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온 광저우 헝다를 제압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K리그가 더욱 강해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과 더불어 광저우가 약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광저우에 이장수 감독이 없다면 이 팀은 마치 효린이 빠진 시스타처럼 싱거울 것 같다. 광저우에서 이장수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이 팀 감독을 맡고 있으니 광저우를 무너뜨리기 위해 영화에서처럼 전략적으로 이장수 감독을 빼내는 것도 하나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광저우, 이장수 내치기 들어갔나?

최근 이장수 감독을 흔드는 이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프로축구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듣던 그가 안방에서 전북에 1-3으로 한 번 패한 뒤로는 경질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중국 언론에서는 “이장수 감독의 능력이 의심스럽다. 광저우가 바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장수 감독 깎아내리기에 나섰고 일부 팬들이 경기장에 내건 감독 비난 현수막을 소개하기도 했다. 냄비 근성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다지만 그 동안 멋진 경기를 펼치다가 한 경기 패배로 이렇게 분위기가 반전됐다는 게 참 놀랍다.

하지만 이 중국 언론 보도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들은 없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 선수 영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광저우는 지도자 역시 스타 감독을 영입하고 싶어한다. 그런 면에서 이장수 감독은 인지도가 그렇게 뛰어나거나 스타성이 있지는 않다. 당연히 감독을 바꾸고 싶어하는데 성적이 괜찮으니 경질할 명분이 없었다. 부임 후 곧바로 광저우의 2부리그 우승을 이끈 이장수 감독은 지난 시즌 1부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올 시즌에도 리그 1위를 질주하는 중이다. 당연히 경질하려면 무언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장수 감독이 구단 수뇌부의 입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점도 구단으로서는 불만이다. 선수 기용 문제나 영입 정책에 간섭하길 좋아하는 수뇌부는 타협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이장수 감독을 좋게 볼 리가 없다. 자신의 꼭두각시를 앉혀 놓고 감독 위에서 군림하고 싶지만 이장수 감독은 이런 감독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성격이다. 광저우로서는 지금과 같은 좋은 성적도 성적이지만 말 잘 듣는 감독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감독이 와도 스타 감독이라면 이장수 감독만큼 해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자신감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장수 감독은 광저우를 중국 최고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주목하는 클럽으로 만들었다. 워낙 자금력이 좋으니 어떤 감독을 앉혀도 똑같은 결과를 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곤란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팀을 많이 봐 왔다. 유럽 축구에서도 스타 선수가 즐비하지만 유독 감독 자리는 좌불안석인 곳이 많다. 스타 선수들이 즐비해 개성이 넘치는 팀을 하나로 묶지 못하면 이 팀은 당연히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없다. 이장수 감독은 탁월한 전술뿐 아니라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광저우가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을 이장수 감독의 통솔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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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충칭을 FA컵 우승으로 이끈 뒤 눈물을 흘리는 이장수 감독의 모습. (사진=충칭 리판 공식 홈페이지)

“나와 가오펑 중 한 명을 선택하라”

이장수 감독은 중국 프로축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이다. 과거 중국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모든 걸 맡기는 풍토였다. 하지만 그가 충칭 리판을 이끌고 2000년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1998년 6월 하위팀인 충칭 지휘봉을 잡은 이장수 감독은 전격적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축구스타가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얻고 부를 축적하기 때문에 조금만 성공하면 거만해지는 상황이었다. 비록 하위권이긴 하지만 충칭에도 몇몇 스타 선수들이 분위기를 흐리고 있었다. 훈련장에 늦게 나타났고 술을 마신 뒤 다음 날 훈련장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일도 있었다. 특히 간판스타 가오펑은 이장수 감독의 행동 하나 하나에 트집을 잡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장수 감독은 구단 사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와 가오펑 중 한 명을 택하라.” 결국 가오펑을 비롯한 주축 선수 세 명이 팀을 떠났다. 처음에는 그의 선택에 불만을 갖는 이도 있었지만 이장수 감독은 단호했다. 그리고 2부리그 강등권에서 허덕이던 팀은 곧바로 다음 시즌 리그 4위로 뛰어 올랐고 이듬해 충칭 역사상 처음으로 FA컵 우승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개인 성향이 강했던 중국 프로축구에서 처음으로 조직력이 무언지 보여준 팀이 바로 이장수 감독의 충칭이었다. 당시 충칭 구단의 100여개 서포터스 소모임 중 절반 이상이 이장수 감독 개인 서포터스였을 정도였고 그가 팀을 떠나려하자 팬들이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이장수 감독은 통솔력과 리더십, 카리스마로 최고 명장 반열에 우뚝 섰다.

그는 이후 칭다오 역시 FA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베이징 궈안에서도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환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베이징 시절에도 팀의 간판 공격수 고마웨이가 이장수 감독에게 도발한 적이 있었다. 고마웨이는 일부러 팀 규정을 어기면서 이장수 감독을 흔들었다. 그러자 이장수 감독은 그를 2군으로 내려 보낸 뒤 방출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0년부터 광저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광저우에서도 그의 지도력은 빛났다. 워낙 선수들의 능력이 뛰어난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한 그는 독특한 인센티브 제도를 개발했다. 이기면 500만 위안(약 9억 2000만 원), 비기면 100만 위안(1억 8000만 원)의 수당을 받지만 패할 경우 300만 위안(5억 5000만 원)을 벌금으로 내는 제도다. 스타 의식에 젖어있는 선수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광저우는 지난 시즌 26경기에서 18승 7무 1패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광저우, 이장수 감독 내치는 건 ‘자폭’

그런데 광저우가 전북전에서의 단 한 차례 패배로 이장수 감독을 흔들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단 한 경기에서의 패배 문제가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광저우의 성장과 중국 프로축구의 발전이 부담스러운 한국으로서는 이장수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일 수도 있다. 만약 광저우가 이장수 감독을 내치고 세계적인 스타 감독을 데려온다면 오히려 이게 한국에는 더 득이 될 수도 있다. 전략이나 전술은 이장수 감독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중국의 특성을 이해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할 지도자는 많지 않다. 또한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감독들이 장기적으로 광저우에 앉아 있을 가능성도 그리 많지는 않다.

광저우가 이장수 감독을 내치는 건 자폭에 가깝다. 수백억 원을 투자해 선수를 영입하는 것처럼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세계적인 지도자를 영입하면 당장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수뇌부 마음대로 팀을 주무를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당장 몇 경기에서는 그 성과가 나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스타 선수들까지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와 팀에 대한 애정을 갖춘 이장수 감독을 내보낸다는 것은 큰 손해다. 중국 프로축구가 영원히 한국 발 밑에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싶으면 이장수 감독을 내쳐도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장수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의 성장을 돕지 않으면 훨씬 더 좋다.

하지만 나는 이장수 감독이 이 위기를 넘어서 계속 광저우에 남았으면 한다. 이건 중국이 한국을 넘어설 정도의 축구 실력을 갖춘다고 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곳에 있건 의식 있는 축구 감독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외부적인 압력에 굴복하거나 여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는 건 축구 감독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다. 언론에서 흔들어도 이장수 감독은 지금처럼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언론에서는 이장수 감독을 비난하는 일부 팬들의 현수막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국한된 일이다. 지금도 이장수 감독은 대다수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광저우 구단과 손잡은 언론의 보도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니 이게 여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

타협하지 않는 이장수 감독

나는 이장수 감독을 존경한다. 그는 그가 속한 리그가 어디건 축구에 대한 자존심을 꺾지 않는 남자다. 승부조작이 성행한 중국에서 이장수 감독은 목숨 걸고 이를 거절했다. 한 남자가 숙소로 전화를 찾아와 승부조작을 제의하자 이장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50억 원을 주면 하겠다.” 이는 승부조작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의 표현이었다. 그러자 승부조작을 제의한 사람은 “까불지 말라. 네 목숨이 두 개가 아니면 가담하라”고 했지만 이장수 감독은 단호하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절대로 안한다. 잘못 찾아왔다.” 그리고는 선수들을 불러 모아 “의심스러운 경기가 있다면 기자회견을 열어 다 폭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장수 감독은 중국 축구에서 횡횡하던 승부조작에서 이렇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늘 외로웠다. 배타적인 중국 축구에서 이장수 감독을 흔드는 세력이 엄청나다. 충칭을 지휘하던 2001년에는 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에 시달려야 했다. 타협할 법도 했지만 팀을 떠나는 강수를 두면서 굽히지 않았고 2009년 베이징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선두에 승점 2점이 뒤진 리그 3위를 기록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베이징은 이장수 감독을 불러 이런 말을 했다. “훈련량을 줄이고 고참과 신인들의 훈련을 따로 진행하라. 그리고 이 선수는 선발로 쓰고 이 선수는 쓰지 말라.” 이장수 감독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그건 감독이 정하는 일이다. 이 지시를 내린 구단 수뇌부에 내 뜻을 분명하게 전하라. 난 그렇게 못한다.” 결국 타협하지 않은 이장수 감독은 경질되고 말았다.

베이징을 떠난 이장수 감독에 대한 팬들의 지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 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이장수 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경질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무려 76%였고 “경질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18%에 그쳤다. 경질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아침 숙소 앞에 모여든 팬은 100명이 넘었다. 그들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 고마웠다”는 프랜카드를 내걸고 이장수 감독과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장수 감독이 K리그를 위협할 정도로 중국 프로축구 발전을 이끌고 있지만 그래도 밉지 않다. 자랑스러운 축구인으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그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고 승부조작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면 이게 더 창피한 일이다.

이장수 감독을 응원하는 이유

이장수 감독은 중국에서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 지금 광저우에서 그를 흔들고 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가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멋지게 이 난관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광저우 역시 이장수 감독을 대신해 세계적인 명장을 영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손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세계적인 명장은 많지만 단호하면서도 애정을 가지고 오랜 팀을 휘어잡을 수 있는 지도자는 몇 없다. 세계적인 명장이 축구 변방인 중국에서 끝까지 목숨을 걸고 버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장수 감독이 아니면 그 어떤 지도자도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팀에 애정을 보낼 수는 없다.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이장수 감독은 지금 중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유혹과 타협이 눈 앞에 있지만 모든 걸 거절하고 한국 축구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지금이야 많은 감독들이 한국을 떠나 아시아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축구 한류 1세대’인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한국 축구의 위상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적으로 만나는 이장수 감독이지만 나는 끝까지 그가 광저우에서 살아남아 K리그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소속 리그를 떠나 가장 존경할 만한 지도자인 이장수 감독을 응원한다. K리그 팀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정상 문턱에 먼저 가 이장수 감독의 광저우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