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을 마친 선수들이 숨을 헐떡이며 라커룸으로 들어오자 수석코치가 말한다. “어서 짐 챙겨. 시간이 없으니 빨리 차에 타.” 전반전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은 채 땀이 식기도 전에 차에 올라타 어디론가로 향했다. 왜 이들은 경기를 다 끝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갔을까. 오늘은 사흘 동안 다섯 경기를 치른 내셔널리그 수원FC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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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는 2003년 창단 이후 100승을 돌파한 내셔널리그의 강호 중 한 팀이다. (사진=수원FC)

도민체전에 나선 수원FC

경기도 체육대회(이하 도민체전)가 지난 5월 11일 개막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열린 이번 58회 도민체전은 32,000여 명이 참여하는 경기도 최대 규모의 체육행사였다. 언론에 자세히 소개된 적은 없지만 경기도 내 지자체에서는 자존심을 걸고 이 대회를 준비했다. 축구를 비롯해 20개 종목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이 대회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열렸지만 예선 경기가 많은 축구는 개막 하루 전인 10일부터 경기를 시작했다.

내셔널리그 수원FC는 수원시 대표로 이 대회에 나섰다. 수원시청에서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며 수원FC로 명칭을 바꾼 이 팀은 여전히 수원시청에서 지원을 받는 터라 이 대회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시청에서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팀이 시 대표로 대회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수원FC뿐 아니라 내셔널리그 용인시청과 챌린저스리그 부천FC1995도 이 대회에 나섰고 이들을 제외한 지자체는 생활 체육 축구 팀 중 실력 있는 이들을 추려 연합 형태로 대회에 참가했다.

수원FC는 지난 10일 예선 첫 경기에서 의정부시 연합을 상대로 가벼운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했다. 의정부시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이들이 모였다지만 밥 먹고 공만 차는 내셔널리그 수원FC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용인시청은 화성시 연합팀과의 첫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수원FC로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FC는 이튿날 8강전에서 승리한 뒤 12일 4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사흘 동안 다섯 경기의 강행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부터 이 문제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도민체전 4강을 치르기로 한 이날 내셔널리그 경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비록 시간은 달랐지만 하루에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평택에서 오후 2시 20분에 화성 연합팀과 도민체전 4강전을 치러야 했고 곧이어 오후 5시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천안시청과 내셔널리그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도민체전 엔트리 18명을 이미 제출한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한참 고민하다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주전급 선수 세 명을 도민체전 4강 전반전에만 출전시킨 뒤 수석코치의 차에 태워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으로 모셔오는(?) 특급 작전을 계획한 것이었다. 전·후반 각각 35분씩 경기를 치르는 도민체전에서 전반전에 승부를 걸고 이들을 내셔널리그 경기장으로 옮겨오는 작전이었다. 그렇게 수원FC 주축 선 수 세 명은 평택에서 전반전을 마치고 급히 차에 올라타 수원으로 향했다. 이 선수들 외에도 나머지 선수들은 반반으로 쪼개져 한 팀은 평택에서, 또 다른 한 팀은 수원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하루에 두 경기를 치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도민체전 4강전에서 승리한 수원FC는 이날 내셔널리그 천안시청과의 경기에서도 후반 막판 극적인 결승골로 2-1 승리를 챙겼다. 조덕제 감독의 용병술(?)이 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곧바로 또 다시 도민체전 결승전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전날 내셔널리그 경기에서 혈투를 치른 수원FC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평택으로 가 도민체전 결승전에서 파주 연합팀을 만나 3-0으로 완승을 거두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사흘 동안 무려 다섯 경기나 치르는 강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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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선수로 인정받아야 할 선수들이 여전히 아마추어 선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아쉽다. (사진=수원FC)

‘녹초 된 선수들’, 제도 개선 필요하다

수원FC의 이 같은 사연은 그 어떤 언론에서도 소개되지 않았다. 도민체전과 내셔널리그에 관심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비록 도민체전이 전·후반 70분 경기라 할지라도 선수들이 나흘 동안 다섯 경기나 치르는 동안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건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명색이 내셔널리그의 강호라는 팀이, 2부리그 입성을 긍정적으로 준비하는 팀이 이런 악조건에서 경기를 치르는 동안 우리는 오로지 에닝요의 귀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어느 팀이 우승할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는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팀들은 시의 대표 자격을 거부할 수가 없다. 창단 목적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축구팬들이 보기에 내셔널리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도민체전이 이들에게는 어찌 보면 더 중요한 경기일수도 있다. 도민체전에서 체면을 세워줘야 이 팀들의 유지 목적이 달성되는 셈이다. 사흘 동안 무려 다섯 경기나 치러도 선수들의 체력은 뒷전이다. 내셔널리그는 1년 일정이 미리 짜여 있어 도민체전에 나선다고 일정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프로 선수로 인정받아야 할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아마추어 취급 받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다.

도민체전도 좋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팀들의 대회 참가도 좋다. 수준 높은 팀이 대회에 참가해 질을 높이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행군까지 펼쳐야 한다는 건 선수 보호를 위해서는 잘못된 일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 보호를 위해 선수가 경기에 나서면 48시간은 휴식을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자체 눈치를 봐야 하는 수원FC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는 나도 피곤하지만 선수들은 더 피곤해 한다”면서도 “어쩔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공론화 필요

그러면서도 조덕제 감독은 이 문제가 일방적인 제도의 단점으로만 해석되는 걸 경계했다. 수원FC가 도민체전에 참가해 전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분명히 있다는 게 조덕제 감독의 생각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또 이 말도 맞다. “도민체전에서 수원FC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용인시 역시 용인시청 축구단을 창단했다. 안양 역시 긍정적으로 시청팀 창단을 검토 중이다. 이런 대회에 참가해 우리 실력을 보여줄수록 다른 지자체에서도 팀 창단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축구하는 제자들의 취업문이 넓어지는 계기가 된다면 잠시 몸이 피곤해도 분명히 얻을 게 있다.”

맞는 말이다. 수원FC는 자신들을 희생해 다른 지자체에 팀 창단에 대한 자극을 줬다. 나흘 동안 다섯 경기라는 강행군을 치르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 험난한 일정을 견뎌내면서도 내셔널리그에서 승리를 거두고 도민체전 우승까지 차지했으니 얻을 건 다 얻은 셈이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에도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도민체전까지 나서야 하는 우리네 축구 현실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도민체전이 계속되는 한 되풀이 될 문제다. 더군다나 2부리그 구성을 고민하는 축구계가 한 번쯤은 공론화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나흘 동안 다섯 경기 지켜보는 것도 피곤한데 뛰는 선수들이야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