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확인한다. 축구는 물론 시사와 정치, 경제, 연예 뉴스도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고 훌륭한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다른 포털 사이트 역시 ‘시장조사(?)’를 위해 자주 들어간다. 특히 스포츠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그날 그날 칼럼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한 번은 밥 먹으며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다가 모친으로부터 “밥상머리에서 그게 뭐하는 짓이냐”며 후두부를 강타당하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틈만 나면 스포츠 뉴스를 클릭할 것이다. 요새는 밤 9시 45분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아도 스포츠 소식을 인터넷으로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을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한 마디 하려고 한다. 요즘 도무지 스포츠계에서 볼 만한 뉴스가 없다. 포털 사이트별로 ‘가장 많이 본 뉴스’를 클릭하면 이게 스포츠 섹션인지 미인경연대회인지 알 수가 없다. 아찔한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케이블 축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 격투기 대회에서 라운드걸로 나선 한 방송인, 개념 시구 한 번으로 거의 10개월 가까이 스포츠 섹션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또 다른 한 방송인, 그리고 두 명의 치어리더가 스포츠 뉴스를 장악하고 있다. 한 동안 신예로 떠오르던 한 배트걸은 요새 좀 잠잠해진 것 같다. ‘출격’과 ‘승격’, ‘강등’, ‘등판’, ‘이적’ 등으로 채워져야 할 스포츠 섹션에 어느 순간부터 ‘충격’과 ‘아찔’, ‘S라인’, ‘앙증’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저도 여자 참 좋아하는데요.” 그렇다. 나는 여자라면 환장한다. 이틀 밤을 새고 일한 뒤에도 친구가 소개팅을 제안하면 버선발로 뛰어 나간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어제 프로농구 경기 결과보다도 그날 응원했던 치어리더가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언론 보도의 중심이 되는 현상이 어떻게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겠나. 축구 대표팀이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을 앞둔 상황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가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김연경이 또 국제미아가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온통 스포츠와는 무관한 여성들이 스포츠 섹션을 도배하고 있다는 건 여자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 내가 보기에도 참 이상하다. 스포츠 섹션에 들어가면 볼 만한 뉴스가 없어진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박지성과 이승엽보다 아마 그녀들이 뉴스에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어차피 너도 다 그 기사 보잖아.” 이렇게 반문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 안 본다. 처음에는 몇 번 호기심에 이런 기사를 클릭한 적이 있지만 매번 똑같은 언론 보도 방식에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찔한 S라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속아 기사를 클릭하면 달랑 사진 한 컷에 상황 설명 몇 줄이 전부다. 어제도 본 것 같고 그저께도 본 것 같은데 오늘도 또 클릭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나는 평소 기발한 아이디어의 댓글을 무척 흥미롭게 지켜보는 편인데 이런 언론 보도의 댓글에는 온갖 성적인 농담만이 판을 친다. 이런 기사를 클릭해 사진을 한 번 쓱 보고 댓글을 보고 ‘뒤로가기’를 누르는 짧은 시간 1분도 아깝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애니팡’을 한 번 더 하겠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기사들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스포츠 소식’이 밀려나 있다는 게 화가 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로 포장된 이런 기사들이 눈에 확 들어오니 소소하지만 깨알 같은 정보의 진정한 스포츠 소식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경기에서 MVP의 활약을 보인 선수가 더 주목받아야 하나. 그날 치어리더가 더 주목받아야 하나. 지금 우리는 후자다. 클릭수가 그런데 어떻게 하느냐고? 스스로 이런 일부 언론에서 정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다 같이 망하는 거다. 지금이야 자극적인 제목과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 한 장으로 ‘진짜 스포츠 소식’을 누르고 있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결국 이런 ‘가짜 스포츠 소식’은 공멸이다.

정 이런 뉴스를 내보내고 싶거든 한 기사에 묶어서 내보내야 한다. 사진 한 장 한 장 따로 스포츠 섹션 전부를 도배하는 건 스포츠계를 우롱하는 처사다. ‘치어리더 기사’, ‘여자 아나운서 기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보도 방식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평소 존경하고 우러러 마지 않는 강명호 기자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혼을 담아 스토리를 구성해 독자들에게 감동을 눈물을 자아내지 않는가. 언론 스스로 정화 노력이 필요하고 독자들도 ‘진짜 스포츠 소식’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진정 알찬 스포츠 소식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가짜 스포츠 소식’에 선정적인 댓글을 달기보다는 순수한 스포츠 뉴스에 응원이건 비판이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원고료 받고 사는 사람으로서 감히 포털 사이트에 주제 넘게 한마디 하자면 이런 ‘알맹이 없는 기사’에 대한 자체적인 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아니면 이런 기사의 대부분이 여성 방송인들이기 때문에 이 기사를 연예 섹션으로 보내거나 따로 섹션을 만드는 건 어떨까. 스포츠 섹션에 스포츠 뉴스가 없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이건 마치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 부모님 대신 안방을 쓰는 꼴이다. 요새는 매일 몇 번씩 스포츠 소식을 확인하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스포츠 뉴스 섹션을 클릭했는지 치어리더 뉴스 섹션을 클릭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최강희호와 WBC, 김연경이지 ‘치어리더의 아찔한 S라인’이 아니다.

자주 등장하는 그분들에 대한 억한 감정은 없다. 아니 오히려 한 분야에서 그 정도로 주목받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한 이들에게는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국 이들을 욕 먹이는 건 일부 언론 매체다. 적당히 주목받고 적당히 보도되면 충분한 일이다. 그러면 독자들도 그녀들에게 지금보다 더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일부 매체들의 선정적인 보도로 비난받는 건 그녀들이다. 매체는 클릭수를 챙기지만 성적인 농담과 비난은 그녀들의 몫이다. 스포츠 섹션을 독식한 선정 보도에 대한 거부감은 그대로 기사의 주인공에게 화살로 향한다. 진정 그녀들을 생각한다면 자제하자. 이게 지금 황소 개구리와 다를 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