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는 누구일까. 데얀? 몰리나? 라돈치치? 물론 이 선수들의 기량도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언급하면서 제주 산토스를 빼놓는다. 수도권 빅클럽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제주에서 뛰고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산토스는 올 시즌 9경기에서 5골 4도움의 폭발적인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빅클럽 외국인 선수들이 숱하게 언론에 소개될 때 곁다리로나 보도되는 그는 가진 능력 만큼은 그 어떤 K리그의 다른 외국인 선수보다도 뛰어나다. 어제(25일) 직접 폭우를 뚫고 제주도로 날아가 ‘소리 없이 강한’ 산토스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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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맹활약하고 있는 산토스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제주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온 여고생과 한 비행기를 타 시끄러워서 혼났다. 당신 요새 펄펄 날고 있다. 컨디션은 어떤가.

사실 개막 직후에는 무척 힘들었다. 나름대로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준비가 덜 됐었다. 팀이 원하는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너 경기를 치렀는데 감독님과 코치진, 동료들, 가족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팀의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려고 집중했더니 이제는 슬럼프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지금은 컨디션이 무척 좋다. 날아갈 것 같다.

올 시즌 제주는 5승 3무 1패를 기록하면서 리그 2위에 올라있다. 예상했던 결과였나.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나도 그렇고 다른 선수들도 걱정이 많았다.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팀에 스타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전 선수도 대거 물갈이 됐기 때문이었다. 같은 브라질 출신인 자일과 호벨치, 그리고 감독님과 함께 과연 우리 팀이 잘할 수 있을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막상 개막을 코앞에 두고는 젊은 선수들이 무척 많이 변해있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넘쳤고 체력적으로도 무척 강해졌다. 지금으로서는 2010년 준우승 이상의 좋은 성적, 우승까지도 넘볼 만한 분위기다.

올 시즌 벌써 5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K리그 공격 포인트 1위를 기록 중이다. 축하한다.

고맙다. 하지만 골과 어시스트에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공격 포인트를 올려 개인적인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내가 팀을 위해 자그마한 보탬을 해줄 수 있다는 데 더 감사한 마음이다. 누군가의 골과 어시스트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팀 동료 모두가 행복을 나눠 가져야 한다. 내 공격 포인트는 나 혼자 잘나서 올린 게 아니라 우리 동료들과 코치진, 가족들이 도와줘서 기록한 것이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는 득점에 비해 도움이 부족했는데 올해는 9경기 만에 벌써 도움을 네 개나 올렸다.

지난 시즌에는 김은중과 배기종이 공격 최전방에 섰다. 개인 기량이 무척 좋은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이 선수들이 떠나고 신인과 무명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기량을 따지고 보면 김은중이나 배기종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배일환과 서동현, 자일, 호벨치 등은 패스를 연결하면 뭔가 해줄 것 같은 믿음이 있다. 또한 그 선수들도 나를 믿는다. 믿음이 있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골을 돕는 패스를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수도권 빅클럽에서 뛰는 데얀이나 몰리나, 라돈치치 등과 비교한다면 능력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지만 덜 주목받고 있다. 아쉽지는 않나.

누가 더 인기가 있고 누가 더 주목을 받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제주가 수도권가 떨어져 있어 언론의 주목을 덜 받지만 상관없다. 내가 얼마나 운동장에서 능력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능력만 보여주면 당신처럼 나를 주목해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제주도까지 내려와 인터뷰를 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올 시즌 골과 어시스트 모두 상위권에 올라있는데 득점왕과 도움왕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하고 싶나.

브라질에서는 K리그처럼 득점과 어시스트를 뚜렷하게 나눠 집계하지 않는다. 단지 골을 넣은 선수만 주목할 뿐이다. 나는 브라질에서 득점보다는 도움이 더 많은 선수였는데 정작 마무리를 다른 선수들이 하니 별로 집중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K리그에서는 어시스트 집계도 따로 하고 좋은 패스를 한 선수도 주목받는다. 무척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축구의 묘미는 골 아닌가. 도움왕도 좋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래도 득점왕이 더 탐난다.

그러면 득점왕과 팀의 우승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 같으면 무조건 득점왕이다.

당연히 우승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하지만 지난 라운드 서울전 극적인 동점골 오심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경기 도중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경기가 끝난 뒤 오프사이드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서울과 2010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는데 당시 데얀도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골을 넣었지만 득점으로 인정됐다. 이렇게 누군가는 판정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심판도 사람이나보니 실수는 할 수 있다. 내가 평가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찌됐건 그 결과에는 만족한다.

당신의 키는 공식적으로 165cm로 나보다 무려 2cm나 작다. 이건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다. 아픈 이야기라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겠지만 아마 실제 키는 이것보다 더 작은 것 같다. 나는 작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당신처럼 작으면 키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을 것 같다.

K리그는 키가 크거나 빠른 선수를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처음에 K리그에 왔을 때도 나를 못미더워하는 시선을 느꼈다. 나를 이곳에 소개한 에이전트 역시 내가 여기에서 통할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박경훈 감독님도 “키가 작은데 헤딩골을 넣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2010년 성남전에서 헤딩골을 넣었고 그 뒤로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머리로만 네 골을 더 넣었다. 매번 헤딩 골을 넣을 때면 바로 박경훈 감독님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지금 머리로 넣는 것 보았느냐’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킨다. 리오넬 메시나 호마리우도 작은 키로 헤딩 골을 잘 넣는다. 나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키가 작으면 패배자라고 한다. 나는 키가 작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내 주변에도 작은 키 때문에 고민인 사람들이 참 많다.

브라질에서 나도 어릴 적부터 그런 놀림을 받았다. 브라질에서는 작은 키를 놀릴 때 벽 밑에 손가락 한마디 만하게 칠해져 있는 페인트 부분을 가리키거나 식당의 작은 의자에 빗댄다. 내 별명도 항상 이랬다. 그런데 이걸 당사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당사자만 손해다. 자신감이 떨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냥 듣고 흘렸다. 세상을 보면 꼭 큰 사람만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작은 사람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노력의 여부이지 키가 아니다. 딱 봐도 당신 키와 내 키가 엇비슷한데 키로 글 쓰는 건 아니니 희망을 가져라.

고맙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과 키가 비슷하다고 들었다. 거기에다가 미모도 상당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작은 키로 미모의 여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좀 알려 달라.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지금 내 아내의 여동생을 원래 알고 지냈다. 브라질에서 내가 속한 작은 마을의 한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고 있어 훈련이 끝난 뒤 시간도 남아 이걸 앉아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생이 오더니 자기의 언니를 인사시켜줬다. 딱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심장이 그렇게 뛴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번 튕겼다. 그렇게 튕기니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매일 전화를 하거나 같이 교회에 가자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중요한 건 마음이지 키가 아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하부리그에서 주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됐나.

당신의 말처럼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팀에서 뛰었었다. 에이전트가 한국 축구 관계자와 알고 있어서 나를 소개해 줬다. 플레이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제작해 제주 구단에 보냈고 좋은 반응이 왔다. 많은 선수들이 새로운 무대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고 나 역시도 K리그가 브라질을 떠나 첫 해외리그여서 주위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두 번 생각 안 하고 바로 한 번에 오케이했다. 새로운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많은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은 키 때문에 선입견이 있어 힘들었지만 지금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

K리그에서 3년 동안 활약하고 있다. K리그 무대에서 뛰는 느낌이 어떤가.

브라질은 축구의 전체적인 흐름이 약간 느릿느릿하면서도 기술로 승부한다. 그런데 K리그는 기술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스피드와 경기 흐름이 무척 빠르다. 공을 잡으면 5초~10초의 여유를 부리면서 주변을 살피고 개인기를 펼칠 수 있는 브라질과 다르게 K리그에서는 공을 잡고 3초만 흘러도 이미 상대편의 태클이 들어오거나 몸싸움으로 이어진다. 또한 브라질에서 경기가 끝나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올 때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었는데 K리그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거의 반 죽어서 나온다.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올 시즌 가장 피곤한 상대는 누구였나.

어떤 특정 수비수를 꼬집어 말하기 보다는 9라운드까지의 상대 중 부산 수비 전체가 참 상대하기 피곤했다. 수비가 아주 꽉꽉 막혀 있어서 어떻게 헤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러나보니 패스도 마음대로 연결하지 못했다. 요새 부산을 보고 질식수비라고 하는데 다음 맞대결에서는 꼭 골을 넣어보고 싶다.

한국 생활은 어떤가.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아 음식 문제는 없다. 고등어와 불고기를 좋아하고 특히나 된장찌개가 너무나 맛있다. 그런데 이적 첫 해에는 아내가 임식을 해 브라질에 가 있어 무척 외로웠다.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한국에서 가족과 지내고 있었는데 나는 경기가 끝난 뒤 이틀 정도 휴가를 받으면 언제나 혼자였다.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것도 우울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다 한국으로 와 외롭지 않다. 브라질 출신으로 지구상의 정반대 나라에 와 사랑받는 게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이 “제주에 있다가 더 돈 많이 주고 더 좋은 환경으로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브라질에서 축구를 배워 처음 나온 곳이 바로 여기다. 제주가 나와 잘 맞고 제주 사람들의 친절함이 너무 좋다. 마치 브라질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제주에서 오랜 시간 뛰고 싶다.

반대로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선후배 문화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브라질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 친구처럼 지내는데 한국은 한 살 차이만 나도 깍듯이 선배로 대접한다. 또 존댓말이라는 게 있어 생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적응했고 한국의 문화를 이해한다. 나라마다 다 다른 풍습이 있는 것 아닌가. 이제는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한테는 “형”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올해는 골을 많이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다. 또한 가족과 여기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도 나의 중요한 목표다. 멀고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지만 언젠가는 브라질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국가대표를 꿈꾸지 않나.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꿈을 정해놓고 쫓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산토스는 인터뷰를 마친 뒤 능숙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한국 문화에 완벽히 적응하고 뛰어난 실력은 물론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산토스를 좋아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비록 작은 체구지만 그럼에도 K리그 무대를 호령하는 그의 멋진 플레이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