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새 tbs에서 하는 K리그 전문 프로그램 <황금축구화>에 출연하고 있다. 재미로 다음 라운드를 예측하는 프리뷰 코너가 있는데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번 라운드 경기 중 세 경기 예측을 했는데 내가 한 경기를 맞췄고 개그맨 황봉알이 두 경기를 맞췄다. 황봉알은 말도 안 되는 '전북 15일 전후설'이나 '울산 퐁당퐁당설' 등 축구화 전혀 관계없는 근거를 들어 나보다 더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고 있다. 욕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덧 K리그 클래식 족집게 강사가 돼 있었다. 어제 모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날리며 약 올렸다. "이번에도 내가 더 많이 맞췄네. 현회 너 축구 전문가 맞아?" 아, 이번 주 녹화에서는 또 얼마나 나를 구박할까.

독주 체제 유럽 빅리그와 며느리도 모르는 K리그 클래식

K리그 클래식 판도가 예측불가다. 그냥 "언제 밥 한 번 먹자"처럼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9라운드가 끝난 현재 순위표를 보면 시즌 전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러 고전이 예상되던 포항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건 그나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늘 고전하던 시민구단 인천은 비록 3위 수원보다 한 경기 더 치렀지만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이끌고 있다. 이제 이천수 앞에서 "언제부터 인천이 강팀이었다고…"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원에서 조롱 받던 윤성효 감독은 부산을 이끌고 야금야금 6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정말 며느리도 모를 만큼 예측할 수 없다.

다음 주 MBC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는 성남이 등장해야 할 것 같다. 성남은 시즌 초반 여기저기에서 박살나더니 서울과 전북, 울산 등 강호를 연달아 제압하며 이제는 중위권까지 치고 올라왔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자칫하면 강등 싸움을 할 수도 있었던 서울이 최근 2연승을 내달리며 서서히 추격을 시작한 것도 흥미롭다. 대구는 감독 교체 후 지난 경기에서 '난적' 제주와 무승부를 기록했고 강원은 서울을 다 잡았다가 놓쳤지만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등 가장 떨어지는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대구와 강원의 경기력도 인상적이다. 스포츠토토를 위해 나에게 경기 예상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럴 때면 딱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괜한 짓 하지 말고 그냥 바르셀로나하고 바이에른 뮌헨 승리에 걸어요."

올 시즌 유럽 빅리그는 대부분 압도적인 성적으로 독주하는 팀이 생겨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위 맨체스터 시티에 벌써 승점 13점이나 앞서며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고 프리메라리가에서도 2위 레알 마드리드는 선두 바르셀로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세리에A의 유벤투스와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망도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이런 대단한 팀들의 경기력이야 극찬을 해도 모자라지만 전체적인 리그의 재미를 위해서는 한 팀의 독주가 반갑지만은 않다. 한 경기에서 9골씩 꽂아 넣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은 대단하면서도 시시한 게 사실이다. 어느 한 팀의 독주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리그는 우리가 지켜볼 수 있는 흥밋거리가 단조롭다. 경기장에서 7골을 목격한 뒤 자리를 떠도 나머지 두 골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없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함, K리그 클래식의 매력

그런 면에서 K리그 클래식은 참 복잡해서 좋다. 2001년부터 2003년 성남의 리그 3연패 이후 최근 10년 동안 연속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구단이 단 한 팀도 없다. 수원과 울산, 성남, 포항, 전북, 서울 등 무려 6개 팀이 최근 10년 동안 사이 좋게 우승을 경험했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리그가 상향평준화 되면서 지난 4년 동안 K리그 클래식 세 팀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아마 다른 아시아 리그 팬들은 포항보다 강한 성남이, 성남보다 강한 울산이 매년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을 것이다. 친한 여자애가 데려온 친구가 너무 예뻐서 감탄하고 있는데 다음에 데려온 친구는 더 예쁜 꼴이다. 이런 친구는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우정을 나눠야 한다. K리그 클래식이 딱 그런 모습이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예년보다 더더욱 복잡하다. 매 라운드를 앞두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이번 라운드에서 인천이 울산 원정을 떠났는데 이거 참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요새 무시무시한 인천이라면 울산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김신욱이 있는 울산이 이길 것 같기도 하고 참 어려웠다. 결국 두 팀은 이번 라운드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비록 패했지만 리그 꼴찌 강원이 서울 원정에서 그런 경기력을 보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봤나. 윤성효 감독이 부산으로 간 뒤 서울과 수원을 나란히 격파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손 들어보라.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 컴퓨터에 흐뭇한 동영상이 없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다소 불안한 전북도 곧 최강희 감독이 돌아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참 까도 까도 다른 게 나오는 양파 같은 리그다.

K리그 클래식은 스포츠토토를 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반갑지 않은 리그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못 맞춰놓고 리그 탓을 한다. K리그 클래식은 어제(28일)처럼 서울이 안방에서 강원한테 혼쭐이 나기도 하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수원이 리그에서는 3위에 올라 있는 이상한 동네다. 늘 외국인 선수 장사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주장하던 나에게 올 시즌 포항의 선두 등극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토토로 돈 벌 생각이라면 그냥 바르셀로나나 바이에른 뮌헨 승리에 마킹하는 게 훨씬 낫다. 그들의 독주와 압도적인 경기력이 그쪽 리그의 자랑이라면 우리의 자랑은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함에 있다. 유럽 빅리그에서는 선두가 꼴찌에게 발목 잡히는 게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런 거 없다. 금요일 밤 홍대 '밤과 음악사이' 입구 만큼이나 복잡하다.

K리그 클래식의 공은 진짜 둥글다

나는 이번 주 <황금축구화> 녹화에서도 황봉알에게 자기보다 적중률이 낮다고 놀림을 받겠지만 그래도 이런 현상이 좋다. 늘 이기는 팀이 이기고 늘 우승하는 팀이 우승하는 스포츠는 재미가 없다. 말로만 '공은 둥글다'고 하지 사실 이렇게 진짜 공이 둥글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리그는 별로 없지 않은가. 누구나 스포츠를 통해 거짓말 같은 승부를 꿈꾼다.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야 더 재미있는 게 바로 스포츠가 가진 매력이다. 서울-강원전처럼 경기 막판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승부가 펼쳐져야 더 흥미롭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공은 둥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즐거운 경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축구 전문가보다 개그맨이 더 승부를 잘 예측하면 뭐 좀 어떤가. 입금되면 욕을 시작하는 황봉알보다 평소에 내가 욕은 더 찰지게 잘할 수 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