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 첫사랑을 다시 만난 이들이 풀어가는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무척이나 잘 그려낸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뒤 나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20대 초반에 결혼해 지금은 애가 둘이다. 영화를 보고 몰래 그녀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는데 이제는 아줌마가 다 돼 있었다. 언제나 내 기억 속 그녀는 수지였고 지금은 한가인이 돼 있어야 정상인데 젠장, 영화와 현실은 이렇게 다른 모양이다.

어제(17일)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스페인과의 평가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1,2차전인 카타르전과 레바논전을 위한 명단을 발표했다. 박주영 발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고 최강희 감독은 결국 박주영을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박주영이 대표팀에 없다는 사실 만큼 이 선수가 대표팀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바로 염기훈이다. 최강희 감독과 뜨거운 첫사랑을 했지만 결국 논란과 오해 끝에 헤어져야 했던 바로 그 염기훈말이다.

염기훈과 최강희 감독의 첫 만남

무명이던 염기훈은 호남대학교 4학년이던 2005년 전국대회에서 득점왕과 도움왕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로 입단을 앞두고 여러 K리그 팀에서 염기훈 영입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수원블루윙즈에 가고 싶었지만 호남대 신연호 감독의 의견은 달랐다. “수원에 가면 경기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 많은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팀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염기훈은 자신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전북 최강희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최강희 감독과 염기훈의 인연은 2006년 이렇게 시작됐다.

최강희 감독은 염기훈을 지켜보고 이런 말을 했다. “수비력이 형편없다. 공격력도 특별하지 않다.” 대학 무대를 평정한 염기훈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낮은 자세로 임했다. 최강희 감독의 독설은 결국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염기훈은 팀의 기둥이자 수비의 중심인 최진철을 찾아가 수비하는 법부터 다시 배웠고 2006년 개막전에서부터 선발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펄펄 날았다. 전반기에만 5득점 4도움을 기록하면서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인 것이었다. 최강희 감독과 염기훈의 행복한 시간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때 시련이 찾아왔다. 전반기 내내 맹활약하던 염기훈은 7월 팀동료 김형범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뿜어져 나올 정도로 큰 사고였다. 다행히도 출혈이 멈춰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2개월 동안 경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후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라운드를 누볐고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에서는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면서 전북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신인왕과 대표팀 승선, 아시아 정상 정복 등 전북에서의 1년은 이렇게 행복한 일로 가득했다.

전북 팬들의 염기훈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당시 스타 선수를 그리 많이 보유하지 못한 전북으로서는 ‘초대형 신인’ 염기훈의 등장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1년 만에 염기훈은 전북의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고 팬들은 2007년에도 염기훈이 맹활약 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2007년 시즌이 시작되자 염기훈은 곧바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컵이라는 큰 무대에 서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전북과의 관계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염기훈과 최강희 감독의 이별

2007년 7월 아시안컵 도중 언론을 통해 염기훈이 수원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수원이 염기훈의 바이아웃 조항인 15억 원 이상을 전북에 제시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수원 구단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했지만 염기훈을 잡기 위해 이적료를 포함해 무려 20억 원의 돈을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전북 팬들은 “염기훈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했고 구단에서도 “염기훈을 잡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염기훈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최강희 감독도 구단에 “염기훈이 필요하다”고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구단 관계자가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염기훈을 만나 “잔류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최강희 감독은 직접 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과 치르는 평가전에까지 찾아가 염기훈과 대화를 나눴다. 수 차례 최강희 감독이 염기훈과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기란 쉽지 않았다. 염기훈의 부모님이 전북 구단을 찾아가 “제발 아들의 이적을 허락해 달라”고 최강희 감독에게 부탁했고 최강희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염기훈을 이적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염기훈의 다음 행선지는 수원이 아닌 울산이었다. 울산의 정경호와 임유환을 염기훈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 양측의 의견은 엇갈린다. 전북 구단에서는 “염기훈이 이적을 강력히 요청했고 전력누수를 우려해 이적료가 아닌 대체 선수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정경호와 임유환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최강희 감독이 개인적으로 수원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수원 이적 불가를 통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반면 염기훈은 “전북은 내가 마음대로 수원 이적을 꿈꾼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수원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언론을 통한 싸움은 계속됐다. 염기훈은 “전북에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불쾌한 감정을 토로했고 전북은 “이미 에이전트를 통해 선수와 수원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했다.

다른 사랑을 만나 행복했던 그들

염기훈과 전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전북 팬들은 염기훈을 “배신자”라고 했고 염기훈은 “난 억울하다”고 반박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그러면서도 염기훈은 자신을 키워준 최강희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웠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최강희 감독님과 오해를 풀지 못하고 떠나게 돼 무척 슬펐다.” 누구의 말이 맞건 염기훈과 최강희 감독은 이렇게 등을 돌려야 했고 염기훈은 울산으로 떠난 뒤에도 최강희 감독에게 전화 한 통 하지 못할 정도로 서먹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염기훈은 이후에도 “팬들이 내가 먼저 수원 이적을 원했다는 잘못된 사실을 진실로 알고 있다는 게 섭섭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이 염기훈 한 명에게 의존하는 팀은 아니다. 이제는 염기훈을 잊었다”면서 염기훈을 대신해 전북에 입단한 정경호를 꾸준히 칭찬했다. “이렇게 좋은 선수가 왜 울산에서 부진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염기훈을 대신해 전북에 온 정경호는 이적하자마자 수원전에서 도움 두 개를 기록했고 포항과의 맞대결에서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전북으로 온 임유환은 지금까지도 전북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전북은 염기훈을 잃었지만 정경호와 임유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고 이후에도 강팀으로 거듭났다.

염기훈은 울산을 거쳐 2010년 수원으로 이적했다. 첫 시즌에 부상으로 출장 기회가 적었음에도 도움 8개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지만 K리그에 돌아온 뒤 FA컵 결승 부산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았다. 그리고 2011년에는 수원 수장에 선임되면서 수원의 상징으로 우뚝 섰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수원을 떠나 경찰청에 입단했다. 하지만 K리그 무대에 설 수 없는 염기훈은 대표팀 발탁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고 조광래 감독 후임으로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돼 더더욱 대표팀 승선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전북 시절 잡음을 일으키며 팀을 떠난 염기훈을 최강희 감독이 다시 품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둘이 부르는 노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그런데 놀랍게도 염기훈이 다시 최강희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국가대표팀 26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염기훈은 “최강희 감독님께 꼭 보답하고 싶다”고 감격적인 대표팀 재승선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최강희 감독도 “염기훈의 능력을 인정한다. 기대를 걸고 있다”고 그의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4년 전 좋지 않은 이유로 결별했던 최강희 감독과 염기훈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연말 K리그 시상식에서나 어색하게 인사하던 둘의 만남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더군다나 해외파와 K리그 선수들을 제치고 R리그에서 뛰고 있는 염기훈이 다시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건 다소 의외의 선택이기도 하다.

최강희 감독은 신뢰로 선수들을 다스린다. 그는 전북이 이동국을 영입하면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나타냈을 때 “동국이는 전방에서 골만 넣으면 된다”고 무한한 신뢰를 나타냈고 결국 이동국을 부활시켰다. 이동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북 선수들은 최강희 감독의 무한한 신뢰에 충성심으로 답했다. 이미 한 차례 최강희 감독과 틀어졌던 염기훈을 대표팀으로 불러들인 것 역시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운털 박힌 염기훈을 과감히 발탁한 최강희 감독과 죄송한 마음에 보답하고픈 염기훈이 대표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둘이 파주에서 처음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서로 오해해 헤어졌던 첫사랑이 다시 만날 때의 두근거림이 있지 않을까. ‘건축학개론’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축구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