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나. 나는 솔로인 친구들과 모여 소주나 마시며 우울한 날을 보내야 했다. 한 동안 바빠서 연락도 하지 못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우리는 솔로라는 동료애로 이날 만큼은 똘똘 뭉쳤다. 호프집에서 3만 원 짜리 낙지볶음과 5천 원 짜리 소주를 마시면서 크리스마스의 바가지를 경험하는 동안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커플이 안주를 먹여주며 염장을 질렀다. 이 둘이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크리스마스를 즐길 때 우리는 남자 6명이서 ‘배스킨라빈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받았나.

대전 팬에게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

아마 대전 팬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더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대전은 크리스마스인 25일 “전북에서 1년간 김형범을 임대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보다 더 흥분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을까. 아마 명품백도 이보다는 기쁨이 덜할 것이다. 내년 시즌 대도약을 꿈꾸는 대전으로서는 상품 가치와 전력 상승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은 셈이다. 김형범의 임대는 대전 팬들에게는 아마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어 놓은 양말을 뒤적여보니 세계 정상급 프리키커가 들어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대전으로서는 최고의 선택이다. 승강제의 초석을 다지는 내년 시즌을 앞두고 강등을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대전은 김형범을 통해 이 목표 달성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지난 주 정경호를 영입한 대전은 김형범까지 데려오면서 측면이 무척 탄탄해졌다. 김형범과 정경호라면 지금까지 대전의 열악한 여건에서 볼 수 없었던 최상의 조합 아닌가. 3~4년 전만 하더라도 대표팀에서나 볼 수 있던 조합을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비록 다소 시간은 지났지만 이 둘은 분명히 대전의 경기력을 끌어 올릴 만한 최고의 선택이다. 김형범의 프리킥 능력은 두말 하면 입 아프다. 김성준이 떠난 게 아쉽지만 대전은 그만큼 기대되는 김형범을 얻었다.

대전은 내년 시즌을 앞두고 무려 20여 명 가까운 선수들을 방출했다. 올 시즌 초반 맹활약하면서 톡톡 튀는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은호까지도 방출 대상에 포함했다. 기존 베스트11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물갈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대전 정도의 부유하지 못한 팀에서 전력감이 아닌 선수를 20명이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는 건 큰 낭비였다. 대전에 필요한 건 2군에서 뛸만한 선수 20명이 아니라 이 돈으로 1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줄 선수 한두 명이었다. 백업 선수를 강화하는 건 주전 베스트11이 안정된 뒤에 고민해야 할 부분이었는데 대전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김형범의 영입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김형범, 어렵지만 용기 있는 선택했다

김형범에게도 대전행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능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당장 김형범이 전북에서 주전을 꿰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부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미 에닝요가 떡하니 그의 자리를 꿰찼고 교체로 출장하는 이승현의 경기력도 훌륭하다. 김형범이 중앙에서 활약할 수도 있지만 주전 미드필더 루이스를 밀어내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서정진, 김동찬, 김지웅, 박정훈 등 무럭무럭 성장하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다소 무리가 있다. 김형범이 부상 이후 재활에 매진하는 동안 전북은 포지션별로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짝사랑하는 여성을 두고 잠시 군대에 다녀왔더니 그녀 주변에 킹카들이 너무도 많다.

김형범으로서는 당장 뛸 수 있는 팀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대전만큼 적합한 팀도 없다. 전북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선발 출장을 할 수 있는 대전에서 재기의 칼날을 가는 건 무척 현명한 선택이었다. 당연히 대전에서의 생활이 전북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열악할 것이다. 클럽하우스를 짓고 있는 전북은 현재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대전은 숙소 사정부터 전북보다 상당히 열악하다. 훈련을 위해 대전월드컵경기장과 보조구장, 한밭운동장 등을 전전하는 것도 김형범으로서는 지금까지 K리그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경기에 뛸 수 있는 팀을 선택했다는 건 대단한 도전 정신이다.

그는 임대 이적이 확정된 뒤 “구단이 나를 보낸 게 아니다. 타의로 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해서 양 구단에 요청을 했고 임대 이적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2군을 전전하면서도 좋은 훈련 여건과 수도권 팀, 혹은 인기 팀에 속했다는 이유로 도전 의식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부 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김형범의 도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김형범은 울산 시절 형님으로 모셨던 유상철 감독과 다시 만나 지금껏 보여주지 못했던 플레이를 마음껏 펼칠 준비를 마쳤다. 부상으로 오랜 시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가 당장 그라운드에 서 맹활약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도전을 할 정도의 강인한 정신이라면 충분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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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대전 머플러를 두를 김형범의 모습이 어색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형범은 이제 잠시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벗고 자주색 대전 유니폼을 입은 채 재기를 위해 달릴 예정이다. (사진=대전시티즌)

김형범과 대전의 ‘윈-윈’ 전략

내년 시즌에는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해 강등팀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각 구단마다 강등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특히나 대전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많은 선수들과 작별을 하는 게 힘겹겠지만 대전의 앞날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서 전력에 보탬을 줄 수 있는 선수들 속속 영입하고 있다는 건 무척 긍정적인 현상이다. 유상철 감독의 K리그 잔류에 대한 의지와 결정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전북에서 부상 이후 주전 경쟁이 힘겨워진 김형범과 대전이 만난 건 서로에게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축구선수가 우승을 노리던 팀에 있다가 잔류를 위해 뛰어야 하는 팀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년 시즌 막판 김형범이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대전을 구해낸다면 이건 대전과 김형범 모두에게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대전에 축하를 보내면서 내년에는 김형범이 부상 없이 날카로운 프리킥을 선보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길 기원한다. 크리스마스에 남자 6명이 모여 ‘배스킨라빈스’ 게임하며 술이나 마신 나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대전 팬들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