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일)는 한국 축구의 축제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K리그 올스타와 2002년 4강 주역의 올스타전은 볼거리가 풍성했다. 최용수 감독이 발로텔리를 따라한 골 세리머니를 펼칠 때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길 때는 코끝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감동은 여전하다. 하지만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한 K리그 선수가 쓸쓸히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한국 축구계 별들이 모두 뜬 이날 한 무명선수의 죽음이 알려졌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부산아이파크의 정민형. (사진=부산아이파크)

K리그 무대에 도전한 무명의 축구선수

부산아이파크 정민형이 어제 경기도 양주시 자신의 자택 부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민형은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차 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유서가 발견됐다.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아빠 엄마 죄송해요. 아빠 엄마 얼굴을 못 보겠어요. 저를 용서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친구야, 하늘에서 응원할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이라는 방법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지만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가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와 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지만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가슴이 아프다.

정민형은 2010년 부산에 합류했다. 대학축구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한국국제대학교를 졸업한 그를 부산이 연습생 신분으로 영입한 것이었다. 황선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입단 첫해 정민형은 철저한 2군이었다. 1군과는 같이 한 번도 훈련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했다. 하지만 안익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인정받지 시작했다. 1군에서 훈련하는 날이 늘었고 비록 대부분이 교체였지만 K리그 무대에 6번이나 서기도 했다. 무명 대학 출신의 무명 선수가 이룬 대단한 성과였다. 선수들을 독하게 다루는 안익수 감독도 훈련장에서 “민형이는 정말 열심히 한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부상이 잦았다. 지난 시즌에도 더 많은 경기에 뛸 수 있었지만 부상으로 고생하며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그런 정민형은 올 시즌을 앞두고 더 이를 악물었다. 동계훈련 동안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운동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10일 제주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11분 교체 투입돼 올 시즌 첫 경기를 치르며 주전경쟁에서 가능성을 내보인 그는 곧바로 부상을 당해 또 다시 기회를 잃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그라운드가 아닌 재활센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꿈을 잃지 않았다.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보다 더 아픈 마음의 상처

혹독한 재활을 마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다시 경기에 나설 몸 상태를 만들었지만 또 다시 안익수 감독의 선택을 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와 똑같은 꿈을 꾸고 있는 동료들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 4월 11일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민형아. 내일 경기 준비해.” 서울에서 이적한 박용호가 옵션 계약에 따라 서울전에 나설 수 없게 되자 안익수 감독은 주저 없이 준비된 정민형에게 투입을 지시했다. 정민형은 경기 전날 이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기뻐하면서도 데얀과 몰리나 등 최강 공격력을 자랑하는 서울 공격을 틀어막기 위해 고민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정민형은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전반 내내 상대 공격을 완벽히 차단하며 무실점을 이끌었다. 그런데 전반 44분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뜻하지 않은 부상이 또 찾아온 것이었다. 결국 정민형은 전반전을 채 다 마치지도 못하고 한지호와 교체됐다. 그의 올 시즌 두 번째 출장이자 마지막 출장이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된 정민형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피로골절입니다. 수술을 해야합니다.” 이제 막 기회를 잡은 무명의 정민형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소식이었다. 이 기회를 한 번 얻기 위해 지난 3년간 남모를 고통을 겪었던 그는 크게 낙담했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한 순간에 끝났지만 또 다시 오랜 재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올 시즌 초반 한 차례 부상으로 고통 받았던 그는 복귀전에서 부상을 당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목발을 짚고 경기장을 찾아 그라운드에 선 동료들을 바라보며 응원했다. 그에게는 넘어야 할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그전에 함께 꿈을 위해 나아가는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민형은 집 근처에서 또 다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재활에 매달렸고 부상을 당한지 약 석 달 만에 정상적인 몸 상태로 다시 팀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일 팀에 합류하기로 한 정민형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부산 구단은 정민형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눈물 흘리는 선수들

정민형은 최근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번번이 부상으로 기회를 잡지 못한 그는 또 다시 부상을 입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컸다. 정상적인 몸 상태여도 쉽지 않은 주전경쟁인데 이제 좀 해보려고 하면 부상을 당해 스스로를 원망했다. 물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절대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힘겨운 주전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미래가 불안하고 초조했을지 이해가 간다. 팀 동료 전상욱은 “그 마음을 잘 안다”면서 “얼마나 속상했겠나. 2군에서 언제 1군으로 올라가 경기에 나갈지 바라만 보고 있다가 그나마 간간히 출장했는데 다쳤으니 얼마나 속상했을지 이해가 간다”면서 후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평소 그는 무척이나 활발한 성격이었다. 팀 동료 가족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얼마 전에는 혹독한 재활을 마치고 술 한잔 하면서 팀 동료 임상협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임상협은 “그때 전화한 형한테 그냥 힘내라는 말 한마디밖에 하지 못해 미안하다. 나에게 맛있는 밥을 사줬던 형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잘 쉬었으면 좋겠다. 잊지 않겠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동료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이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겼다. 동료 주세종은 “처음 프로 와서 아무 것도 모르는 신인한테 같은 방 쓰면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그곳에서는 항상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보고싶다”고 했다.

너무나 혹독한 주전경쟁이다. 그라운드에 11명이 서기 위해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는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아픔이다.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멋지게 뛰고 있는 11명에게만 환호를 보내지만 그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 경기에 나서기 위해 그보다 수천 배는 더 오랜 시간 재활에 매달려야 하는 선수들의 힘든 과정에 대해 다는 아니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정민형의 안타까운 죽음 뒤 인터넷에 달리는 수 많은 악플….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칼럼에 옮기기도 심할 정도의 믿기 어려운 반응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동이다. 제발 참아주길 바란다.

하늘에서는 부상 없이 행복하길

오늘(6일) 부산 선수들이 오전 일찍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의정부를 찾는다. 고참인 김한윤과 전상욱이 2군 선수들과 빈소로 가지만 동료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2군 선수들은 함께 마지막 밤을 지새우며 동료의 발인을 지킬 예정이지만 김한윤과 전상욱은 오후가 되면 곧바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 다가올 일요일(8일) 또 다시 그라운드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한윤과 전상욱이 아닌 다른 1군 선수들은 동료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하고 슬픔에 잠긴 채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이게 바로 축구선수다. 아프고 슬퍼도 털고 일어나 또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정민형이 부상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훌훌 털고 재활에 매달린 것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K리그 올스타전이라는 최고의 축제가 열리기 몇 시간 전 정민형의 안타까운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올스타전에서 고인의 추모행사와 묵념을 하지 않았다고 이번 올스타전을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사 중계 일정에 따라 1분 1초까지 시간표가 짜 있고 경기 직전 급작스럽게 전해진 K리그 선수의 자살 소식에 연맹이 대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번처럼 개념 있게 올스타전을 치른 연맹이라면 정민형의 죽음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건 예의를 갖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일이 올스타전에서 묵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건 원치 않는다.

K리그 올스타전에 나서는 별들의 플레이를 보고 환호하는 것도 좋지만 이 무대가 만들어지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무대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꿈을 위해 달려 나가는 모든 축구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부산아이파크 축구선수 정민형의 명복을 빈다. 부디 하늘에서는 부상 없이 마음껏 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