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골을 안 먹으면 지지 않는 경기다.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골을 넣는 것 만큼이나 골을 먹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부산의 질식수비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나는 이 논란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 지기 싫어 골을 먹지 않는 건 축구에서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두 골 먹어주고 시작하는 게 축구는 아니다. 죽어라 패는 놈이 있으면 죽어라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는 놈도 있어야 재밌는 법이다.

부산은 최근 네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수비적인 경기 운영으로 이 네 경기에서 2득점 무실점하며 2승 2무를 기록했다. 서울과 전북 등 공격력이 강한 팀들을 상대로 대단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에이스’ 한상운을 성남에 내주고 양동현이 경찰청에 입대한 부산으로서는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같은 전술을 택했다. 더군다나 올 시즌 초반 황재훈과 이요한 수비수들이 연이어 부상을 당한 뒤에도 숨 막히는 수비력을 선보였다는 점은 놀랄 만하다. 박용호와 이경렬, 에델 등 다른 팀에 가면 냉정히 말해 당장 주전급으로는 부족한 선수들로 선전하고 있다.

축구에는 판정승이 있을 수 없다. 비겼을 경우 점유율이나 유효 슈팅의 개수에 따라 승패가 나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축구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강팀을 상대로 뒷문을 걸어 잠근 채 경기에 임하다가 어영부영 한 골 넣은 뒤 이기는 것도 결국에는 축구다. 만약 축구에 판정승이 있다면 이런 약팀은 죽어도 이길 수가 없다. 아무리 경기를 지배하고 잘하는 팀이 있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기지 못하는 건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렇기에 골의 가치가 더 빛나는 법이기도 하다.

당연히 수비축구가 문제될 것은 없다. 장기 레이스에서 지지 않고 승점을 쌓는 것도 리그에 잔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세 번 비기는 것과 한 번 이기는 건 승점이 같다. 그런 면에서 부산은 부족한 공격 자원으로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수비축구를 욕할 게 아니라 이 수비를 뚫지 못하는 상대팀의 공격을 지적하는 건 어떨까. 보는 관점에 따라 이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왜 부산의 상대팀들은 일방적인 공격을 하고도 90분 동안 부산의 수비를 단 한 번도 뚫지 못하는 건가.

K리그에는 무려 16개 팀이 있다. 그런데 다 똑같은 축구를 목표로 한다. ‘닥치고 공격(닥공)’, ‘신나게 공격(신공)’, ‘무조건 공격해(무공해)’ 등의 신조어가 남발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다 말 장난일뿐 화끈한 공격축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팬들을 위해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건 좋지만 공격축구가 축구의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격축구는 좋은 거고 수비축구는 나쁜 건가. K리그 개막을 앞두고 16개 구단 감독이 마치 짠듯이 “우리는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하는 것만큼 심심한 것도 없다.

때로는 수비축구를 하는 팀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미드필드에서의 점유율로 90분을 보내는 팀도 있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뻥축구’로도 효과적인 공격을 하면 그것도 하나의 팀 컬러가 된다. 공격적인 팀 컬러는 이러한 여러 축구 스타일 중 하나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과거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전남 축구가 참 인상 깊었다. 끈적끈적하게 상대를 붙잡고 늘어지는 전남은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는 스타일을 구사했다. 하지만 우리는 허정무 감독의 무승부 축구를 마치 사라져야 할 죄악으로 평가했다. 후반 40분이 지난 상황에서 지고 있어도 “괜찮아. 우리는 어떻게 해서는 비길 거야”라며 태연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 있다는 건 리그의 새로운 재미다.

우리가 즐겨보는 해외축구에서도 공격이 전부는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강호들의 경기를 즐겨봐 공격적인 축구에 익숙해 진 것 같다. 하지만 리그 잔류를 위해 싸우는 하위권 팀들의 경기도 좀 챙겨보는 게 어떨까. 이 팀들은 강팀과 만나서 실점하지 않는 게 1차 목표다. 이기면 좋겠지만 지지만 않아도 대성공이다. 부산이 전북과 서울을 상대로 한 골도 내주지 않고 비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팀 사정상 공격적인 축구를 할 수 없는 팀이 수비적인 축구로 승점을 차곡 차곡 쌓고 있는 게 뭐 그리 큰 문제인가.

또한 부산이 막무가내로 수비만 하는 건 아니다. 상대 전술에 따라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수비한다. 상대팀이 원톱을 내세우면 포백을 맞서고 투톱을 꺼내들면 스리백으로 대응한다. 미드필더 역시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많이 뛴다. 단순히 상대가 공격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수비 라인을 내려 세우는 건 아니다. 수비축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부산은 이렇게 어려운 축구를 잘 소화하고 있다. 8라운드 현재 부산은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부산과 엇비슷한 전력의 대구, 성남, 상주, 전남, 경남이 부산보다 아래다. 성적이 나오고 있는데 부산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부산의 질식수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 질식수비를 하나의 재미요소로 바라보는 게 어떨까. 얼마나 오랜 시간 실점하지 않는지, 어떻게 실점하지 않고 버티는지도 당연히 K리그를 지켜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질 거 뻔히 알면서도 공격하라고 강요하는 건 이기적인 일이다. 과거 하위권이면서도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던 변병주 감독 시절 대구도 있지만 그게 꼭 하위권 팀들이 가야할 방향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강등을 놓고 싸우는 무척 예민한 시점 아닌가. 부산이 공격적인 축구로 탈탈 털리다가 강등 당하면 그때 가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누군가에게나 이상형은 다르다. 몸매를 가장 먼저 따지는 이도 있고 얼굴을 가장 먼저 보는 이도 있다. 나처럼 외모를 떠나 성격이 잘 맞는 걸 가장 먼저 따지는 이도 있다. 나는 가수 지나의 외모가 아니라 그녀의 성격을 참 좋아한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공격축구를 해야 하지만 이게 모든 팀의 이상형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다가올 K리그 경기에서 다른 팀들이 어떻게 골을 넣는지만큼이나 부산이 또 얼마나 잘 버틸지를 주목할 것이다. 부산의 수비축구가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축구가 싫은 상대팀이라면 골을 넣고 이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