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블랙번 이적 불발, 진짜 이유는…”


안정환

안정환과 인터뷰한다고 하니 평소에는 연락도 않던 동창들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부탁을 해왔다. “나 안정환 사인 한 장만 받아주면 안 돼?” 그렇다. 안정환은 서른한 살 먹은 사나이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런 남자다.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해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 이 남자, 안정환을 직접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평소에 나도 어디 가서 못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안정환 옆에 앉으니 오징어 한 마리가 돼 있었다. 빛이 나는 남자, 영원한 우리의 판타지스타 안정환과의 인터뷰를 소개하고자 한다.

“동국, 종수보다 나은 건 내가 형이라는 거 말고는 없다”
“페루자 시절, 바조와의 맞대결도 펼쳤는데 참 잘하긴 잘하더라”
“마테라치 성격이 독특해서 다른 선수들이 다 별로 안 좋아했다”
“영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일어 등 의사소통 가능”

“메츠, 뒤스부르크행, 젊었을 때 돈을 떠나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
“2010월드컵 우루과이전 정말 뛰고 싶었는데 동국이가…”
“2군 경기 욕설 팬, 지금은 다 잊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2002월드컵, 골은 토고전 결승골”
“스코틀랜드전 골? 연습경기였는데 뭐, 윤정환 패스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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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을 서울 청담동 리혜원 라이프스타일컴퍼니에서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구윤경)

은퇴 후 최근 근황

반갑다. 요새 어떻게 지내나.

나도 반갑다. 은퇴한지 이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 인터뷰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선수 생활 할 때보다 정신이 더 없는 거 같다. 요새 올림픽 축구 예선도 있었고 해외축구에서도 빅경기가 많이 펼쳐졌는데 하나도 안 챙겨봤다. 선수 시절에는 일부러라도 배우려고 많이 챙겨봤는데 은퇴하고 나니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경기를 보면 계속 선수 생활 더하고 싶을 거 같은 마음도 들더라. 은퇴하고 일주일 동안 운동도 안 했다. 지금까지 했는데 이제는 운동도 좀 쉬어야하지 않겠나.

나는 이걸 꼭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부탁하러 왔다.

뭔가.

이 은퇴 물러 달라. 나는 당신의 은퇴를 인정할 수 없다. 이 은퇴는 무효다.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다. 폴 스콜스처럼 단기간 현역으로 복귀해 뛸 계획도 없다.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들 수 없다.

아쉽다. 이렇게 현역에서 물러나는 우리의 판타지스타를 보고 있자니 너무 슬프다. 이제 축구화를 벗으니 후련한가.

하지만 이제는 사업으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 막 사업을 배우는 입장이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정을 내려야하는 그런 걸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느껴본 적이 없는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도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

이제 막 은퇴를 선언했다. 만약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 것 같나.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 것 같다. 지나가다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가방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을 보면 그게 참 멋져 보인다.

에이, 평범한 회사원 치고는 너무 잘생겼다. 솔직히 말해 달라. 당신도 자신이 잘 생겼다는 거 알지 않나.

잘 생겼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냥 다른 운동선수보다 곱상하게는 생긴 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운동선수라면 우락부락하고 체격 좋고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나는 곱상하게 생긴 편이어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당신이 곱상한 거면 당신과 함께 화보나 광고를 찍어 일반인으로 전락했던 그 수 많은 남자 연예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패션 감각도 남다른데 비결 좀 알려 달라. 원래 어릴 적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았나.

어릴 때는 옷도 없었는데 무슨 패션 감각인가. 매일 검정색 옷만 입고 다녔는데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옷 컬러에 대해서도 가르쳐주면서 그때부터 좀 깔끔해진 것 같다. 머리는 프로에 진출한 뒤 기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김주성 선배를 보고 따라하다가 나중에는 시합도 많고 바빠지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렁치렁하게 기르게 됐다. 딱히 패션이랄 건 없다.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어서 머리띠 하고 다니다가 비웃음거리만 됐다.

사실 나는 미용실에도 몇 개월에 한 번씩밖에 안 간다. 사람들은 내가 매일 머리도 신경 쓰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아는 미용실 사장님의 배려로 파마가 평생 무료인데 자주 가지 못한다.

요새도 피부가 장난이 아닌가.

로션 광고 찍으면서 생긴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광고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별로 피부가 좋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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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우 시절 혜성같이 등장해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안정환의 모습. (사진=부산대우)

며칠 전 당신에 대한 칼럼을 썼었다. 어린 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그러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렇게 힘든 유년기를 보내면서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거나 방황하지는 않았나. 나 같으면 한참 삐뚤어졌을 것 같다.

내가 아무래도 언론에 노출되다보니 그런 거지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다. 지금도 나처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운동하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나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건 나보다 더 힘든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사실 나도 운동하다가 힘들어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숙소에서 나오니 할 게 없더라. 그냥 집에 가서 아무 것도 안했다. 결국 축구를 떠나니 재미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다시 숙소로 들어가 코치 선생님한테 머리를 빡빡 밀린 적이 있었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방황했을 수도 있다. 축구가 나를 바로 잡아줬다고 생각한다.

축구 인생의 전반기…K리그를 넘어 이탈리아로

전설의 그 경기 이야기를 듣고 싶다. 1997년 아주대학교 재학 시절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나선 뒤 곧바로 춘계대학연맹전 결승에 나섰던 당시 이야기를 해 달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마친 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경기장으로 갔다. 홍익대와 결승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전반전은 벤치에서 지켜봤는데 감독님이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뛸 준비를 하라고 했고 후반에 교체로 들어가 두 골을 넣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었다.

뭐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다 있나. 힘들거나 그러지 않았나.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으면 피로가 상당했을 텐데. 차두리였다면 ‘간 때문이야’를 외칠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팔팔했다. 대학생이라 피곤하고 그런 것도 몰랐다. 그 정도 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거뜬했다. 물론 지금은 힘들다.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끈 장본인이다. 당시 왜 이리 인기가 있었을까.

나도 그렇고 (이)동국이나 (고)종수나 다 어렸는데 프로 무대에서 금방 적응을 했다. 그때까지 어린 선수가 프로에 와서 적응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는데 프로에 가자마자 선발 명단에 들어 출전하는 일이 잦았다. 또 동국이하고 종수가 워낙 공을 잘 찼기 때문에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찾아왔고 언론에서도 K리그를 좋게 봐주셔서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잘 전달됐다.

솔직히 말해 트로이카 세 명 중에 당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 것 같다.

나은 건 걔네들보다 내가 형이라는 거 말고는 없는 거 같다. 동국이하고 종수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다녀왔고 나는 못 갔다. 나보다 이 두 명이 먼저 인기를 끄는 스타가 돼 있었고 나는 후발주자였다. 그래서 뭐 내가 낫다고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거 같다. 동국이하고 종수도 다 매력 있게 잘 생기지 않았나. 당시 우리는 세 명이서 잘 어울려 다녔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셔서 밥도 공짜로 많이 얻어먹었다.

고종수 코치와 인터뷰 한 적이 있었는데 예전에 세 명이서 나이트클럽에도 가끔 갔다고 그러더라. 워낙 인기가 많아서 즉석만남을 하려는 여성들이 줄을 섰다고 하던데.

그건 오래된 이야기라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니, 잘 안 난다고 해두자.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끌고 페루자에 진출했는데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축구계를 씹어 먹을 기세였다.

이탈리아에 가서 뛰었던 모든 경기가 다 기억에 남는다. 풀타임으로 뛰었던 유벤투스전도 기억나고 라치오전도 생생하다. 두 골 넣었던 우디네세전도 잊을 수 없다. 워낙 당시 최고의 선수들이 이탈리아에 다 모여 있었기 때문에 팀마다 참 유명하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넘쳐날 때였다. 내가 좋아하던 로베르토 바조와의 맞대결도 펼쳤는데 참 잘하긴 잘하더라. 처음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다. ‘아, 축구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눈 뜨게 해준 곳이 이탈리아다. 거기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경기 출전 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건 좀 힘들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페루자에도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워낙 많았다. 꾸준히 출장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또 당시 빌라에 살았는데 청국장 냄새난다고 관리실에서 가스를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 냄새를 무척 싫어하더라. 동료 선수들이 마늘 냄새 난다면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악당들이 참 많았다. 내가 아시아인이고 자기네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해서 무시를 많이 당했는데 나중에는 다 친해졌다.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필요하긴 필요한 것 같다.

마테라치도 그 악당 중에 한 명이었나.

마테라치가 주장이었는데 워낙 성격이 독특해서 다른 선수들이 그 친구를 다 별로 안 좋아했다.

악당 중의 악당으로 알아 듣겠다. 지금도 연락하는 당시 동료들이 있나.

연락하고 지내는 동료들도 많다. 한국에서 월드컵 할 때 초청한 적도 있고 일본에서 뛸 때는 일본으로 놀러오기도 했다. 맥주도 한잔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지금 팔레르모 구단에서 일하고 있는 솔리아노와는 전화로 사업적인 이야기도 많이 한다. 아니, 이제 나도 사업가라 시업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말도 잘 통하나.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서 하는데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 통한다. 여러 나라를 거치다보니 영어와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일어 등 그 나라말을 조금씩은 다 한다.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정도다. 지금은 많이 까먹었지만 그래도 머리 속에는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조금만 공부하면 끄집어 낼 수는 있다. 항상 새로운 리그에 가면 팀 동료들과 훈련 끝나고 밥도 먹으러 다니면서 생활을 통해 외국어를 익혔다.

한국어까지 무려 7개국어를 하는 당신은 능력자다. 당신이 연락하는 팀 동료 중에 마테라치는 없나.

전화번호를 모른다. 뭐 굳이 할 필요 있겠나. 할 이야기도 별로 없는데.

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은 당신 축구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페널티킥을 놓치고 마음 속으로 울면서 뛰었다. 온 국민이 다 보고 있는데 나 하나로 인해서 그 꿈이 깨지면 내가 얼마나 매국노처럼 보이겠는가. 어느 누구보다도 경기 내내 간절했다. 골든골을 넣었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머리 속이 뿌옇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축구를 하면서 넣었던 모든 골이 다 행복했지만 이때의 기억은 앞으로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황홀했던 순간이었다.

당신만 그러겠는가. 전 국민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미국전 헤딩골은 사실 당신도 넣고 나서 잠시 주춤했다. 솔직히 말해 달라. 약간 의도치 않은 골 아닌가.

헤딩을 하면서 방향만 틀어놓고 넘어졌는데 일어나보니 골문 안에 공이 없더라. 순간적으로 안 들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골키퍼 사이로 공이 데굴데굴 굴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골이란 걸 알았다.

축구 인생의 후반기…팀을 떠돌다

하지만 이후 페루자에서 방출됐고 소유권 분쟁까지 벌어졌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이 있을 것도 같다.

페루자와 현대산업개발에서 서로 나의 소유권을 놓고 싸웠다. 나로서는 중간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구단을 이길 수 없는 힘이 없지 않은가. 현대산업개발은 로얄즈를 인수할 때 나를 보고 돈을 어마어마하게 투자했는데 결국 내가 이탈리아로 떠났다. 아마 현대산업개발로서는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소유권 분쟁 당시 상황에 대해 다 이해한다. 그 상황이 벌어진 게 문제였지 대처 방법은 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본 그렇게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일본 매니지먼트사에서 페루자와 현대산업개발에 각각 돈을 지불하고 나를 샀다. 위약금을 물어줬던 회사라 부지런히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회사에 금전적 수익 창출을 도왔다. 전성기를 유럽에서 보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일본에 가서 우승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위안 삼고 있다.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일본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블랙번 이적 불발은 두고두고 아쉽다. 이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나.

계약서에 사인하고 현지에 집까지 알아보고 비행기 표까지 끊었는데 결국 일이 틀어졌다. 지금 와서 당신에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때 언론보도는 거짓말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취업 비자가 나오지 않아 이적에 실패했다고 돌려서 말했는데 사실은 취업비자 발급을 위한 A매치 출전수에는 문제가 없었다. 진짜 이유는 소유권 분쟁으로 인해 블랙번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를 데리고 가봐야 문제될 게 뻔하고 페루자에서도 반발할 텐데 그러면 큰 돈 들여 나를 영입해 경기에도 내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블랙번으로서는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그때 이적 계약서를 보면 참 아쉽다.

지난 은퇴 기자회견에서 돈의 유혹을 뿌리치는 게 참 힘들었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팀을 옮길 때 구단이나 재력 있는 곳에서 돈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한 적이 많았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사실 나는 도전해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는데 워낙 큰 돈을 제시하는 곳이 있어 그걸 뿌리치는 게 힘들었다. 유럽에서 준다는 금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준다고 하는 데도 다 거절했다. 그래서 선택했던 팀이 메츠와 뒤스부르크였다. 젊었을 때 돈을 떠나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 돈이야 나중에도 어떻게든 벌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돈을 벌어놔서 그런 건 아니었나.

그런 건 아니다. 도전하고 싶었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하지만 당신 실력에 메츠나 뒤스부르크는 속된 말로 너무 레벨이 떨어졌다.

내 실력으로는 그 정도가 한계였던 게 아닐까. 좋은 팀에 좋은 스트라이커가 그렇게 많은데 출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팀을 찾다보니 점점 순위표 밑에 있는 팀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그게 다 경험이다. 그 팀 소속으로 유럽의 강팀과 많이 싸워봤기 때문에 얻은 것도 많았다.

중국을 다음 행선지로 선택한 것도 의외였다.

처음에는 3개월 단기 계약으로 다롄에 입단했었다. 몸을 만들어서 3개월 뒤 미국이나 호주로 가고 싶었다. 일본에서도 제의가 있었는데 거기는 이미 경험을 해봤고 우승도 해봤기 때문에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뛰어보니 새로운 리그에 대한 흥미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다. 다롄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연장 계약을 하고 더 오랜 시간 거기에 남았다.

중국에서의 생활도 궁금하다. 거의 아이돌급 인기였다고 들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참 많았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맥주를 한 잔 했는지를 다 안다. 심지어 내가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까지도 다 알더라.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지 궁금했다. 기자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들었다. 나한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사소한 일상까지도 이슈가 된 거 같다.

2010년 마지막 월드컵에 대한 아쉬움

그렇다면 이제는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의 컨디션이 경기에 나설 수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많이 흘러나왔다.

아니, 경기에 나서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대회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만약 경기에 나섰는데 부족한 면이 있었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이해가 안 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2002년이나 2006년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했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전성기보다 못했던 게 사실이다. 내가 필드 플레이어 중에 최고참이었는데 거기에서 체력이 좋으면 다른 젊은 선수는 뛰지 말라는 소리밖에 더 되나.

할 말이 많은 거 같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는데 나보다 젊은 선수들이 체력이 더 안 좋으면 그 선수들 안 쓸 건가. (박)지성이나 (박)주영이, (김)정우, (기)성용이가 나보다 체력이 안 좋았다고 해도 그 선수들 안 쓸 수는 없다. 체력이야 당연히 전성기 같지 않지만 다름대로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준비는 충분히 했다.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내가 뛰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그런 반응을 보인 이들이 있다는 건 아쉽다. 월드컵이 끝난 뒤 다롄에 돌아가서도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특히나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 무척 아쉽다. 당신이 해결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축구를 하면서 괜히 좋은 예감이 드는 경기가 딱 세 번 있었다. 첫 번째가 이탈리아전이었고 두 번째가 토고전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이 우루과이전이었다. 비가 촉촉이 오는데 느낌이 오더라. ‘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마지막 교체 카드로 동국이를 썼다. 솔직히 다른 선수가 들어갔다면 화가 났을 텐데 동국이가 들어가는 바람에 화가 덜 났다.

이동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라도 있나.

동국이가 월드컵에 많은 아픔을 겪지 않았나. 나와 비슷한 시기에 프로에 입성했고 대표팀에서도 오래 같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월드컵에서 주목 받는 동안 동국이는 부상으로 좌절하고 월드컵과도 지독히 인연이 없었다. 우루과이전에서 동국이가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어서 좋았다. ‘뛰고 싶다’는 마음이 동국이 때문에 가라앉았다. 누구보다 동국이가 잘하길 바랐다.

하지만 이동국은 우루과이전에서 아쉽게도 완벽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축구라는 게 기회를 다 살릴 수는 없다. 기회를 다 살리면 그게 사람인가 로봇이지. 메시도 페널티킥 못 넣었다고 욕을 먹던데 동국이의 그 슈팅은 아쉽지만 그 어떤 선수라도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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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과거 2군 경기에서 상대팀 팬과 충돌한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진=구윤경)

‘대인배’ 안정환의 깊은 인간미

K리그에서 한 시즌 정도 뛰고 은퇴하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꼭 이런 결정을 내렸어야 했나. 당신을 기다리던 성남 신태용 감독은 결국 바람을 맞고 말았다.

부담감이 컸다. 축구선수가 항상 잘할 수 만은 없다. 그런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많이 힘들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도 크고 있는데 가족들이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걱정도 됐다. 원래 조용히 은퇴하고 싶어서 기자회견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팬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도 지키기 위해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제안한 은퇴경기를 고사했다. 당신이 그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에게 그 정도도 못해주나. 참 나쁜 남자다.

내 개인의 영광을 위해 그럴 수는 없었다.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은퇴경기를 치르는 건 말도 안 된다. 한 경기 잘못하면 월드컵을 못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내가 거기에 서 박수를 받을 수는 없다. 3분이건 5분이건 뛰는 것도 좋지만 축구는 단 1초를 남겨두고 하프라인에서 때린 슈팅으로 질 수도 있다. 대표팀은 이 경기에 최상의 전력으로 나서야 한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다. 나중에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면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식을 갖고 싶다는 뜻을 협회에 전했다.

방금 가족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에 대해 많은 이들은 과거 2군 경기에서의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욕설을 내뱉던 상대팀 팬 때문에 당신이 경기 도중 폭발했던 그 사건 이후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 적이 없었다. 오늘 솔직하게 심정을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당시 2군 경기에 나서는 게 화가 나 있었는데 결국 그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뭐 어떤 리그에 가나 그런 팬은 있다. 내가 당시 화를 참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서 그게 이슈화됐지만 다른 선수들도 이런 일에는 항상 시달린다. 지금은 다 잊었다.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그 팬을 용서했다는 뜻인가.

용서고 뭐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그 사건 이후 금방 잊었다. 나는 나를 욕하는 팬도 팬이라고 생각한다. 욕 먹기 싫어서 이런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괜히 또 그 이야기를 꺼내면 그 분이 생활하는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나도 피해자고 그 분도 피해자다. 그 분도 축구를 좋아해서 그 자리에 있었던 거고 나도 축구선수로서 화가 나 그랬던 거였다. 나는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 별로 큰 사건도 아닌데 큰 사건처럼 생각하신다. 그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뭐 얼마나 큰 사건이라고 그러나.

나 같으면 평생 잊지 못할 텐데 당신은 정말 대인배다. 그런데 정말 가족 사랑이 지극한 것 같다.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선수 생활을 하느라 나도 고생했지만 가족들도 고생했다. 친구도 없고 아는 이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의지할 건 역시 가족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맛있는 것도 해먹고 외식도 하고 좋은 데 있으면 구경도 많이 다녔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가족끼리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환경이 바뀌면 낯선데 옆에서 항상 나를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

안정환이 꼽은 지난 기억들

당신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2 한일월드컵 때다. 온 국민과 함께 즐거워했고 성적도 기대이상으로 너무 잘 나왔다.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비록 축구선수를 그만두지만 그때의 기억은 언제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그렇다면 역시 축구 인생 최고의 골도 이탈리아전 골든골인가.

기억에 남는 골이 참 많다. 이탈리아전 골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 골이 참 많이 기억에 남는다. 월드컵 역사상 원정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는데 토고를 상대로 골을 넣으면서 원정 첫 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이 골은 기억을 안 하는 거 같다. 이탈리아전 골을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런가. 개인적으로 토고전 골이 참 의미가 있다.

나는 얼마 전 칼럼에서 2002 한일월드컵 직전에 펼쳐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 두 번째 골을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냥 연습경기였지 뭐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이전까지 그런 식으로 득점하는 걸 본 기억이 없어 좋아해주신 것 같다. 이탈리아에 가 많이 배워서 그런 골을 넣을 수 있었다. 특히 윤정환 선배의 패스가 일품이었는데 윤정환 선배는 워낙 기술이 좋고 영리하고 패스를 잘하는 선배여서 평소에도 존경하고 있다. 공을 받는 동료가 다음 동작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훌륭한 패스를 참 많이 해줬다. 당시 나와 함께 방을 쓰고 있었는데 윤정환 선배가 그 골에 많은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축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내 뜻과 맞지 않게 흘러가면서 일이 꼬였을 때다. 블랙번에 가지 못하고 팀에서도 나와서 무적 선수가 되고 그럴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이나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그런 일을 겪을 때면 화가 많이 났다.

그럴 때면 축구를 한 걸 후회하기도 했나. 다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일 것 같다.

후회를 한 적은 없다.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면 아예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로 돌려야하지 않을까. 그 때 축구를 안 했으면 쭉 축구선수의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 아닌가. 되돌리려면 아예 처음으로 되돌려야지 중간으로 되돌리면 뭐하나. 이미 축구는 벌써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때 처음 축구화를 신던 때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중간에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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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사진=구윤경)

얼마 전 이을용이 “남들은 다들 정환이를 잘 생겼다고 하는데 나는 정환이가 잘 생긴지 정말 모르겠다”고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을용이가 잘 생겼다고 생각은 안 한다.

나도 당신 말에 반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당신과 이을용이 절친한 친구라는 게 참 안 어울린다. 이미지가 무척 다르다.

을용이가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나도 고생을 안 한 편은 아닌데 아니면 을용이가 잘 안 씻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 매력 있는 친구다. 합쳐놓고 보면 안 잘 생겨서 그렇지 눈, 코, 입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잘 생겼다. 지금은 을용이가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한국에 와서 소주도 한 잔하고 운동도 같이 했다. K리그에서부터 알고 지냈고 대표팀에서는 한 방을 쓰기도 했다. 나하고는 참 잘 맞는 친구다.

은퇴 기자회견에 가보니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화환을 보냈더라. 섭외를 위한 사전 작업인가. 많은 이들이 방송에 나와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길 원하는데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있나.

아직은 없다. 지금은 워낙 바쁘고 사업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때는 한 번 출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당신의 축구 인생을 짧은 인터뷰로 꾸민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고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 그 우여곡절 많았던 축구 인생을 자서전으로 내도 좋을 것 같다. 책 한 권은 거뜬히 분량을 뽑고도 남을 것 같다.

나이도 아직 젊고 그런 자서전을 낼 만큼의 큰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서전 이야기하니 참 부끄럽다.

그래도 혹시나 자서전 쓸 거면 그 책은 꼭 내가 집필하고 싶다. 잘 부탁한다.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쓴 영웅인데 자신의 축구 인생에 점수를 매기자면 얼마나 주고 싶나.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좋은 활약을 많이 보여주지 못해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그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하다.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만 팬들의 사랑이 워낙 커서 거기에는 보답을 다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다. 당신은 참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전해준 선수였다. 앞으로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나.

지금까지 나만 계속 아내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아내한테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살고 싶다. 아내와 함께 화장품 사업을 계속하면서 사업가로 도전해 성공하는 게 목표다. 내가 프로팀 감독을 할 만한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축구를 통해 얻었던 걸 앞으로는 유소년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은퇴하기 전부터 유소년 축구 육성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아마 올 해 안으로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당신을 응원했던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는데 좋은 모습을 더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팬들의 사랑으로 내가 얻은 게 너무 많다. 그런데 나는 그만큼 드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내가 받은 사랑을 꼭 돌려드리고 싶다. 그동안의 사랑, 너무 너무 고맙고 또 죄송하다.

안정환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당장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로 달려다가 접고 접고 또 접고 뒷발로 접고 또 접고 반대편 골문으로 땅볼 슈팅을 날린 뒤 반지에 입을 맞추는 세레모니를 보여줄 것만 같은 그가 축구화를 벗었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았지만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선수는 없었다. 비록 그의 화려한 플레이를 더는 볼 수 없지만 안정환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한 판타지스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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