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김포할렐루야 한 선수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은 할렐루야에서 동남아시아로 선교 활동 겸 전지훈련을 갔는데요. 세탁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운동하고 땀 흘린 유니폼을 빨지도 못해 매일 말리면서 운동을 했어요. 허름한 숙소에 누워 ‘한국에 가면 꼭 삼겹살 먹자’고 동료들하고 신세한탄을 했죠. 사실 전지훈련이라기보다는 선교 활동 개념이 훨씬 더 커요. 워십 댄스를 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저에게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선수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할렐루야는 김포와 안산을 거쳐 이제 경기도 고양시에 연고를 두게 됐다. 그리고 프로축구 2부리그(K리그)에 입성하면서 의욕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나 지금껏 논란이 되어왔던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다는 발표를 통해 많은 박수를 받았고 기대감을 안겨줬다. 과거 소속 구단 선수로부터 들었던 끔찍한(?) 해외 선교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잊으려 했다. 2부리그가 야심차게 출범했고 그들은 “달라지겠다”고 했다. 구단 이름에서도 종교적 색채를 빼기 위해 ‘할렐루야’를 빼고 고양 Hi FC로 바꿨다. 고양시민인 나로서는 그들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여명 TS 작전’ 그들의 노골적인 색채

하지만 그들은 또 다시 노골적인 종교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중남미 4개국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라는 명목으로 해외에 나가 선교 활동에 여념이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고양시민들을 위한 팀으로 거듭나겠다”던 그들은 말을 바꿨다. 고양시민이고, 축구를 사랑하고, 고양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화가 난다. 과거 이 구단의 역사 계승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 칼럼을 썼던 나는 연속적으로 그들을 비판하기에 상당한 부담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잘못된 건 반드시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기에 오늘 칼럼을 용기 내 쓴다. 하나 당부할 건 이게 특정 종교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이 아닌 고양 Hi FC라는 구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고양 Hi FC는 지난 11일 중남미 4개국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위해 출국했다. 첫 기착지는 미국 뉴욕이었다. 이곳에 위치한 프라미스 한인 교회에서 이번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뉴욕에 도착한 선수단은 곧바로 이 교회에서 주최하는 환영식에 참석해 예배와 간증을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프라미스 교회는 고양 Hi FC의 이번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아덴만 여명 작전을 본 딴 작전명 ‘여명 TS 작전’이라고 정하고 상황실을 운영했다. 반기독교 국가인 중남미 지역에서 선교 활동 하는 걸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이들을 해상에서 구축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 빗댄 것이다. 선수들은 이 예배에 참석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찬송가를 모두 합창해야 했다.

이상하다. 고양 Hi FC는 엄연한 프로축구단이고 당연히 종교적인 색채가 없어야 하는데 이번 행사를 미국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진행했다. 그리고는 누가 봐도 명백한 종교적인 메시지를 강요했다. 목사인 이영무 고양 Hi FC 감독은 “국가를 위해 뛰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간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 싸우러 나가는 십자가의 용사다. 어떤 희생도 어떤 손해도 감수해야한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게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가는 한 프로축구단의 감독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종교적 색채를 뺀 채 고양시민에게 다가간다던 말은 어디로 사라졌나.

고양 Hi FC는 올 시즌 새롭게 출범하면서 종교적 색채 배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안산 할렐루야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이미 지난 2011년부터 쭉 해마다 해오던 ‘선교 활동’을 올해도 하는 셈이다. 2011년부터 이 구단은 프라미스 교회와 손잡고 비시즌 기간이면 전지훈련과 친선경기라는 명목 하에 뉴욕에서 예배를 하고 중남미로 축구 선교를 했었다. 올 시즌 K리그에 편입하면서 종교적 색채를 버리겠다고 했지만 결국 매년 해오던 축구 선교 활동은 계속 해오고 있다. 말로만 “바뀌었다”고 했을 뿐 정작 바뀐 건 없다. 구단에서는 대외적으로 전지훈련이라고 포장했지만 프라미스 교회에서는 올해 행사를 앞두고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중남미 축구선교 축제’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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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Hi FC 선수들이 경기 도중 ‘워십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선수들의 ‘워십 댄스’와 단체 기도

고양 Hi FC의 첫 번째 경기 장소는 온두라스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입장권을 프라미스 교회에서 판매했고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지역 교회 지도자들의 찬양과 간증이 시작됐다. 한국에서 온 K리그 팀의 경기를 보러 온 온두라스 축구팬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프라미스 교회 김남수 담임 목사가 나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들의 기획한 행사를 의도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더 놀랍고 위험한 건 온두라스가 국민의 94%가 로마 카톨릭을 믿는 나라라는 점이다. 온두라스에 개신교 및 기타 종교인은 다 합해 6%뿐이다. 축구를 앞세워 이런 식의 선교 활동을 펼치는 건 선수들에게도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방문할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 국가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전반전이 끝난 뒤에는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모두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모이더니 기독교에서 예배를 할 때 직접적으로 신을 경배하는 내용으로 꾸며지는 ‘워십 댄스’를 선보였다. 선수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맞춰 연습된 춤을 췄다. 노래는 CCM ‘나 기쁨의 노래하리’였다. “내 마음 벅차네. 주 행한 일 볼 때 어둡던 지난 날. 주가 바꿔주셨네. 높은 곳에 올라가 크게 외치고 싶네. 날 향한 주님의 그 사랑 모두에게. 모두 함께 노래해 우리 안의 기쁨 모두 함께 춤추세. 주님 주신 기쁨 주님 얼굴 볼 수 없어도. 우린 느낄 수 있죠. 우리 안의 이 기쁨 다 주님 주신 것”이라는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 부른 CCM이었다. 김남수 목사는 이날 이영무 감독과 함께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라운드 한 가운데 모이더니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기도를 했다. 온두라스에서 이렇게 두 경기를 치른 고양 Hi FC는 그저께(26일) 다음 경기 장소인 콜롬비아로 떠났다. 이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를 거치는 등 4개국에서 무려 9차례나 경기를 치른다. 프라미스 교회는 이번 중남미 축구선교 축제를 통해 9개 경기장에 모일 35만 명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과 5천만 명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프라미스 교회 수석부목사 허연행 목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축구 선교 축제는 축구 열기가 가득한 중남미 정서를 맞춘 일종의 맞춤형 선교 전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양 Hi FC - 올림피아 영상 바로가기 : http://www.youtube.com/watch?v=aHbLDRQ6G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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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Hi FC 선수들이 온두라스 올림피아와의 경기를 마친 뒤 함께 모여 기도하는 모습을 현지 어린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나는 특정 종교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선교 목적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축구단’ 자체는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비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구단은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라 올 시즌부터 고양을 연고로 고양시민들을 위해 뛰어야 하는 K리그 팀이다. 또한 이 구단은 능력 있는 이들을 구단 프런트로 채용하고 ‘이영표 시즌권’과 응원뿐 아니라 각종 봉사와 문화 활동까지 함께 하는 종합적인 팬 그룹의 개념인 ‘서포티어’까지 도입했다.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제는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하지만 전지훈련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이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똑같이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2년 전 코스 그대로 뉴욕의 교회에서 출발해 중남미를 도는 똑같은 선교 활동이 그대로 이어지는 중이다. 심지어 ‘워십’의 노래와 안무까지도 2년 전과 같다.

또한 고양 Hi FC라는 명칭 중 ‘Hi’라는 의미는 “고양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고 시민과 팬의 즐거움을 위해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높은(High)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뜻도 담았다”고 했다. 하지만 축구단 명칭에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축구단 명칭에 출범 년도나 팀의 상징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안녕’이라는 의미를 담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프라미스 교회가 이번 전지훈련을 앞두고 연 기자회견 현수막에는 ‘고양 Hi(할렐루야, 임마누엘) FC’라는 선명한 글귀가 등장했다. ‘Hi’의 의미가 기존 뜻이 아닌 ‘할렐루야와 임마누엘’의 줄임말이라는 논란이 들 수밖에 없다. 프라미스 교회의 일방적인 현수막 제작이라고 믿고 싶다.

고양시민들의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다면 한 입으로 두말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고양은 국민은행의 승격거부와 해체로 아픔을 많이 겪은 곳이다. 고양 Hi FC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종교색을 포기하고 진정한 고양시민을 위한 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연고지 개념 없이 순수하게 선교 활동에 임하는 아마추어 구단으로 남을 것인가. 후자라면 지금의 행동을 아무도 손가락질 할 수 없지만 전자를 택하려면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제는 고양 Hi FC도 K리그 구단의 일원으로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됐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아도 구단의 선택만 받으면 무조건 이 구단에서 뛰어야 한다. 만약 선수가 이를 거부할 경우 5년간 국내 무대에서 뛸 수가 없다. 당연히 종교적인 믿음이 강요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할 때

일부에서는 통일교가 기반이 된 성남일화와 고양 Hi FC가 다를 게 뭐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구단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지금껏 성남일화 경기장에 가 단 한 번도 통일교 선교 활동을 본 적도 없고 집회 비슷한 걸 하는 것도 못 봤다. 신태용 전 성남 감독은 “내가 선수 시절부터 이 구단에 있었는데 단 한 번도 통일교를 믿으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고양 Hi FC는 전면에 선교 활동을 내세우고 있다. 선수들은 ‘워십 댄스’를 배워야하고 연말에는 ‘크리스찬 마인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전지훈련을 빙자한 선교 활동도 떠나야 한다. 무교인 나로서는 종교에 호불호가 따로 없지만 축구 운영에 대한 관점으로 보면 성남일화와 고양 Hi FC는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노파심에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이게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의 갈등으로 확대해석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지금 기독교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고양 Hi FC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양 Hi FC는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다른 K리그 팀들은 이 기간 동안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 괌이나 태국, 터키, 제주도 등 최적의 조건을 찾아 떠났고 그곳에서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체력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고양 Hi FC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중남미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기도를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해야 한다. 마이크를 잡고 관중 앞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구단 외부 인사가 개입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더 이상 팬들 앞에서 “종교적 색채를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유능한 프런트들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획기적인 마케팅을 위해 노력해도 종교색을 지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고양시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구단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