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는 최순호와 황선홍, 최용수 그리고 이동국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유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꼽을 것이다. 발재간 보다는 타점 높은 공격으로 상대 수비들과 싸워 우위를 점하는 유형의 이른바 타겟형 공격수가 이들의 역할이었다. 이동국은 지금껏 전형적인 타겟형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넓은 활동 반경을 책임지는 것보다는 골문 앞에서의 집중력이 더 부각됐다.

하지만 나는 이동국이 이제 타겟형 공격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변했다. 그것도 이제 축구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야 할 3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그동안 타겟형 공격수의 대명사로 평가받던 이동국은 어느덧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갖춘 선수로 변모했다. 최전방은 물론 공격 2선까지 적극 가담하고 골문 앞이 아니라 측면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흔히 이미지만을 보고 가수 서인영이 노래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서인영의 라이브를 들어본 이들은 그의 가창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아마 K리그 전북 경기를 본 이들은 이동국이 전천후 공격수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타겟형 공격수와 전천후 공격수 중 어떤 플레이 유형이 더 나은 것인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 더 우월한 유형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상대에 따라, 전술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유형이지 어느 유형이 더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년 넘게 축구를 해온 선수가 현역 생활의 끝자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껏 익혀온 습관을 버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면서 의미 있는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니 이동국이 타겟형 공격수에서 전천후 공격수로 변화한 건 2011년부터인 것 같다. 이때부터 이동국은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힐링캠프> 출연 이후 치유를 받았기 때문일까.

2010년 이동국은 전북 유니폼을 입고 30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이 자체로도 무척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당시 이동국의 한해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K리그에서는 맹활약을 했지만 정작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정무 감독은 본선을 앞두고 치른 핀란드전과 라트비아전에서 이동국을 타겟형 공격수로 기용했지만 본선 무대에서 이동국은 플랜B일 뿐이었다. 우리의 기억 속 이동국은 16강 우루과이전 통한의 실축으로만 기억됐다. K리그에서 펄펄 날고도 월드컵에서는 고개를 떨궈야했다. 평소에 여자친구한테 아무리 잘해도 결정적일 때 한 번 실수했다고 두고두고 바가지를 긁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이동국은 적지 않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받아먹기만 하는 공격수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게으르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2010시즌 전북 소속으로 13골을 넣는 동안 도움이 단 세 개였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골을 잘 넣는 공격수에게 도움이 없다는 이유로 비난의 화살을 들이대는 건 개인적으로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당시 전북 경기를 본 이들은 잘 알 것이다. 이동국의 결정적인 패스를 동료 공격수들이 골로 연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하지만 도움이 딱 세 개라는 팩트(?)가 있으니 그 비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2011년부터 그런 이동국이 변했다. 나는 아직도 술 먹으면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전화하는 10년 넘은 습관을 못 버리는데 이동국은 플레이 스타일을 한 번에 바꿨다. 지난 시즌 29경기에 나서 16골을 넣고 15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이전까지 12시즌 동안 기록한 도움이 32개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변화다. 수치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플레이에서도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골문 앞에서 득점에만 집중하던 이동국은 상대의 집중 수비가 이어지자 2선으로 빠져 침투하는 루이스와 에닝요 등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제공했다. 직접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동국이 크로스를 올리는 장면은 지금껏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변한 이동국은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UAE와의 경기에 후반 막판 교체 투입된 이동국은 지금껏 대표팀에서 어슬렁대며 골 냄새를 맡던 이동국이 아니었다. 스위칭 플레이를 중시하는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의 요구에 부합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측면으로 빠져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했다. 스로인 공격이 이어지자 중앙에서 공을 받으러 뛰어나오는 선수도 이동국이었다. 나는 당시 칼럼에서 이동국의 이런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었다. ‘이동국만은 마치 한국이 지고 있는 것처럼 플레이했다.’

이후에도 이동국은 타겟형 공격수와는 거리가 있는 플레이 유형을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역시 마찬가지다. 서상민과 드로겟 등 강력한 한방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한 전북에서 이동국은 골 사냥만을 노리는 선수가 아니라 빈 공간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동료의 공격을 돕는 역할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제 이동국이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상대 미드필더와 경합을 펼치는 장면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더 이상 이동국이 타겟형 공격수가 아니라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이동국은 대표팀에 다시 발탁됐다. 사실 지금껏 이동국과 박주영의 호흡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달라야하고 다를 것이라 믿는다. 대표팀에서 부동의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주영과 얼마나 좋은 호흡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표팀 공격 옵션이 판가름 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이야 이동국이 부동의 공격수였지만 지금은 박주영도 있고 이근호도 있고 김신욱도 있다. 이동국도 여러 공격 옵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른 선수들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지만 타겟형 공격수에서 전천후 공격수로 변신한 이동국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타겟형 공격수 유형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헤딩슛이나 발리슛 능력까지 뛰어나다는 것도 이동국의 강점이다. ‘애플’하면 아이폰이고 ‘진로’하면 참이슬이고 ‘발리슛’하면 이동국 아닌가.

이동국은 최근 박주영과의 호흡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굳이 둘을 연결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축구는 두 명이 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상으로 골을 넣고 도움을 올려야 호흡이 좋은 게 아니다. 좋은 경기를 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가 타겟형 공격수에서 벗어나 전천후 공격수로 변신한 뒤 바뀐 자세를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동국이 2012 런던올림픽 이후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비상한 박주영과 호흡을 잘 맞출수록 대표팀 공격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동국의 변신이 무척 반갑다. 다가올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측면과 2선을 오가며 동료 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출 이동국을 기대한다. 이동국은 더 이상 타겟형 공격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