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먹어. 두 번 먹어"

지난 주말 K리그가 끝난 뒤에도 말들이 참 많았다. 수원-성남전에서 에벨찡요에게 부상을 입힌 수원 스테보와 제주-경남전에서 홍정호를 다치게 한 윤신영에 대한 사후 징계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스테보는 두 경기 출장 정지와 120만 원의 제재금이, 윤신영에게는 네 경기 출장 정지와 120만 원의 제제금이 내려졌다. 공개적으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토로한 성남 신태용 감독은 벌금 5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결국 살인 태클 논란은 이렇게 해당 선수와 감독이 징계를 받고 일단락됐다.

경기 도중 제대로 이 거친 플레이를 잡아내지 못한 심판의 잘못도 있지만 사후 징계를 통해 이를 바로 잡으려는 프로축구연맹의 노력은 좋게 보고 싶다. 스테보와 윤신영은 본의가 아니었겠지만 어찌됐건 거친 플레이로 에벨찡요와 홍정호에게 커다란 부상을 입혔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지난 K리그에서 있었던 논란 하나는 쏙 빠졌다. 아마 이대로 잊혀질 모양이다. 전남 이종호에게 석연찮은 퇴장 명령을 내린 주심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이렇게 마무리 된 것 같다.

이종호의 이상한 퇴장 판정

지난달 29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과 인천의 경기에서 전남 이종호는 전반 15분 인천 이윤표와 충돌했다. 이윤표가 이종호의 유니폼을 잡았고 이종호가 이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팔을 휘젓자 이윤표가 쓰러졌다. 이윤표가 이종호의 팔꿈치에 맞은 듯했다. 그러자 주심은 휘슬을 불고 파울을 선언한 채 이종호에게 달려가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레드카드를 다시 한 번 꺼내 이종호에게 퇴장을 알렸다. 누가 봐도 경고누적 퇴장을 명령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종호가 억울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종호는 이 전에 경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경기 도중 처음으로 옐로카드를 받았는데 주심의 경고누적 퇴장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종호는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연맹 측은 경기가 끝난 뒤 주심을 옹호했다. “한 번에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내려고 했는데 실수로 옐로카드를 꺼냈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날 주심의 동작은 석연찮았다. 이종호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옐로카드를 꺼내 손을 높이 들어 경고를 알린 뒤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고누적 퇴장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다이렉트 퇴장인데 실수로 옐로카드를 꺼내 들어 정정하려던 동작은 전혀 없었다.

이날 주심이 정말 다이렉트 퇴장을 주려다가 실수로 옐로카드를 꺼냈을까. 만약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주심을 두둔하기 위해 연맹 측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이 문제는 상황이 심각하다. 냉정하게 이 문제를 판단해야 할 연맹이 심판 편에 서서 거짓을 옹호했다면 큰 문제다. 적어도 이 상황을 지켜본 이들은 이 주심이 다이렉트 퇴장이 아니라 경고누적 퇴장 명령을 내렸다고 충분히 오해를 할 만 했다. 대부분이 그렇게 판단했다. 아, 연맹과 해당 주심만 빼고 말이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에서 논란을 일으킨 주심은 지난해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심판상을 수상한 주인공이다.

입 열려면 500만 원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2007년 서울 이상협은 제주와의 경기에서 후반 1분 골을 기록한 뒤 후반 40분 제주 황지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옐로카드를 받았다. 당시 황지윤은 이미 경고가 하나 있었고 이상협은 첫 경고였지만 심판은 착각하고 두 선수 모두에게 경고누적 퇴장을 명령했다. 그러자 서울 구단에서 격렬히 항의했고 결국 심판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상협이 골을 넣었을 때 실수로 득점자에 메모하지 않고 경고를 받은 선수에 메모를 해 오해가 있었다”면서 이상협의 퇴장 조치를 철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종호를 퇴장시킨 심판은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판정과 해명을 내놓았다. 물론 퇴장을 주고 안주고는 심판 마음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전에 이미 불거졌다. 리플레이를 돌려보면 이종호의 팔꿈치는 이윤표를 가격하지 않았다. 이윤표가 이종호의 왼쪽에서 몸싸움을 펼쳤기 때문에 이종호가 휘두른 오른팔에 맞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해성 감독도 “팔꿈치가 접근한 것은 맞지만 닿은 것 같지는 않다”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팔꿈치로 가격하지 않은 선수에게 경고를 줬다는 점과 경고누적이 아닌데도 오해 살 만한 제스처로 레드카드를 꺼냈다는 점까지 의문점 투성이 판정이었다. “카드 먹어. 두 번 먹어.” 뭐 이런 건가.

하지만 결국 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어 선수 두 명과 감독 한 명을 징계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선수와 감독의 잘못은 칼같이 지적하고 소환해 징계를 내리면서 정작 판정의 주인공인 심판만은 너무 감싸는 모양새다. 이종호의 퇴장으로 안방에서 인천과 0-0 무승부에 머문 전남은 제대로 심판 판정에 어필을 하지도 못했다. 정해성 감독은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조금 그랬다”면서 불만에 대해 돌려 말했다. 이 판정에 항의했다가는 신태용 감독처럼 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심판의 판정이 잘못됐어도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했다가는 ‘얄짤 없이’ 500만 원이다. 아마 몇천만 원짜리 ‘자유이용권’이 있다면 구입하고 싶은 감독이 꽤 될 것이다.

심판이 왕이 되는 일은 없어야

뭐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심판 판정이 의문 투성이인데도 입 다물고 이 판정을 존중해야 하는 건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던지 아니면 오해 없는 깔끔한 판정을 내리던지 둘 중에 하나는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둘 다 아니라면 그냥 심판 판정이 어떻건 지금처럼 이렇게 “판정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조용히 받아들여야 한다. 판정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면 아예 불만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논란을 일으킨 선수와 감독에게는 철퇴를 내리면서 심판은 왜 감싸고 도나. 더 하고 싶은데 나도 벌금 500만 원 낼까봐 이쯤 해야겠다. K리그에서 심판이 왕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