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겪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승부조작 파문 이후 만난 여러 선수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느끼고 있었다.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현재 K리그 선수들은 승부조작 사건 이후 더 성숙해졌다. 다시 K리그는 날아오를 준비를 했고 실제로 지난 주말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2 K리그 개막전에서도 멋진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동안 승부조작이라는 단어 조차 꺼내는 게 부담스러웠었지만 서서히 그 상처가 아물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프로야구와 프로배구에서도 승부조작이 일어났다.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소식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한 사람으로서 종목을 떠나 참 가슴이 아프다. 어떤 스포츠 종목도 미리 짜여진 각본에 의해 돌아가는 건 원치 않는다. 설령 그게 승부에 극히 적은 영향을 끼치더라도 조작은 조작이다. 공 하나 하나, 한 순간 한 순간이 모여 결국 승부가 이뤄지는 것 아닌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프로 스포츠가 누군가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건 슬프고 분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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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승부조작 사건 이후 전북과 경기를 치른 대전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질 정도로 투혼을 발휘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사진=대전시티즌)

미리부터 말하자면 프로야구와 프로배구 승부조작으로 리그가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종목끼리 편을 가를 생각도 없다. 단지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K리그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났던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와 프로배구도 똑같이 K리그 승부조작 때처럼 물고 늘어지라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K리그 승부조작 당시 리그 중단을 외치던 이들이 얼마나 설득력 없고 줏대 없는 소리를 했는지 입증하기에는 지금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K리그 중단을 외치던 이들은 다 어디 갔나.

지난해 K리그 승부조작 당시 갑자기 어디에서 툭 튀어나온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 “제대로 승부조작을 뿌리 뽑고 싶으면 리그를 중단하라”고 했다. 대다수의 K리그 관계자들이 승부조작을 뿌리 뽑는 데는 동의하지만 리그를 중단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갑툭튀’한 이들은 전혀 다른 주장을 내세웠다. 이게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지 실제로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리그 중단 논의가 이뤄졌고 한 케이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리그를 중단해야 승부조작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주장은 발가락에 상처 났다고 발가락 자르라는 것과 다를 게 없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랬다.

당시에도 칼럼을 썼었지만 이들은 K리그 중단을 언급할 자격도 없었다. 월드컵 때만 등장해 “한국 축구가 어쩌고 저쩌고”하는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K리그를 진행하네 마네 할 수 있나. 그런데도 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무슨 K리그가 승부조작을 은폐한다는 식으로 당장 리그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정의의 사도’인냥 행세했다. 일부 언론에서도 동조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평소 K리그에 관한 소식도 잘 전하지 않던 매체들이 K리그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K리그가 중단된다면 승부조작의 싹을 자를 수 있지만 K리그가 계속된다면 승부조작을 감싸는 것이라는 논리는 어디에서부터 근거한 것인가.

한 대학교 교수는 리그 중단을 외치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K리그가 중단되어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따로 모여 훈련하기 때문에 대표팀 경기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스포츠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참 기가 찰 발언이다. K리그를 무슨 대표팀 선수들 수급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토론 내내 “K리그를 중단해 승부조작을 뿌리뽑겠다는 의지와 반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정성과 의지를 표현하는 게 리그 중단이어야만 하나. 이건 우기기일 뿐이다. 이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 리그 중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가뜩이나 상처 받은 K리그를 흔들어댔다.

심지어 이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승부조작 안 해본 축구선수들 손 들어보라”면서 “승부조작을 직접 지시한 적 없는 지도자들도 한 번 손 들어보라”고 했다. 마치 한국 축구와 K리그 전체가 무슨 승부조작의 아이콘인 것처럼 표현했다. 이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범근과 허정무, 신태용, 황선홍, 최강희 감독도 다 승부조작 경력이 있다는 건가. 이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지금까지 줄곧 K리그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이 교수는 승부조작이 터지자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처럼 행세하면서 여론 몰이를 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K리그 경기장 취재석에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자.

그래서 이번 프로야구와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유심히 살펴봤다. 지난해 K리그 중단을 외치던 이들이 과연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교수는 이번에도 여러 매체에 등장했다. 자기는 다 알고 있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선수들도 불쌍하다.” 물론 프로야구와 프로배구를 중단하자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내가 축구에 관련된 글만 써서 팔이 안으로 굽은 건가. 이 교수의 논리라면 당연히 프로야구와 프로배구도 진정성을 보여주고 승부조작을 뿌리 뽑기 위해 당장 리그를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 역시 리그 중단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내뱉은 적이 없다. K리그 승부조작 당시 “죽음의 굿판, 더는 안 된다”고 근엄한 자세로 꾸짖던 한 언론은 야구에서 조작이 일어나자 ‘승부설계’라는 귀엽고 깜직하고 앙증맞은 명칭까지 하사(?)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한 언론사에서 나온 일이다. 더는 말해 무엇하랴. K리그 역시 조작에 있어서는 부끄럽기 마찬가지지만 한 쪽은 ‘죽음의 굿판’이고 한 쪽은 ‘승부설계’란다. 물론 프로야구를 조롱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조작에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너무 확대해석하고 있는 건가.

K리그 승부조작 당시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리그 중단은 물론 전·현직 축구인 전체가 승부조작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던 이가 야구와 배구가 같은 상황에 직면하자 선수들도 불쌍하단다. 전반적인 학원 스포츠 시스템을 꼬집고 있지만 결국 이번 승부조작 선수들 역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승부조작으로 리그 중단을 외치던 이가 왜 갑자기 이렇게 말을 바꿨나. 야구는 인기가 많으니 이번에도 인기 관리 하는 건가. 이 교수의 논리라면 승부조작이 일어난 프로야구는 당장 개막 준비를 멈추고 진정성 있게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프로야구 전체가 승부조작의 마수에 뻗쳐 있으니 이를 뿌리 뽑을 때까지 리그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거 없다.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K리그한테도 그랬으니 야구와 배구도 똑같이 그러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나 지난해 K리그 승부조작 당시 리그 중단을 운운했던 이들이 어리석었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당연히 K리그가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 도중에도 열렸던 것처럼 야구와 배구 역시 리그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향하는 화살은 프로야구와 프로배구 승부조작이 아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말을 내뱉는 이들이다. 지난 해 승부조작 이후 K리그를 멈추라던 이들은 자기의 주장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똑같은 주장을 내세워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K리그 중단을 외친 것에 대해 사과하라. K리그를 중단하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주장하던 이들은 다 어디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