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의 병역 연기가 논란이다. 축구선수로서 오랜 시간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져야 할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박주영이 병역을 10년간 연기한 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신분으로서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군대 갔다 왔는데 박주영은 안 가도 되니 배알 꼴려서 그러느냐”고? 맞다. 배알 꼴린다. 나도 갔다 왔고 우리 아버지도 갔다 왔고 우리 외삼촌도 갔다 왔다. 대한민국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데 박주영이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병역을 피하니 당연히 배알이 꼴린다.

박주영이 얻은 10년은 무슨 의미일까?
박주영은 지난해 8월 병무청에 ‘국외이주사유 국외여행기간 연장원’을 제출했다. 병역법에는 영주권을 얻어 그 국가에서 1년 이상 거주한 경우 출원에 의해 37세까지 병역을 연기 받는 제도가 있는데 영주권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는 무기한 체류자격 또는 5년 이상 장기 체류자격을 얻으면 영주권을 얻은 것과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AS모나코 소속으로 뛴 박주영은 영주권 제도가 없는 모나코공국으로부터 10년 이상 장기체류자격을 얻었다. 결국 박주영은 앞으로 10년 동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병역을 미뤄 유럽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었다.

병무청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합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미룬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절차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병무청은 편법이건 합법이건 법적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릴 뿐이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말해서 합법이 아니라 편법이다. 법적 절차를 따지는 병무청이 박주영의 병역 연기에 대해 도덕적인 문제를 꼬집지 않는 건 당연하다. 박주영은 지금 서류상으로 제3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그 준비기간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얻은 셈이다. 10년 동안 군 입대를 뒤로 미룬 게 아니라 10년 동안 제3국 국적을 획득하기 위한 준비 기간을 얻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갖게 되는 순간 대한민국 국적은 소멸된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이가 다른 나라의 국적을 따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무국적자로 내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 존재하는 제도가 바로 ‘국외이주 사유 국외여행허가원’이다. 이 제도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국적을 얻으려는 이들이 이민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민 조건을 갖추고 영주권이나 이에 준하는 타국의 허가가 있을 때에 한해서 10년 동안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박주영이 10년 동안 병역을 미룰 수 있는 건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배려를 악용한 것이다. 10년 간 군대를 미루는 게 아니라 이민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박주영과 유승준, 다를 게 없다
병무청이 박주영의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 “사실상의 이민 준비”라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당연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이가 이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테니 병역 의무를 지지 않겠다고 하는데 병무청에서 뭐라고 딴지를 걸 수는 없다. 이 제도는 이민을 원하는 국민에게 이민에 소요되는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유예기간을 주는 것인데 박주영이 정녕 이 제도를 활용해 모나코공국의 국적을 취득할 셈인지 묻고 싶다. 박주영이 모나코공국 국적 취득 의지가 있다면야 더 할 말이 없다. 당연히 군대 안 가고 되고 모나코공국 국적으로 살면 된다. 하지만 모나코공국 국적 획득 의지가 없고 이민 준비 기간 10년이 흐른 뒤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할 생각이라면 이건 병역 면제, 혹은 연기를 위한 편법이다.

합법과 편법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삼성그룹을 예로 들어보자.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는 주주 우선 배정방식으로 전환사채(CB) 발행을 의결한 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 등 4남매에게 1주당 85,000원(검찰 산정)에 평가되는 주식을 7,700원이라는 헐값에 넘겼다. 이를 통해 이재용 전무는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됐고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분구조를 통해 전 계열사를 지배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상속세를 누락하고 경영권 세습을 위한 편법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법의 의도와 다른 목적으로 법률을 이용하는 것을 편법이라고 한다.

박주영이 10년 동안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이민 준비라는 서류를 병무청에 내민 것도 결국에는 편법이다. 가수 이현도는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해 병역 의무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비난 받았다. 유승준 역시 마찬가지다. 유승준은 “군대에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미국 국적을 택해 비난받았지만 법적으로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박주영이 이현도와 유승준과 비교해 뭐 다를 게 있나. 유승준은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으니 더 나쁜 놈이라고? 안타깝지만 박주영도 이미 영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년 안에 군대에 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기사를 첨부할 테니 보라. 자, 이제 박주영과 유승준이 뭐가 다른가. 더군다나 이 인터뷰는 지난해 10월 이뤄졌고 박주영은 이미 이보다 두 달 전에 병무청에 ‘국외이주사유 국외여행기간 연장원’을 제출했다.

☞ 박주영 "2년 내 입대…" 인터뷰 보기

할 거 다하고 나중에 군대에 간다고?
박주영 측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 적절한 시기에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는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설령 훗날 군대를 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군 입대를 해야 할 시기에 모나코공국 국적 취득을 이유로 단 하루라도 병역법에 따른 군 입대를 늦추면 이건 병역 회피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 현역을 가거나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거나 면제 받는 걸 자기 의지대로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박주영은 현역과 공익근무, 면제 중에 아무 거나 선택할 수 있다. 만35세 이전에 귀국하면 현역이고 만36~37세에 귀국하면 공익근무요원이 된다. 이후에 한국에 들어오면 면제다. 아니 대한민국 어떤 남자가 이걸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나.

이영표는 최근 ‘골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을 옹호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 자신의 동생이 박주영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 때 비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건 가장 수준 낮은 논리다. “너희 가족이 그래도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면 최성국이 승부조작 후 마케도니아 진출을 노릴 때 최태욱의 주장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당시 최태욱은 “한 번이라도 죄를 짓지않거나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성국이를 비판해도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아내의 남편, 세 아이의 아빠인 성국이를 비판하지 말자”고 했다. “너희 가족이라면…”이라고 감정에 호소하지 말자. 나에게는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할 거면서도 이민 준비 중인 이들을 위한 제도를 악용해 병역을 10년이나 미루는 동생이 없으니 이영표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

또한 축구선수들에게 박주영의 병역 논란과 관련한 이야기를 물으면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다 같은 동료인데 “이건 잘못됐다”고 할 선수는 없다. 그러니 박주영 병역 논란에 대해 선수들이 옹호 섞인 발언을 한다고 해도 이게 박주영의 선택을 지지하는 탄탄한 논리를 만드는 건 아니다. 국위선양이라는 이유도 당연히 여기에는 포함될 수 없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 가수도 다 국위선양 중인데 만약 아이돌 가수 중에 박주영과 똑같은 방법으로 병역을 회피하는 이가 있다면 똑같은 잣대로 바라볼 수 있나. 박주영이 리오넬 메시처럼 유럽 무대를 씹어 먹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제때 군대는 가야 한다. 언제부터 신성한 병역 의무가 나라에 누가 더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한없이 미뤄도 되는 문제로 전락하고 말았나.

박주영, ‘국가대표’ 자격 있나
누군 바보여서 군대 가나. 할 거 다 하고 “이제 일 다 끝냈으니 군대 갑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박주영의 선수 생활만 소중한 건 아니다. 한창 공부하다가,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모든 걸 포기하고 군대에 가야 한다. 군대 문제로 고민하는 박주영을 비롯한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병역 문제에 관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주영이라면 더 병역 문제에 있어서는 당당해야 한다. 심지어 국가대표 축구팀 주장 완장까지 찼던 이가 편법을 써 병역 혜택을 받는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박주영은 이번 병역 연기로 유럽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이민을 준비하는 신분인 이가 과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그라운드를 누빌 자격이 있을까. 그 어떤 대한민국 국민도 만38세까지 군대를 미루고 그 이후에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군대를 면제 받을 수는 없다. 박주영은 10년 동안 군대를 연기한 게 아니라 이 10년 동안 이민 준비를 위한 시간을 얻은 것이다. 박주영의 현재 신분은 완벽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가 국가대표로 나선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는 아스널의 박주영은 응원할 수 있어도 국가대표 박주영은 응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