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참 멋진 팀이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하고 관중석에는 언제나 관중이 넘친다. 수원 원정을 떠나는 상대 선수들은 서포터스의 귀청을 찢을 듯한 야유가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수원은 최고의 경기장을 갖추고 있고 클럽하우스도 아름답다. 이런 팀이 K리그에 있다는 건 흥행에도 큰 축복이다. 수원이 올 시즌 보여주고 있는 성적도 훌륭하다. 별로 결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 완벽한 환경과 경기력을 갖춘 수원에 부족한 게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3.93년, 전북은 3.35년

무얼까. 바로 팀에 오래 헌신한 선수다. 경기에 앞서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채워진 수원 베스트11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수원 선수단은 오랜 시간 발을 맞춰온 클럽 팀이라는 느낌보다는 올스타전에 어울리는 선수 구성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화려한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곽희주나 양상민을 빼면 ‘수원맨’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똑같은 수원 유니폼을 입은 11명이 그라운드를 누비지만 익숙한 수원 선수는 몇몇 없어 보인다. 마치 우리 반에 한꺼번에 전학생이 몰려와 우리 반이 우리 반이 아닌 느낌이다.

네 시간 동안 근성을 가지고 거의 ‘노가다’ 수준으로 자료를 조사해 보니 이는 수치로도 그대로 들어났다. 수원과 라이벌이라 평가받는 서울을 예로 들어보자. 서울은 15라운드가 진행된 현재 준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6경기 이상 뛴 선수가 16명이었다. 이 중 올 시즌 처음으로 서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 이는 김주영과 서울 입단 후 대구로 임대됐다가 돌아온 김현성 뿐이다. 고명진이 이 팀에서만 9년째 선수 생활을 하고 있고 고요한과 한태유(상무 시절 제외) 역시 7년째 서울 선수다. 아디와 데얀 등 외국인 선수도 각각 7년과 5년째 서울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 16명이 평균적으로 서울에서 뛴 햇수는 3.93년이다.

수원 팬들로서는 서울과 비교하는 게 기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면 전북과 비교해 보자. 전북은 올 시즌 6경기 이상 뛴 선수가 20명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최은성과 김정우, 드로겟, 서상민 등을 영입해 평균 근속 년수가 굉장히 짧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올 시즌 6경기 이상 뛴 20명이 평균적으로 전북에서 활약한 기간은 3.35년이다. 임유환과 최철순이 무려 8년과 7년째 ‘전북맨’으로 활약 중이고 김상식과 이동국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루이스와 에닝요 또한 4년째 전북 소속으로 맹활약 중이다. 정훈도 5년째 중원을 지키고 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변한 수원

그렇다면 이제 수원을 살펴보자. 올 시즌 6경기 이상 나선 수원 선수는 16명이었다. 그런데 이 16명이 수원에 속한 시기는 2.85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올 시즌 10년째 수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곽희주가 평균치를 많이 끌어 올린 덕분이었다. 곽희주 외에 양상민과 하태균(이상 6년)을 제외하면 수원에서 제주로 이적했다가 돌아온 박현범이 수원에서 4년째 활약 중이고 3년째 수원에서 뛰고 있는 박종진과 조용태(상무 시절 제외)가 그나마 수원 유니폼이 어울리는 선수다. 이용래와 스테보, 정성룡, 오범석은 수원에서 2년째에 접어들었고 조동건과 보스나, 서정진, 에벨톤C, 라돈치치는 올 시즌이 수원에서의 첫 시즌이다.

나는 수원 축구를 무척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지만 수원에 ‘수원 이미지’를 갖춘 선수가 적다는 건 무척이나 아쉽다. 클럽팀이 국가대표와 다른 건 팬들이 오랜 시간 선수와 정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지금의 수원은 매력이 다소 부족하다. 수원이 축구를 잘한다는 사실이야 K리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수원이 한 차원 더 발전한 명문 구단이 되려면 보다 수원에서 오랜 시간 헌신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야 한다. 매 시즌을 앞두고 거액을 들여 좋은 선수를 사들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난 시즌 헌신했던 또 한 선수는 수원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설 수 없다.

차범근 감독 후임으로 윤성효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체질 개선에 들어갔으니 이런 현상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감독이 바뀌면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대거 영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서울은 그 사이 귀네슈 감독과 빙가다 감독, 황보관 감독, 최용수 감독 등이 연이어 지휘봉을 잡았고 전북 또한 최강희 감독이 잠시나마 팀을 떠나게 돼 이흥실 감독대행이 팀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큰 틀은 유지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 한 선수들이 지금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그런 면에서 수원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변했고 수원 유니폼이 아직도 어색한 선수들이 많다.

오래된 ‘수원맨’이 부족하다

과거 수원은 레전드를 무척이나 많이 배출했다. 박건하는 수원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입성해 가시와 레이솔 임대 기간 3개월을 제외하고는 무려 16년 동안 수원에서만 뛰었다. 이운재는 군복무 시기를 제외하고 13년을, 김진우는 12년을, 이병근은 11년 동안 수원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종수와 김대의, 서정원은 각각 수원 소속으로 9년과 7년, 6년을 뛰었다. 수원은 과거 그 어느 팀보다도 오랜 시간 한 팀에서 헌신하는 선수들을 무척 많이 배출한 팀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원에서 현역 시절 오래 활약한 윤성효, 서정원, 김진우, 이진행, 고종수 등이 여전히 코치진으로 수원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라운드에 서는 수원 선수들 중에 오래된 ‘수원맨’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더더욱 아쉽다. 지금 수원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급조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른팀 선수가 활약이 뛰어나면 돈 주고 사오고 그 선수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나타나면 또 돈 주고 사오는 게 실력을 키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팬들이 충성심을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팀에서 뛰던 실력 좋은 선수들이 마치 올스타전을 위해 모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조동건과 곽광선, 오범석이 수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어색하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레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팀에 헌신하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선수가 당장 나올 수는 없다. 실력 있는 선수는 돈만 있으면 뚝딱 사올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오랜 시간 팀에 헌신한 선수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 수원에는 입단한지 1~2년 된 선수들이 무척 많은데 이 선수들이 6~7년 후에도 수원에서 꾸준히 활약할 수 있다면 아마 지금보다 팬들이 더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수원은 축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상징적인 선수를 더 많이 배출해 낼 필요가 있다. 지금은 껍데기만 수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곽희주를 제외한다면 아직은 너무나 생소한 선수들이다.

수원이 더 매력적인 클럽이 되려면

포항이 그런 면에 있어서는 K리그에서 무척 의미 있는 클럽이다. 올 시즌 6경기 이상 나선 18명의 평균 근속 년수가 무려 4.2년에 이른다. 황진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포항에 입단해 10년째 이 팀에서 뛰고 있고 황지수와 박희철, 김광석도 7년 동안 포항에 헌신하는 중이다. 신광훈과 신형민, 김태수, 노병준, 조찬호 등 선발을 오가는 선수들도 대부분 4~6년씩 포항에서 뛰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축구 클럽이라기보다는 이제 팬들도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꾸준히 이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런 팀이 성적이 한 동안 바닥을 친다한들 팬들의 마음이 바뀔까. 선수가 좋은 실력을 유지해 팀에서 외면 받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가 소모품이 아닌 가족이라는 구단의 마인드 역시 중요하다.

나는 경기장에 가면 팬들이 어떤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런데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가면 이제는 팀을 떠난 이들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유독 많다. 안영학과 이관우, 조원희, 백지훈, 송종국, 에두, 서동현 등 지금은 다른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들에게 열띤 응원을 보낸다. 오래된 팬들이 있는 만큼 선수들도 오랜 시간 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면 수원월드컵경기장이 더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이지 않을까. 경기력도 좋고 충성심 높은 팬들도 많은 수원에 없는 것 한 가지, 바로 수원 유니폼이 너무나도 익숙한 오래된 선수다. 이것만 있다면 수원은 더 멋진 클럽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