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네이트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베플’을 본다. 하지만 ‘베플’이 다는 아니다. 왜냐. 비록 ‘베플’은 아니지만 ‘서일연’님의 댓글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네이트 댓글계의 세익스피어’ 서일연님의 팬이다. 스포츠와 연예, 시사를 아우르는 그의 화려한 삼행시를 보고 있자면 존경심마저 든다. 아마 아직 서일연님의 댓글을 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그의 댓글을 찾아보길 바란다. ‘베플’에만 익숙한 네이트에서 서일연님은 묘한 매력으로 은근히 즐거움을 준다. ‘서 : 서울 한복판에서, 일 : 일본 사람이, 연 : 연을 날렸다’는 식의 그의 댓글은 ‘천재 시인’ 이상 이후 난해하지만 가장 뛰어난 작품성이 있다.

이번 주말 가장 이슈가 되는 축구경기는 K리그 서울-전북전 일 것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이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비록 전북이 주춤하고 있지만 서울과 전북의 선수 구성을 볼 때 명품 경기가 될 요소는 충분하다. 훗날 데얀과 이동국은 K리그 전설로 기억될 것이고 그들이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본다는 건 K리그 역사의 한 조각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과거 ‘티아라의 저주’로 얽힌 두 팀의 대결은 이번에도 예측하지 못한 즐거운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빅매치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네이트로 치면 이 경기는 ‘베플’이다.

하지만 이번 주말 이 경기만 열리는 건 아니다. 나는 오늘 서울-전북의 ‘베플’이 아니라 이 ‘베플’ 사이에 숨어있는 서일연님의 댓글 처럼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할 두 경기를 소개하려 한다.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살짝 빗겨있지만 충분히 다른 의미로 매력적인 두 경기를 추천하고 싶다. 한국 축구의 독특한 구조와 악조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펼쳐진 적 없던 숨겨진 명품 경기가 이번 주말 두 차례나 열린다. 챌린저스리그(과거 K3리그) 서울중랑코러스무스탕-서울FC마르티스전,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와 대전시티즌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록 이번 주말 서울-전북전이라는 빅매치도 좋지만 그 열기에 가려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이 두 경기도 무척 흥미롭다. 오늘은 이 두 경기에 대해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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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코러스무스탕 축구팀이 창단식을 갖는 모습. 이 팀은 올 시즌부터 챌린저스리그에 참가하게 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아무도 모르지만 의미 있는 ‘서울 더비’

‘더비’는 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두 팀의 맞대결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는 그 의미가 치열한 라이벌전으로 살짝 바뀌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더비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프로축구가 생겨나고 기업 위주로 팀이 꾸려진 상황에서 한 지역에 두 개의 팀이 연고를 두고 운영되는 건 시스템상으로 문제가 있었다.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 더비’도 사실 한 지역으로 묶기에는 조금 억지스럽다. 수원블루윙즈와 수원FC, FC서울과 서울유나이티드 등은 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참가하는 리그도 다르고 아직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실력이 엇비슷하지는 않다.

가장 이상적인 건 한 지역을 쪼개 무수히 많은 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 목동에 한 팀이 있고 논현동에 한 팀이 있고 노원구에 한 팀 있는 식이다. 한 지역에도 무수히 많은 팀을 보유한 영국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전라남도 전체를 대표하는 전남드래곤즈와 전라북도 전체를 대표하는 전북현대는 커버하는 지역이 너무 넓다. 기반은 광양과 전주에 두고 있지만 한국 축구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광역 연고제가 아닌 도시 연고제로 전환할 경우 소외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막대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이 전라남도 대표가 아닌 광양시 대표라면 스폰서 유치에도 문제가 생긴다. 지금까지 광역 연고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한국에서 한 도시의 두 팀이 같은 리그를 통해 경기를 펼친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이제는 현실이 됐다. 비록 K리그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참 의미 있다. 이번 토요일(24일) 중랑구립잔디구장에서 펼쳐지는 서울중랑코러스무스탕과 서울FC마르티스의 대결은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인구 천만의 거대한 서울시를 대표하는 팀이 아니라 서울 중랑구 팀과 서울 강북 팀이 맞대결을 펼치는 ‘진짜 서울 더비’가 펼쳐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마 100년 전 영국의 축구장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록 아직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챌린저스리그 경기지만 무척 뜻 깊은 경기다. 경기력을 떠나 제대로 된 의미의 더비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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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FC마르티스가 안방인 강북구민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 (사진=서울FC마르티스)

창단 배경부터 흥미로운 두 팀

두 팀의 창단 배경도 흥미롭다. 코러스무스탕은 법무법인이 만든 팀이다. 여기에서 사기 치면 큰일 난다. 1982년 중랑구에서 조기축구팀으로 시작한 이 팀은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대 출신 변호사들이 만든 이 팀은 올 시즌을 앞두고 챌린저스리그 입성을 선언, 기회를 잡지 못해 축구를 포기할 위기에 모인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코러스무스탕은 K리그 출신 선수들은 받질 않는다. 병역 해결을 위한 K리그 출신 선수들을 영입한 강팀도 있지만 코러스무스탕은 철저히 순수 아마추어 출신으로 팀을 꾸렸다. 상위리그에서 내려오는 하향식 선수 영입이 아니라 이 팀에서 뛰다가 상위 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상향식 선수 수급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철학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 중퇴생이 주축이 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뛰는 ‘파파스축구단’과 손을 잡고 선수들 인생 설계도 해준다. 변호사는 물론 검사, 의사 등이 도움을 줬다.

마르티스 역시 독특한 팀이다. 이 팀은 교회에서 만들었다. 2002년 창단해 벌써 10년째 운영되고 있는 팀으로 2009년 챌린저스리그에 참가하기 전부터 전국 클럽축구대회에서 30여 차례나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상비군 제도를 도입해 100여 명의 성인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고 있고 초등부와 중등부, 고등부 유소년 팀까지 보유하고 있다. 챌린저스리그 현역 선수들이 1:1로 유소년을 지도하는 파격적인 제도까지 도입했다. 현재 챌린저스리그에 참가 중인 한 팀을 제외하고도 성인 팀이 네 개나 더 있고 이 팀 중 한 팀이 향후 내셔널리그에 입성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허재원, 김범수 등 전현직 K리그 선수들도 비시즌에는 이들과 함께 몸을 만들 정도로 팀의 위상도 확고하다. 유봉기, 이태홍, 이광조 등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를 선임했고 최근에는 박지성을 J리그로 스카우트했던 일본 국가대표 출신이자 교토상가 단장을 역임했던 기무라 분지를 총감독으로 앉혔다.

코러스무스탕과 마르티스는 한국 축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거대 기업이 대도시를 연고로 하며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로서는 지역 밀착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특정 종교가 운영하는 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목적으로 투자해 선수들을 발굴하고 지역과 밀착한 팀 운영에 대해서는 당연히 박수를 보내야 한다. 아담한 경기장에서 중랑구와 강북을 대표로 하는 서울의 두 팀이 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이미 우리가 30여년 전 처음으로 프로축구를 출범할 때 보였어야 하는 모습이다. 비록 이런 환경이 갖춰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진정한 의미의 서울 더비가 치러질 수 있다는 건 경기 내용과 무게를 떠나 참 기쁜 일이다.

남의 불행이 우리의 행복인 경기

같은 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는 K리그 인천과 대전의 경기가 열린다. 서울-전북전이 시즌 초반 선두권 다툼의 분수령이 될 경기라면 이 경기는 꼴찌 탈출을 위한 숙명의 일전이 될 것이다. 나란히 3전 전패를 기록한 두 팀은 이 경기에서 패하면 당분간 그 충격으로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들은 서울-전북전에 관심을 갖겠지만 선두권 다툼 못지 않게 이 경기가 중요한 이유다. 양 팀 모두 최악의 분위기다. 인천은 야심차게 영입한 김남일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설 수 없고 대전 역시 최은성의 은퇴 파문 이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솔직히 말해 어떤 팀이 승리를 거둘지 나도 잘 모르겠다. 서울-전북전과는 다른 의미로 참 팽팽한 승부가 될 것이다.

이 경기가 중요한 이유는 K리그에 강등 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올 시즌 상주를 포함한 두 팀이 하위리그로 강등될 예정이어서 이번 인천-대전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 한 경기로 강등이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올 시즌 경기력을 놓고 본다면 이 경기에서의 패배는 리그 잔류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리그 최하위나 그 바로 위에 있는 팀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지만 올 시즌에는 다르다.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 팀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이 경기는 서울-전북전 이상으로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원래 제3자의 입장으로 남의 불행을 지켜보는 게 잔인하지만 재미있지 않나. 두 팀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켜보는 K리그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 경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흥미를 지녔다.

‘3S 정책’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태어난 프로축구는 그동안 승강제를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이 일을 추진했지만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애초부터 잘못된 출발로 인해서 정상적인 승강제가 실시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아직 강등팀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시즌 초반 15위와 16위를 기록하고 있는 두 팀이 펼치는 맞대결은 승강제의 묘미를 처음 선보이게 될 것이다. K리그 최하위 탈출은 물론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 팀의 맞대결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투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이 경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다른 의미의 빅매치를 주목하자

코러스무스탕과 마르티스의 경기는 내일(24일) 오후 1시에 열리고 인천유나이티드-대전시티즌전은 오후 5시에 펼쳐진다. 나는 이 두 경기를 다 직접 챙겨볼 예정이다. 아마 이 두 경기를 모두 관람하고나면 굉장히 피곤하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진정한 더비의 첫 걸을 떼는 경기와 강등을 놓고 싸우는 혈투를 지켜보면서 한국 축구의 희망적인 미래에 밥을 안 먹어도 참 배가 부를 것 같다. 서울-전북전이라는 빅매치가 펼쳐지는 이번 주말, 비록 이 경기에는 가렸지만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 다른 경기에도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아마 이 경기를 보면 ‘네이트 댓글계의 세익스피어’ 서일연님이 이런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한 : 한국에서, 국 : 국가대표 경기만, 축 : 축구라고 생각하는 건, 구 :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뭐, 아님 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