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10일) 밤 나는 다시 칼럼에 복귀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석 달 동안 별다른 직업 없이 백수로 살아온 나로서는 만약 칼럼을 아예 그만둘 경우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다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행복한 건 칼럼을 쓸 때라는 사실 때문에 복귀가 무척 흥분됐다. 나를 응원해 주는 분들도, 싫어하는 감정을 잔뜩 담아 욕을 해주시는 분들도 나에게는 너무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석 달이었다. 복귀 첫 칼럼을 보낸 뒤 날이 밝을 때까지 무척이나 긴장을 많이 했다.

앞길이 막막해진 386명의 축구선수

아마 같은 시각 나처럼 하얗게 밤을 지새운 이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나는 백수에서 칼럼니스트로 돌아왔지만 하루 아침에 나와 반대의 상황을 맞은 이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복귀 칼럼으로 고민하던 날 열린 2013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결국 그 어떤 팀의 지명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이제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가슴 아픈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539명의 드래프트 지원자 중 무려 386명(71.6%)이 그 어떤 팀의 부름도 받지 못하고 쓸쓸히 드래프트장을 빠져 나가야 했다. 이들은 계약기간 1년에 연봉 2천만 원이 전부인 번외지명 선수들 조차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인들에게 부탁을 하고 조언을 듣고 자존심을 굽혀 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기회를 잡기 위해 입단 테스트를 위해 떠돌아야 한다. 프로 입성 진출에 실패한 이들은 내셔널리그나 챌린저스리그 문턱을 두드리고 그것도 안 되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열악한 축구 리그 입성을 타진한다. 하지만 프로 2부리그가 생기면서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 구단이 많아진 것이 이들에게는 더한 악재다. 내셔널리그에서 프로 2부화를 선언한 팀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내셔널리그 팀이 줄어 실업 무대 입성 문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요는 줄었지만 공급은 넘쳐난다.

그나마 실업 무대에서라도 재기를 칼날을 갈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어떤 팀에도 가지 못한 386명 중 대다수는 이제 축구를 그만둬야 한다. 유소년 지도자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군대에 가거나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의 꿈 하나로 살아온 이들이 하루 아침에 벼랑 끝에 내몰린다면 선수 본인은 물론 그 부모님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내가 칼럼 복귀로 설레는 밤을 보내고 있는 동안 전국에서 수백 명의 젊은 축구선수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소주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참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을용과 김인성이 전하는 메시지

하지만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반복되는 드래프트를 보면서 느낀 결론이니 믿어 봐도 좋다. 얼마나 내 응원이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내가 느껴온 바로는 그렇다. 드래프트에서 몇 번 좌절을 하고도 보란 듯이 일어나는 축구선수들을 지금까지 많이 봐 왔다. 당연히 앞길이 막막하고 불안하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상황과 정도는 달라도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시련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최고의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축구를 그만두고 공사판을 전전하던 한 선수는 실업팀 한국철도에 입단한 뒤 성실성을 인정받아 훗날 K리그 입성에 성공했고 유럽에까지 날아갔다. 그가 실업무대에 입성하고 월드컵 4강의 주역이 되는 데는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바로 이을용이다. 만약 이을용이 K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해 그 자리에서 모든 걸 포기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시골 어느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아줌마, 여기 났어요”를 외치는 그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가 일찌감치 축구에 대한 꿈을 접었다면 아마 중국 축구선수 리이의 뒤통수도 고통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실패를 맛본 이들은 이을용을 통해 차근차근 다시 한 단계씩 시작하는 모습을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K리그 드래프트 도전에 실패한 김인성도 해외 진출을 모색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자 2010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 입단했다. 그리고는 팀의 후기리그 우승에 기여한 뒤 직접 해외로 날아가 몸으로 부딪혔다. 결국 그는 유럽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CSKA모스크바 유니폼을 입었고 비록 경기에 투입되지는 못했지만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 경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얼마 전 만난 김인성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앞에서 호날두와 카카가 뛰고 있더라고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K리그 드래프트에서 외면 받은 선수가 유럽 최정상 무대의 일원이 되리라 상상하는 이들은 없었다.

드래프트는 반환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내셔널리그를 통해 K리그에 입성한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김영후는 울산현대미포조선을 거쳐 강원FC 유니폼을 입었고 전북에서 뛰는 마철준은 안산 할렐루야 출신이다. 제주를 거쳐 성남에서 뛰고 있는 이현호 역시 울산현대미포조선 출신이다. 꼭 내셔널리그 출신들만 K리그 재입성의 기회를 허락받는 건 아니다. 챌린저스리그 청주직지FC 출신 이기동은 포항 입성에 성공했었고 부천FC에서 뛰던 수비수 강우람은 기나긴 입단테스트를 거쳐 대전시티즌 유상철 감독의 낙점을 받는 드라마를 썼다. 올 시즌에는 챌린저스리그 출신들이 더 많아졌다. 린저스리그 파주시민구단의 수비수 정성조는 안양FC의 지명을 받았고 광주광산FC 고기훈도 강원에 입단하면서 K리그에 직행했다.

진창수의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2009년 챌린저스리그 포천시민구단의 우승 주역인 진창수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 입단한 뒤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고양Hi FC의 선택을 받아 꿈에 그리던 프로선수가 됐다. 한 단계씩 밟아 올라온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포함해 이번 K리그 드래프트에서는 이미 한 차례 실패를 맛본 뒤 챌린저스리그에서 칼을 갈아온 선수들이 무려 7명이나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2부리그 팀은 24명 중 무려 19명이나 내셔널리그 선수를 선발했다. 한 번 드래프트에서 좌절했다고 해 절대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꼭 선수가 아니어도 갈 수 있는 길은 많다. 팟캐스트 방송과 SPOTV 축구 해설로 ‘한 때 뿐인’ 아주 조금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주헌 해설위원 역시 선수 출신이다. 한국철도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당시 이현창 감독이 이주헌이라는 이름이 누군지 기억할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라운드에서 보여주지 못한 현란한 개인기를 입으로 풀어내며 사랑받고 있다. 과거 칼럼에서 소개했던 이중재 변호사 역시 대학교 시절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결국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변호사가 됐다. 그는 여전히 대한축구협회 고문 변호사 및 사회공헌위원회 위원, 비리근절 특별위원회 위원를 역임하면서 축구와 인연을 맺는 중이다. 선수 출신이라는 점은 축구 해설가나 행정가, 에이전트, 구단 프런트 등 축구와 관련된 어떤 직종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많다. 축구를 몸소 느끼는 당신들이 칼럼 쓰는 순간 비선수 출신인 나는 간판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드래프트가 끝나자 구단의 지명을 받은 이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들에 대한 축하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린 이들은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선택받은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의 실패에는 그리 크게 관심을 두는 이들이 없다. 그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어떨까. 프로축구연맹에서도 드래프트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마당에 이 칼럼이 드래프트라는 불합리한 제도를 성토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것보다는 힘들어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것이 결코 축구 인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깊게 새겼으면 좋겠다. 이번 K리그 드래프트에 나서 실패를 맛본 386명의 새로운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