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이트에서 4년째 축구 칼럼을 쓰고 있는데 박지성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축구 평점 등 다른 주제를 이야기할 때 박지성에 빗댄 적은 있어도 박지성이라는 선수 자체에 대한 칼럼은 쓴 적이 없다. 이건 내 철학이기도 하다. 박지성은 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최고 선수고 나 말고도 다른 분들이 좋은 글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현역에서 은퇴할 때가 되면 그때 멋진 칼럼을 하나 쓸 생각이다. 또한 꼭 박지성이라는 조회수가 보장되는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한국 축구에는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도 ‘박지성 칼럼’은 상당한 유혹이다. 축구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조회수가 보장되고 댓글도 수백 개씩 달리는 콘텐츠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보다 쉽고 보다 안전한 주제만 찾다보면 언젠간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독자들한테 때론 욕을 먹더라도 자꾸 여러 숨겨지거나 다들 쉬쉬하는 주제, 덜 알려진 주제로 매일 찾아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나는 박지성에게 관심이 없거나 그가 덜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그를 주제로 한 칼럼을 피하는 게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편한 이런 칼럼에 한 번 맛을 들이면 국내 축구 이야기로 칼럼 쓰는 걸 기피할 수밖에 없다. 매번 칼럼으로 고민하는 밤이면 박지성이 모니터에서 아른 거리며 날 유혹한다. “내 이야기를 써. 그러면 내일 조회수 1위할 수 있어.”

바로 옆 실시간 급상승 뉴스에 뭐가 있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걱정이 생겼다. 내 칼럼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축구 기사가 예전보다 훨씬 더 인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 칼럼이야 내가 많이 부족해 그렇다고 해도 다른 훌륭한 분들의 기사까지 냉대를 받는 건 축구 칼럼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걱정된다. 자, 지금 바로 옆 실시간 급상승 관심 뉴스 스포츠 섹션을 살펴보라. 뭐가 보이는가. 나는 지금 당신들보다 과거에 살고 있지만 예언을 해보겠다. 축구 유럽파와 프로야구, 옥타곤걸, 치어리더 쯤 있지 않나. 아마 이천수 관련 기사가 하나 정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제외하면 국내 축구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내가 여기에 손모가지는 못 걸어도 10만 원쯤은 걸 수 있다.

축구팬들은 언론에 불만이 많다. 축구를 찬밥으로 대하고 상대적으로 야구를 띄워준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일부 언론은 정말 그렇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지난 주말 K리그 챌린지 부천FC-경찰축구단 경기와 K리그 클래식 인천유나이티드-대전시티즌 경기를 직접 지켜보고 왔는데 이 추위에도 많은 취재진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고생했다. 일일이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경기를 지켜보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열심히 취재한다. 이 경기뿐 아니라 지난 주말 열린 국내 축구 경기에 대한 훌륭한 기사들이 무척 많다. 지난 주말에는 경남 보산치치의 해외 토픽에 나올 만한 아름다운 골과 이천수의 복귀, 포항과 전남의 명승부 등 이야기가 넘쳐났고 언론에서는 이를 멋지게 다뤘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은 인기가 별로 없다. 적은 조회수와 몇 개 없는 댓글이 다다. 그나마 이천수가 기사의 흥행을 보장하는 유일한 콘텐츠일 뿐이다. 언론사에서 아무리 발품을 팔고 고생해도 본전도 못 뽑는다. 차라리 방에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손흥민이 출전하고도 참패한 함부르크 경기 기사를 쓰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이 기사는 돈도 안 들고 그에 비해 엄청난 클릭수를 보장한다. 그러니 자꾸 언론에서는 태극전사가 출전한 해외 축구 경기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사실 국내 축구 기사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다. 지난 주말 쏟아진 국내 축구 기사는 적지 않은 고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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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부터 수준 높은 기술로 K리그 클래식을 중계하던 TV조선은 최근 K리그 클래식과 작별을 고했다. (사진=TV조선 ‘오!K리그 트위터)

TV조선은 할 만큼 했다

일부에서는 “그만큼 국내 축구의 인기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인천의 홈 경기에는 1만 명이 넘는 관중이 찾아왔다. 경기장 앞에서는 주차 대란이 벌어졌다. 2부리그인 부천 홈 경기에도 수천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매주 경기장을 찾는 나로서는 국내 축구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콘텐츠의 소비가 부족하다. 국내 축구 기사 클릭하고 댓글 다는 사람 따로 있고 경기장 가는 사람 따로 있다. 경기장을 찾는 이들은 많지만 그에 걸맞은 부수적인 콘텐츠 소비는 부족하다. 경기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포털사이트 국내 축구 기사에는 반응이 시원찮다.

팬들의 적극적인 콘텐츠 소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 칼럼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국내 축구 기사도 많이 클릭하고 많이 소비해 달라는 말이다. 사실 글 쓰는 사람은 그걸로 받는 원고료나 월급보다 반응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고민해서 아무리 좋은 글을 쓰더라도 그에 따른 반응이 없으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감히 말하건데 지금 괜히 국내 축구에 시비를 거는 언론 말고 순수하게 국내 축구의 소식을 멋지게 전하는 언론이 더 많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시비 거는 언론에만 반응할 뿐 지난 주말 있었던 소식을 풍부하게 전하는 ‘진짜 언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당연히 ‘언론이 까고 팬들이 그 언론을 까는’ 형태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TV조선 한 관계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TV조선의 K리그 클래식 중계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시청률이 좋지 않다. 축구팬들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하는 칼럼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칼럼을 쓰기 위해 며칠 고민하는 사이 결국 최근까지 K리그 클래식을 멋지게 비춰주던 TV조선은 중계를 멈추고 말았다. 나는 K리그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K리그 팬들이 훌륭한 중계 수준과 애정을 가지고 매주 우리에게 인사하던 방송사의 콘텐츠를 제대로 소비하지 못한 결과는 바로 중계 종료로 나타났다. 이 상황에서도 방송사만 욕할 수 있을까. TV조선은 할 만큼 했다.

‘축구 공화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축구를 사랑하는 나는 우리나라가 ‘축구 공화국’이 되길 꿈꾼다. 관중석은 모두 꽉 들어차고 텔레비전을 틀면 하루 종일 국내 축구가 중계된다. 국내 축구 기사가 모든 포털사이트를 도배된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이 모든 게 ‘짠’하고 일어날 수는 없다. 하나씩,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자, 이제 오늘부터 대한민국은 ‘축구 공화국’이 됐습니다. 축구팬 여러분은 이제 밥상이 다 차려졌으니 편하게 드시기만 하세요”라고 세상이 바뀔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일단 있는 콘텐츠부터 축구팬들이 활발하게 소비해야 한다. 국내 축구 기사도 좀 챙겨보고 댓글도 달고 퍼 나르기도 하고 축구장에 가지 못할 때는 텔레비전 중계도 함께 하자. 요즘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중계를 하고 있으니 텔레비전 중계가 없다면 인터넷 중계로도 챙겨보자.

포털사이트도 기사 클릭수나 댓글수, 인터넷 중계 시청자수에 따라 K리그 콘텐츠의 잦은 노출을 결정하게 된다. ‘프로야구에 비해 K리그의 인기가 어떻고 수준이 어떻고’하는 저질 언론에 휘말리지 말고 지난 주말 보산치치의 아름다운 골과 이천수의 복귀, ‘레알 경찰청’의 훌륭한 경기력 등 수준 높은 기사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K리그 팬들이 해야할 일이다. 사실 K리그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정도 훌륭한 기사를 찾는 게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지난 번 ‘K리그는 관중이 관중수 걱정을 한다. 그러지 말고 그냥 이 콘텐츠 자체를 즐기자’는 칼럼을 썼는데 오늘 하는 이야기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다. 관중수 걱정하지 말고 K리그의 훌륭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더 옳은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언론에서 훌륭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매번 구단 관계자나 선수들을 만나면 “인간극장에 나올 만한 스토리의 선수 없나요?”라고 묻는 게 가장 먼저하는 인사가 됐다.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도 이걸 어떻게 국내 축구에 빗대 패러디 해 재미를 더할지 고민한다. 논란거리 없이 안전하고 클릭수 보장되는 박지성이나 손흥민 칼럼을 쓰지 않고 국내 축구만 다루는 게 사실 버거울 때도 꽤 있다. 나도 ‘박지성이 다시 대표팀에 돌아와야 하는 이유’나 ‘손흥민은 앞으로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쉽고 안전하게 칼럼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수준이 높지도 않고 K리그 콘텐츠도 아니다. K리그 콘텐츠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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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없다면 그 콘텐츠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K리그 콘텐츠, 팬들이 소비해줘야 한다

K리그 팬들의 수준은 무척 높다. 당연히 K리그 콘텐츠가 팬들이 원하는 수준 이상으로 꾸며지기란 쉽지 않다. 과거 축구 잡지사에서 일할 때 국내 축구 기사를 잔뜩 실어 잡지를 발간해 한 K리그 경기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사실 몇 부 팔아서 큰 돈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K리그 콘텐츠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K리그?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잘 알거든요.”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수준 낮은 콘텐츠를 K리그 발전을 위해 일부러 소비하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K리그를 즐기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면 보다 마음을 열고 한 번씩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보다 더 수준 높은 콘텐츠가 탄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결국 이 잡지사는 문을 닫았다. K리그 콘텐츠가 수준 낮고 부족하다고 하지 전에 한 번 살펴보자. 지금도 많은 이들이 훌륭한 K리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고 그 결실도 상당하다.

K리그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 자연스레 우리가 언론을 통해 K리그를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된다. K리그 기사 클릭수가 높고 댓글도 많고 빵빵 터지면 당연히 언론에서는 K리그를 더 많이 조명하게 될 것이다. 꼭 내 칼럼이 아니어도 좋다. 꼭 기사를 칭찬하는 댓글이 아니어도 좋다. “잘 봤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 그저 단 한 줄의 댓글이라도 K리그 관련 기사에 댓글이 넘쳐 나야한다. 지금처럼 K리그 관련 기사에 반응이 없고 그나마 있는 중계도 외면당한다면 K리그는 점점 더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부디 부탁드린다. K리그 콘텐츠를 K리그 팬들이 활발히 소비해 줬으면 한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 칼럼을 잃은 당신, 바로 창을 닫지 말고 저 위 축구 섹션으로 가 다양한 기사를 클릭하고 발품 판 기자에게 댓글 하나 남겨 보는 건 어떨까. 그게 “아싸 1빠”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