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돈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위해 일한다. 나처럼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며 사는 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훌륭한 사람들은 다르다. 돈을 바라지 않고 명예를 위해 노력해 그 자리에 갔는지, 명예를 얻어 돈 욕심이 별로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만큼 돈이 없으니 말이다. 돈이 가장 중요시 되는 세상에서 돈을 선택하는 걸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돈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쫓는 것만큼 대단한 것도 없다.

연봉 2,400만 원짜리 선수 박찬호

박찬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화와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연봉계약과 관련한 모든 걸 구단에 백지위임했다고 한다. 결국 한화는 박찬호에게 1년간 형식적인 최저연봉 2,400만 원을 제시하며 총 6억 원의 야구발전기금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선수 등록을 하려면 최저연봉이라도 받아야 해 2,40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던 선수에서 이제는 최저연봉 선수가 됐지만 아무도 그를 하찮은 선수로 보지는 않는다. 종목을 떠나 박찬호의 이런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도 그에게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은퇴를 앞둔 노장이 됐지만 그가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지켜보는 걸로도 팬들은 행복해 할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도 수십억 원을 벌 수 있는 박찬호가 거액을 포기한 채 마운드에 오르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아마 그의 국내 구단 입단은 프로야구 인기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잘하건 못하건 일단 박찬호가 최저연봉을 받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 팀에서 보내는 건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큰 행복이다.

박찬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한국 야구를 위해 봉사할 차례다.” 그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머나먼 고국에서 응원을 보낸 팬들에 대한 화답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도 사람 마음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더 벌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이제 모든 걸 비우고 자신을 사랑해줬던 이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박찬호가 단 한 차례도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함께 훈련하는 선수들이 몸 관리 노하우만 배워도 이건 엄청난 봉사다.

인천과 협상 결렬된 김남일

최근 김남일은 러시아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 복귀를 타진했다. 고향 팀인 인천유나이티드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간판 스타가 없어 고민이었던 허정무 감독도 “김남일을 꼭 영입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김남일은 인천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부평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던 김남일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 팀에서 보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그가 90분 풀타임을 소화할 체력이 아니라고 해도 괜찮다. 고향 팀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재정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인천으로서는 “우리가 줄 수 있는 만큼은 주겠다”면서 팀내 최고 대우를 약속했지만 김남일 측은 “연봉 5억 원은 받아야겠다”고 했다. 결국 양 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더 이상의 협상을 포기했다. 넉넉하지 않은 인천 살림으로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선수에게 연봉을 5억 원씩이나 안겨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남일은 현재 자신의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J리그 구단을 알아보고 있다.

능력에 걸맞는 대우를 약속받지 못해 인천행을 거절한 김남일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프로 스포츠에서 연봉은 곧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잣대다. 또한 이제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김남일은 확실한 노후 대비를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일반인처럼 50대가 되어서도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니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두는 게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몇 억 원씩 오가는 대형 거래에 제3자인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K리그 사랑” 외치던 이영표의 밴쿠버행

하지만 그럼에도 김남일의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아는 한 박찬호처럼 어마어마한 부자는 아니지만 김남일도 자신은 물론 2세가 쓰고도 남을 만큼의 돈은 벌었다. 적어도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만한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그런 훌륭한 위치에 올랐으면 돈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쫓는 게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 많은 사랑을 받는 길이 아니었을까. 이건 간판 스타를 놓친 인천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김남일을 위해서 하는 이야기다. 그가 만약 “이제는 고향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으면 더 많은 박수를 받지 않았을까.

2,400만 원을 받고 돌아온 선수도 있는데 팀내 최고 대우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 누구도 김남일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터프하고 넓은 활동 반경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김남일이 어린 시절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고향에서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멋지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모습만 바라보면 바랄 게 없다. 기량을 끌어 올린 건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했겠지만 팬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만큼 훌륭한 선수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꼭 고향 팀 인천이 아니더라도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전남에서 돈보다 더 멋진 가치를 찾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늘 “K리그 사랑”을 외치던 이영표도 결국에는 밴쿠버로 떠났다. 그러면서 “당장 K리그로 돌아와 경기를 하면서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해서 나중에 뭔가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가 위대한 축구선수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행정을 제대로 배워 훗날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밴쿠버에서 보내면서 행정 공부를 병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뜨거운 사랑을 보냈던 K리그 팬들에게 한 시즌 만이라도, 아니 1분이라도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은퇴한 뒤 공부를 위해 떠나는 게 더 아름다운 선택 아니었을까.

김남일과 이영표, 그들의 선택이 아쉬운 이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인다. 이걸 가지고 또 종목의 우월성을 놓고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건 특정 종목을 떠나 선수 개인의 선택을 놓고 비교한 것이다. 한 겨울에 연탄 나르기 봉사하고 자발적으로 자선경기 열어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축구선수도 무척 많다. 김남일과 이영표, 박찬호의 선택을 축구와 야구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많은 사랑을 받고 평생 쓰고도 남을 부를 얻고 명예까지 얻은 스포츠 스타가 은퇴를 앞두고 다른 선택을 한 것에만 초점을 맞춰줬으면 한다.

김남일과 이영표는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선수다. 나 역시 그들의 오랜 팬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축구 인생을 보낸 이 훌륭한 선수들이 외국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고국의 그라운드에서 10년 넘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온 팬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야 한다. 2,400만 원짜리 최저 연봉 투수 박찬호를 바라보고 있자니 김남일과 이영표의 선택이 더더욱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