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는 실망스러웠다.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특히 오른쪽 측면 수비가 가장 불안했다. 이날 오른쪽 측면을 책임진 고요한을 두고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 역시도 그가 공을 잡을 때면 불안한 마음부터 앞섰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오른쪽 측면의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 할까. 차두리가 가장 적합한 선수로 보이지만 이제는 차두리를 대체할 선수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오늘은 불안한 오른쪽 측면을 책임질 수 있는 후보를 꼽아봤다. 물론 내 마음대로다.

박진포 (성남일화)

박진포는 어려운 성남을 먹여 살리는 소년 가장이라고 해도 될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 시즌 32경기에 나와 3도움을 기록한 그는 올 시즌에도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한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30경기 중 29차례의 K리그 경기에 나섰다. 이뿐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FA컵과 피스컵 등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전 중이다. 성남에서 올 시즌 유일하게 욕 먹지 않는 선수가 바로 박진포일 것이다. 아마 박진포가 대선에 출마해도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이들도 성남에는 꽤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나갈 때의 최효진만큼이나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포는 체력의 끝판왕이다. 오락실에 체력왕을 뽑는 게임이 있었다면 그가 맨 마지막 왕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성남의 동계훈련에서 늘 서킷 테스트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팀도 아니고 체력 훈련 하나 만큼은 인간 한계를 초월한다는 성남에서 말이다. 그는 이 체력을 바탕으로 9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투박하지만 활동량으로 이를 보완하는 스타일이다. 박진포가 얼마나 팀의 보물인지는 K리그 2년차인 그에게 팀 동료들이 부주장을 맡긴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헌신을 아는 선수다. 언젠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가 지금이 되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용 (울산현대)

울산은 최근 들어 국가대표급 오른쪽 풀백을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송종국과 오범석이 한 팀에 있다는 사실은 김호곤 감독에게는 축복이었지만 K리그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무척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이 두 선수 중 한 명은 벤치에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호곤 감독은 오른쪽 풀백을 이 둘이 아닌 다른 선수에게 맡겼다. 바로 이용이었다. 이 중앙대 출신의 이 무명 선수는 당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인 송종국과 오범석을 밀어내고 울산의 오른쪽 측면을 꿰찼다. 김경호와 박완규가 무명 로커에 밀려 메인 보컬이 아닌 코러스를 맡게 된 꼴이었다. 그만큼 이용의 활약은 훌륭했다.

결국 이용의 활약으로 인해 오범석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됐고 울산은 시즌이 끝난 뒤 과감하게 오범석을 수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송종국도 이용 때문에 실직자(?)가 됐다. 안정적인 수비력과 공격 가담 능력을 갖춘 이용은 비록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실력 만큼은 그 어떤 K리그 풀백에도 뒤지지 않는다. 올 시즌 부상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언제든 대표팀에 소집해 테스트를 받는다고 해도 경쟁력이 있다. 더군다나 팀 동료인 곽태휘가 대표팀 수비를 책임지고 있어 호흡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용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

신광훈 (포항스틸러스)

신광훈은 2007년 포항에서 최효진과 박원재에 밀려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임대로 전북에 간 뒤 출장 기회를 늘이더니 이제는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이정수의 와일드카드 발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창수와 신광훈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이 김창수를 선택해 신광훈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지만 나는 그의 능력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전북에서 포항으로 돌아갈 당시 최강희 감독이 이별 통보를 한 남자친구를 붙잡는 마음으로 신광훈의 잔류를 설득하기도 했다. 물론 신광훈은 그 최강희가 미녀 탤런트 최강희가 아니어서 거절했지만 말이다.

신광훈은 2007년 열린 U-20 청소년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공을 빼앗은 뒤 마르세유 턴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다들 하는 거다. 별 거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 큰 무대에서 개인기로는 적수가 없는 브라질을 상대로 마르세유 턴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수는 몇 없다. 신광훈은 이 발언으로 오히려 다른 풀백들을 두 번 죽인 셈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김창수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최근 잠비아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를 때에도 안정된 수비력과 공격 가담 능력을 선보였다. 나는 센스가 탁월한 신광훈이 다른 국가대표 오른쪽 풀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오범석 (수원블루윙즈)

오범석을 꼽아 의아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2010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 이야기만 할 것인가. 오범석은 그 전에도 K리그에서 수준급 측면 수비수였고 지금은 더 성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아르헨티나전에서 오범석을 탈탈 턴 선수가 세계 최고 중의 최고인 리오넬 메시였다는 점이다. 메시한테 뚫렸다고 욕 먹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욕 먹지 않을 사람은 중국에서 밭 갈고 있는 몇 명 빼고는 없다. 현실을 인정하고 본다면 오범석은 충분히 재평가 받아야 할 선수다. 개인적으로도 한 번 좌절한 이에게 다시 명예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범석은 최근 들어 수비력이 부쩍 좋아졌다. 수원 중앙 수비수들이 연이어 부상을 당해 수비진이 급격히 흔들리자 오른쪽 측면이 아니라 중앙 수비수로 나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는 점은 이제 그가 얼마나 성숙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아직도 그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범석은 절대 만만하게 볼 만큼 하찮은 선수가 아니다. 지능적인 플레이로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터프한 플레이를 잘 펼치고 영리한 파울로 위기를 끊는 능력도 탁월하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누나가 예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만 단점은 그 누나가 이미 결혼했다는 점이다.

김창수 (부산아이파크)

이번 2012 런던올림픽 축구에서 조별예선 세 경기만 뛰고도 영웅으로 등장한 선수다. 아마 K리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면 ‘갑툭튀’라고 할 수 있어도 K리그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김창수의 대활약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벌써 K리그 8년차인 그는 대학 무대를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K리그에 입성해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2004년 울산에 입단해 기회를 잡지 못해 잠시 방황했지만 2006년 대전으로 이적한 뒤부터 줄곧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대전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보직을 변경한 뒤 급속도로 성장했다. 현재 K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풀백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은 김창수와 정성훈을 영입하기 위해 박성호, 이여성, 송근수를 대전에 내줬지만 결론적으로는 엄청난 이득을 챙긴 장사를 했다. 울산 시절 선수 생활 포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는 이제 부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전 선수로 우뚝 섰다. 그를 올림픽 와일드카드로 뽑은 홍명보 감독은 ‘신의 한수’를 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세 경기 모두 풀타임 활약하며 홍명보호를 이끈 그는 영국전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올 시즌 막판이면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강희 감독이 군대 간 남자친구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육상 선수 출신으로 발이 빠르고 크로스 능력도 수준급이다.

고요한 (FC서울)

우즈벡을 상대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비난 받고 있는 고요한을 또 다시 대표팀 오른쪽 측면의 적임자로 꼽고 싶다. 인정하기 싫은 이들도 있겠지만 고요한은 여전히 K리그에서 수위급 풀백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과 비교해 기량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A매치 세 번째 경기에 나서 바짝 긴장한 탓에 실수를 연발했지만 이 한 경기로 그를 평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미드필더에서 이제 오른쪽 풀백으로 변신한지 채 몇 달 되지도 않은 선수가 리그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경험을 더 쌓는다면 아마 소속팀에서는 물론 대표팀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선수가 이 한 경기의 부진으로 상처를 받고 자신감이 꺾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즈벡전에서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지만 적어도 내가 K리그에서 지켜본 고요한은 좁은 공간에서 짧게 짧게 치고 나가는 플레이 만큼은 훌륭했다. 그를 거세게 비난하는 걸 넘어 인신공격까지 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자면 그렇게 선수 욕을 해도 한국 축구가 없던 실력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니홈피에 테러를 가하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건 한국 축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들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로 선수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고요한을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한 번 더 믿어볼 생각이다. 물론 우즈벡전과 같은 부진이 또 이어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