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길거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바로 옆에서 똑같은 패딩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야, 그냥 김천이나 가자.” 고등학생들이 경기도 일산에서 경북 김천까지 갈 일이 얼마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그들을 쭉 지켜봤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향한 곳은 경북 김천이 아니라 ‘김밥천국’이었다. 요새 청소년들은 ‘김밥천국’을 ‘김천’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나도 이제 은어를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아저씨가 다 된 모양이다.

아트와 솔로, 그리고 아톰

우리는 말 줄이는 걸 참 좋아한다. 김.밥.천.국. 이 네 글자를 말하는 것도 귀찮아 이걸 또 두 글자로 줄인다. 하긴 나도 예전에 그랬다. 군대에서는 ‘근무자 신고집합’을 ‘근신’이라고 줄여 고참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적도 있고 얼마 전 소개팅을 앞두고는 “너 눈 높잖아”라는 친구의 말에 “나얼안”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나얼안’은 ‘나 얼굴 안 봐’의 줄임말이었다. 요새 ‘나얼안’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중이다. 말 줄이는 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똑같은 모양이다.

K리그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 이름을 편하게 줄여서 마음대로 바꿔 부른다. 보다 친근하고 의미 있는 이름을 부여한다는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바그너’를 ‘박은호’로 표기한 건 무척 센스 있었다고 생각한다. 발음도 비슷할 뿐 아니라 한국 스타일의 이름으로 친근감까지 더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 선수 이름을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우리 입맛대로 바꿔 프로축구연맹에 등록명으로 제출하는 건 반대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속된 말로 이거 참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광주FC에 ‘복이’라는 선수까지 등장했다. 나는 처음에 ‘복어’인줄 알았다.

2006년 부산은 제페르손(Jefferson Gorat Da Silva)이라는 선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홍길동이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제페르손은 제페르손으로 불리지 못했다. 부산은 이 선수에게 전혀 연관성 없는 이름을 하사(?)했다. 바로 ‘아트’였다. “예술 축구를 해달라”는 의미를 담았지만 결국 아트는 5경기에 나선 뒤 예술적으로 방출 당했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솔로마틴(Andrei Solomatin)은 ‘솔.로.마.틴’ 이 네 글자가 너무 길었나보다. 2004년 성남은 솔로마틴을 ‘솔로’로 등록했고 결국 이 선수는 5개월 만에 외로운 솔로 생활에 염증을 느꼈는지 고국으로 돌아갔다. 울산을 수호해달라는 뜻의 수호자(Mario Sergio Aumarante Santana)도 본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아톰(Artem Olexandrovich Yashkin)도 억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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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에 새로 영입된 맨 왼쪽 선수는 K리그 최초로 2m 시대를 열었다. 이 무시무시한 신장의 공격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이’다. 조폭 이름 ‘김바른’에 버금가는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진=광주FC)

몬테네그로 특급, 복이?

광주는 이번에 몬테네그로 올림픽대표 출신 공격수 보그단 밀리치를 영입했다. 그런데 등록명을 ‘복이’라고 지었다. 보그단 밀리치의 애칭이 ‘보기’였다는 점에서 착안했고 복(福)자를 써서 임진년 광주에 ‘복덩이’가 되어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복이’는 아직 경기에 나서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보그단 밀리치, 아니 복이는 역대 K리그 최장신이다. 무려 201cm의 어마어마한 신장을 자랑하고 몬테네그로 올림픽대표 출신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결국 정체불명의 ‘복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의 특별한 매력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냥 이름만 재미있는 선수일 뿐이다.

물론 친근한 이름으로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좋다. 발음하기 편한 이름을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최대한 그 선수의 본명을 존중해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실바나 산토스, 알렉스처럼 평범한 이름을 가져 구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본명을 그대로 쓰는 게 어떨까. ‘복이’는 애칭이 ‘보기’라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애칭일 뿐이다. 제난 라돈치치(Dzenan Radoncic)는 우리가 흔히 ‘라돈’이라고 부르지만 등록명은 본명 그대로 라돈치치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 ‘보기’여도 등록명만큼은 라돈치치처럼 본명을 쓰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보기’는 어디까지나 애칭일 뿐이고 본인이 밀리치라고 부르는 게 싫다고 했더라도 공식 등록명까지 ‘복이’일 필요는 없었다.

최대한 본명에 가깝게 쓰는 게 더 글로벌한 K리그를 만드는 길이다. 아트, 소말리아, 솔로, 수호자, 아톰, 복이 같은 정체불명의 이름보다는 해당 국가의 다양한 문화가 포함된 이름이 더 K리그를 있어 보이게 하지 않을까. K리그에는 지금도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에서부터 호주, 일본, 중국, 브라질, 벨기에, 멕시코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뛰고 있다. 그 어떤 프로스포츠도 K리그처럼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함께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북한 국적의 선수들도 내국인 신분으로 뛰었던 리그가 바로 K리그다. 이건 K리그만의 장점이다. 이런 장점을 홍보에도 모자를 판에 의미를 짜맞춰가면서 새로운 이름을 하사(?)하는 건 장점을 너무도 못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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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헤셀링크 마킹은 5천 원 더 내셔야 합니다.” 이름 한 번 참 길다. (사진=셀틱 공식 홈페이지)

왜 꼭 줄이고 바꾸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한 마디로 말해 없어 보인다는 의미다. ‘아트가 솔로한테 패스하고 솔로의 크로스를 받은 복이가 날린 헤딩슛을 아톰이 막은 것’보다는 ‘제페르손이 솔로마틴에게 패스하고 솔로마틴의 크로스를 받은 밀리치가 날린 헤딩슛을 아르템이 막은 것’이 똑같은 의미지만 더 있어 보인다. 이건 언어 사대주의가 아니라 유럽 축구가 물밀 듯 밀려오는 최근의 추세가 그렇다는 것이다. 왜 스스로 촌스러운 걸 자처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K리그를 프로축구로 바꾸는 등 최대한 우리 입맛에 맞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선수 이름에 관해서는 최대한 본명을 존중해 글로벌한 느낌을 살리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한다.

유럽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네덜란드 선수 하셀링크는 본명이 ‘얀 베네호르 오프 헤셀링크’(Jan Johannes Vennegoor of Hesselink)다. 아마 이 선수가 K리그에 왔다면 이름에서 딴 ‘베네’나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호란’정도 이름으로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수는 ‘Vennegoor of Hesselink’라는 긴 이름을 등 뒤에 달고 유럽을 누빈다. 유럽 축구 중계를 보면 캐스터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아주 긴 이름을 친절히 읊어주기도 한다. 아마 이 선수도 K리그에 진출했다면 “오늘 밤 그라운드를 책임지라”는 의미로 ‘이브’라는 이름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광주는 이번에 K리그 최장신 선수를 영입하는 역사를 이뤘다. 그런데 이 선수가 단지 말장난 같은 이름 하나로 전혀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내는 건 다소 아쉽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얀 베네호르 오프 헤셀링크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다 이 긴 이름대신 애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보그단 밀리치가 ‘복이’가 되는 것처럼 애칭을 등록명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바티스투타도 ‘바티골’이라는 애칭이 있지만 마찬가지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애칭을 등록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본명으로 활약 중이다. 읽다가 숨 넘어 갈 얀 베네호르 오프 헤셀링크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다 되는데 왜 꼭 K리그에서는 줄이고 바꾸고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