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한국 축구에도 무척 중요하고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무척 중요하다. 이제 서른한 살이 돼 진실된 사랑을 꼭 만나고 싶은 나와 여러 중요한 문제에 직면한 한국 축구는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앞으로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전진해야 하는 한국 축구의 2012년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시간을 1년 뒤로 돌려 2012년을 정리하는 가상 희망 뉴스를 선정해 보려 한다.

1. 눈물바다 된 K리그 경기장

2012년 12월 9일, 전국의 네 개 K리그 경기장에서는 K리그 30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나뉜 하위 8개 팀이 마지막 한 경기를 통해 리그 잔류와 강등이 판가름 나는 중요한 길목에 서게 된 것이다. 동시에 시작된 8개 팀의 네 경기 중 세 팀이 강등되는 상황에서 피 튀기는 경기가 펼쳐졌음은 물론이다. 지상파 네 개 채널에서는 각각 한 경기씩 생중계를 하며 사상 최초의 강등팀이 탄생하는 순간을 전국에 송출했다. 강등이 유력했던 팀의 연고지에서는 “K리그 잔류를 위해 경기장에 가 응원을 펼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자존심 경쟁이 치열했다.

한 경기장에서 골이 터지자 언론은 물론 팬들도 분주해졌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어떤 팀이 강등되는지 따져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실시간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네 경기장에서 골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다 후반 추가 시간에 강등이 유력했던 한 팀이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내며 믿을 수 없는 잔류에 성공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감격했고 결국 이 골로 강등이 확정된 다른 경기장 관중들은 망연자실했다. 경기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날 강등팀 구단주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다시 K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시민 모두와 함께 뛰겠습니다.” 강등은 결국 모두가 힘을 모아 다시 뛰기 위한 출발인 셈이었다.

2. K리그 아시아 정상 탈환

K리그가 알 사드에 빼앗겼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왕좌를 결국 탈환했다. 그것도 4강을 K리그 네 팀이 모두 점령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K리그 팀끼리 결승전을 치러 2연패 후 알 사드에 넘겨줬던 우승 트로피를 K리그가 다시 가져오는 경사스러운 한해가 됐다. K리그 두 팀이 치르는 결승전은 아시아 40개국 5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K리그의 축제로 치러져 아시아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기도 했다. K리그의 경기력에 반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K리그 중계권을 거액에 구입하는 등 축구 한류 열풍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됐다. 한편 K리그가 4강을 모두 휩쓸자 AFC에서는 대회 방식을 변경해 한 리그가 4강에 모두 오를 경우 리그 최하위는 대회를 포기해야 하는 규정을 신설, K리그 경계에 나섰다. 결국 한국은 앞으로 K리그 상위 세 팀과 내셔널리그 우승팀을 대회에 내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3. 축구인들의 화합

2013년 1월로 다가온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디도스 공격’이나 네거티브 공세는 전혀 없었다. 차기 협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이들은 정책 대결을 펼치면서 깨끗한 선거의 표본을 보여줬다. 또한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2012년 1월 만나 향후 선수 차출에 대한 큰 틀에 합의했다. “즉시 전력감 선수들은 성인대표팀에 발탁하기로 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올림픽대표팀에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게 좋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이후 선수 차출 논란을 종식시켰다. 여·야로 나뉜 축구인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면서 전격적으로 화해하고 축구 발전을 위해 한 배를 타기로 결정했다. 특히 ‘빠른 46년생’ 조중연 회장과 ‘1946년 12월생’ 허승표 이사장은 광화문의 한 포장마차에서 만나 두 시간여 동안 “빠른 생일을 인정할 수 없다”와 “내가 형이다”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말을 놓기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4. 홍명보호, 올림픽 동메달 획득

2012 런던올림픽에 나선 홍명보호의 파죽지세는 놀라웠다. 스페인,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과 ‘죽음의 조’에 속해 조별 예선 통과도 장담할 수 없었던 올림픽 대표팀은 2승 1무의 성적으로 가볍게 조별 예선을 넘고 이변을 연출하더니 급기야 준결승 진출까지 성공했다. 아쉽게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밀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홍명보호는 3,4위전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3,4위전에서 승리를 거둬야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홍명보호는 박주영(아스널)과 지동원(선덜랜드)의 활약에 힘입어 3,4위전에서 네덜란드를 3-2로 제압하고 자랑스러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편 국회에서는 올림픽 대표팀의 병역 혜택 후 들끓는 여론을 감안해 전국 모든 예비군의 훈련을 1년씩 감면해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5. 일찌감치 브라질행 확정지은 대표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표팀은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더니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네 경기를 남겨놓고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5연승으로 순항하던 최강희호는 2012년 11월 14일 펼쳐진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고 6연승으로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브라질행 티켓을 예약했다. 특히 최강희 감독 부임 후 전폭적인 신뢰를 얻은 이동국은 이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그간 대표팀에서의 설움을 한 방에 날렸고 염기훈 역시 도움을 두 개나 올리면서 국내용이라는 오명을 씻었다. 최강희 감독은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6연승으로 브라질행을 확정지은 뒤 이순신 장군 복장으로 세레모니를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6. K리그 총관중 8백만 돌파

지난해 3백만 관중을 돌파했던 K리그는 2012년에는 무려 8백만 관중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제2의 르네상스를 맞았다. 특히 그간 수도권에 비해 인기가 시들했던 지방 구단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전국적인 K리그 열풍이 시작됐다. 승강제를 통해 하위권 팀들이 관중몰이에 성공한 것도 요인이었다. 암표 값이 백만 원을 호가하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임상협을 비롯한 꽃미남 스타들은 1999년 안정환-이동국-고종수 트로이카 이후 다시 한 번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로 여성 팬들은 경기장으로 불러 모았다. 한편 강원FC와 성남일화는 인기를 등에 업고 강릉종합운동장과 탄천종합운동장을 대신할 전용구장 신축을 결정하기도 했다. 남성들은 여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소개팅에 나갈 때 연고 지역 K리그 유니폼을 입는 게 유행으로 번졌고 경남FC 김주영은 유재석을 제치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의 영광을 얻기도 했다.

7. 다시 일어선 신영록

그라운드에 다시 서는 게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신영록이 놀라운 재활 의지로 다시 경기에 나서 모두를 감동케 했다. 2011 K리그 대상 시상식 후 일체의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재활에만 매달린 신영록은 2012년 10월 홈 경기에서 기적적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교체 투입돼 후반 20분을 소화했고 다음 라운드 대구와의 경기에서는 풀타임 출장해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신영록은 이날 경기에서 후반 31분 극적인 팀의 결승골을 뽑아내며 부활을 만천하에 알렸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구 안재훈과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뜨거운 포옹을 나눠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편 이 기적과 같은 드라마에 감동한 한 영화 제작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영록본색>의 크랭크인을 확정했다.

지난해 한국 축구에는 좋은 일보다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을 것이다. 고통을 이겨내야 결과가 더 달콤한 법이다. 올해 한국 축구는 지난해의 슬픔을 딛고 더욱 행복한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K리그와 대표팀, 그리고 소외받는 아마추어 축구, 여자축구에도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