담을 쌓은 것 같다. 그때 나에게 30대의 회초리를 때리지 않고 타일렀다거나 아니면 모범적인 학생에게도 똑같은 체벌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을 것이다.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제 이승기는 경고를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 아마 이승기는 이런 행동을 한 뒤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정신이 나갔었나봐.” 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에서는 감독이나 선수가 경기 종료 후 판정에 문제 제기하는 걸 원칙적으로 막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벌금을 부과한다. 이렇게 심판의 권위를 세우는 거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심판의 권위가 세워질 수 있도록 심판 스스로도 일관된 판정을 내리는 것이 더 우선이다. ‘운영의 묘’와 ‘규정’을 놓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는 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