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3 예선에서 로이킴은 겨우 겨우 합격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에게 불합격 통보를 내렸지만 이하늘이 ‘슈퍼패스’를 쓰면서 가까스로 예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위태로워보이던 로이킴은 결국 파죽지세로 영광의 슈퍼스타K가 됐다. 나도 대학교 1학년 시절 채팅으로 만났던 여성이 사진보다 실제로 뚱뚱해 실망한 적이 있지만 그녀는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자 중 한 명이 됐다.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한 순간을 놓고 모든 걸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몇 년 뒤 나는 그녀에게 미니홈피 쪽지를 보냈지만 무참히 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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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감독이 부산 선수들과 상견계를 갖고 도약을 다짐하는 모습. (사진=부산아이파크)

7년 동안 9번 우승한 대학 축구 최고 감독

윤성효 감독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부정적인 건 사실이다. 나도 수원 시절 윤성효 감독이 보여준 능력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한 수원이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건 감독의 자질 문제가 컸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믿음직한 윤성효”라는 팬들의 응원가는 결국 ‘세제믿윤’이라는 조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도 윤성효 감독의 수원 시절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역대 수임 감독 중 부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윤성효 감독은 그렇게 수원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수원은 윤성효 감독의 부임 기간 동안 획득한 FA컵 우승 트로피 하나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부산의 새로운 감독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놀라움과 실망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왕이면 새로운 인물이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바랐던 상황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윤성효 감독의 재등장이 반갑지는 않았다. 수원에서 성공하지 못한 지도자를 데려온 부산 구단의 선택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곱씹어 천천히 생각해 보니 부산의 윤성효 감독의 선임을 꼭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부산의 윤성효 감독이 수원에서와 같이 극도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성효 감독은 숭실대 재학 시절 팀을 대학 최강으로 올려 놓았던 지도자다. 스위스 바젤에서 뛰고 있는 박주호를 비롯해 박종진, 곽광선, 양상민(이상 수원), 하강진(성남), 김영후(경찰청) 등 K리거를 10명이나 넘게 배출했다. 당시 윤성효 감독의 숭실대는 대학 최강으로 손꼽힐 정도의 대단한 경기력을 뽐냈다. 적어도 당시 대학 축구계에서 윤성효 감독은 ‘스페셜 원’이었다. 그는 창단 후 22년 동안 단 두 번 우승이 전부였던 숭실대를 7년 동안 무려 9번이나 우승시킨 감독이다. 그 어떤 리그에서도 중위권 팀을 부임 기간 동안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팀으로 키워낸 건 인정받을 만한 업적이다. 수원 시절 그의 지도력만 본 사람들은 콧방귀를 뀔 수도 있지만 윤성효 감독은 대학 시절 ‘전술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수원에서의 실패와 부산에서의 기대

자, 그럼 윤성효 감독이 숭실대를 대학 최강으로 만들고 ‘전술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수원에서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살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윤성효 감독의 지도 방식부터 알아봐야 한다. 윤성효 감독은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다. 다정다감하게 형처럼 선수들에게 다가간다거나 섬세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때론 군기도 잡는 스타일이다. 선수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주문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이런 지도 방식이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수원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신인급 선수들 조련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속된 말로 이미 ‘머리가 큰’ 선수들이 이런 방식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프로가 아닌 대학이어서 가능했고 그것도 연세대나 고려대가 아닌 중위권 대학이어서 가능했던 지도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수원보다는 아직 덜 여문 선수들이 많은 부산의 상황은 윤성효 감독의 능력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상황이라고 본다. 한지호와 임상협, 김지민 등 부산의 주전급 선수들은 아직 기량이 정점에 다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수원에서는 통하지 않았어도 부산에서는 충분히 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성효 감독은 풍족한 상황에서 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능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는 능력은 이미 숭실대에서 7년 동안이나 보여줬다. 수원에서 실패한 2년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 이미 그 전에 7년 동안 팀을 이끌며 성공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윤성효 감독의 지도 방식은 전임 안익수 감독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안익수 감독이 세심한 부분을 더 잘 보살피는 지도자이긴 하지만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 강도나 ‘카리스마형’ 리더십은 닮은 점이 참 많다. 우스갯소리로 안익수 감독 시절 부산 선수들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불만이 쌓였지만 그 중 안익수 감독이 선수들보다 더 근육질이라는 걸 알고는 모두 묵묵히 훈련에 전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부산은 지금껏 ‘독한 감독’ 밑에서 잘 적응했고 그만큼의 성과를 냈다. 다른 팀들은 감독 교체 후 한 동안 겪을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부산은 윤성효 감독 영입으로 이런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 활용은 여전히 물음표

전술적으로도 살펴보자. 수원은 공격적인 팀이었어야 했다. 그 정도 선수 구성으로 수비에 치중한다는 건 K리그에도 막대한 손해다. 하지만 윤성효 감독 시절 수원은 줄곧 수비만 하다가 팬들로부터 “공격하라 수원”이라는 굴욕적인 구호까지 들어야 했다. 반면 냉정히 따져 부산이 더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수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화끈하게 공격하면서 이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기에 부산의 선수층은 만족스럽지 않다. 전임 안익수 감독 역시 수비에 우선 순위를 두는 전술을 채택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숭실대 시절부터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좋은 평가를 받은 윤성효 감독의 축구는 수원보다는 부산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지금까지 이어온 부산의 팀 컬러를 유지하는 데도 윤성효 감독이 적임자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학 시절 ‘스페셜 원’이었던 그는 아직 프로 무대에서는 보여준 게 없다. 특히 대학에서는 7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외국인 선수 활용 방식은 여전히 불안하다. 수원 시절 수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팀을 거쳐 갔지만 에벨톤C 정도를 제외하고는 합격점을 줄 만한 선수들이 없었다. 왕년에 수원에서 공 좀 찼던 마르셀은 마치 요즘 극장에 왕년의 영화 ‘쉬리’가 걸려 있던 것처럼 초라한 모습을 보인 끝에 간판을 내려야 했고 반도는 수원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월드컵 갈비’만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베르손은 반 시즌 만에 퇴출됐고 디에고는 솔직히 누구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스테보와 라돈치치, 보스나 등이 꾸준히 경기에 나섰지만 어느 한 명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부산 또한 항상 외국인 선수 활용에 실패하고 있다. 뽀뽀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로 재미를 본 적이 없는 ‘용병 농사 실패’의 아이콘 부산으로서는 윤성효 감독과 함께 머리를 싸매야 한다. 윤성효 감독은 기존 부산의 외국인 선수 파그너와 에델, 맥카이를 놓고 여전히 고민 중인 가운데 파그너만 남기고 에델, 맥카이는 정리할 의중을 내비쳤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새로 데려올 외국인 선수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외국인 선수 활용이 전력의 50%를 차지한다는 K리그 특성상 제대로 된 외국인 선수를 쓰지 못한다면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나는 대학 시절 보여준 윤성효 감독의 능력과 그의 지동 방식은 부산에서 충분히 긍정적이지만 외국인 선수 활용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윤성효, 수원보다 부산이 더 잘 어울린다

칼럼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과거 대전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최은성이 전북에 입단하면 좋겠다는 칼럼을 쓴 뒤 이 사실이 적중한 적도 있지만 틀린 적이 더 많다. 그리고 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칼럼보다는 예측에 실패한 칼럼이 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예측에 실패하는 일이 두려워 중요한 요소를 짚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다. 어차피 예측이니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듣는 일도 흥미롭다. 나는 이번 예측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보여준 윤성효 감독의 모습이라면 부산에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수원 시절 그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대한 임팩트(?) 때문에 여전히 윤성효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부산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나는 일단 부산의 윤성효 감독을 믿어볼 생각이다. ‘슈퍼스타K3’ 예선에서의 로이킴은 우승후보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는 이런 시기를 딛고 정상에 우뚝 섰다. ‘캠빨’이었다며 내가 무시했던 그녀는 지금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연예인이 됐다. 언제까지나 ‘루저’인 이는 없다. 윤성효 감독도 다시 한 번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줄 기로에 서 있고 나는 그가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부산에서 제일 가는 믿음직한 윤성효’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K리그의 재미가 될 것이다. 아마 지금쯤 윤성효 감독이 수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에 가장 기뻐했을지도 모를 최용수 감독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