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오면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이 동시에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2011년을 되돌아보니 온통 슬펐던 일들만 가득 떠오른다. 한국 축구의 2011년은 참 슬프고 힘겨웠다. 매년 실망스러운 일은 항상 있었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실망과 슬픔이 가득했던 해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한국 축구의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2012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승부조작, 씻을 수 없는 상처

지난 5월이 되고 한국 축구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승부조작이라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거대한 음모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프로 스포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 엄청난 사건은 곧바로 K리그에 큰 타격을 줬다. 함께 땀 흘리는 동료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선수들을 응원했던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 한 번 승부조작에 참여한 선수들은 이를 주도한 조직폭력배의 협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던 故정종관과 군 검참에 의해 공갈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았던 故이수철 감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까지 터진 것이다. 말 그대로 K리그는 초상집이었다. 최성국 등 국가대표까지 지내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팬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한 동안 사람들은 K리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봤다. 승부조작은 한국 축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신영록은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발 빠른 응급조치와 본인의 의지, 팬들의 염원이 모아져 60여일 만에 의식을 되찾긴 했지만 왕성한 활약을 했던 신영록은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던 그가 다시 그라운드에 서길 기다리는 이들이 많지만 이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천만다행으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승부조작 여파로 뒤숭숭하던 K리그는 신영록이 쓰러지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참으로 슬픈 5월이었다. 승부조작 여파로 올스타전이 취소될 정도였다.

‘공공의 적’ 알 사드와 낙제점 받은 행정력

지난 시즌까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2연패하며 위용을 떨쳤던 K리그는 올해에는 결국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알 사드는 수원과의 4강전에서 비매너 골로 승리를 챙겨 수원 대신 결승전에 올랐다. 난입한 관중을 폭행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전북과의 결승전에서도 시간을 지연하는 등 침대축구로 일관했다. 결국 수원과 전북은 알 사드의 비매너 플레이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K리그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도 대단한 성과지만 아시아 왕좌 자리를 실력 외적인 문제로 알 사드에 넘겨준 올해는 무척이나 슬펐다.

행정력에서도 한계를 드러낸 한해였다. 관중을 폭행한 알 사드 선수가 결승전에 버젓이 출전하는 데도 우리는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했고 결국 이 선수는 결승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알 사드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넉 장이던 K리그의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도 내년에는 3.5장으로 줄어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축구 실력은 아시아 최강일지 몰라도 행정력 면에서는 아직도 아시아권에서도 한참 뒤지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한 해였다. 우리는 알 사드가 전주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규리그에서 2위를 기록한 포항은 손에 쥐었던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치고 2월에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 아침에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다. 제 아무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행정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12개 리그 팀 중 4개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나서게 된 카타르를 바라보고 있으면 K리그가 얼마나 행정력이 뒤떨어지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K리그의 아시아 무대 3연패 실패보다 더 주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거다.

거꾸로 가는 대한축구협회

대표팀도 실망의 연속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의 공식 출범 경기였던 지난 3월 중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는 성인 대표팀과의 중복 차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여전히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이 일본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0-3으로 참패하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한일전 0-3 패배 이후 대표팀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축구 대표팀의 올 한해는 무척이나 실망스럽고 슬픈 일들이 가득했다.

한일전 참패 외에도 한국은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부진한 경기력으로 큰 질타를 받았다. 대한축구협회는 결국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물고 있는 조광래 감독을 전격 경질하면서 제대로 된 절차를 무시하는 등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일방적으로 해임 통보를 받은 조광래 감독은 경질에 대해 강력히 불만을 뜻을 나타냈고 퇴임 기자회견을 협회에서 치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신임 감독 인선을 놓고도 많은 의문을 낳은 채 또 다시 K리그 감독 빼가기로 최강희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것도 실망스러웠다.

거수기로 전락한 기술위원회와 윗선의 ‘꼭두각시’ 역할만 하고 있는 황보관 신임 기술위원장의 행동도 축구팬들을 분노케 했고 협회는 전임 코치진들의 남은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또 다시 비난 받고 있다. 협회의 상식 밖 일처리는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조광래 감독은 협회의 대표팀 선수 선발 외압을 폭로하는 등 아직도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부진한 경기력과 미숙한 일처리, 외압 논란 등으로 올 한해 대표팀은 큰 실망을 안겼다.

슬펐던 2011년 한국 축구, 내년에는 웃길

이렇게 많은 슬픔을 안겨줬던 2011년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올 한해만큼 축구팬 하기 어려웠던 한해도 없을 것이다. 이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한국 축구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싼 축구인들과 팬들이 아니었다면 한국 축구는 더 큰 시련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2011년이 거의 다 흐른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이 위기를 넘긴 게 무척이나 다행스럽다. 이제는 슬픔을 딛고 새로운 해를 맞아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2011년에 절망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전북이 ‘닥공’으로 팬들을 감동시켰고 K리그는 여러 큰 홍역을 겪으면서도 300만 관중 돌파에 성공했다. 워낙 충격적인 일들이 많아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는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승부조작으로 상처를 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의를 지킨 선수들과 함께 내년에도 K리그를 즐길 수 있고 신영록은 희망의 아이콘이 돼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북과 알 사드의 결승전이 열렸던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K리그의 희망과도 같았다. 대표팀도 방법에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K리그 최고의 명장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2011년은 아마 한참 뒤 한국 축구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슬픈 일들이 참 많았던 2011년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이 위기를 추억으로 곱씹으며 웃기 위해서는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년에는 이런 슬픈 일들이 한국 축구에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희망적인 이야기만 가득 찬 2012년이 됐으면 좋겠다. 슬프고 힘들고 징글징글했던 한국 축구의 2011년이여, 이제는 안녕이다. 새로운 도약의 해가 될 한국 축구의 2012년이여, 어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