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기회를 접해 주제 넘게도 학생들에게 축구 칼럼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를 하면서 가끔 학생들에게 토론 수업을 시킨다. 사실 조금 내가 날로 먹으려는 생각도 있지만 칼럼이란 게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찬반양론이 팽팽한 주제를 가지고 이런 수업을 하는 게 무척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토론의 단골 주제는 손흥민의 국가대표 차출 반대 논란과 이천수의 K리그 복귀였다. 이보다 더 찬반양론이 팽팽한 주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주제는 어느 한쪽으로 여론이 기울지도 않고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무척 탄탄하다. 그런데 이제는 토론 주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에닝요의 귀화 논란으로 말이다. 며칠이 지나도 이 이슈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에닝요의 귀화를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모두 팽팽하다. 아마 이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두 시간은 때울 수 있을 것 같다.

에닝요 귀화, 객관식일까? 주관식일까?

개인적으로 에닝요의 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다. 나는 귀화 선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 귀화선수가 대표팀에 승선했다면 에닝요도 그럴 자격이 충분하겠지만 에닝요가 제1호 귀화선수 출신 국가대표가 되기에는 상징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의견이 정답은 아니다.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이고 이는 축구팬들과 독자들이 ‘아, 저런 의견도 있구나’라면서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에닝요 귀화논란이 무슨 OMR카드에 정답 마킹하는 것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다.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문제다.

나는 에닝요 귀화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최강희 감독은 지지한다. 무슨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와 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이다. 에닝요 귀화 추진과는 별개로 최강희 감독의 능력을 믿고 있다. 나와 하나의 이슈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최강희 감독이 나에게 ‘죽일 놈’이 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다 한국 축구를 위해서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건전하게 토론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나. 나는 에닝요의 귀화에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면 되고 찬성하는 이들은 찬성하는 이유를 내세우면 된다.

그런데 지금 일부 언론을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건 틀린 답이니 그만두라”는 식이다. 다들 학창시절에 건전한 토론 문화에 대해 배웠을 텐데 공부 할 만큼 하신 분들이 최강희 감독을 향해 “오만하다”면서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 일부에서는 “에닝요가 귀화하면 나중에 최강희 감독이 전북으로 돌아갔을 때 외국인 쿼터 제한을 피할 수 있어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만약 최강희 감독이라면 이런 비난을 듣고도 훗날 전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닝요 귀화를 추진할까. 안하고 만다. 전북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이런 일을 추진하나.

최강희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론은 온갖 소설을 썼다. 공신력 있는 곳에서 여론 조사를 한 것도 아닌데 ‘국민정서’를 들이대면서 최강희 감독이 독선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고 에닝요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라돈치치도 예로 들었다. 매일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이때까지 최강희 감독은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을 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추측이 기사로 전달됐고 이는 곧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가장 믿을 수 없는 이니셜 기사로 최강희 감독을 흔들기도 했다. 왜곡은 도를 넘었다.

친언론성향의 최강희 감독이 보다 못해 직접 나섰다. 최강희 감독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귀화문제가 처음 나왔던 시점은 작년 12월”이라면서 “쿠웨이트전이 끝나고 다시 귀화의사를 전달받았고 협회, 기술국과 여러 각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귀화가 갑작스럽게 추진됐다는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또한 “나는 에닝요와 라돈치치 중 누가 우선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두 선수 모두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라돈치치는 한국 체류기간이 모자라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니셜 보도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다.

지금껏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는 대부분이 추측성 기사였다. 에닝요 귀화 문제를 넘어 최강희 감독 흔들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에닝요의 귀화 자격을 떠나 재능 있는 선수를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이 보유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대표팀 감독에게 “나중에 전북으로 돌아가 외국인 쿼터를 피하려는 속셈 아니냐”고 묻는 건 참 힘 빠지는 일이다. 나는 에닝요 귀화에는 부정적이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서 탐나는 선수를 수급하기 위한 최강희 감독의 노력은 높이 산다. 더군다나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독이 든 성배’를 아무도 들지 않으려 할 때 희생을 감수하고 책임을 떠안은 게 최강희 감독 아닌가.

훌륭한 토론 주제, ‘문태종과 문태영 그리고 에닝요’

충분히 건전한 토론으로 흘러갈 수 있는 문제다. 언젠가는 대표팀 ‘순혈주의’도 깨질 텐데 이번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해 건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에닝요가 당장 귀화를 하건 아니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프로농구에서 문태종과 문태영이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는데 이들이 혼혈이라는 점은 에닝요와 사안이 다르지만 한국어에 서투른 건 에닝요와 다르지 않다. 반면 이들은 한국에서 3년을 체류한 뒤 한국 국적을 얻었지만 에닝요는 한국에서 무려 7년을 살았다. 거주 시기와 한국 문화 이해가 특별귀화의 요건이라는 건 이미 이 사례를 통해 깨졌다.

그렇다면 대한체육회의 에닝요 귀화 반대 이유는 문태종, 문태영과 비교했을 때 결국 한국인 피가 섞었느냐 아니냐는 사실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에닝요와 비교해 한국어 구사 능력이 다르지 않고 거주 시기도 더 짧은 이들이 특별귀화 자격을 얻었으니 참 토론하기 좋은 주제다. 스포츠를 떠나 이 주제의 토론은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러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걸 바라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무리일까. 감독 흔들기와 왜곡 보도가 중점이 될 게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해서도 심도 깊고 건설적인 토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대한체육회는 “에닝요가 복수국적을 취득할 경우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태종과 문태영의 사례를 조금만 공부해 보면 충분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들은 특별귀화를 한 뒤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을 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복수국적을 유지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미국 국적을 행사할 수 없다. 한국어를 못하는 에닝요의 진정성을 논하려거나, 복수국적 취득에 따른 막대한 이득이 반대의 이유라면 문태종과 문태영의 사례를 토대로 더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거주 기간으로 따져야 하는지, 섞인 피를 따져야 하는지 이 주제만 놓고 따져도 논문 하나는 나올 기세다.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시간을 감독 흔들기로 보내고 있다. 이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가 불과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에닝요 귀화에 대해 반대한다면 예의를 갖춰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이에 대해서만 반박하자. 최강희 감독에 대한 흔들기나 인신공격은 지금 시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수가 전장에 나가려고 무기를 챙기고 있는데 “그 무기는 들고 나가지 말라. 당신 지금 정신이 있는 거냐”면서 잔소리하는 꼴이다. 잔소리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전장에 곡괭이를 들고 나가도 “그래. 넌 살아 돌아올 수 있어”라고 힘을 실어주는 게 더 낫다. 지금은 잔소리보다 응원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너무 이기적이다. 결국 결과를 책임지는 건 감독이다. 월드컵을 나갈지 못 나갈지 따져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우리는 최강희 감독에게 부담스러운 짐만 주고 운신의 폭은 좁혔다. 이래놓고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화살은 다 최강희 감독에게 돌아간다. 나중에 깔 때 까더라도 지금은 최대한 최강희 감독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어떨까. 에닝요 귀화 문제와 관련해 최강희 감독의 인성과 자질까지 들고 일어난 이들이여,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면 그 답답했던 속이 풀리겠는가. 에닝요 귀화에 반대하는 이들이라도 딱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 최강희 감독과 대표팀을 흔들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지금 주관식 문제를 객관식, 아니 OX문제로 착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