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4라운드 경기가 일제히 열렸다. 진지한 분위기의 리뷰 기사는 다른 데서 다 확인했을 테니 나는 지난 주말 열렸던 8경기 중 가장 관심을 끌만한 이들에 대해 평점을 매겨보고자 한다. 물론 내 마음대로다. 권위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김현회가 매기는 평점이다. 평점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와 ‘스카이 스포츠’만 매기는 게 아니다. 나도 매긴다. 지금부터 지난 주말 열린 K리그 4라운드 경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진규

서울-전북전에서 김진규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전반 3분 서울 진영에서 혼자 공을 몰고 가다가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이게 웬 떡인가. 여유 있게 뒷짐 지고 산책하다가 공원에서 만 원짜리 주은 듯 루이스는 이 공을 잡아 이동국에게 연결했고 이동국은 이를 침착하게 골로 이끌었다. 김진규의 결정적인 실수로 서울은 경기 초반 급격히 흔들렸다. 김진규의 올 시즌 첫 어시스트, 아니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김진규는 자신의 결정적인 실수를 후반 들어 만회했다. 후반 17분 김용대가 골문을 비운 사이 날린 이동국의 슈팅을 골라인 바로 앞에서 발로 막아낸 것이었다. 한 골 넣은 것 이상의 선방이었다. 김진규는 이 경기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김현회 평점 : 그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카페인이 잔뜩 든 커피 같았다. 관중이 따분함을 못 이겨 꾸벅꾸벅 졸 틈을 주지 않았다. 전반전 평점은 0점, 후반전 평점은 10점. 이건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아니다. 전반전 실수를 후반전 완벽한 선방과 퉁쳐 평균 5점이다.

김형일

포항에서 뛰다가 올 시즌 군 입대로 상주 유니폼을 입은 김형일은 포항을 위해 큰 일(?)을 했다. 상주-포항전에 나선 그는 후반 경고를 두 장 받으면서 퇴장당했다. 1-1로 팽팽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항의 결승골은 이때 시작됐다. 김형일이 반칙을 저질러 퇴장당한 지점에서 프리킥을 이어간 포항은 김다솔의 킥을 이어받은 고무열이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지쿠가 마무리하면서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긋지긋하던 아홉수를 벗어난 포항의 400승도 이렇게 달성됐다.

김현회 평점 : 김형일은 포항에는 평점 10점, 상주에는 평점 0점짜리 플레이를 펼쳤다. 아직 포항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나보다.

대구 골대

대구는 울산을 안방에서 1-0으로 제압했다. 대다수가 울산의 승리를 점쳤지만 결국 대구가 이변을 일으켰다. 대구는 전반 12분 마테우스의 골을 잘 지켜내면서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올 시즌 5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 중이던 울산의 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정규리그에서 2연승을 거둔 대구는 울산을 제압하며 울산전 9경기 연속 무패(1무 8패) 기록을 깼다. 이날 경기에서 울산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대구 골키퍼 박준혁의 선방도 돋보였지만 울산의 맹공을 틀어막은 대구 골대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구의 골대는 아키와 김신욱, 최재수의 슈팅을 무려 세 차례나 온 몸(?)으로 막아내면서 울산의 시즌 첫 패배를 이끌어 냈다.

김현회 평점 : 대구는 골키퍼가 두 명이었다. 대구 구단은 대구스타디움 골대에 영구결번을 부여해야 한다. 평점 10점.

이진호

올 시즌 울산에서 대구로 이적한 이진호가 경기에서 승리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근호가 J리그에서 유턴해 국내로 복귀,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보상 선수 신분으로 대구에 가게 된 이진호의 통쾌한 복수전이었다. ‘울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좀처럼 울산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진호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반드시 승리하겠다. 나를 대구로 보낸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며 전의를 불태웠고 실제로 경기에 나서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승리가 확정되자 이진호는 눈물을 쏟으면서 대구 동료들과 포옹했다. 또한 울산 팬들에게 다가가 큰절을 올리면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이진호의 카카오톡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 “그들은 나에게 팀 팬 그 이상이니까요.” 서럽던 시절에 대한 복수를 하면서도 그들을 여전히 아낄 줄 아는 이진호는 진짜 남자다.

김현회 평점 : 이진호의 축구화에 빨간색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면 아마 대구 관중석에서 울산 관중석까지 빨간색 발자국이 찍혔을 것이다. 그는 양 쪽 팬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박수를 받을 만한 선수다. 평점 10점.

전복

서울 최용수 감독은 전북을 제압한 뒤 기자회견에서 “전북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북을 이기려고 이번 주에 전복을 많이 먹었다”면서 “이제 전복을 먹지 않아도 돼 속이 편하다”고 밝혔다. 비록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지만 그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디펜딩 챔피언’ 전북을 상대로 서울이 시원한 역전승을 거둔 건 전복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 같다. 최용수 감독은 음식도 가릴 만큼 전북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김현회 평점 : 전복의 희생정신은 대단했다. 이제는 이 한 몸 불사르고 어느 이름 모를 정화조로 떠난 전복에 평점 9점을 부여한다.

서동현

서동현은 수원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기대만큼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06년 수원에 입단해 초반에는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고 2010년 강원으로 떠난 뒤 올 시즌부터는 제주에서 새로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수원을 적으로 만났다. 서동현은 이날 경기에서 1-1로 팽팽하던 후반 종료 직전 일을 냈다. 산토스가 밀어준 공을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결승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수원 팬들에게는 ‘미운 오리’였던 서동현이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팔 걸 그랬다.

김현회 평점 : 서동현이 왜 ‘축구 천재’인지 보여준 경기였다. 그는 이 한 방으로 수원 팬들에게 ‘축구 바보’라는 이미지를 지워버렸다. 평점 9점.

정성훈
전북 최전방 공격수 정성훈은 서울과의 경기에서 최종 수비수로 나섰다. 조성환과 임유환, 심우연, 이강진 등 수비수들이 모두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이흥실 감독대행이 어쩔 수 없이 정성훈을 수비수로 기용해야 했다. 김정우와 정성훈을 놓고 수비 기용을 고민했던 이흥실 감독대행은 큰 키를 앞세운 정성훈이 제공권 장악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책골을 기록할 뻔하는 등 위태로운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안정된 수비력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기존 포지션이 아니라 팀 상황이 좋지 않아 맞지 않은 옷을 입고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흥실 감독대행은 “이강진의 부상 회복 속도가 느리면 다음 경기에도 정성훈을 수비수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김현회 평점 : 공격 본능으로 자기 골대에 한 골 넣을 뻔했지만 김민식의 선방으로 기사회생했다. 수비수로 첫 출전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평점 7점.

날씨

지난 주말, 특히 토요일(24일) 날씨는 최악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4월인데 눈이 펑펑 쏟아지질 않나, 갑자기 햇볕이 쨍쨍 내리 쬐질 않나, 나도 뒷바람을 받아 100m를 9.87초에 뛸 수 있을 정도의 강풍이 불질 않나 자기 멋대로였다. 이런 날씨에서 경기를 한다는 건 선수들에게도 힘든 일이고 지켜보는 관중에게도 힘든 일이다. 부상 위험도 상당할뿐더러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축구를 지켜보는 관중은 엄청난 추위와 싸워야 했다. 한 겨울이라면 내복이라도 입지만 봄이라는 생각에 무방비 상태로 경기장을 찾은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날씨였다. 전국적으로 강풍이 몰아친 지난 토요일 경기는 공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아 경기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잊지 말자. 축구장에는 겨울과 여름만 있고 5월이 되기 전까지는 한겨울이다.

김현회 평점 : 날씨는 변화무쌍한 전술 변화로 우리를 혼동시켰다. 마치 조광래 감독의 포지션 파괴와 스위칭 플레이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K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씨를 컨트롤 할 수는 없었다. ‘날씨의 신’ 박은지 누나도 어쩔 수 없었다. 평점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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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이 하프타임 때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몰려든 모습. 정말 추워도 너무 추웠다.

인천 마스코트과 주먹 휘두른 대전팬

인천-대전전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인천의 2-1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인천 마스코트 ‘유티’ 탈을 쓴 이가 대전 팬들 앞에 가 심기를 건드리자 대전 팬들이 이에 격분해 그라운드로 난입해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경호원과 대전 선수들이 이를 제지했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를 본 일부 인천 팬들 역시 달려가 대전 팬들과 시비가 붙었고 주먹이 오갔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출동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다행히 큰 부상을 당한 이는 없었지만 이런 폭력 사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프리미어리그급’ 경기장에서 관중 매너도 ‘프리미어리그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현회 평점 : 미련한 플레이였다. 상대에게 도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때문에 관중석과 그라운드에는 철창이 생길지도 모른다. 앞으로 지어질 경기장은 점점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평점이 아깝다.

싸이

서울-전북전에 하프타임 초대가수로 나선 가수 싸이는 흥겨운 무대로 관중을 압도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싸이의 ‘챔피언’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흥분한 싸이는 그라운드를 무대 삼아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면서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러다가 전북 팬들이 자리한 S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소리 질러~” 이미 가수 티아라에 한 번 당한 경험이 있는 서울 관중은 원정팬들까지 이 축제에 끌어 들이려는 싸이에게 순식간에 야유를 보냈다. 그러자 싸이는 머쓱한 듯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꼭 그러실 필요까지 있나요.” 그리고 싸이는 다시는 전북 팬들을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김현회 평점 : 싸이의 지구력과 순발력과 판단력은 훌륭했다. 그는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그라운드를 누볐고 작은 실수를 범하자 곧바로 이를 수습하는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평점 8점.

홍철

부상으로 성남의 강원 원정에 함께 하지 못한 홍철은 인천-대전전을 관람하기 위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인내심이 부족한 홍철은 춥다는 이유로 후반 30분경 경기장을 떠났다.

김현회 평점 : 관중으로서 그의 자질은 부족했다. 이런 체력으로는 차라리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게 나을 것이다. 평점 3점.

김주영

서울-전북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딱 36초 뛴 서울 수비수 김주영은 경기가 끝나고 나에게 <위닝일레븐> 결투를 신청했다. 이미 한 번 대파한 적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지만 결국 나는 4전 전패를 당하면서 영혼까지 털리고 말았다. 트레이드 파동이다 뭐다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건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동안 죽어라 <위닝일레븐>만 한 게 틀림없다.

김현회 평점 : 그는 그라운드에서 쏟아 부어야 할 체력을 ‘플스방’에서 모두 쏟아 부었다. ‘플스방’에서 만큼은 리오넬 메시 부럽지 않다. 평점 9점 준다.

K리그 4라운드 경기가 끝났다. 지난 주말 K리그에는 감동과 환희,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변이 속속 연출됐고 명승부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어떤 이에게는 적은 관중수일수도 있지만 추위와 함께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관중석을 지킨 이들과 투혼을 불사른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선두권 다툼을 벌인 서울과 ‘디펜딩 챔피언’ 전북의 맞대결부터 물러설 수 없는 탈꼴찌 싸움을 펼친 인천-대전전까지 참 볼거리가 많은 K리그 4라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