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다. 태어났을 때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 번,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이란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부모님은 두 분인데 어째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한 번으로 칠까. 그래서 내 나름대로 다시 정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일곱 번 운다. 태어났을 때 한 번,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두 번, 그리고 다시 K리그 그라운드로 돌아왔을 때와 영원히 K리그 그라운드를 떠날 때 한 번씩이다. 나머지 한 번은 우대권으로 남겨두자. 인생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벌어진 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3라운드 경기에서는 다 큰 남정네가 그라운드에서 찔찔 짜는 촌극(?)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광주FC 슈바와 포항스틸러스 김기동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왜 이들은 이등병이 군대 화장실에서 몰래 초코파이를 먹다가 운 것도 아니고 남들이 다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보여야 했을까. 그 어떤 이들보다도 강인한 축구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참 진풍경이었다. 이 두 사나이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참 가슴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지난 K리그 3라운드에서 그라운드를 눈물 바다로 만들었던 슈바와 김기동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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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광주FC에 입단한 슈바가 지난 라운드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고 환호하는 모습. 골을 허용한 제주로서는 이 순간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이런, 슈바." (사진=광주FC)

슈바의 눈물, "내가 다시 돌아왔다"

슈바는 2006년 대전시티즌에 입단해 K리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비록 가난한 시민구단에서 뛰는 선수였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7년에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벌인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수원을 상대로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 대전월드컵경기장을 눈물로 적신 주인공이기도 한 슈바는 2009년까지 대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인 뒤 이듬해 전남드래곤즈로 이적했다. 전남에서도 슈바의 활약은 꾸준했다. 2010년 전남의 6강 플레이오프를 이끈 슈바는 지난 시즌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포항에 새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약을 선보이지 못한 그는 결국 15경기에 나서 6골을 기록한 뒤 짐을 싸야 했다. 6년간 정들었던 한국 생활도 이렇게 끝날 상황이었다.

그의 가족은 한국에서 더 오래 생활하길 바랐다. 브라질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그의 딸은 "한국에 가고 싶다"면서 매일 울었다. 유창하게 한국 말을 하는 그의 딸은 6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사귄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항상 했다. 그의 아내 역시 정이 든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슈바를 불러주는 K리그 팀은 없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한 K리그 구단 입단 테스트에 응했지만 결국 입단에 실패한 그는 마지막으로 지난 시즌 창단한 광주FC의 문을 두드렸다. 신생팀 광주는 과거 그가 몸담았던 전남이나 포항 만큼 많은 연봉을 제시할 수 없었지만 슈바는 K리그에 남아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연봉을 대폭 삭감한 채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33세로 이제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는 부상까지 당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90분을 소화할 체력도 부족했다. 지난 2라운드 포항과의 경기에서 후반 31분 교체 투입되며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과거 화려했던 그의 플레이를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총 쏘는 세레모니로도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슈바는 그렇게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출전인 제주와의 홈 경기에서 그가 일을 냈다. 후반 30분 교체 투입된 슈바는 2-2 무승부가로 경기가 마무리 될 뻔했던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재역전 결승골을 뽑아냈다. 주앙파울로의 패스를 이어 받은 슈바는 통쾌한 오른발 슈팅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개막 후 광주의 세 경기 연속 무패를 지켜낸 골이자 제주를 상대로 거둔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그는 환호하며 벤치로 달려가면서 유니폼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감동 섞인 글귀가 써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 이날 골을 넣지 못했다면 다시 옷장에 박아 두어야 할 티셔츠였다. 그렇게 슈바는 K리그로 다시 복귀했다는 걸 만천하에 알렸다. 곧바로 경기가 종료되자 그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순간을 너무도 기다렸다. 다시 K리그에서 이런 멋진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슈바는 눈물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빠가 다시 K리그에서 골을 넣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딸은 경기가 끝나자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아빠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부녀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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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은 은퇴식을 치르면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철인'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는 마음이 약해지는 모양이다. (사진=포항스틸러스)

김기동의 눈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기동도 지난 주말 그라운드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91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무명의 김기동은 연습생 신분으로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물론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2년간 포항에서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그는 체력 테스트에서 꼴찌를 할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남들이 다 쉴 때도 죽어라 훈련에 매달린 그는 1993년 박성화 감독의 부름을 받고 유공으로 이적해 서서히 자리를 잡더니 1995년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유공에 부임한 뒤 드디어 제대로 된 기회를 잡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를 니폼니시 감독이 좋게 평가한 것이었다. 윤정환의 화려한 플레이를 뒤에서 받치는 게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1995년 29경기에 나서며 주전으로 도약한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1997년 큰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무릎을 다쳐 4개월 동안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고 같은 해 10월 열린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지만 0-2로 패한 일본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태극마크와 작별해야 했다. 일본전은 김기동의 A매치 첫 선발 출전이자 마지막 A매치 무대였다. 그렇게 비난 받으면서 K리그에만 집중한 김기동은 이후 포항으로 이적해 활약하다가 2004년에 또 다시 무릎을 다쳐 선수 생활의 기로에 놓기에 됐다. 이미 33세의 나이에 큰 부상을 당하자 주위에서는 "이제 김기동은 끝났다"고 수근거렸다. 하지만 그는 독일에 가 수술을 하고 재활에 매달린 끝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7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우승을 경험한 그는 하나하나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07년 4월 서울과의 경기에서 K리그 사상 세 번째로 프로 통산 4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고 2008년 10월 대전과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K리그 통산 23번째로 30-30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김기동은 지난해 5월 인천과 치른 리그컵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최고령(39세 3개월 24일) 도움자가 됐고 같은 해 7월 대전전에서는 페널티킥 골을 넣어 K리그 역대 최고령(39세 5개월 27일) 득점자의 기록도 갈아치웠다. 그가 움직이면 모든 게 기록이었다. 김기동은 그렇게 지난해까지 무려 501경기에 나서면서 K리그의 전설이 됐다.

지난 주말 열린 포항과 부산의 경기에서 김기동은 익숙한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차려 입고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그것도 다른 선수들은 다 휴식을 취하는 하프타임 때였다.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이 명예롭게 은퇴하는 날이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은퇴식을 바라본 관중들은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이때 김기동이 정장을 벗기 시작했다. 정장을 벗자 그 안에는 포항 유니폼이 있었다. 유니폼 앞면에는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써있었고 뒷면에는 '감사합니다'라는 글귀가 써있었다. 김기동은 은퇴식이 진행되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501차례나 경기에 나선 철인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에 서니 감정이 복받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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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는 경기가 끝난 뒤 딸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사진=광주FC)

슈바와 김기동이 흘린 눈물의 의미

K리그에는 치열한 승부가 있다. 승부사들의 세계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건 곧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슈바와 김기동이 흘린 눈물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큰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그라운드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나이들이 있기에 축구가 더 아름답다. 비록 며칠이 지난 이야기지만 이 두 사나이들의 눈물은 여전히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데 아마 이 말을 처음 이어낸 이도 슈바와 김기동의 눈물을 봤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둘의 눈물에는 감동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 선수는 다시 K리그 무대에 돌아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다른 한 선수는 마지막 K리그 그라운드에서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한 선수는 티셔츠에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적었고 다른 한 선수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작별의 인사를 유니폼에 적었다. 우리는 한 라운드에서 두 가지 의미의 눈물을 봤다. 비록 다른 의미의 눈물이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분명하다. 이 둘의 눈물은 숱한 좌절을 딛고 일어서 모두의 박수를 받은 자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는 점이다. K리그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다시 돌아와 기적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슈바와 21년 동안 한결 같은 모습을 선보이며 전설이 된 김기동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