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4대4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성도 있었고 분위기도 무척 좋았다. 내가 하는 유머가 빵빵 터졌고 다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너무 오버했다. 헤어지기 전 던진 박영규 성대모사가 문제였다. 연락처를 알려달라면서 웃기고 싶은 마음에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이 여성은 정색했고 나중에 주선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오빠 처음에 볼 때는 참 괜찮았는데 너무 오버하더라. 웃기려고 성대모사하는데 정이 확 떨어졌어.” 결국 나는 무리수를 던지다가 물을 먹고 말았다. 무리수(水)였다.

너무 큰 변화가 부른 두 차례 참패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 전북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최악의 경기력에 머물고 있다. 지난 시즌 중국 프로축구 챔피언 광저우 헝다에 1-5로 대패하더니 지난해 J리그 우승팀 가시와 레이솔에도 또 다시 1-5로 무너졌다. 부상 선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K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경기력을 갖췄다는 전북이 아시아 무대에서 이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건 큰 충격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정우까지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한 전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결과다. 두 경기에서 10골이나 내준 전북은 ‘닥공’에서 졸지에 ‘다 골’ 신세가 됐다.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다.

전북의 부진을 어느 한 명의 잘못이나 실수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흥실 감독대행의 역할은 다소 아쉽다.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으로 잠시 떠난 뒤 지휘봉을 잡은 이흥실 감독대행의 용병술은 결과적으로 이 두 경기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결국 대패를 막지는 못했다. 광저우전에서는 이동국과 에닝요를 투톱으로 기용하는 전술을 썼고 이번 가시와전에서는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전북이 지난 시즌에도 간간히 스리백 전술을 사용하긴 했지만 진경선과 김상식, 최철순으로 이어지는 스리백은 처음이었다. 전북은 마치 발가락 양말에 샌들을 매치한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

물론 임유환과 조성환, 심우연이 나란히 부상을 당해 수비진에 변화가 필요하긴 했지만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술의 큰 틀을 바꾸는 건 무리수였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내주면서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가시와전에서 보여준 전북의 공격도 지난 시즌에 비해 더 적극적이었지만 제대로 된 마무리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에닝요와 김정우, 박원재, 이승현, 이동국 등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를 중원과 최전방에 배치하고도 결국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지난 시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전술은 결국 선수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이게 과연 전북이 맞나 싶었다.

훌륭한 감독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난 광저우전에서도 포지션 파괴 실험이 있었다. 이동국과 에닝요 투톱 외에도 박원재가 왼쪽 풀백에서 미드필더로 올라섰고 김정우와 서상민은 전북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포지션 파괴는 곧 실패로 돌아갔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광저우가 강하다고는 하더라도 전북이 이 정도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 결국 전북은 광저우에 1-5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감독 한 명 바뀌었다고 이렇게 팀 분위기와 경기력이 달라졌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전북의 상황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 동네 ‘짱’이 옆 동네 ‘짱’한테 ‘떡실신’ 당하면 같은 동네 사는 입장으로 참 기분이 그렇다.

이흥실 감독대행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지난 두 차례 경기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선수 기용이 그렇다. 최강희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전북 팬들에게 어필하려는 마음이 강해 보인다. 가시와전의 공격적인 선수 기용은 ‘닥공’이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전북의 수장으로서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여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 것 같았다. 전임 감독이 워낙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 때문에 이흥실 감독대행으로서는 무언가 특별한 무기와 새로운 팀 전술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할 것이다. 이동국-에닝요 투톱이나 변칙적인 스리백 등은 지금까지 전북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장 현명한 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 올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조련하는 게 훌륭한 감독의 역할이다. 기가 막힌 전술 변화와 맥을 짚는 용병술은 앞서 말한 자연스러운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 때 쓰는 임시방편이다. 매번 전술 변화와 용병술로 이기지 못할 경기를 이기게 만드는 건 감독이 아니라 마법사다. 이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흥실 감독대행은 지금 기가 막힌 전술 변화와 용병술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미팅에 나가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결국 무리수를 던진 것과 다를 게 없다.

이흥실 감독대행, 부담감부터 덜어내자

아무리 좋은 선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큰 변화가 생기면 경기력을 끌어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큰 변화보다는 기존의 것들 중 취약한 부분을 찾아 한두 개만 바꾸는 게 다가올 시즌을 위해 좋다. 예뻐지고 싶은 욕심에 얼굴 전체를 한꺼번에 성형수술하는 것보다는 쌍꺼풀이 자리 잡으면 코를 세우고 코가 자리 잡으면 턱을 깎는 게 더 예뻐지는 방법이다. 이런 사례로 현재의 울산을 들 수 있다. 울산은 설기현을 제외한 지난 시즌 선수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기에 이근호와 김승용만이 새롭게 추가됐다. 호흡에도 문제가 없고 단점도 줄었다. 울산은 지금 세상의 쌍꺼풀 수술한 여자들이 다 그런 핑계를 대는 것처럼 속눈썹이 찔러 가볍게 쌍꺼풀 수술만 한 정도다. 무언가 많이 바뀌지는 않았는데 예뻐졌다.

반면 전북은 이흥실 감독대행이 팀을 맡은 이후 자꾸 뭔가를 보여주려는 욕심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보여준 안정적인 선수 기용에 한두 자리 정도만 변화를 줘도 충분할 텐데 너무 많은 걸 바꾸려는 욕심이 강하다. 물론 이흥실 감독대행이 상대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공략할 수 있는 변칙전술을 들고 나오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결국 이런 시도가 실패였다는 걸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감독이 바뀐 것도 모를 정도로 변화를 적게 주는 게 오히려 더 전북에는 득이 되지 않을까. 지금 전술은 누가 봐도 “우리 감독 바뀌었소”라고 하는 것이다. 최강희 감독의 축구가 녹색이었다면 이흥실 감독대행의 축구는 살짝 변화를 줘 연두색 정도면 이상적인데 그는 지금 빨간색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흥실 감독대행이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분위기가 이렇게 침울해 질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탁월한 전술 변화와 맥을 짚는 용병술에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전북에 자꾸 자신의 독특한 색을 입히려는 부담감과 욕심을 털어내는 게 가장 이흥실 감독대행다운 축구로 가는 길 아닐까. 이 순간 혁신적인 변화로 팀에 마법을 부리는 것보다는 최강희 감독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가 부재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큰 무리 없이 팀을 이끄는 게 이흥실 감독대행의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 힘든 게 바로 이흥실 감독대행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끝없이 고민하고 변화를 주는 것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더 현명한 방법 아닐까. 과도한 부담감에 박영규 성대모사로 무리수를 뒀다가 미팅에서 실패하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다. “아, 장인어른. 아니 이흥실 감독대행님 진짜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