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학교에서 몇 명씩 한 반에 편성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50명씩 있었다. 정확하게 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사격부를 제치고 반에서 50등을 해봤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50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한 반장 선거는 치열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우리 반을 반 평균 전체 1등으로 만들겠다”는 등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했다. 후보에 오른 나 역시 “이웃 여학교와 단체 미팅을 주선하겠다”, “두발 자율화를 추진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다가 담임 선생님에 의해 공부 1등과 강제로 단일화에 합의한 적도 있다. 이듬해부터 나 같은 군소후보의 입후보를 막기 위해 학교에서는 ‘성적이 상위 30% 안에 들어야 입후보할 수 있다’는 규정을 내걸었다.

하지만 지금 한창 열기가 달아오른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보고 있으면 반장 선거보다도 선출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반장 선거도 50명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한 해 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24명의 투표로 결정되는 건 문제가 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50명의 반 친구들에게 공약을 내세우는 것보다도 더 단순한 협회장 선거가 이대로 이어지는 건 원치 않는다. 오늘은 한창 열기를 띄고 있는 협회장 선거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 보려 한다.

지역 축구협회 눈치 보기 급급한 선거

협회장 선거에 표를 던질 수 있는 이들은 시·도축구협회장 16명과 축구협회 산하 연맹 회장 8명 등 24명이다. 쉽게 말해 이 24명에게만 잘 보이면, 아니 이중 절반의 표만 얻을 수 있으면 한해 천억 원의 예산을 쓰는 협회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공약이라는 게 특정인에 맞춰져 있다. 대부분의 협회장 후보들은 시·도축구협회장의 표를 겨냥해 지역 축구협회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공약을 내놨다. 이번 선거 빅2로 꼽히고 있는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전총재는 “16개 시도협회와 8개 산하연맹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의견수렴기구를 신설하겠다”고 했고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의사결정기구를 대의원총회와 이사회 중심으로 개혁하고 시도협회와 연맹의 역량 강화를 위한 분권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유권자가 10명 뿐인 선거와 유권자가 1천 명인 선거 중 어떤 선거가 더 투명할 수 있을까. 유권자가 10명 뿐인 선거는 유권자 입맛에 맞게 달콤한 공약을 남발하기가 더 쉽다. 더군다나 유권자 10명 중 8명이 같은 입장에 있는 비슷한 인물이라면 선거는 더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민심’을 들을 이유가 없다. 반면 다양한 입장에 있는 유권자가 1천 명인 선거라면 개개인에 맞춰 선심성 공약을 쓰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지 않다. 이번 협회장 선거에 비리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비리 논란도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략해야 할 유권자가 적고 다들 비슷한 위치와 입장에 있는 이들 아닌가. 현재 협회장 선출 제도는 투명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지역 축구협회 역량 강화는 의도가 좋은 공약이다. 결국 이는 곧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약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 선거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지역 축구협회의 힘이 극히 미약한 한국은 축구 행정이 중앙 집권 체제로 이뤄지는 기형적인 형태다. 그런데 미약한 힘을 지닌 지역 축구협회가 대한축구협회장 선출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게 되는 건 참 황당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에 반발하고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지역 축구협회는 없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은 지역 축구협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지역 축구협회에 지원금을 더 늘이겠다”는 공약이 판을 친다.

스페인 축구협회 참고할 필요있다

지역 축구협회장 대부분은 사실상 명예직이다. 협회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질적 경영자는 몇 없다. 대부분이 지역 내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며 성공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는 분들이다. 물론 이들의 지원이 없다면 지역 축구협회가 잘 돌아가지 않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축구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24표 중 16표를 행사한다. 절대적인 수치다. 후보로 나서는 이들이라면 선수와 지도자, 심판, 팬, 구단 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로지 명예직인 지역 축구협회장만 잘 끌어들이면 성공한 선거를 치를 수가 있다. 축구인들과 팬들의 목소리는 나중 문제다.

특히나 한국 축구는 여·야 대립이 극명하다. 아마 우리나라 정치권보다 더 할 것이다. 정몽준-조중연 라인으로 이어지는 여당과 허승표 라인으로 대표되는 야당은 지난 수십 년간 보이지 않는 다툼을 벌여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지역 대립이 극명한 스페인축구협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마 스페인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몇 대의원들에 의해 협회장을 선출했다면 아마 한 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대립에 의해 표가 갈리지 않도록 고심한 끝에 180명의 대의원들이 투표를 해 회장을 뽑는다. 지역 축구협회장 20명과 클럽 대표 84명, 선수 48명, 지도자 14명, 심판 14명이 모여 투표에 참여한다. 그러니 특정 단체나 개인을 위한 선거 운동이 펼쳐질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 상황에서라면 대충 당락의 윤곽이 드러난다. 다른 것 따질 것도 없이 지역 축구협회장들이 정몽준-조중연 라인인지, 허승표 라인인지만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이제 이런 여·야 대립을 이용한 특정인들만의 선거는 그만두어야 한다. 선수와 구단, 지도자, 심판 등 축구계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직접 회장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들은 축구계 다양한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뛰는 이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다. 지금처럼 지역 축구협회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라면 축구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나 역시 지역 축구협회 역량 강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자신의 소신에 따라 “지역 축구협회가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할당하는 예산을 줄이겠다”는 파격 공약이 나오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절대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이다.

더 투명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

이건 애들 반장 선거가 아니다. 하물며 반장 선거도 대한축구협회장을 뽑는 선거보다는 더 유권자가 많다. 1년에 천억 원 이상을 쓰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스포츠 단체장을 뽑는데 고작 지역 축구협회장과 산하 연맹 회장 24명만 참여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이제 막 올라온 네이트 뉴스에서 ‘베플’을 먹으려면 추천 10개만 받으면 된다. 아마 현 제도라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도 10표 정도 받으면 당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협회장 선거가 네이트 뉴스에서 ‘베플’되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누가’ 뽑히느냐도 중요하지만 유능한 사람을 ‘어떻게’ 뽑느냐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