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몇 대 맞거나 부모님을 모셔오거나 반성문을 쓰는 걸로 끝날 일이었지만 화가 난 학생주임 선생님은 ‘전교생 화장실 이용 금지령’을 내렸다. 싸고 싶은 걸 못 싸게 하는 벌은 너무 잔인했다. 학생주임 선생님은 “한두 명의 잘못으로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으라”고 했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기는커녕 불만만 쌓여갔다. 몇몇 학생의 잘못으로 전교생이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포항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인천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천과 포항이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았다. 어제(1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포항전은 관중 없이 치러졌다. 인천은 지난 3월 24일 대전과의 경기 때 서포터스의 경기장 난입과 홍염 사용으로 징계를 받았다. 애초에는 연맹이 지난 3월 29일 제3지역 홈 경기 개최를 지시했지만 인천이 “지금껏 홈이 아닌 다른 구장에서 경기한 적이 없다. 홈을 떠나서 경기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끝에 결국 연맹은 지난 4월 5일 인천에 무관중 경기 징계를 지시했다.

팬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뿌리 뽑겠다는 연맹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인천의 이번 상대인 포항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인천과 충돌한 건 대전이었는데 애꿎은 포항이 무관중 경기의 피해자가 된 것이었다. 연맹은 4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6월 14일 인천-포항전을 지목하며 이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르라고 지시했다. 인천 팬들이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것처럼 포항 팬들 역시 이 경기를 직접 지켜볼 수 없었다. 이 경기장에는 미디어와 중계 인력, 구단 관계자들만이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항 팬들은 졸지에 경기 관람의 권리를 잃게 됐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포항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포항 팬뿐 아니라 포항 선수들 역시 이번 경기의 피해자다. 인천이야 지난 잘못으로 팬들의 응원 없이 싸우는 게 옳다고 하더라도 포항까지 이 피해를 입는 건 잘못된 일이다. 만약 예를 들어 서울이 무관중 징계를 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연맹에서는 서울-수원전을 무관중 징계로 치를 수 있을까. 아마 이렇게 많은 팬을 보유한 구단이 피해를 입고 거센 반발 여론이 생기는 일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포항을 존중하지 못한 연맹의 판단은 너무 경솔했다.

현명한 징계가 필요했던 연맹

연맹이 조금 더 생각했으면 더 현명한 징계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현명한 건 제3지역 홈 경기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인천이 이의제기를 했다고 해서 배려해줄 게 아니라 그대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 이게 아니라면 사건 당사자인 인천과 대전이 다시 맞붙을 때 징계를 적용할 수도 있었다. 대전의 홈 경기에서 원정 응원석을 폐쇄해 인천 팬들의 입장을 막는다면 사건 당사자인 인천과 대전 외에 제3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어려웠다면 이번 경기에 포항 유니폼을 입고 원정 응원석에 들어오는 관중 만큼은 막지 않는 게 어땠을까.

일부에서는 인천이 무관중 경기 대신 승점 삭감 징계를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플릿시스템과 승강제 적용으로 승점 1점이 귀한 상황에서 승점 삭감 조치는 너무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다시는 폭력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벌에 처하는 것도 좋지만 시민구단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는 강등에 페널티까지 부과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승점 삭감은 심각한 재정 위기로 리그를 뒤흔든 팀이나 승부조작을 자행한 팀에게 내려지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승점 삭감보다는 유연한 무관중 경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때로은 위기가 기회로 발전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터키 클럽 페네르바체는 경기 도중 관중 난입으로 두 경기 무관중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터키축구협회는 이후 징계안을 수정했다. 여성과 12세 이하 어린이들의 입장을 허락한 것이었다. 난입의 당사자인 성인 남자의 입장을 제안하면서도 나머지 팬들은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했고 결국 페네르바체의 홈 경기장은 4만 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들로 가득 찼다. 여성과 어린이의 목소리로만 채워진 응원가는 색다른 감동을 줬고 무관중 경기보다는 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징계는 “축구 관람의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게 했다”며 찬사를 받았다.

징계도 감동이 될 수 있다

비슷한 일은 올해도 있었다. 올 1월 열린 네덜란드의 아약스-AZ알크마르의 경기에서는 어린이들만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열린 네덜란드컵 16강 경기에서 맞붙은 두 팀은 아약스 팬의 난입으로 불미스러운 사태를 경험했다. 이 관중이 상대팀 골키퍼를 폭행하려하자 골키퍼는 난입한 관중을 제압한 뒤 발길질을 해 퇴장을 당했고 결국 AZ알크마르 선수들이 경기 재개를 거부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아약스는 무관중 재경기 징계를 받았지만 이의제를 한 끝에 어린이 관중의 입장을 허용했다. 최소한의 통제를 위해 어린이 6명 당 성인 관중 1명의 통솔이 허락됐다.

K리그도 보다 유연한 징계가 필요하다. 폭력 사태에 대해 일벌백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징계를 선택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딱딱하고 엄해야 할 징계도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보다 많은 이야기를 선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잘못도 없는 상대팀까지 징계의 피해를 보게 되는 건 더욱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잘못한 인천이 팬들의 응원 없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반대쪽에서는 포항 팬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져야 인천의 징계가 더 피부로 느껴졌을 것이다. 포항은 이번 경기에서 무관중 징계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날 경기가 무관중 징계 속에서도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한 건 아니다.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수십 명의 인천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열띤 응원을 보냈다. 경기가 끝나자 인천 선수들은 직접 관중석으로 올라가 철창 밖의 팬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징계 중에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는 건 우리가 이 사태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와중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멋진 장면이었다. 하지만 감동은 감동이고 포항 팬들의 피해는 피해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인천 팬들과 경기장 안에서 응원하는 포항 팬들의 모습 자체가 가장 혹독한 징계이면서도 다시는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훈 아닐까.

‘아무도’ 못 본 김원일의 데뷔골

그저께 포항 김원일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안부를 묻자 이런 대답이 왔다. “요새 팀 성적은 안 좋아도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서울 올라오면 밥 한 번 먹자. 올 때까지 돈 많이 모아놓고 있겠다”고 하자 김원일은 이렇게 답했다. “제가 골 넣고 우리 팀이 이겨서 수당 많이 챙겨갈게요. 제가 밥 살게요.” 나와 이렇게 대화를 나눈 김원일은 곧바로 어제 인천과의 경기에서 K리그 데뷔 3년 만에 감격적인 첫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간절히 골을 바라던 김원일이 후반 48분 터뜨린 이 극적인 동점골 장면을 본 관중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나는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