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리오넬 메시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명성을 주셨지만 키를 주는 건 깜빡하셨고 웨인 루니에게는 폭발적인 신체 능력과 함께 탈모도 선사하셨다. 신은 또 아르엔 로벤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실력을 주셨지만 얼굴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하셨고 상하이 선화에 드록바와 아넬카를 주셨지만 이들에게 줄 돈은 깜빡하셨다. 그리고 신은 아래 10명의 선수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주었지만 그 재능을 다 꽃 피우지 못하게 하는 불행도 함께 주었다. 오늘은 기대 만큼 오랜 시간 우리와 만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축구 천재 10명을 꼽았다.

10. 윤화평 - “그릇이 다른 선수다.”

강릉농공고에 재학 중이던 윤화평은 ‘사기 유닛’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U-12 대표팀에서부터 모든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윤화평은 고교 시절 나가는 대회마다 득점왕을 휩쓸었다. 강력한 슈팅과 파워, 순간 스피드, 점프력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선수였다. 그를 중학생 시절부터 눈여겨 보던 수원은 드래프트가 폐지되고 자유계약제도가 도입하자 곧바로 러브콜을 보냈다. 가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에게 계약금 2억 8천만 원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바로 전년도에 안양LG에 입단한 최태욱과 박용호, 김동진, 최원권 등이 받았던 1억 8천만 원보다 1억 원이나 많은 것이었다. 고졸 선수 최고액이던 1998년 이동국과 비교하면 두 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그만큼 윤화평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였다.

프로 입단과 동시에 윤화평이 주전 자리 확보는 물론 리그에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김호 감독도 “그릇이 다른 선수다. 모든 면에서 국내 선수가 갖출 수 없는 자질을 갖췄다”고 했다. 4년의 장기계약을 맺은 것도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고-데-로' 트리오와 서정원이 이끄는 공격진에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듬해 경찰청에 입대했지만 전역 후인 2005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스타군단'의 틈바구니 속에서 2006년 4경기 출장이 경력의 전부였다. 2008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 입단했던 그는 챌린저스리그 포천시민구단에서 뛰다가 지난 2010년 은퇴했다. 지금은 서울 서대문구 일대에서 윤화평 축구교실을 열고 지도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9. 김건형 - “한국 축구의 한 줄기 희망”

유독 한국에는 훌륭한 실력을 갖춘 1979년생 축구선수가 많다. 이동국과 김은중, 송종국, 설기현 등 오랜 시간 팬들의 사랑을 받는 또래 친구가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건형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U-17, U-19, U-23 대표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김건형은 특히 1999년 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터진 그의 중거리슛에 대해 우리 언론은 “세계 무대에서 힘 없이 무너지던 한국 축구에 한 줄기 희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강력한 중거리슛은 물론 중원에서 팀의 살림꾼으로 경기 조율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이동국, 김은중, 설기현 등과 함께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듬해 울산현대에 드래프트 2순위로 입단한 김건형은 데뷔하자마자 주전으로 도약했다. 데뷔전에서 전남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기도 하는 등 데뷔 첫해에 25경기에 나서며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김건형에게 불행이 시작됐다. 양쪽 발목에 부상을 입으며 단 한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것이다. 곧바로 수술과 재활에 들어갔지만 발목 연골이 기형적으로 손상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김건형은 결국 이후 두 시즌 동안 교체로 세 경기에 나선 뒤 울산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대구로 옮겼지만 두 시즌 동안 13경기에 교체로 나선 후 쓸쓸하게 K리그를 떠나야 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8. 성한수 - “성한수를 뽑는데 단 1초의 고민도 없었다”

1990년대 초반 문일고등학교의 성한수는 전국적으로도 대단히 유명했던 선수였다. 고등학교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학부형들이 모여 이런 말을 했다. “쟤가 성한수래.” 그는 1993년 KBS배 추계중고축구대회에서는 한 경기에 네 골을 넣으면서 관계자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듬해 열린 전국중고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도 혼자 두 골을 몰아 넣으며 부평고를 2-1로 제압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성한수는 드리블이나 슈팅력, 투지 모두 고교 수준의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선 전국체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판정 문제로 자신의 아버지와 심판이 몸싸움을 벌이자 결국 이를 참지 못하고 심판에게 폭행을 가한 것이다. 결국 성한수는 출장정지 3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미 입학이 확정된 연세대에 진학했지만 중간에 징계가 풀리기까지 1년 동안 공식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출장정지에서 풀린 성한수는 펄펄 날았다. 7년 동안 고려대를 상대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연세대는 성한수를 앞세워 8년 만에 라이벌전에서 승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9년 그가 K리그 신인드래프트 신청서를 넣자 1순위 지명권을 얻은 대전시티즌 이태호 감독은 “성한수를 뽑는데 단 1초의 고민도 없었다”면서 주저 없이 그를 선택했다. 대전에 입단한 그는 프로 입단 첫 해 인대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값어치가 떨어지는 듯했지만 2002년 전남으로 이적하면서 7억 원의 이적료를 받아 당시 최고액의 기록을 세웠다. 재능이 워낙 뛰어나 컨디션만 회복된다면 펄펄 날수 있을 것이라는 전남의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세 시즌 동안 전남에서의 기록은 20경기 출장에 2골1도움이었고 그중 18경기가 교체투입이었다. 성한수는 이렇게 K리그에서 멀어졌고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지난 2007년 은퇴했다.

7. 김영근 - “동양에 축구 신동이 나타났다.”

1908년 평안남도 에서 태어난 김영근은 숭실중학교 시절 축구에 큰 두각을 나타내 경신중학교로 스카우트됐다. 1929년 중학생의 몸으로 조선축구단(당시 대표팀) 상해 원정 멤버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숭실전문에 입학한 그는 대표팀 소속으로 중국 원정 경기에 나서면서 아시아를 호령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를 지켜본 중국 언론은 “동양에 축구 신동이 나타났다”며 ‘신기를 몰고 다니는 괴동’이라고 했다. 당시 다케노고시 일본 감독도 “동양에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고 김영근을 극찬했다. 뛰어난 기량과 훤칠한 키, 미남형의 얼굴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오로지 축구만 생각했던 그는 여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앞둔 일본은 ‘조선 최고의 스타’ 김영근을 일본 대표팀 명단에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영근은 일본이 축구 선진국 영국의 함대 축구팀과 치른 평가전에서 답답한 전술을 쓰는 감독의 말을 무시하고 ‘원맨쇼’를 펼치며 6골이나 뽑아냈다. 하지만 일본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김영근을 불러 “전술을 어겼다”며 심하게 꾸짖자 그는 목욕탕에서 감독의 등을 물줄기로 내려치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으로 돌아가겠다. 조선인이라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에서 나온 김영근은 이후 점차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잃어갔다. 뛸 수 있는 곳이 없어 축구를 계속 하기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 중국 축구계는 김영근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그쳤다. 결국 김영근은 중국 생활 2년 동안 철저히 멀리해 오던 술과 담배, 여자를 가까이 하다가 1940년 전남포제련소에 입사하면서 축구화를 벗게 됐다.

6. 백승철 - “지금껏 본 선수 중에 발목 힘이 가장 좋다.”

1998년 포항과 울산의 K리그 플레이오프는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아직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특히 후반 51분 터진 포항의 극적인 중거리슛은 여전히 K리그 팬들의 머리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바로 이 골의 주인공이 백승철이다. 1998년은 이동국과 안정환이 등장한 해였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을 연출한 신인은 백승철이었다. 당시 포항의 박성화 감독은 백승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 중에 발목 힘이 가장 좋다.” 하지만 백승철에 대한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오랜 시간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만 같았던 백승철은 딱 두 시즌만 뛰고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56경기 중 32경기를 교체로 출전해 20득점 4도움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고 말이다.

1999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작은 부상을 방치한 채 경기장을 누비던 백승철은 시즌 종료 후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반월판이 완전히 찢어지고 무릎인대도 정상이 아니라 자칫하면 휠체어에 의존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진통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릎 붓기가 빠지질 않아 쇠바늘을 일주일 동안 무릎에 꽂아 넣고 생활했고 경기에까지 나섰으니 몸 상태는 심각했다.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수술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외부 병균에 감염돼 무릎 전체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병원 측에서 실수를 인정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2년 동안 혼자 죽을 힘을 다해 재활에 매달렸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K리그에서 짧은 시간 동안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백승철은 운봉공고 코치를 거쳐 현재에는 유소년 축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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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역대 최고의 명승부라는 평가를 받는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고 감격에 겨워 하는 백승철. (사진=포항스틸러스)

5. 박양하 - ‘한국의 조지 베스트’

1980년대 초 한국은 가장 공을 잘 차는 선수가 공격수를 하던 시대였다. 플레이 메이커라는 개념이 없던 이 시기 독특한 선수가 세상에 등장했다. 바로 박양하다. 창신공고 시절 박양하가 공을 잡으면 상대팀 11명이 모두 따라다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능력은 대단했다. 공을 발에 달고 드리블 돌파를 한 뒤 동료 동격수 발 앞에 떨궈주는 패스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축구의 등장이었다. 공을 측면으로 연결하지 않고 조금만 끌어도 감독이 불호령을 내리던 시기에 박양하의 등장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뻥축구’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박양하는 박종환식 축구가 꽃을 피우던 1980년대 국가대표의 산실 고려대 소속이면서도 플레이 스타일이 맞지 않아 늘 대표팀으로부터 외면 받았다.

고려대 졸업 후 대우에 입단한 그는 첫 시즌 그의 능력을 믿었던 장운수 감독으로부터 “네 마음대로 한 번 뛰어보라”는 믿음 속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금껏 프로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선수가 등장하자 팬들도 환호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이듬해 박양하는 새롭게 부임한 이차만 감독과 번번이 충돌했고 결국 음주와 선수단 이탈 등으로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1989년과 1990년 두 시즌 동안 10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던 박양하는 결국 1990년 시즌을 마친 뒤 축구화를 벗었다. 이후 거제중학교와 부경대 감독을 거쳐 최근까지 내셔널리그 김해FC 초대 감독을 지냈지만 사임 뒤 사임했다. 우리는 그를 ‘한국의 조지 베스트’, ‘박제된 천재’,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

4. 김경일 - “그는 내가 키우지 않았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우리는 무척 부러워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나카타를 넘어설 선수가 있었다. 바로 김경일이었다. 금호고에서 윤정환과 고종수를 발굴해낸 기영옥 감독은 그 세 번째 작품으로 김경일을 내놓았다. 기영옥 감독이 광양제철고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 바로 스카우트한 선수가 바로 김경일이다. 김경일이 혜성처럼 등장한 1997년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1997년, 1998년 2년 연속으로 광양제철고를 전국고교선수권대회에서 우승 시킨 김경일은 2년 연속 MVP를 수상했고 1999년 세계 청소년대회 주전 미드필더를 꿰찼다. 특히 우루과이와의 청소년월드컵에서 때린 아웃프런트 슈팅은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팬들에게 회자된다. 그에게는 ‘나카타를 넘어설 한국 축구의 재목’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화려했던 명성에 비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끝없는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동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K리그 전남에 입단한 김경일은 세 번째 경기에서 피로골절 부상으로 6개월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복귀를 서둘렀고 결국 부상이 도져 1년을 더 쉴 수밖에 없었다. 또한 1년 뒤 다시 그라운드에 섰지만 연거푸 왼쪽과 오른쪽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3년간 부상으로 5번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김경일은 K리그 무대에서 5년간 단 3번의 풀타임 출장 기록을 남기는데 그쳤다. 그리고 박종환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4년 대구에서 뛰다 방출당한 뒤 내셔널리그 서산시민구단에서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은퇴 당시의 나이는 25세. 선수 생활동안 15차례 가깝게 수술대에 올랐다. 기영옥 감독은 김경일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윤정환과 고종수는 내가 키운 게 맞지만 김경일은 아니다. 그는 이미 나를 만났을 때 윤정환과 고종수 이상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3. 고종수 - “한국에도 오르테가가 있다”

고종수는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당돌한 아이였다. 18세 2개월 12일 만인 1997년 1월, 처음으로 당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성인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18세 3개월 만에 홍콩과의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 원정경기에 출전해 최연소 성인대표 선발출전 기록을 갈아치웠던 축구 신동이었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K리그에 입성한 고종수는 스승 김호 감독과 함께 1998년과 1999년 K리그를 제패했고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도 당돌한 활약으로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1997년 1월 뉴질랜드전에서 골을 뽑아내며 한국 A매치 최연소 득점자(18세 87일)로 이름을 올렸고 1998년에는 20세 2개월의 나이로 K리그 최연소 MVP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고종수는 늘 최초이자 최고였다.

하지만 ‘인기스타’ 고종수는 늘 많은 유혹과 싸워야했다. 방송사에서는 그를 초대하기 바빴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CF 출연 제의도 잇따랐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축구팬들의 우상이었다. 불과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그러나 좌절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01년 무릎 부상과 함께 음주 파동 등으로 점차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J리그에 진출했다가 수원 복귀를 준비하던 2004년에는 차범근 감독의 삭발 지시를 거부한 뒤 수원을 떠나면서 방황했다. 이후 전남과 대전에서 재기의 칼날을 갈았지만 결국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해야 했다. 한창 그가 인기를 상종가를 칠 때 친분을 과시하던 이들도 모두 떠났다.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넣으며 해외언론으로부터 “한국에도 오르테가가 있다”는 극찬을 받았던 그는 이제 수원의 코치로 변신했다.

2. 김종부 - “자신 없으면 종부한테 패스해.”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은 4강 신화를 이뤘고 그 중심에는 김종부가 있었다.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 없으면 종부한테 패스해.” 이 대회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한 김종부는 한국 축구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986년 고려대학교 4학년생 김종부를 잡기 위한 프로팀들의 러브콜은 가히 전쟁이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현대와 대우, 럭키금성이 김종부 영입을 위해 팔을 걷어 올렸고 결국 대우와 현대의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리고 말았다. 대우에서는 “선수 본인의 의견에 따라 김종부가 우리 팀에서 뛰어야 한다”고 했고 현대측에서는 “이미 김종부가 우리와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결국 김종부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당시 프로계약에 어두웠던 김종부는 현대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채 대우 유니폼을 입고 친선경기에 출전해 1년 출장정지와 소속 학교인 고려대학교에서 제명되는 중징계를 당하면서 무너졌다. 두 거대기업의 선수 쟁탈전에 축구 밖에 모르는 순진한 한 선수는 이렇게 시들어 갔다. 결국 2년에 걸친 기나긴 논란 끝에 김종부는 두 팀의 양보로 포항제철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이미 그의 몸은 망가져 있었다. 결국 한국의 대형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그는 1995년 쓸쓸히 은퇴해야 했다. 김종부는 현재 챌린저스리그 양주시민구단 감독을 맡고 있다.

1. 김병수 - “오른발을 다쳤으면 왼발로만 차라.”

김병수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혼자 서울로 축구유학을 왔다. 당시 그가 서울에 입성하자 순식간에 전국에 소문이 났다. “이런 천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포항제철 한홍기 감독은 김병수를 찾아가 플레이를 지켜보고는 곧바로 김병수의 어머니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당장 제가 키워보겠습니다.” 초등학생이던 김병수는 곧바로 포항에 가 박창선과 최순호 등 당대 최고의 스타 앞에서 개인기 시범을 보이고 골까지 넣어 보였다. 포항은 이 축구 신동을 브라질로 보내 키우려고 했지만 당시 문교부에서는 브라질 축구학교를 국내학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성인이 돼 고려대학교에 진학한 김병수를 본 크라머 감독은 “축구 인생 50년 만에 만난 천재”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늘 부상을 달고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워낙 뛰어난 실력 때문에 아파도 꾹 참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인대가 0.5인치만 늘어나도 큰 부상이지만 김병수는 인대 1인치가 늘어난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체계적인 선수관리가 없던 시절 큰 부상에도 얼음찜질 몇 번에 주사 한 두 대 맞고 경기에 나섰다. 그의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한 달 이상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4년 동안 딱 네 경기를 뛰었는데 이 중 세 번이 고연전이었다. 부상으로 전혀 운동을 하지 못하다가도 라이벌전이 되면 학교에서 그를 불렀다. 1990년 정기전에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림 같은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는 후반 막판 극적인 결승골로 명승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결국 혹사 당하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그는 K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일본 실업축구 코스모 석유 팀에 입단했다. “훈련 없이 경기에만 나서달라”면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전액 지원하는 건 물론 연봉도 2억 원이나 제시했다. 그렇게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간 김병수는 1997년 코스모 석유에서 쓸쓸히 은퇴했다. 김병수는 늘 이런 이야기를 듣고 경기에 나섰다. “오른발을 다쳤으면 왼발로만 차라.” 체계적이지 못한 선수 관리로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은 ‘비운의 천재’ 김병수는 현재 영남대학교 감독으로 해체 위기에 내몰렸던 팀을 2010년과 2012년 연거푸 대학 정상으로 이끌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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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민구단 소속의 김현회가 상대의 공을 가로채는 아주 흔한 모습.

보너스. 김현회 - “구단 홍보에 꼭 필요한 선수다.”

2009년 당시 K3리그 고양시민구단은 놀라운 이적 사실을 발표했다. ‘스포츠서울닷컴’ 소속의 축구기자 김현회를 영입한 것이었다.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구단 사무실에서 입단식까지 치르며 등번호 35번을 내줬다. 고양 정재욱 사무국장은 “김현회는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쳐진 스트라이커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라면서 “이외에도 구단의 홍보를 위해 꼭 필요한 선수라 판단됐다”고 전했다. 김진옥 감독은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주전 경쟁을 펼칠 것이다. 훈련장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경기 출장은 없다”고 했다. 계약 기간과 조건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고양 유니폼을 입은 김현회는 데뷔전이던 서울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서 맹활약했다. K리그 신인왕 출신 신진원의 공을 가로채며 기대에 걸맞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김진옥 감독은 김현회를 경기 시작 5분 만에 교체 아웃시켰고 이에 제대로 삐친 김현회는 훈련을 거부해 결국 임의탈퇴 되고 말았다. 김진옥 감독의 훈련 독촉 전화에도 수신 거부로 일관한 그는 데뷔전이자 은퇴무대에서 강렬한 5분을 남기고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었다. 프리미어리그 입단을 타진했지만 워크퍼밋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 재능 넘치는 축구선수의 쓸쓸한 퇴장이었다. 물론 그의 입단으로 구단 유니폼 판매량이 늘거나 관중이 증가하는 일은 없었다.

축구 천재가 늘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는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너무 재능만 믿고 나태한 모습을 보이다가 몰락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상의 악령을 벗어나지 못해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빌 수 없었다. 복잡한 주변 환경 때문에 축구에 집중하지 못한 이도 있고 성장이 더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이도 있다. 그만큼 재능만 가지고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될 수는 없다. 가진 재능에 비해 축구선수로 행복한 시절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안타깝지만 앞으로는 이런 불운한 선수들이 나오지 않도록 주위에서도 보다 체계적인 선수 관리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