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또를 통해 인생역전을 꿈꾼다. 월요일 아침 로또 복권을 사면 한 주에 행복하다. 만약 1등에 당첨되면 무얼 해야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좋은 차 한 대 사고 강남에 좋은 집 하나 사고 남은 돈으로 ‘FC현회'라는 챌린저스리그 팀 창단해서 구단주 놀이나 좀 해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꽝이다. 자동차 할부 못 내고 아등바등하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 FM을 통해 축구단 창단에 대한 대리만족을 할 뿐이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지만 로또보다 더한 인생역전을 이룬 축구팀도 꽤 있다. 억만장자가 팀을 인수해 가난하고 평범했고 축구팀이 졸지에 부자 구단이 된 경우다. 유럽에도 몇몇 팀이 있더니 이제는 광저우나 분요드코르 등 아시아 팀들도 이러한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조금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고 전세기 타면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배가 아프다. K리그 팀들은 한 번 원정 경기를 떠나려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일주일에 두 경기씩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K리그에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아니 자랑했던 전북이 광저우를 상대로 안방에서 1-5 참패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돈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승부조작 이후 2부리그에서 망해가던 팀을 어마어마한 부동산 재벌이 인수한 뒤 순식간에 이렇게 변했으니 돈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우리도 억만장자가 나타나 챌린저스리그 팀 하나 인수해 이런 꿈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들 내가 로또에서 1등에 당첨되기를 빌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돈으로 치장해 팀 하나 만들면 얼마나 손쉽고 즐거울까. 우리가 모니터를 부여잡고 FM을 통해 선수를 영입할 때 이들은 현실에서 FM놀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현상 자체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뭐든 순리가 있는 법이다.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가 명문구단이 되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다. 수십 년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한 걸음씩 더 도약해 나간 팀이 진짜 강팀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건 명문구단과 부자구단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첼시를 부자구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명문구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영국 현지에서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행사하는 큰 영향력 아래의 첼시를 비꼬는 말 ‘첼스키’가 흔히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장난감 하나를 샀다”면서 “언젠가 이 장난감이 질리면 내다버릴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첼시도 마찬가지고 분요드코르도 마찬가지고 광저우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선택에 의해 졸지에 부자가 된 클럽은 이 사람의 변심으로 다시 평범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원래부터 평범한 사람이야 매일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불편한 줄 모르지만 외제차 타고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대중교통 이용하려면 얼마나 불편할까. 한 사람의 마음이 변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선수를 마구 영입하던 팀에서 선수를 내다 팔아야 운영할 수 있는 팀이 된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신흥 부자구단을 욕할 생각은 없다. 이들도 축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신흥 부자구단이 축구의 정답인 줄 아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실제로 분요드코르는 이제 평범한 구단이 됐다. 3년 전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과 히바우두를 앞세워 아시아 축구 시장을 뒤흔들었던 분요드코르는 포항 원정 경기를 위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김해로 한 번에 오는 전세기를 타기도 했다. 선수들 뿐 아니라 취재진과 팬들도 이 비행기를 이용했다. 억만장자이면서 우즈베키스탄 독재 정권의 딸이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던 분요드코르는 K리그 구단과는 차원이 다른 지출로 부러움을 샀다. 그녀가 팀을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2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년 뒤에는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땄다. 이때부터 자국리그에서는 막강한 경기력을 뽐내면서 독주했다.

하지만 더 이상 분요드코르는 부자가 아니다. 원하는 만큼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홍보 효과가 없다고 느낀 구단주가 운영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줄이 끊긴 분요드코르는 주요 선수를 내다 팔았고 이번에 포항 원정 때는 방콕을 경유해 무려 20시간이나 걸리는 긴 이동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전세기를 타던 분요드코르가 3년 만에 이렇게 변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행기를 갈아 타기 위해 태국 방콕에서 6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돈으로 무장한 팀은 결국 돈이 없으면 순식간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실력을 갖춘 팀이 망하는 게 10년이라면 돈을 앞세운 팀이 망하는 건 1년도 안 걸린다.

돈 많은 구단이 무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팀보다 더 무서운 건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팀이다. 사실 부동산 재벌이 운영하는 광저우가 무서운 건 지금 뛰고 있는 수백억 원의 몇몇 외국인 선수 때문이 아니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120만 평 규모의 축구학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76면이나 되는 축구장에서 1,672명이 동시에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구단주가 팀 운영에 흥미가 떨어지면 돈줄이 마르고 제대로 굴리기가 어렵다. 이 멋진 프로젝트를 한 명의 돈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수익을 창출해 구단주가 운영에서 손을 떼어도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별로 겁내지 말자.

이런 돈으로 치장한 구단들 사이에서 K리그 구단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삼성그룹 이건희 명예회장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은 하나 뿐이다. 유망주를 키워내는 것이다. 신흥 부자구단은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즉시전력감 선수를 줄기차게 영입하지만 성격이 급해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는 못한다. 오로지 스타에만 혈안이 돼 있다. 분요드코르가 히바우두를 영입할 막대한 자금으로 차라리 어린 선수 1000명을 키워냈다면 아마 이렇게 자금줄이 끊겼어도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돈을 이기는 건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이다. 바르셀로나는 13살의 어린 선수를 키워서 지금도 아주 잘 써먹고 있다. 바로 리오넬 메시다.

이게 바로 K리그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중동이나 중국에서 아무리 돈으로 까불어도 결국 유망주 없이는 못 이긴다. 아무리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외국인 선수를 사 와도 그때만 잠시 반짝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수익의 상당 부분을 다시 유소년 육성에 투자하는 K리그가 돈으로 치장한 몇몇 다른 아시아 구단보다 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광저우와 ‘맞짱’뜰 이가 있다면 환영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현실은 적금이 두 달 밀리고 주머니에는 담배 한 갑 살 돈밖에 없지만 나는 ‘돈질 클럽’이 별로 안 부럽다. 이렇게 자위했으니 이제 로또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