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수학을 꽤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충분히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만한 실력을 갖췄었다. 하지만 이 친구의 경쟁자들은 항상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고 뒷말을 만들었다. 이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 측에서는 무성한 소문을 차단하기 위해 이 친구를 수학경시대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조광래 감독의 폭탄 발언과 파장

조광래 감독이 최근 대표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충격적인 사건이다. 감독이 자신의 전술에 맞게 구성해야 할 팀이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건 큰 문제다. 만약 조광래 감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국 축구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이런 중대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감독이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내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발언은 무척 위험했다.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조광래 감독과 “선수 추천을 확대 해석했다. 외압은 절대 없었다”고 반박하는 협회의 이야기 모두 설득력은 있다. 나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 따지기 전에 이 외압 논란으로 상처를 받은 선수가 먼저 떠올랐다. 한국 축구의 잘못된 관행을 잡으려는 조광래 감독의 용기 있는 결단은 지지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조광래 감독은 “어떤 선수를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황상 이미 다 드러났다. 조광래 감독의 고백에 언론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도록 친절히 해당 선수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축구팬들은 퍼즐 맞추기 식으로 한 선수를 지목하며 “이 선수가 외압을 통해 대표팀에 가려고 했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다. 그의 배경과 관련해서도, 그의 경기력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다.

해당 선수, 앞으로 대표팀에 뽑힐 수 있나?

솔직히 말해 이 선수는 외압이 없더라도 충분히 대표팀에 승선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 그는 대표팀에서 잠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포지션상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발언 하나로 이 선수는 졸지에 저질 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조광래 감독이 이 선수의 마녀사냥을 원한 건 아니었겠지만 현실은 결국 그렇게 됐다. 축구팬이라면 이제 이 선수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해당 선수는 최강희 감독에게도 필요할 수 있다. 충분히 대표팀에서 앞으로 테스트를 받을 만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컨디션을 점검해 주전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선수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감독의 발언으로 상당한 부담감을 안게 됐다. 만약 이 선수를 뽑기라도 한다면 또 다시 외압 논란이 불거질 것이고 혹시라도 경기 도중 실수라도 나오면 다들 최강희 감독과 해당 선수를 손가락질하기 바쁠 것이다. 상당히 부담이 크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해당 선수의 자괴감도 상당할 것이다.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운동선수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한 해당 선수뿐 아니라 축구인 아버지를 둔 선수들도 모두 팬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조광래 감독의 심정이야 백 번 이해하지만 본의 아니게 해당 선수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그의 발언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

외압 폭로와 해결,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

보다 더 현명한 방법은 조광래 감독이 협회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고백하는 게 가장 파격적인 방법이었겠지만 이 방식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결국 협회도 조광래 감독의 발언 이후 곧바로 반박하지 않았나. 언론이 아닌 직접적인 대화로 외압 논란에 대해 충분한 해명을 요구하고 의식 있는 축구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었다. 폭탄 발언은 잠시 이슈가 될 수는 있어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협회도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논란을 해결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도 자서전에서 밝혔듯 대표팀의 외압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결국 협회의 외압 논란은 축구에 몰두하고 있는 선수를 흔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아니다”라고 잡아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잡아떼기만 하니 결국 조광래 감독도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기술위원회를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명쾌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외압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한 선수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이 논란으로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는 과거 대표팀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몇 차례 보였을지는 몰라도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이 논란을 이겨내는 건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학 선생님이어서 수학경시대회에서 배제됐던 내 친구는 결국 서울대에 입학하면서 논란을 종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