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2011 K리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5일 1라운드 네 경기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이번 시즌 K리그는 지난 4일 전북과 울산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까지 약 9개월간 246경기(챔피언십 포함)를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을 지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 그리고 매서운 추위가 불어 닥친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펼쳐진 그라운드의 전쟁은 올 시즌에도 K리그 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오늘은 이 246편의 드라마 중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명작 10선’을 꼽아봤다.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명승부 TOP10은 과연 어떤 경기들일까.

10위. 2011년 5월 22일 울산문수경기장

울산 3-2 성남 (부제 :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의 진가)

울산의 행보는 불안했다. 선수층에 비해 성적이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전 6경기 동안 승리가 없는 상황에서 14위까지 떨어져 지난 5월 22일 성남을 안방으로 불러 들였다. 성남은 기필코 이겨야 하는 상대였다. 울산은 전반 13분 만에 설기현의 크로스를 김신욱이 헤딩으로 꽂아 넣어 앞서갔지만 성남은 조동건을 앞세워 동점골을 뽑아냈다. 양 팀의 팽팽한 공방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전반 32분 최재수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설기현이 침착하게 차 넣으면서 2-1로 울산이 앞서나갔지만 울산은 전반 막판 또 다시 조동건에게 골을 허용하며 전반을 2-2로 마쳐야 했다. 지긋지긋한 무승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던 울산으로서는 후반 들어 필사적으로 결승골을 노렸다. 그리고 팽팽하던 승부는 후반 35분 마침내 울산으로 기울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김신욱의 백헤딩을 이어받은 곽태휘가 통렬한 왼발 발리슛으로 성남 골문을 뒤흔든 것이었다. 골 넣는 수비수로 올 시즌 울산을 위기 때마다 구해낸 곽태휘는 이날 경기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입증했다. 간절하던 울산의 1승도 이렇게 완성됐다.

9위. 2011년 3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5-2 부산 (부제 : ‘닥공’의 시작)

전북의 ‘닥공’이 뭔지 제대로 보여준 한판이었다. 전북은 지난 3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부산을 불러 들였다. 전북의 우세가 예상됐지만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양상은 다르게 흘러갔다. 전북은 양동현에게 한 골을 허용하더니 전북에서 부산으로 이적한 임상협에게 한 골을 더 내줘 전반 시작 30분 만에 0-2로 끌려갔다. 제 아무리 ‘닥공’의 전북이라지만 남은 시간 동안 세 골 이상을 넣어 승리를 거두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전북은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동국이 실점 후 1분 만에 왼발 슈팅으로 한 골을 따라 붙으며 역사적인 개인 통산 100호 골을 기록했고 10분 뒤 김지웅의 골로 동점을 만들며 추격하기 시작했다. 친정팀 골문에 비수를 꽂았던 부산 임상협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다가 퇴장을 당했고 결국 이동국은 후반 18분 에닝요의 코너킥을 이어받아 극적인 역전골을 기록했다. 전북은 역전 후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이승현과 정성훈이 각각 한 골씩을 더 추가했다. 무시무시한 전북의 올 시즌 ‘닥공’은 이렇게 시작됐다.

8위. 2011년 7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3-2 상주 (부제 : 골키퍼 없는 상주의 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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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서울도 패배한 상주도 모두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지난 7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서울과 상주의 경기는 승부조작 여파와 경고 누적 출장 정지로 골키퍼가 없는 상주의 투혼이 무척 빛났다. 상주는 필드 플레이어 이윤의에게 골문을 맡겨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모두가 서울의 손 쉬운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상주는 전반 33분 고차원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김정우가 차 넣어 1-0으로 앞서갔다. 서울이 후반 9분과 20분 데얀의 골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상주는 후반 42분 최효진이 얻어낸 프리킥을 김민수가 직접 꽂아 넣으면서 2-2 동점을 이끌어 냈다. 처음으로 골문을 지킨 이윤의는 최선을 다했고 상주 수비수들은 온 몸을 던지며 불안한 골문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결국 상주는 후반 추가 시간에 무너졌다. 방심한 틈을 타 방승환이 극적인 헤딩 골을 기록하면서 상주의 이변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서울의 3-2 승리였다. 하지만 상주가 보여준 투혼은 충분히 우리의 가슴에 오랜 시간 남을 것이다.

7위. 2011년 7월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 2-3 경남 (부제 : 한 여름 밤의 축구 드라마)

지난 7월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제주와 경남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제주는 경기 시작부터 거세게 경남을 몰아치더니 전반 41분 첫 골을 기록했다. 경남 정다훤의 핸드볼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박현범이 가볍게 마무리한 것이다. 제주는 후반 12분에도 자일의 슈팅이 왼쪽 골대를 맞고 나오자 산토스가 이를 밀어 넣으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이때부터 경남이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후반 31분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김인한의 슈팅이 흘러나오자 윤일록이 만회골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씨를 살리더니 2분 뒤에는 윤빛가람이 기가 막힌 프리킥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거친 파울로 강준우가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몰린 제주는 자일을 빼고 수비수 윤원일을 투입하며 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건 경남 김인한이었다. 김인한은 후반 추가 시간에 윤일록의 패스를 이어 받아 제주 골문을 가르는 극적인 역전골을 뽑아내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제주 서귀포에서 벌어진 한 여름 밤의 축구 드라마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6위. 2011년 7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대구 2-3 부산 (부제 : 유경렬의 빛바랜(?) 두 골)

대구 수비수 유경렬이 두 골을 넣은 경기였다. 하지만 한 골은 상대 골문을 향했지만 두 번째 골을 자신의 골문을 향했다. 지난 7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펼쳐진 대구와 부산의 경기는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혈투였다. 유경렬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 35분 윤시호가 올린 코너킥을 골로 연결하며 포효했다.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하면서 동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눴다. 하지만 후반 15분 유경렬은 두 번째 골을 기록하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임상협의 크로스가 유경렬을 맞고 자책골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대구는 후반 23분 황일수가 중거리슈팅으로 부산 골문을 가르며 또 다시 2-1로 앞서나갔지만 부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부산은 후반 40분 임상협이 골을 기록하며 다시 동점을 만들었고 마침내 후반 추가 시간도 다 흐른 48분에 거짓말 같은 역전골에 성공했다. 박태민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한상운이 논스톱 발리슛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역전골을 뽑아낸 것이다. 빗속의 혈투는 결국 이렇게 부산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이날 대구는 유경렬이 두 골을 기록하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5위. 2011년 7월 23일 부산아시아드

부산 4-3 수원 (부제 : 혜성처럼 등장한 파그너)

지난 7월 23일 부산아시아드에서 열린 부산과 수원의 맞대결은 7골이나 터지는 난타전이 펼쳐졌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수원이었다. 수원은 전반 22분 핸드볼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스테보가 득점에 성공해 1-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부산은 전반 종료 직전 박종우의 코너킥을 임상협이 골로 연결하며 동점을 이뤘다. 전반을 1-1로 마친 양 팀의 본격적인 승부는 후반에 시작됐다. 부산은 후반 24분 양동현의 감각적인 감아차기 슛으로 2-1로 앞서나간 뒤 6분 만에 또 다시 한 골을 더 기록했다. 양동현의 패스를 이어받은 파그너가 빈 골대를 향해 머리로 가볍게 공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3-1로 부산의 승리가 굳어지는 순간, 수원도 반격을 시작했다. 후반 35분 이상호가 양상민의 크로스를 이어받아 헤딩골을 기록하며 추격한 수원은 3분 뒤 하태균이 또 다시 골을 꽂아 넣으면서 순식간에 3-3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수원의 반격은 여기까지였다. 부산은 후반 40분 한지호의 패스를 받은 파그너가 가볍게 골을 성공시키면서 결국 4-3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K리그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한 파그너는 부산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렸다.

4위. 2011년 7월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대전 4-4 전남 (부제 : 대전, 통한의 무승부)

지난 7월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대전과 전남의 경기에서 대전은 오랜 만에 전반에만 세 골을 퍼붓는 막강 화력을 선보였다. 한덕희와 한재웅(2골)이 연거푸 골을 기록하면서 일찌감치 3-0으로 앞서나가 11경기 연속 무승(4무 7패)의 부진 탈출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남은 전반 추가 시간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완벽한 개인기로 만회골을 뽑아내더니 후반 6분 사각에서 때린 슈팅이 최은성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두 번째 골까지 성공시켰다. 그리고 2분 뒤 전남이 기어코 동점골을 뽑아냈다. 최은성이 문전에서 실수로 흘린 공을 이완이 침착하게 밀어 넣은 것이다. 3-3. 세 골이나 앞서가던 대전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양 팀의 공방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후반 34분 대전이 또 다시 득점에 성공하며 4-3으로 앞서 나갔다. 백자건의 패스를 받은 박은호는 오른발 슈팅으로 전남 골문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이제는 정말 끝난 것처럼 보이던 후반 추가 시간, 전남이 다시 한 번 믿기지 않는 동점골을 뽑아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병윤이 오버헤드킥으로 대전 골문을 연 것이다. 이 기막힌 승부는 결국 4-4 동점으로 막을 내렸다. 세 골을 먼저 넣고도 이기지 못한 대전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3위. 2011년 5월 8일 상주종합운동장

상주 3-4 서울 (부제 :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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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15위까지 떨어졌던 서울은 부담스러운 상주 원정을 떠났다. 지난 5월 8일 경기 전까지 상주는 4승 4무로 시즌 무패 행진을 달리는 중이었다. 예상대로 경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은 전반 9분 만에 데얀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10분 뒤 박용호가 자책골을 기록하며 1-1 동점을 허용한 것이었다. 전반 35분 서울이 또 다시 데얀의 헤딩슛으로 달아다자 상주는 후반 1분 최효진의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따라 붙었다. 그러자 후반 28분 서울이 다시 한 번 앞서 나갔다. 상주 수비수가 백패스를 실수하자 데얀이 이를 가볍게 차 넣으면서 3-2로 상주를 따돌렸다. 하지만 상주가 또 다시 추격했다. 상주는 1분 뒤 곧바로 김정우가 침착하게 서울 수비 두 명을 제친 뒤 오른발 슈팅으로 시즌 10호 골을 신고했다. 서울이 도망가면 상주가 따라가는 형국이 계속됐다. 이대로 끝날 것 같던 경기는 후반 42분 서울의 극적인 골로 마무리됐다. 후반 교체 투입된 서울 현영민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오른발로 절묘하게 감아 차 극적인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끈질긴 상주와 더 끈질긴 서울이 만들어 낸 드라마였다. 서울의 올 시즌 원정 첫 승을 이렇게 이뤄졌다.

2위. 2011년 10월 16일 울산문수경기장

울산 2-1 포항 (부제 : 고창현의 거짓말 같은 슈팅)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설기현 때문에 경기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포항 팬들은 “설, 떠나줘서 고맙다”는 걸개를 내걸고 설기현에게 야유를 보냈다. 지난 10월 16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포항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울산이었다. 울산은 전반 21분 고슬기가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때린 슈팅이 골키퍼 김다솔을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포항이 반격했다. 시종일관 동점골을 노린 포항은 후반 37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역습 상황에서 아사모아의 크로스가 그대로 울산 골문을 가른 것이다. 경기는 이렇게 1-1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이때 고창현이 일을 냈다. 고창현은 후반 47분 코너킥 이후 흘러나온 공을 잡아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고창현이 감아 찬 이 공은 김다솔이 손 쓸 틈도 없이 포항 골문을 출렁였다. 결승골이 터진 순간 포항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울산 선수들은 고창현을 업고 짜릿한 승리의 감격을 누렸다. 울산을 잡고 2위를 확정지으려던 포항의 꿈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1위. 2011년 5월 15일 포항스틸야드

포항 3-2 전북 (부제 : 실수 하나에 갈린 승패)

☞ [VOD] [5/15] 전북 vs 포항 하이라이트 보러가기

지난 5월 15일 포항과 전북이 포항스틸야드에서 만났다. 포항에서 나고 자란 이동국이 전북 유니폼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치르는 이날 경기는 당시 1위 전북과 2위 포항의 맞대결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먼저 골문을 가른 건 전북이었다. 전북은 전반 37분 만에 이동국이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때린 슈팅이 포항 수비에 맞고 골문으로 흘러 들어갔다. 전반 42분에는 이동국이 헤딩으로 내준 공을 박원재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점수차를 2-0으로 벌렸다. 전반에만 1골 1도움을 기록한 이동국은 후반 들어 정성훈과 교체됐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후반 들어 포항의 무서운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후반 11분 황진성의 코너킥을 이어받은 신형민은 코뼈 부상으로 안면 보호대를 하고도 헤딩슛을 연결해 추격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후반 27분 똑같은 코너킥 상황에서 이번에는 슈바가 일을 냈다. 슈바는 황진성의 코너킥을 이어받아 헤딩슛으로 2-2 동점에 성공했다. 2-2로 팽팽하던 경기는 결국 후반 33분 포항으로 기울었다. 전북 김상식이 페널티지역에서 공중볼을 처리하며 실수로 공에 손을 대 페널티킥이 선언된 것이다. 키커로 나선 슈바는 침착하게 이를 마무리해 결국 극적인 3-2 포항의 대역전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자신이 만든 스틸야드 한 켠에서 이 명승부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올 시즌 K리그는 승부조작 여파로 큰 상처를 입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어야 할 K리그가 누군가의 지시와 연기에 의해 조작되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땀과 눈물로 이렇게 팬들을 감동시킨 명승부를 기억하며 내년에는 더 멋진 승부로 K리그가 우리를 감동시켰으면 좋겠다. 어느 때보다도 힘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명승부를 연출한 선수들과 코치진,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곁을 지킨 팬들에게 한 시즌 동안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